로컬 에디터 4기

from 영카이브ㅣ걷기의 즐거움, 산책자가 되어가는 과정

Chapter. 1 

산책의 입문

* 산책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산책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전까지의 걷기란, 특정 장소에 가기 위한 이동의 수단이자 목적성에 초점을 맞춘 것에 가까웠어요. 그 이외에는 종종 날씨가 좋아서 야외 활동을 하고 싶거나, 봄이 가까워지면 꽃구경하는 정도였죠. 

본격적으로 산책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3년 전, 어느 겨울의 풍경을 마주한 이후예요.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는 노을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나뭇가지가 꽤 오랫동안 잔상에 남았어요. 그날은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어디론가 걷고 싶었고, 동네를 한 바퀴 걷다가 문득 생각나는 장소로 향했어요. 바로 동네에서 가장 '자연'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죠.

돌이켜보니 정말 다행이었던 건, 휴식이 필요했을 때 마땅히 누렸던 '쉼'이 오랜 시간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이에요. 앞으로도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방향으로, 천천히 속도를 맞춰서 걸어가고 싶어요.  

"빌딩숲 속에서 유유히 걷고 있는 저 자신? 그런 거를 되게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

[EN] 이달의 계원ㅣ1월 이동휘 - 산책의 효능

유튜브 채널 '핑계고'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이달의 계원>에서 소개된 이동휘 배우의 '산책의 효능'은 산책자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하루 동안 필요에 의해서 또는 어딘가 이동하기 위해서 걷기 보다는, '산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걸어보는 거예요. 

어느 날은 집 근처의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거나, 다음날은 맑은 하늘을 보면서 동네의 도서관으로 향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과 그 주변을 정처 없이 걸어보아요. 이로써 모두가 이 도시의 산책자가 될 수 있어요.

영상을 보면서 떠올리게 된 '산책의 효능'은 다음과 같아요. 

•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름의 사유와 고찰의 시간을 겪으며 내적 성장의 경험을 이룰 수 있다.
• 사물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 즉 익숙함과 동시에 낯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 몸을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 햇빛을 받으며 걷고, 건강한 신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Chpater. 2

산책의 장면

• EP.1 :) 💭📷📝📁

산책이 일상이 되면서 점차 아침-낮-저녁에 따라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즉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기록을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작은 수첩 속에 산책의 소감을 적었어요. 이로써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이 하나의 장면처럼 저장되었어요. 언제든 보고 싶을 때면 그날을 떠올려보곤 해요.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장면들을 더욱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해요.

• EP.2 :) 🌸🌹🌻🌼

위 사진처럼 봄이 되면 동네에서 가장 꽃이 예쁘게 피는 장소를 찾아요. 특히 봄의 상징과도 같은 개나리와 벚꽃을 주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요. 또한 봄 이외에도 그 계절에 피는 꽃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어요.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마다 색색의 꽃을 볼 수 있어서 산책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 EP.3 :) 🌱🌳🍁🍃

이제는 주기적으로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바로 걷기를 시작해요. 하늘도 천천히 바라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의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다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자연이 주는 생명의 신비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요. 가끔은 겨울의 시원한 공기가 생각나서 걷게 되고, 무더운 날씨에는 해를 잠시 피해서 그늘로 걷거나 밤 산책을 떠나요.

Chapter. 3

산책의 방법

[Step.1 ] 익숙한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겹겹이 쌓인 기록들과 함께 점점 더 깊이 '걷기' 자체에 대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어요. 또한 나만의 산책 코스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죠. 이처럼 미지의 세계 및 새로운 길을 걷는 일이 지금 제게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 되었어요.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면, 지명에 대한 유래를 알게 된 후 느끼게 '낯섦'이에요. 늘 가던 곳도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통해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것을 낯선 감각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을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인 '탄천'은 경기도 용인과 성남, 그리고 서울을 잇는 하천이에요. 지명의 유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중에서도 여러 자료를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 이전에 지명이였던 "탄리'에서 왔다는 이야기
• 숯을 굽는 골짜기를 흔히 "숯골"이라고 불렀는데, 조선 경종 때 남이장군의 6대손인 남영의 호인 탄수, 즉 탄수가 살던 골짜기라고 해서 탄골 및 숯골로 불렀다는 이야기
•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서 하류는 탄천, 상류는 원우천, 장천으로 기록

이와 연결해서 현재 탄리사거리와 함께 탄리로라는 길이 있으며, 숯골사거리 & 숯골어린이놀이터, 숯내공원 & 판교숯내저수지와 구숯내삼거리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어요.

[Step. 2] 감각을 자극하는 산책의 즐거움을 찾는다.

✅ 산책을 나서며, 그날의 분위기와 날씨에 따라서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한다.

• 상쾌하고 맑은 기운의 아침 산책  : A morning walk & 출발
• 나른한 오후를 일깨우는, 기분 좋은 사운드와 함께 산책 : 투게더 ! & 아마 늦을 여름이었을 거야 & Antifreeze
• 해 질 무렵의 포근한 저녁의 산책 :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  산책 &  동네 
• 고요한 분위기의 밤 산책 : Sunset & Slowly Fall

✅ 책에 관심이 많고, 독서를 좋아하는 산책자라면 산책 및 걷기에 관련된 글을 읽고 문장을 수집한다.

• AROUND Vol.84 산책자 (A Walker)
• 시와 산책_한정원
• 산책자_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배수아 옮김
• 걷기의 즐거움_수지 크립스 엮음· 윤교찬, 조애리 번역

(···) 오후에 산책할 때면 오전의 일이나 사회적 의무를 기꺼이 잊어버리지만 가끔 마을 일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 뇌리를 사로잡아서 주변에 집중하지 못한다. 주변을 보지도 듣지고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이내 다시 주변을 보고 듣는다. 숲 밖의 일에 몰두할 거라면 굳이 숲에 올 이유가 있겠는가?  

_ <걷기의 즐거움> p. 33 헨리 데이비드 소로 '걷기' 

(···) 그런데 숲속을 걷는 것은 실제로 엄숙하고 장엄하여 민감한 산책자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착각에 휩싸일 수가 있다. 숲속의 고요와 평안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간혹 희미한 바깥 세상의 소음이 이 매혹의 은거지로, 황홀한 어둠의 세계 안으로 스며들었는데 뭔가를 치는 소리, 휘파람, 그런 비슷한 소리,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그런 울림으로 인해 더욱 공고해지기만 하는 이곳의 압도적인 정적을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한가득 들이마셨고, 그것이 주는 효과를 듬뿍 빨아들이며 음미했다. 사방에 펼쳐진 모든 침묵과 고요함 사이 여기저기서 매혹적이고 신성한 은신처에 몸을 숨긴 새 한 마리의 구슬같이 맑고 청아한 노래가 들려왔다.

_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p.312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