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리뷰]양림 산책 : 예술로 걷고, 역사로 기억하는 양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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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걷고, 역사로 기억하는 양림동


양림동은 광주 여행에서 빠지면 섭섭한 코스로 손꼽혀요. 서양식 근대 건축물과 한옥이 어우러진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거든요. 1904년 미국의 선교사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관련 유산과 저택 등의 흔적이 다수 남아있어요. 광주 최초로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며 조성된 마을인 셈이죠. 또한 뒤로는 양림산, 앞으로는 광주천이 흐르는 좋은 터라 광주의 부자들이 모여 살아서, 현재까지도 당시 지어진 한옥 건물과 수많은 역사 문화적 인물들의 유산을 거리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양림동의 세 가지 특징을 기억하세요. 선교, 자연, 전통입니다. 봄꽃과 함께한 양림 산책을 시작할게요.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 광주에서 만난 펭귄들


펭귄 마을

따뜻한 봄날인데 어쩐지 양림동 한편에는 펭귄들이 가득합니다. 광주 여행의 필수 방문 명소가 된 양림동 펭귄 마을이에요. 골목마다 정크아트와 귀여운 펭귄 벽화가 가득한 이곳은, 주민들의 자발적 마을 가꾸기의 성공적인 사례예요. 말 그대로 ‘마을’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여러 곳인데요, 산책을 시작한 곳은 양림동 오픈 스튜디오와 큰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양림(楊林)은 버드나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이 사라져서, 지금은 버드나무가 무성한 양림동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요. 펭귄 마을 앞 버드나무는 1943년 학강초등학교를 개교하면서 심은 나무인데, 2015년에 태풍으로 뿌리가 뽑힌 나무를 이곳으로 옮겨와 양림동의 유래를 상징하고 있어요.


원조 펭귄 텃밭과 펭귄 아저씨 사진 Ⓒ탐방


원래 펭귄 마을은 불에 탄 채로 방치되던 마을이었어요. 촌장님이 직접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가꾸어 농작물을 주민들과 나누면서 펭귄 텃밭과 펭귄 마을이 시작되었죠. 사고로 걸음이 불편하여 뒤뚱뒤뚱 걷는 마을 어르신의 모습에서 ‘펭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주민들은 버려지는 소품을 모아서 골목을 꾸미고, 여기저기에 펭귄을 그려 넣었어요. 아직도 펭귄 마을에 가면 원조 펭귄 텃밭의 흔적과 펭귄 아저씨의 사진도 볼 수 있어요.



골목 구석구석 레트로한 감성이 물씬 풍깁니다. 여기저기 펭귄 그림과 조형물, 그리고 물고기 모양의 정크 아트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어요. 골동품 시계가 한가득 걸린 벽은 펭귄 마을의 유명한 포토스팟 중 하나라고 해요. 마을 전체가 야외 전시장처럼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마을 안쪽에는 펭귄 모양의 만주를 판매하는 펭귄빵 카페와 공예 거리도 있어요. 공예 거리에서는 다양한 원데이클래스 체험과 공예품 구매도 가능하죠.



펭귄 마을의 또 다른 입구로 나오자 가장 궁금했던 펭귄 언덕이 보입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요. 골목골목에서 길을 잘 잃는 사람이라면 펭귄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펭귄 언덕에 먼저 올라가는 것을 추천할게요.



뒹굴동굴

펭귄 마을이 있는 양림 역사문화마을에 들어가기 전, 입구 바로 옆에는 뒹굴동굴이라는 짧은 동굴이 있어요. 귀여운 이름과 달리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설의 흔적입니다. 광주 도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미국의 공습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한 방공호 지하 시설이었죠. 하지만 화강암 지반으로 인하여 공사의 진척이 느려져 완공되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되었고, 별도의 동굴로 남은 이곳은 왕복 1분 정도의 짧은 길이로 자유롭게 출입하여 내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상주하지는 않지만, 입구에 안전모가 구비되어 있으니 꼭 착용하고 조심히 입장하세요.




근데, 근대 건축물이 왜 이렇게 많은가요?


뒤로는 양림산, 앞으로는 광주천이 흐르는 양림동은 옛날에도 역시 살기 좋은 터였습니다. 자연스레 광주의 부자들은 양림동에 정착해서 살아가기 시작했어요. 또, 20세기 초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정착하면서 서양 문물이 광주에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광주는 바야흐로 종교, 문화, 의료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양림동에는 당시에 지어진 근대 한옥과 서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어요.



이장우 가옥(좌), 최승효 가옥(우) Ⓒ탐방


근대 한옥

최승효 가옥, 이장우 가옥 등은 구한말 상류층의 주거 행태와 당시 건축양식, 그리고 생활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그중 ‘이장우 가옥’은 상시 개방되어 대문 안쪽으로도 들어가서 건축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죠.



우일선 선교사 사택(좌), 허철선 선교사 사택(우) Ⓒ탐방


선교사 사택

양림동의 가장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물은 역시 ‘우일선 선교사 사택’입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기도 해요.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Robert M. Willson)은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8년에 광주로 와서 선교활동을 했어요. 고아들을 돌보고 한국 최초의 나병원(광주나병원)을 건립하여 한센인 치료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1965년 한국에 온 허철선(Charles Betts Huntley) 역시 광주에서 선교와 교육에 힘쓴 인물입니다. 5.18 당시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사택 지하에 암실을 만들어서 세계에 광주의 참상을 국내외에 알리기도 했죠. 현재 사택은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념품을 구매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어요. 이외에도 근방에는 오웬 길, 윌슨 길 같은 산책로와 선교사 묘역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선교사 사택 근처에서는 건축물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를 보는 재미도 가득해요. 양림동 호랑가시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이나 된 큰 나무입니다. 4~5월에는 빨간 열매가 피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열매 심벌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죠.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으로도 사용한다고 해요. 선교사들이 가져와 심은 나무들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흑호두, 페칸, 은단풍 등입니다. 사택 근처에 심어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부족한 영양분을 열매로 섭취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산책은 늘 커피와 함께


육각커피 외관과 소금커피(6,000원) Ⓒ탐방


육각커피

선교사 사택에 가는 오르막길에 들른 카페는 ‘육각 커피’입니다. 이곳은 원래 ‘다형 다방’이라는 이름의 무인카페 겸 공연장이었어요. 양림동의 시인, ‘다형 김현승’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죠. 현재는 건물의 지리적 특성과 커피 이야기를 담은 로스터리 카페가 되었는데요. 양림동의 유일한 육거리에 위치했다는 점과, 커피 생두를 볶았을 때 안에 벌집 모양의 공간이 생겨난다는 커피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김현승 시인과 양림의 이야기는 커피 원두에 남아있습니다. 블렌드 원두로는 다형/윌슨/서서평 원두, 싱글 오리진으로는 유진벨/조아라 원두가 준비되어 있거든요.



사직공원 전망 타워

사직공원 전망 타워는 양림동 일대와 무등산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요. 전망 타워에서 양림동을 쭉 둘러본 후에, 아래로 내려오며 선교사 사택과 펭귄 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말 그대로 역사와 문화가 가득한 마을 양림동. 날이 더 무더워지기 전에 탐방의 루트를 따라 하루 산책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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