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걷기왕」에서 만난 강화

  문화영화  

걷기왕 | 백승화



걷기왕, 백승화 감독, 2016.


평생 차에 탈 수 없다면 어떨 것 같나요? 2016년에 개봉한 영화 걷기왕의 만복은 선천적으로 멀미가 심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소만 타도 구토를 할 정도니,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은 꿈만 같죠. 왕복 4시간이 꼬박 걸리는 등하굣길을 만복은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영화는 매일 반복되던 만복의 일상에 나타난 커다란 사건을 보여줘요. 만복을 따라나섰다가 화들짝 놀란 담임선생님이 ‘경보’ 운동을 추천한 것인데요. 공부보다는 쉬울 것 같아 시작한 운동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백승화 감독은 만복을 통해서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요구하는 ‘패기’, ‘열정’. ‘간절함’과 같은 이야기가 무책임하다고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꿈이 없어도 괜찮고,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영화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메시지는 다소 무겁지만, 영화 속 장면들은 매우 명랑하고 유쾌합니다.



강화도에 가신다면 걷기왕쯤은 봐야죠.


갑자기 2016년에 개봉한 영화를 찾아본 이유는 탐방이 강화도로 떠났기 때문이에요. 강화도 정취를 물씬 느껴보려 탐방은 함께 둘러앉아 영화를 보았어요. 물론 처음부터 걷기왕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구글에 강화도 영화를 검색하면 두 개가 눈에 띄는데요. 가장 유명한 건 석모도를 배경으로 한 ‘시월애’라는 영화에요. 포스터부터 애절한 느낌의 영화는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탐방 멤버들과 같이 보기엔 오글거렸달까요.(저희도 직장 동료라고요.) 그래서 포스터부터 유쾌한 영화인 걷기왕에 눈이 가더라고요. 무엇보다 걷는 것이 주제인 영화다 보니 강화도 곳곳이 등장할 것 같았어요. 


2시간을 걸어 학교에 온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선생님 @영화 걷기왕(2016) 메인 예고편


실제로 영화에서는 바다와 들판, 복잡한 시가지까지 다양한 강화의 장소들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걷기왕 명소’라 검색해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천만 영화가 아니다 보니 걷기왕 기념 공간은 없었고요. 생각해보면 천만영화인 ‘극한직업’보다 더 많이 웃은 것 같은데 걷기왕이 잘 안 알려진 것이 아쉬워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걷기왕 투어를 떠나봅니다. 잠시나마 만복이가 되어 강화를 걸어보고자 영화 속 장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망월평야와 별립산


영화 속 일러스트에 만복의 집은 강화도 서남부로 표시되어 있어요. 아마도 화도면 장화리나 여차리일 것 같은데요. 오늘은 만복이의 등굣길인 망월리에  갔어요.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넓게 펼쳐진 평야와 그 뒤로 별립산이 보이는 게 딱 망월리였거든요. 로드뷰로 대강 장소를 물색한 뒤, 차를 타고 이동해봅니다. 1월 중순 한겨울의 강화도는 매우 추웠습니다. 강물은 꽁꽁 얼고, 평야는 황량했어요. 겨울에도 만복이가 이렇게 추운 길을 따라 학교에 다녔다고 상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여름이나 가을이 배경이었죠. 


만복이의 등하교길 @영화 걷기왕(2016) 메인 예고편 


평야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별립산이 보입니다. 강화군 최북단인 양사면과 그 아래 양사면 사이에 위치한 별립산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불린 이름이라고 해요. 저는 처음에 ‘별’이라는 단어가 뾰족뾰족한 산꼭대기를 닮아 지어진 거로 생각했는데요. 다른 산들과 연결되지 않고 별도로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399m 낮은 산이니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올라가 봐야겠어요.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망월평야와 바다의 모습이 장관이라네요!


 망월리에서 바라본 별립산 Ⓒ탐방 



길게 펼쳐진 해안선


강화도 동남쪽에 위치한 선두리에 갔습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탄 만복이가 구토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서요. 만복은 중국집 배달하며 랩퍼를 꿈꾸는 오빠를 좋아합니다. 짝사랑하는 마음에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그만 사고를 친 거죠. 만복이의 실감 넘치는 표정이 압권입니다. 만복이의 삶은 고되지만, 관람자에게는 너무 즐거운 장면이랄까요? 그래서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어요. ‘분명 선두리다!’라는 생각으로 이곳저곳을 헤맸죠.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알았는데 촬영 장소는 동쪽이 아니라 강화도 서쪽 해안도로였더군요. 정반대에서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짝사랑 오빠의 오토바이 위에서 멀미를 하는 만복 @영화 걷기왕(2016) 메인 예고편 


꿩 대신 닭처럼 선두리의 해안을 걸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든 바다와 건너편 육지가 함께 보이는 강화의 바다 풍경이 참 신기합니다.(북쪽 강화는 남북한 접경지역이라 들어가기 어려워 정확히는 알 순 없지만요.) 동해나 제주도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죠. 넓게 펼쳐진 갯벌도 신기하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강화도의 매력입니다.


선두리는 강화도에서도 꽤 큰 해안마을이에요. 다수의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모여 있어 마을이 알록달록합니다. 아마 어릴적 가족들과 강화도 선착장에서 회를 먹은 기억이 있다면 선두리 어시장일 거예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랍니다.


꿩 대신 닭, 선두리 Ⓒ탐방 



그밖에 기억에 남는 장면들


걷기왕은 만복이네 소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목소리가 익숙할 거예요. 배우 안재홍이거든요. 감독은 인터뷰에서 ‘2030 배우 중에서 소 목소리를 할 수 있는 배우는 안재홍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적극 동감합니다. 나른하지만 뭔가 정겹고 따뜻한 목소리가 딱 ‘소’였거든요.


만복의 짝꿍도 기억에 남아요.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죠. 만복과 대비되게 매우 현실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 친구의 목표는 혁신적인 사업가나 어느 분야의 기술자도 아닌 공무원입니다. 지금 노력해 나중에는 여유롭고 편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 외치는 친구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어요. 만복이는 만복이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자신의 길과 속도를 찾아가는 것이겠죠.


걷기왕은 가족과 함께, 저처럼 동료들과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OTT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보다 가족들이 모여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적은 것 같아요. 아무튼 강화도에서 탐방이 본, 강화도 영화 걷기왕이었습니다!


(좌) 강화도 탐방, (우) 둘러 앉아 걷기왕을 보는 중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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