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리뷰]B(book)와 D(drip coffee) 사이의 C(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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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ok)와 D(drip coffee) 사이의 C(culture)



주중의 저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이라고 할 수 있어요.(실제 무게는 8톤에 한참 못 미쳐요) 주말에 수리를 맡기기로 하고 급한 대로 매일 아침 커피를 가득 채워줘요.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로 ‘커피 마시니까 힘난다!’ 하거든요. 맛의 고장, 광주로 떠나며 아이러니하게 가장 먹고 싶은 건 커피였어요. 이왕이면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필요한 드립 커피. 두고 온 일은 제쳐두고 온전히 커피에만 집중하는 사치를 누리는 거예요. 보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를 살짝 빗겨 주변을 맴돌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번 여행을 이렇게 이름 지었답니다. 광주는 B(Book)와 D(Drip coffee) 사이의 C(Culture)다. 책 한 권을 끼고 커피를 마시며, 광주의 역사를 찬찬히 훑는 글을 통해 여러분 마음에도 잠시나마 바람이 통하길 바라요.

🄱ook ; 러브앤프리 / 손탁앤아이허 🅓rip coffee ; 물고기커피로스터스 / 반가사유 🅲ulture ; 베토벤음악감상실 / 광주극장


러브앤프리, 사랑하며 자유롭게


  • 주소 | 광주 남구 천변좌로418번길 17, 1층


애정하는 노래와 같은 이름의 서점을 발견한 거예요. 가는 길에 ‘그 노래 들을까?’ 하고 검색했는데 알고 보니 노래 제목은 러브앤’피스’네요. 자유와 평화는 뗄 수 없으니까요, 아무렴 어때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착했어요. 노랫말처럼 언젠가 짧은 휴가가 생기면 항상 너를 데려가고 싶었던~ 서점을 찾은 것 같아요. 외관상 좁아 보여도 안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구조는 전시회에 온 듯 해요. 동선을 따라 작품을 관람하듯 책 구경을 할 수 있거든요. 책을 구매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2층도 있고요. ‘책도 한 권 사고 싶은데 뭐가 좋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가지런한 책들 사이로 책방지기가 남긴 한 줄 평과, 보다 긴 추천 글이 남겨져 있거든요. 즐거운 독서 생활을 만들어 줄 노트, 펜, 마스킹 테이프와 같은 문구류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 종사자들은 유대가 깊다고 느껴져요. 광주문화재단과 독립서점이 함께 발간하는 매거진 ‘사람책’도 그중 하나고요. 광주의 지역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집으로 지난해에는 도시 농부, 미용 명장, 포크 가수 등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광주를 포함한 전국의 동네서점 약 30곳에 선착순 무료 배포하는데, 러브앤프리도 함께하고 있어요.



손탁앤아이허, 재즈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 주소 | 광주 동구 제봉로138번길 8


저녁 식사 후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북카페, 손탁앤아이허를 찾았어요. 주택가 골목 사이로 따뜻한 노란 빛을 내는 2층짜리 적벽돌 건물. 의문을 품어볼 만한 인상적인 이름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수전 손탁’과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의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의 이름을 조합했데요. 수전 손탁과 만프레드 아이허 모두 제게는 생소한 인물이라 궁금증이 해소되기보다는 더해진 기분이에요.
*우리나라의 지휘자 정명훈은 ECM 뉴시리즈(ECM의 클래식라인)를 통해 첫 솔로 피아노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는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벽면을 빼곡히 채운 열람용 책과 음악 CD들, 잔잔한 BGM.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은 1인 고객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온전히 책에 집중하거나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느껴져요. 요즘은 커피 대신 술을 마시며 책을 읽는 북펍이 심심치 않게 보여요.(탐방이 만난 ‘책, 익다’도 그렇고요) 이곳 역시 커피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티와 칵테일을 판매해요.



