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리뷰]익숙하지만 새로운, 안동에서 한나절

  장소장소 리뷰  

걸어서 안동속으로 



안동에서 머물 수 있는 딱 한나절의 시간이 생겼어요. 어떻게 이시간을 알차게 보낼까 고민했죠. 하회마을, 도산서원, 안동하면 떠오르는 문화유산들을 가보자 했는데, 자가용 없이는 방문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안동역에서 하회마을까지는 직선거리로 13km가 넘고, 약 1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 단 10회만 운영하더라고요. 결국, 포기했죠. 서울의 2.5배, 넓고 넓은 안동에서 뚜벅이 여행 괜찮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 걸어서 세계, 아니 안동속으로~ 걷다가 만난 안동은 익숙하지만 새로움이 가득했어요.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공간을 소개할게요.

*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여행의 시작은 안동역이었어요. 생각보다 안동을 가기 먼 곳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안동에도 KTX가 있답니다. 2021년부터 청량리역에서 안동행 KTX 이음이 운행하였고, 작년(2023년) 12월 29일부터 서울역에서도 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 안동 구시장, 안동 뚜벅이 여행 1번지 


주소 ㅣ 경북 안동시 서부동 185 (안동역에서 버스로 약 25분, 택시로 약 15분이면 도착해요)


찜닭 골목으로 유명한 안동 구시장은 조선 후기에 형성된 안동장에서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시장이에요. 안동이 유교문화의 중심이었던 만큼, 안동장은 제수의 거래가 활발했던 곳이었대요. 제사상에는 꼭 해산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안동은 내륙이라 해안의 영덕에서부터 해산물을 가져와 바로 이곳, 안동 구시장에서 유통되었죠. 오랜 이동시간 동안 고등어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소금을 묻혔는데, 안동에 도착하니 간이 맛있게 밴 고등어가 되었다는 안동 간고등어, 그럼 안동 구시장이 간고등어의 탄생지가 되는 건가요?! ( ˃ ⩌˂) 그건 모르겠지만, 구시장 어디를 가나 간고등어와 찜닭, 안동식혜를 볼 수 있었어요.

* 안동식혜는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무, 당근, 배 등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생강물을 넣어 삭혀 먹는 안동의 전통 음료예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식혜와 달리 매콤하고 알싸한 맛이랍니다.



입구에 즐비한 작은 분식 포장마차들과 시끌벅적 상인들의 목소리가 정겨워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꼬치와 매콤달콤 길거리 떡볶이의 유혹을 지나 시장 안쪽으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갖가지 상점들이 보였어요. 수많은 가게 중 가장 오랜시간을 머물었던 건, 사탕가게였어요. 사탕이 종류별로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는데 그 풍경이 알록달록하니 얼마나 예쁘던지. 평소에 자주 볼 일 없는 옛날 사탕들이 잔뜩 있어 신기했어요. 할머니가 어디서 자꾸 꺼내주시던 알사탕도 보이고 맛을 가늠할 수 없는 홍삼 사탕, 누룽지 사탕까지! 조금씩 고른다고 골랐는데, 검은 봉지가 터질 것 같아요. 

조금 더 걷다보니 옷가게들이 하나 둘 나타났어요. 시장에 가면 괜히 잠옷이나 편하게 입을 바지나 티셔츠 같은 걸 하나씩 사곤 하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마음에 드는 잠옷 바지를 발견했어요. 단돈 만 원! 안동에서 제일 싼 집!  저마다 파격 할인이라고 손글씨로 붙여 놓은 광고들이 웃음을 자아냈어요. (사실 한바퀴 돌아보니 다 만원이더군요… 😂) 옷가게 블록을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탕 봉지말고도 잠옷바지, 목도리, 냉이, 도라지가 들려 있지 뭐예요. (도대체 냉이랑 도라지는 왜 산 걸까요?) 이런게 재래시장의 정 아니겠어요~? 역시 시장 구경은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 옥정밀, 고등어가 양식에 빠지면?


주소ㅣ 경북 안동시 음식의길 87 


소담한 한옥, 오늘 안동에서의 한 끼를 책임질 양식당, 옥정밀이에요. 왜 안동에서 양식이냐고요? 안동의 고등어를 양식으로 재해석한 특별한 곳이거든요. 고등어 파스타, 고등어 버거, 고등어 아란치니까지. 고등어 파스타라니! 상상도 안 가는 맛이라, 너무 궁금했죠. 한옥 대문을 살짝 열자,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입맛을 돌게 했어요. 오픈된 주방에서는 셰프님의 능숙한 손놀림과 현란한 불쇼가 이어졌어요.



