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보리, 담양은 초록색 밖에 없나 봐

담양은 초록색 밖에 없나 봐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때에, 파란색 버스 안에서 ‘서울, 마이 소울’ 로고를 보았다. 당시 4개의 로고 중 하나를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를 하고 있었다. 버스 광고판에서도, 인스타그램 광고에서도 끊임없이 안내 공지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이미 선정해 둔 몇 안 되는 심볼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맥락 없이 화려하게 색칠하기도 쉽지 않은데.’
온갖 것들이 몰려있는 서울이라, 색깔도 이유 없이 온갖 곳에서 끌고 와 붙여 넣은 것처럼 보였다. 서울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것들을 멋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정작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본 색채는 시시각각 변하지 않는 빌딩 숲의 회색뿐이었다.
담양의 로고를 떠올리다
분홍, 노랑, 파랑, 초록을 가져다 쓴 로고를 보며 한결같이 초록색을 고집하던 담양의 로고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무 위에 해가 떠 있는 모양이었는데, 15살 때부터 슬그머니 로고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로고가 변하면서 동네의 색깔도 조금씩 변했다. 간판도, 안내판 표지도, 버스도, 길거리의 군청 소속 벽들도 말이다. 담양의 색깔은 초록색뿐인가. 털털거리며 산속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앉아 들판과 논밭과 그 뒤로 펼쳐진 산들을 보았다. 정말 담양의 색깔이 초록색뿐인가?

왼) 2000~2018년까지 사용한 담양군 로고 / 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인 담양군 로고 © 담양군청
사시사철 변하는 담양의 풍경을 생각하고, 새로운 색깔을 찾아보려고 했다. 담양도 알록달록, 다채롭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장면을 떠올리든지 머릿속에는 항상 녹색이 가득했다. 인정하기로 했다. 담양의 색깔은 아무래도 초록색인 것 같다.
담양의 초록색을 찾아
눈을 뜨자마자 연두색의 블라인드(#66CC00)를 걷어 올리면 커다란 통창 밖으로 우거진 나뭇잎이 보인다. 이름 모르는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66CC00)들은 블라인드 색깔보다 쨍하게 햇살을 반사하고 있다. 통유리가 하나의 액자라고 했을 때, 왼쪽 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도로를 지나 오른쪽에는 산등성이(#245441)가 보인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는 산등성이의 채도 차이로 나타난다.

녹색이 가득한 담양 창평의 모습©보리
집 밖으로 나오면 방 안에서 보았던 연두색 잎을 가진 나무(#2BE061)들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다. 두 눈으로 햇빛을 맞이하는 나무를 바라보면 그 빛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여름도 아닌데 봄의 햇살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의 싱그러움을 뽐낸다. 꽃이 아무리 피어있어도 본연의 푸르른 색을 이기지는 못한다.

