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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탐스터, 철이 없었죠, 애플민트 때문에 이사했단 게 - 여덟 번째 이사, 연희동 이야기

안녕하세요! 서울 연희동에서 온 탐방 햄스터, 탐스터입니다. 반갑습니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읽으시는 분들께 고백할 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로는, 저는 연희동 토박이가 아닙니다. 

저는 NC의 고향 경상남도의 창원에서 자고 나랐습니다.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내- 서↘울↗말↘ / 잘↘하↗지↘ / 않↗나↘"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고 나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그 이유는 제가 서울에서만 이사를 혼자서 무려 8번이나! 했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과 부닥치며 서울이 제게 스며든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두 번째로 고백하자면, 저는 연희동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연희동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돌싱 말구 '돌연'이라고 해야 할지요..ㅎㅎ 2020년 코로나 시기를 연희동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지내던 기숙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쫓겨나서 연희동으로 흘러흘러 들어갔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던 회사가 문을 닫아 밥줄도 끊기고, 2년을 준비한 교환학생은 3번이나 무산되었습니다. 회사들은 재정축소로 일자리 공고를 내지도 않았죠. 정말이지 백수의 정의에 딱 맞았다고 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곳에서의 생활은 우울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교통도 꽝인데다가 언덕은 얼마나 높은지, 배달천국 코로나 시기에 배달 오시는 기사님들이 힘들어하시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모기도 정말 많구요.

(사진: 당시에 키우던 페퍼민트 '민트')

그나마 그곳에서의 낙은 집집마다 하나씩은 예쁜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는 점 정도일까요? 저도 그 파릇한 화분낭만에 빠져버려서 화분을 여러 개 키우곤 했습니다. 특히 연희동의 수많은 벌레 중 몇 마리라도 쫓아볼 생각으로 민트를 종류별로 들였습니다. 애플민트도, 페퍼민트도, 로즈마리도 키웠습니다.

벌레 쫓는 데에 도움이 되었냐 하면 사실 그닥 할 말은 없지만, 이 아이들이 이리저리 잎사귀 손바닥을 흔들며 풋풋한 춤을 추는 게 얼마나 이쁘던지요! 불안한 미래에 침대에 누워 밤낮 가리지 않고 눈물 떨군 날에도, 코로나 후유증으로 코가 막혔을 때조차도 민트 향기는 기가 막히게 나더라구요. 그 푸릇한 이파리들, 이들이 오소소- 부딪히며 작은 방을 채우는 향기가 코로나 블루에 잠식되어 있었던 저를 살아가게끔 했습니다.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갑자기 콧속을 파고드는 한 줄기의 향에 머리가 뎅- 해진 기억이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던 연희동에 다시 가게 된 건 글쎄요, 뜬금없게도, 그리고 아주 사소하게도, 어디선가 날아든 "애플민트 향" 때문이었습니다.

햇살 좋은 어느 4월, 외근으로 연희동을 들렀던 날이 있어요. 볕이 따뜻해서 근무가 끝나고도 계속 연희동 사이사이를 걸었습니다. 코너를 홱- 도는 순간, 기억 한 모퉁이를 확- 잡아끄는 향 때문에 저는 우뚝 하고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올록볼록 보도블럭 위에 예쁘게 내놓은 애플민트가, 4월의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며 이리저리 그 향기를 뽐내고 있더라구요.

처음 연희동에 쫓기듯 숨어들었던 날부터 햇수로는 4년이 지났습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웃고 우는 저였지만, 그간의 일을 통해 많이도 무던해졌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 있을 만큼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애플민트의 향을 맡으니 첫 연희동 생활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힘든 시기를 어찌저찌 견뎌낸 기억에 묻은 그 빛깔과 향에 마음이 나도 모르게 먹먹해졌습니다. 아, 나 사실 연희동에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 동네의 푸릇함에 참 많이도 의지했구나. 혼자서 씩씩하게 살아보려고 바둥거렸지만 곳곳에서 날 반겨주는 풋풋함에 참 많이 반가워했구나, 하고 깨닫게 되더라구요. 배고픔을 참지 못한 어린아이가 맛난 음식에 이끌리듯, 저는 연희동에 다음 터를 잡았습니다. 물론 새 집에도 민트를 잔뜩 들였구요!

(사진: 새롭게 키우게 된 애플민트 '애민이'와 로즈마리 '삐죽이'. 애플민트 줄여서 애민이가 맞습니다..ㅎㅎ)

연희동 2회차, 이젠 2년이 다 돼가는 연희동 생활은 여전히 단점도 많고 장점도 많아요. 여전히 언덕도 많고, 교통도 꽝이고, 모기도 기승입니다. 그렇지만 연희동이 지켜왔던 그 푸르름은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연희동을 떠올릴 때 예쁜 구옥들을 떠올릴 수도 있고, 빠르게 피었다 질 패스트 트렌드가 잠시 머무는 곳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과거 한국사가 머리속에 스쳐지나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에게 연희동은 옷가게를 가도, 심지어 핫도그집을 가더라도, 그 어디를 가도 파릇한 정이 반겨주는 동네랍니다. 정성을 다해 잎사귀 하나하나에 키워낸 푸른 온정이 우리를 감싸안는 동네요. 연희동 그 이름만 듣는다치면 어찌 보면 나랑 연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름이랄지도, 그 어디에서보다도 말없는 보살핌을 잔뜩 받게 되는 그런 곳이지요.

연희동에서 꽃집을 찾기는 참 쉽지 않을 거예요. 모든 집이 꽃집처럼 생겼거든요!
(좌) 연희동의 흔한 옷가게 / (우) 꽃집인지 핫도그집인지 모를 매력적인 연희동 가게

연희(延禧)동의 연은 '끌어들이다'를, 희는 '복'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요. 어쩌면 코로나를 잘 버텨낸 것도, 연희동에 다시 올 용기를 낸 것도 이 동네가 선물한 푸르른 복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그 누가 가더라도, 늘 정다운 푸름으로 모두를 반겨주는 연희동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