물고기커피로스터스, 어장의 크기는 수족관의 scale


  • 주소 | 광주 동구 장동로 34, 1층

작년, 동리단길 커피 축제 ‘올해의 커피 경연대회’에서 1등 상을 받은 물고기커피로스터스. 아시아와 라틴,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산지의 원두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요. 하지만 고민할 새도 없이 동명동에서 짱 먹은 블랜딩 원두를 맛보기로 했어요. 기다리는 동안 로스팅룸을 기웃대고 있으니 흔쾌히 구경해도 된다고 하셔요. 그리고 이내 로스팅 과정 전반과 결점두*를 골라내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죠. *결점두 : 생두를 운반, 보관하는 과정에서 커피 곰팡이가 생기는 등 결점이 있는 콩을 말해요.



커피 내리는 과정을 1열에서 관람할 수 있는 바에 자리를 잡았어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으니 가히 원데이 클래스 하나를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일찌감치 일본으로 커피 유학을 다녀오신 사장님은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커피에 진심이셨어요. 갖고 계신 도자기 드리퍼**들과 필터를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시고 커피 내리는 과정 전반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죠. 각기 다른 원두의 아로마부터 초콜릿, 과일 향도 마음껏 맡고 맛봤어요. 커피 맛을 좌지우지하는 건 원두뿐만이 아니다. 도구, 물의 온도, 내리는 속도와 시간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드리퍼(Dripper) : 드립 커피를 만들 때 필터와 원두를 고정시키는 깔때기.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재질의 드리퍼를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커피 한 잔을 주문했는데 자리에서 일어설 때는 네 개의 잔이 놓여 있었어요. 혹, ‘다 마셨나요? 그럼 이제 커피값을 해야지’ 하고 로스팅룸에 가둔 채 결점두를 골라내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여행도 재밌게 즐기라고 작별 인사를 전하시네요. 그렇게 물고기커피로스터스에서 한참을 헤엄친 끝에 떠나올 수 있었어요.



반가사유, 부케의 맛에 행운을 담아


  • 주소 | 광주 동구 백서로153번길 6


간판 없이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광주에서 유명한 로스팅* 전문 카페예요. 필터 커피로 준비된 원두는 9개. 커피 노트**를 살핀 끝에 콜롬비아산 ‘로즈부케’를 골랐어요. 코를 간지럽히는 작은 꽃다발의 향을 기대하면서요.
*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드는 일. ‘배전’이라고도 해요.
**산지, 품종, 가공법, 맛 등 원두의 특징이 표시된 걸 말해요.


기다리는 동안 찬찬히 공간을 둘러봐요. 작은 반가사유상과 위스키, 사케, 와인 등 빈 술병이 오브제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독립서점의 작은 매대처럼 한 편에 진열된 책들은 자리로 가져가서 읽어도 좋고요. 겉보기엔 작아 보여도 안으로는 별관까지 딸려있어요. 옛날 가정집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방이 몇 개 있고, 그 안에 테이블과 의자를 둬서 본관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요. 매장 곳곳은 모두 사장님의 손길을 거쳤어요. 이건 미리 찾아본 정보인데, 커피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며 커피를 접하기 시작한 게 지금의 반가사유로 이어졌다네요.



분쇄된 원두 위로 몇 번에 걸쳐 따듯한 물을 붓고, 조금 덜어 맛을 확인하는 사장님 모습이 사색에 잠긴 듯하나 작은 미소를 띠는 반가사유상과 괜스레 오버랩돼요. 준비된 커피를 가져다주시며 맛과 향에 대한 설명을 조곤조곤 덧붙여 주셔요. 향을 맡고 곧장 한 모금. 잠깐, 초면에 제가 부케를 받아도 될까요? 아니 한 모금하는 순간 이미 부케를 쥐고 있네요. 커피를 마시며 이토록 강한 향을 느껴본 건 처음이에요. 홍차의 향일까, 장미꽃 향일까, 어디서 맡아봤을까. 제대로 설명해 낼 재간이 없어요. 누군가는 패션후르츠(백향과) 향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한 잔을 비우는 내내 가시지 않는 향을 음미하며 필터 커피 마시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져요. 은은한 신맛이 이른 아침의 상쾌함을 더해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문화는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신부의 행운을 나눠준다는 의미래요. 오늘 이 필터 커피 한 잔에 행운을 나눠 받았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옮겨요.



