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시카, 반쪽짜리 서울 사람의 동대문구 이문동 이야기

와, 니 서울에서 왔나?
산촌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온 것 마냥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말씨가 어쩜 그리 나긋나긋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되었는지, 대부분의 집이 농사를 지었던 학교에서는 서울 친구의 많은 것들이 유행이 되곤 했다.
어찌저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도롱뇽알과 개구리알을 한 번도 보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학원만 다녔다는 동기들의 말이 거짓 같았다. 이내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인이 되어 계절은 춥다, 덥다로만 느끼는 시간의 흐름에는 무딘 사람이 되어 갔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 서울에서 살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속의 온전한 서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서울 시민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낯설다. 그저 주민등록지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인 주민 중 하나일 뿐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나의 고향은 바뀐 것이 없는데 이곳 서울은 분기별로 달라진다. 모든 것이 빠르다. 여기에서 나고 자란 100% 서울 사람은 아니지만 이문동 주민으로서 우리 동네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치찌개 식당에서 와인바로]
상가는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되면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 주변 500m에서 10년 동안 그대로 장사하는 밥집이 손에 꼽는다. 유명했던 식당들이 없어지면, 으레 학생들은 놀라움과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잔뜩 쉬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중 하나가 이문동 터줏대감이었던 꿀꿀 김치찌개(좌). 푸짐한 계란말이와 돼지고기 가득한 김치찌개는 학생들의 배를 뜨뜻하게 채워주기도, 술안주로도 손색없었다. 겨울이면 김치찌개 김으로 문이 뽀얗게 서렸다. 몇 해 전 사장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가게를 내놓으셨다.
이어 한 청년이 하트 모양 네온사인을 내걸고 새로운 가게를 차려내고 있었다(우). 간판이 없어 뭐 하는 집인가 싶었는데 와인바였다. 젊은 친구들의 취향에 맞게 달달한 포트와인, 고독하게 마실 위스키, 파스타와 간단한 스낵 등등을 판매한다. 주린 배를 든든히 채워줬던 김치찌개 집이, 취업한 선배가 예뻐하는 대학 후배에게 술을 사줄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좌) 꿀꿀 김치찌개(자료:구글 지도)
(우) 와인바 manylove
[드디어 정상 운행하는 외대앞역 에스컬레이터]
2018년부터 외대앞역 에스컬레이터는 오래되었다며 교체 공사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남긴 채 가동을 멈추었다(좌). 이듬해 하반기에 공사가 끝날 것이라 했다. 그러나 2019년 가을에도 교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노트북이 든 가방을 이고 지고 계단으로 올라갔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나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갔었다.
5년 후인 2023년, 공사가 드디어 끝났다. 에스컬레이터는 아예 새로 만들어졌다(중). 엘리베이터도 여러 대가 생겨 역사 위아래를 빠르게 오갈 수 있다. 이경시장에서 장을 본 할머니들은 무거운 비닐봉지를 엘리베이터 안에 잠시 내려놓으며 편안한 얼굴을 보인다. 한 편, 18학번 학생들은 학교 다니던 내내 에스컬레이터를 써보지도 못하고 졸업했을 테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 교체 공사가 끝나니 역 아래에 있는 철길 건널목도 없어졌다(우). 안전을 지켜 준 신호수도, '띵띵띵띵' 하는 경고음과 함께 내려오는 차단기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 1호선을 지하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작년에 반듯하게 깔아놓은 에스컬레이터도 어쩌면 잠깐 기능을 하다 또 멈출지도 모르겠다.

(좌) 구 외대앞역(자료: 뉴스핌)
(중) 현 외대앞역 역사(자료: 신아일보)
(우) 폐쇄 전 건널목 풍경(자료: 이데일리)
[어린이공원은 재개발 중]
평소 자주 가던 어린이공원 두 곳이 모두 이문·휘경 뉴타운 구역으로 묶여버렸다. 아지트 두 곳이 재개발로 사라지니 기분이 허전했다. 고향에서 재개발은 먼 동네 이야기였는데,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와닿던 시점이 이때였다.
평상에 누워 별 보기 좋았던 독구말어린이공원(좌)는 이문 3-1구역에 포함되었다. 높은 빌딩에서 그곳을 바라보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땅을 다지고 있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철길 위 육교를 지나면 보림어린이공원(우)이 나왔다. 기차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으면, 고단한 하루를 잊을 수 있었다. 재개발이 추진되며 주변 주택가들이 전부 공실이 되자, 공원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마저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 아쉽게 되었다.