꽃보다 잎이 더 잘 보이는 이팝나무©보리
숲 색(#0B6623)의 303번 버스를 탄다. 풀색(#75a64a)의 작은 새싹이 돋아나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지난다. 키 큰 나무들 뒤편으로는 연둣빛의 논밭(#5EA152)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뒤로는 건물 5층 높이 정도로 보이는 진한 초록색의 산등성이(#345F23)가 수묵화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춘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플라스틱 정류장 양쪽으로 분홍색의 철쭉이 가득하다. 그들의 반짝이는 색채에 눈이 부시다. 다육 식물과 소나무 분재를 파는 농원 곁을 지나자, 그들이 뿜어내는 어두운 초록색에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연한 봄의 방문을 알리는 모내기©보리
버스를 타고 가끔 사람(대부분 할머니)이 타는 작은 산골 마을들을 돌다 보면 여러 가지의 녹색을 볼 수 있다. 이제 막 태어나서 여린 연둣빛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나 있는 노목들은 강인한 연둣빛을 만들어낸다. 몸이 좌우로 기우뚱거리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한참 바라본다. 중간 중간에는 변치 않는 색을 가진 상록수도 있다. 산에 올라왔지만, 여전히 저 멀리에는 다른 산의 둔덕이 보인다. 그곳에는 해와 구름이 경계선을 만들고, 그들은 또 다른 연한 녹색과 진한 녹색을 만든다.
담양의 색채가 초록색뿐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초록색 안에 들판처럼 펼쳐진 무수한 스펙트럼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담양은 더 이상 그냥 초록색은 아닐 것이다.
로컬 에디터 3기
from 보리, 담양은 초록색 밖에 없나 봐
담양은 초록색 밖에 없나 봐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때에, 파란색 버스 안에서 ‘서울, 마이 소울’ 로고를 보았다. 당시 4개의 로고 중 하나를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를 하고 있었다. 버스 광고판에서도, 인스타그램 광고에서도 끊임없이 안내 공지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이미 선정해 둔 몇 안 되는 심볼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맥락 없이 화려하게 색칠하기도 쉽지 않은데.’
온갖 것들이 몰려있는 서울이라, 색깔도 이유 없이 온갖 곳에서 끌고 와 붙여 넣은 것처럼 보였다. 서울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것들을 멋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정작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본 색채는 시시각각 변하지 않는 빌딩 숲의 회색뿐이었다.
담양의 로고를 떠올리다
분홍, 노랑, 파랑, 초록을 가져다 쓴 로고를 보며 한결같이 초록색을 고집하던 담양의 로고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무 위에 해가 떠 있는 모양이었는데, 15살 때부터 슬그머니 로고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로고가 변하면서 동네의 색깔도 조금씩 변했다. 간판도, 안내판 표지도, 버스도, 길거리의 군청 소속 벽들도 말이다. 담양의 색깔은 초록색뿐인가. 털털거리며 산속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앉아 들판과 논밭과 그 뒤로 펼쳐진 산들을 보았다. 정말 담양의 색깔이 초록색뿐인가?
왼) 2000~2018년까지 사용한 담양군 로고 / 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인 담양군 로고 © 담양군청
사시사철 변하는 담양의 풍경을 생각하고, 새로운 색깔을 찾아보려고 했다. 담양도 알록달록, 다채롭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장면을 떠올리든지 머릿속에는 항상 녹색이 가득했다. 인정하기로 했다. 담양의 색깔은 아무래도 초록색인 것 같다.
담양의 초록색을 찾아
눈을 뜨자마자 연두색의 블라인드(#66CC00)를 걷어 올리면 커다란 통창 밖으로 우거진 나뭇잎이 보인다. 이름 모르는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66CC00)들은 블라인드 색깔보다 쨍하게 햇살을 반사하고 있다. 통유리가 하나의 액자라고 했을 때, 왼쪽 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도로를 지나 오른쪽에는 산등성이(#245441)가 보인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는 산등성이의 채도 차이로 나타난다.
녹색이 가득한 담양 창평의 모습©보리
집 밖으로 나오면 방 안에서 보았던 연두색 잎을 가진 나무(#2BE061)들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다. 두 눈으로 햇빛을 맞이하는 나무를 바라보면 그 빛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여름도 아닌데 봄의 햇살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의 싱그러움을 뽐낸다. 꽃이 아무리 피어있어도 본연의 푸르른 색을 이기지는 못한다.
꽃보다 잎이 더 잘 보이는 이팝나무©보리
숲 색(#0B6623)의 303번 버스를 탄다. 풀색(#75a64a)의 작은 새싹이 돋아나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지난다. 키 큰 나무들 뒤편으로는 연둣빛의 논밭(#5EA152)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뒤로는 건물 5층 높이 정도로 보이는 진한 초록색의 산등성이(#345F23)가 수묵화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춘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플라스틱 정류장 양쪽으로 분홍색의 철쭉이 가득하다. 그들의 반짝이는 색채에 눈이 부시다. 다육 식물과 소나무 분재를 파는 농원 곁을 지나자, 그들이 뿜어내는 어두운 초록색에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연한 봄의 방문을 알리는 모내기©보리
버스를 타고 가끔 사람(대부분 할머니)이 타는 작은 산골 마을들을 돌다 보면 여러 가지의 녹색을 볼 수 있다. 이제 막 태어나서 여린 연둣빛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나 있는 노목들은 강인한 연둣빛을 만들어낸다. 몸이 좌우로 기우뚱거리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한참 바라본다. 중간 중간에는 변치 않는 색을 가진 상록수도 있다. 산에 올라왔지만, 여전히 저 멀리에는 다른 산의 둔덕이 보인다. 그곳에는 해와 구름이 경계선을 만들고, 그들은 또 다른 연한 녹색과 진한 녹색을 만든다.
담양의 색채가 초록색뿐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초록색 안에 들판처럼 펼쳐진 무수한 스펙트럼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담양은 더 이상 그냥 초록색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