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녕킴, 아메리카노만 마셔? 걸어서 행궁동 커피 속으로

난 디카페人이다. 

정확히는 카페인에 민감한 심장을 가진 카페 애호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에, 아니 카페에 취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초중고 등굣길부터 우리 집 골목까지 전부 카페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200년 전 정조가 깔아둔 성벽, 화성처럼 카페들은 한순간에 수원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하나둘 모여 거리가 된 행궁동 카페는 당시 휴학한 동기와의 우연한 만남까지 주최할 정도로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타고난 디카페人이지만 "행궁동 카페 거리 어때?" 질문에 되받아치기 위해 나만의 커피 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행궁동 카페의 창문, 창룡문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쪽 문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촬영지

주말만큼은 커피 향을 맡으며 아늑한 카페에서 잔잔한 어쿠스틱 음악을 듣고 싶다. 문제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 어느덧 행궁동은 음악 소리가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시그니처 메뉴를 살피기보단 앉을 자리를 확인해야 하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자리만 찾다가 사람들 머리 사이로 창밖이 보였다. 바깥은 깔끔한 연두색이었다. 그리고 텅 빈 성곽길이 있었다. 화성은 5.4km의 길이자 40개가 넘는 대형 건축물이다. 행궁동 카페 어디에서든 성벽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카페에서 성곽길로 나가기 어렵지 않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성곽길을 오르는 것, 내가 찾은 행궁동 커피 맛이다. 

차가울 수 없는 창룡문의 바람과 플랫화이트

늦봄과 초여름 사이엔 바람이 있다. 고래가 하늘에서 헤엄치게 만들 바람. 통통 튀어 오르는 마리오 게임도 한바탕 펼쳐진다. 시원하게 트인 창룡문에선 유독 바람이 많이 분다. 성벽의 비탈길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고래를 날려버릴 정도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언덕 밑은 눈동자에 연으로 가득 찬 아이들과 그런 아이를 놓치지 않는 어른들로 붐빈다. 그래서 창룡문의 바람은 강하게 불 지 언정 차갑진 않다. 잘 정돈된 길을 내려오며 *오게와 커피의 플랫화이트를 한 모금 마셨다. (아이스로 마실 수 없는 작은 카페라떼) 플랫화이트는 춥지 않은 바람 정도는 거뜬히 막을 따스한 맛이었다. 

*오게와 커피는 창룡문에서 걸어서 18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

부드러운 창룡문의 밤하늘과 카푸치노

(어디서 들었는데) 오늘 하루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원에 있다면 기억 속에서 하늘을 짚어볼 필요 없다. 하루에 열기구를 몇 번 봤는지 세어 보면 된다. 수원의 열기구, 플라잉 수원은 낮에도 뜨고 밤에도 뜬다. 대낮에는 햇살 같은 여유로, 밤에는 보름달 대신 하늘을 지킨다. 매일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메이븐의 카푸치노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메이븐은 창룡문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
*디카페인은 더치 커피만 가능

디카페人이라 행운인

현대인은 몸이 2개라고 한다. 하나는 본인, 하나는 아아. 반면에 카페인 없는 커피를 우선시했던 나는 몸이 1개라는 걸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배만 부르지 않는다면 하루에 세 잔도 가능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엔 또 다른 메뉴로 도전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블렌딩했다. 다리가 지칠 때까지 걸었던 행궁동의 커피 연구는 매 순간이 풍미가 가득했다. 만약 수원 카페 거리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번에만 맛볼 수 있는 커피맛을 찾아보길 권한다. 

걸어서 행궁동 커피 속으로 !

모든 이미지 출처 수원 @녕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