(좌) 독구말어린이공원(자료: 구글지도)
(우) 보림어린이공원(자료: 구글지도)
끝맺으며
여전히 서울은 고향으로 여길 수 없는 낯선 곳이다. 그렇지만 10년째 살고 있는 이문동에 대해 읊으라면 줄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지 않고도 역과 역 사이의 루트를 대강 알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쯤은 서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누군가 서울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아니라고 대답하지 말고, 절반 정도는 그렇다고 말해야겠다.
로컬 에디터 3기
from 시카, 반쪽짜리 서울 사람의 동대문구 이문동 이야기
와, 니 서울에서 왔나?
산촌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온 것 마냥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말씨가 어쩜 그리 나긋나긋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되었는지, 대부분의 집이 농사를 지었던 학교에서는 서울 친구의 많은 것들이 유행이 되곤 했다.
어찌저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도롱뇽알과 개구리알을 한 번도 보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학원만 다녔다는 동기들의 말이 거짓 같았다. 이내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인이 되어 계절은 춥다, 덥다로만 느끼는 시간의 흐름에는 무딘 사람이 되어 갔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 서울에서 살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속의 온전한 서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서울 시민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낯설다. 그저 주민등록지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인 주민 중 하나일 뿐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나의 고향은 바뀐 것이 없는데 이곳 서울은 분기별로 달라진다. 모든 것이 빠르다. 여기에서 나고 자란 100% 서울 사람은 아니지만 이문동 주민으로서 우리 동네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치찌개 식당에서 와인바로]
상가는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되면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 주변 500m에서 10년 동안 그대로 장사하는 밥집이 손에 꼽는다. 유명했던 식당들이 없어지면, 으레 학생들은 놀라움과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잔뜩 쉬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중 하나가 이문동 터줏대감이었던 꿀꿀 김치찌개(좌). 푸짐한 계란말이와 돼지고기 가득한 김치찌개는 학생들의 배를 뜨뜻하게 채워주기도, 술안주로도 손색없었다. 겨울이면 김치찌개 김으로 문이 뽀얗게 서렸다. 몇 해 전 사장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가게를 내놓으셨다.
이어 한 청년이 하트 모양 네온사인을 내걸고 새로운 가게를 차려내고 있었다(우). 간판이 없어 뭐 하는 집인가 싶었는데 와인바였다. 젊은 친구들의 취향에 맞게 달달한 포트와인, 고독하게 마실 위스키, 파스타와 간단한 스낵 등등을 판매한다. 주린 배를 든든히 채워줬던 김치찌개 집이, 취업한 선배가 예뻐하는 대학 후배에게 술을 사줄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좌) 꿀꿀 김치찌개(자료:구글 지도)
(우) 와인바 manylove
[드디어 정상 운행하는 외대앞역 에스컬레이터]
2018년부터 외대앞역 에스컬레이터는 오래되었다며 교체 공사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남긴 채 가동을 멈추었다(좌). 이듬해 하반기에 공사가 끝날 것이라 했다. 그러나 2019년 가을에도 교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노트북이 든 가방을 이고 지고 계단으로 올라갔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나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갔었다.
5년 후인 2023년, 공사가 드디어 끝났다. 에스컬레이터는 아예 새로 만들어졌다(중). 엘리베이터도 여러 대가 생겨 역사 위아래를 빠르게 오갈 수 있다. 이경시장에서 장을 본 할머니들은 무거운 비닐봉지를 엘리베이터 안에 잠시 내려놓으며 편안한 얼굴을 보인다. 한 편, 18학번 학생들은 학교 다니던 내내 에스컬레이터를 써보지도 못하고 졸업했을 테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 교체 공사가 끝나니 역 아래에 있는 철길 건널목도 없어졌다(우). 안전을 지켜 준 신호수도, '띵띵띵띵' 하는 경고음과 함께 내려오는 차단기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 1호선을 지하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작년에 반듯하게 깔아놓은 에스컬레이터도 어쩌면 잠깐 기능을 하다 또 멈출지도 모르겠다.
(좌) 구 외대앞역(자료: 뉴스핌)
(중) 현 외대앞역 역사(자료: 신아일보)
(우) 폐쇄 전 건널목 풍경(자료: 이데일리)
[어린이공원은 재개발 중]
평소 자주 가던 어린이공원 두 곳이 모두 이문·휘경 뉴타운 구역으로 묶여버렸다. 아지트 두 곳이 재개발로 사라지니 기분이 허전했다. 고향에서 재개발은 먼 동네 이야기였는데,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와닿던 시점이 이때였다.
평상에 누워 별 보기 좋았던 독구말어린이공원(좌)는 이문 3-1구역에 포함되었다. 높은 빌딩에서 그곳을 바라보니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땅을 다지고 있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철길 위 육교를 지나면 보림어린이공원(우)이 나왔다. 기차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으면, 고단한 하루를 잊을 수 있었다. 재개발이 추진되며 주변 주택가들이 전부 공실이 되자, 공원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마저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 아쉽게 되었다.
(좌) 독구말어린이공원(자료: 구글지도)
(우) 보림어린이공원(자료: 구글지도)
끝맺으며
여전히 서울은 고향으로 여길 수 없는 낯선 곳이다. 그렇지만 10년째 살고 있는 이문동에 대해 읊으라면 줄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지 않고도 역과 역 사이의 루트를 대강 알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쯤은 서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누군가 서울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아니라고 대답하지 말고, 절반 정도는 그렇다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