베토벤음악감상실, 그 시절 클래식 음악의 사랑방


  • 주소 | 광주 동구 금남로 250-8

부모님은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저를 이끌고 태권도 학원 건물 2층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어요. 큰 흥미는 없었지만 학원 친구들과 공기놀이하는 맛에 계속 다녔죠. 그 맛이 대체 얼마나 달콤했기에 무려 6년을 다녔는데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딱 하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1982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41년 차에 접어든 이곳을 그저 오래 한 자리를 지켜 온 카페 정도로 생각하고 방문했어요. 하지만 입구에 다다르자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문 앞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진행되는 음악 감상회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죠. 이건 마치 Beethoven과 Dongmyeong-dong 사이의 Classic ...! 지금은 생소하지만 80년대 바그너와 브람스, 슈베르트의 클래식이 흘러나오던 음악감상실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아지트였대요.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안목이 좋네요.’ 칭찬까지 받으니 얼음 동동 띄운 모과차가 더욱 달아요.

평일이라 한적한 내부를 둘러보기 좋았어요. 세월 감이 느껴지는 가구와 가전들, 하얀 피아노와 파란 벨벳 커버의 의자.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도 자주 방문했던지라 곳곳의 글과 그림을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요. ‘감상실’이라고 적힌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빨간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에 좌석이 빼곡했는데, 그곳에서 음악을 함께 듣는 등 주기적으로 행사가 열린대요. 옆으로 난 사장님의 작은 작업실은 LP와 CD가 빼곡해요. 숱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업 노트가 펼쳐져 있어요. 멀지 않은 테이블에 책을 읽고 계시는 사장님을 따라 챙겨온 시집을 읽어나가는데 꾸벅. 또 올게요, 사장님!



광주극장,  독립적인 취향을 위한 유일의 극장


  • 주소 | 광주 동구 충장로5가 62-2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전국 유일 단관극장. 출입구만 13개, 856석에 달하는 단 하나의 상영관은 2002년 광주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정받았어요. 일반 영화관에서는 보기 힘든 예술, 독립영화 등만 상영하고 있죠. 영화 관람을 목적으로 한다면 미리 🔗상영작과 시간을 확인해 주세요.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티켓이 2시간 뒤일 수도 있거든요.



관람객이 많지 않아도 곳곳에서 광주극장을 아껴 가꾸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요. 1층에서는 그간의 광주극장 이야기를 주제로 한 그림책, 내외부의 모습을 따와 만든 다양한 굿즈를 판매해요. 특히, 2-3층에서는 1935년부터 이어져 온 광주극장의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전시를 상시 관람할 수 있어요. 복도에 걸린 액자 속에도 극장의 역사가 담겨있고요. 1971년 기도실 풍경을 찍은 사진과 설명이 재밌었어요. 극장에서는 공연 때마다 건달, 불량배, 주정꾼 등에 대처하기 위해 어깨들의 두목이나 실력자를 후한 대우로 고용할 수밖에 없었데요. 이들을 기도(木戸)주임이라 칭했고요. 바람처럼 스쳐 가는~ 정열과 낭만아~~ 김두한 역시 한때 서울 우미관*에서 기도주임으로 일했고, 광주극장에는 김두한의 오른팔 김무옥이 기도주임으로 일했어요.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영화관이에요.



극장을 나오며 외벽에 한 번 더 시선을 멈춰요. 직접 그린 듯한 영화 포스터들이 간판처럼 붙어 있어요. 예전에는 극장에 간판실을 두고 직접 그려서 붙였다고 해요.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아직 걸린 곳은 이곳이 유일해요. 광주극장 영화간판학교를 통해 시민들이 각자 본 영화 중 좋았던 곳을 골라 작업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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