대표 메뉴인 고등어 파스타와 아란치니, 마* 크림 버섯 리조또를 주문했어요. 고등어는 가시가 발라져 있다는 안내와 함께 파스타가 테이블 위에 놓였어요. 고등어 한 마리가 통으로 올라간 파스타의 생소한 비주얼에 잠시 멈칫했지만, 사장님의 안내대로 고등어를 먹기 좋게 찢어 파스타와 함께 한입을 베어 물자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사실 파스타에 고등어라니, 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전혀 비리지 않고 고등어가 파스타의 맛을 더 풍성하게 만들더라고요.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고등어 아란치니는, 고등어 살과 밥을 한데 똘똘 뭉쳐 튀긴 메뉴예요. 고소한 고등어 향이 은은하니 베어 감칠맛 대폭발! 겉바속촉 튀긴 주먹밥이라니 얼마나 매력 있게요? 정말 얼간재비**가 따로 없었어요. 마 크림 버섯 리조또는 다양한 잡곡이 들어가 씹는 재미와 꾸덕꾸덕한 크림소스로 계속 손이 가더라고요. 마 자체가 특별한 맛을 갖고 있는 재료는 아니라서, 마로 인한 특별한 맛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왠지 마의 끈적한 성질로 더 눅진한 리조또가 완성된 건 아닐까 추측했어요.

*안동은 참마, 대마로도 유명해요. 우리나라 마 생산량의 70%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적당히 모래가 섞여 있는 안동의 토양은 마 재배 환경에 최적의 땅이기 때문이에요. 안동 대마 디저트 탐방기, 식후에 대마 기행도 읽어보세요.

**얼간재비 : 신선한 고등어의 간이 적당하다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안동의 방언이에요.





📽️ 안동 중앙아트시네마, 다양한 영화가 모이는 작은 영화관


주소 ㅣ 경북 안동시 문화광장길 45, 3층 


걷다가 한 상가 입구에, ‘중앙시네마 예술전용관’ 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어요. 아주 예스러운 간판은 ‘레트로 감성’ 아니고, 찐 ‘레트로’라는 느낌을 마구마구 풍겼거든요.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이트보드에 정성스레 손으로 쓴 상영 시간표가 보여요. 단 한 개의 상영관뿐이지만, 참 알차게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고 있었어요. 일반 영화관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독립 영화들이 많더라고요.

계단을 올라 3층 영화관에 들어섰어요. 우리가 알던 영화관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작은 동네 책방 같기도 하고, 비밀 아지트 같기도 하고요. 영화관 사장님의 인사에, 안동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라며 짧은 대화를 나눴어요. 중앙시네마는 독립영화관이 별로 없는 안동의 시네필*에겐 마음의 안식처, 가뭄의 단비 같은 곳이래요. 관객 수와 관계없이, 수많은 담론을 가진 영화들이 공중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문화 재생산 기지라고도 할 수 있고요. 문화와 사람을 매개하는 따뜻한 공간이라니, 시간이 흘러도 오래 남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독립영화와 친하지 않더라도 부담 갖지 마세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영사기나 다양한 영화 관련 소품들도 즐비해서 가볍게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시네필(Cinephile)은 영화 애호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cinéma"(영화)와 "phile"("사랑한다"는 의미의 접미사)가 합쳐진 단어예요. 💡카카오톡 채널 친구 추가시 안동 중앙아트시네마의 주간 상영 시간표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 신세동 벽화마을, 머물고 싶은 낭만적인 노을 맛집


주소 ㅣ 경북 안동시 동문동 성진길 일대 


언제부터였을까요, 사람들이 벽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게. 어쩌면 벽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까요? 태초에 선사시대 인류가 벽을 파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벽에 그라피티 아트로 메시지를 전하고,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골목골목엔 예쁜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누가 먼저였는지는 몰라도 참 감사해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골목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 덕분에 동네를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볼 수 있거든요. 더 낭만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파란 철문 집’보다는, ‘무지개가 그려진 집’이 더 아기자기한 동네처럼 느껴지잖아요.


중앙시네마에서 십여 분 걸어 동문초등학교 앞에 도착하면 벽화골목 입구가 있어요. 벽화마을은 양쪽 갈림길로 나뉘는데요, 마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 가도 결국, 언덕의 정상, 같은 목적지에 도착한답니다. 저는 오른쪽 길을 선택해 오르기 시작했어요. 정겨운 토끼 그림, 조금은 유행이 지난 듯해 더 재미난 감성 글귀들을 구경하며 걸었어요. 언덕을 오르면 전망대라고 불리는 곳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요. ‘그림애북카페 다시여기서’는 우연히 안동에 여행을 온 사장님이 신세동 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노을에 첫눈에 반해 그다음 날 바로 얻은 가게라고 해요. 얼마나 노을이 아름답길래, 한번 보자! 하고 기다렸는데 웬걸, 안동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붉게 물드는 탁 트인 하늘을 보니, 여행 왔다가 즉흥적으로 터전을 잡은 사장님이 이해되더라고요. 안동… 너무 매력적인데요?

넋을 놓고 있는데, ‘3분 뒤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네? 이벤트요?  준비할 틈도 없이 사장님은 스톱워치를 맞췄어요. 3분 안에 카페 곳곳에 숨어있는 피규어를 찾으면 미션 성공-! 얼떨결에 카페 곳곳을 뒤지며 피규어들을 발견하고 예쁜 곰 인형을 획득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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