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1기
from 유나, 은평구와 친해지는 법 -도서관 편-

지키는 건 자신 없어도, 매년 꾸준히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작년에 세웠던 수많은 목표 중 하나였던 ‘책 30권 읽기’. 독서가 취미인 사람에게 30권이란 아주 작고 소중한 권 수겠지요. 하지만 어느새 텍스트보다는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30권은 커녕 10권도 채우지 못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숫자 ‘2023’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올해 목표는 23권으로 대폭 수정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좀 다르냐고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요. 일 년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총 6권의 책을 읽었답니다. 이런 저도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처음 뵙겠습니다.
2022년 4월 3일은 은평구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대출증을 만든 날이에요. 이사 온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문득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4월 3일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죠. 부모님이 모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4월 3일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할 날이에요. 외할아버지는 4.3 사건의 생존 희생자셨고, 친할머니는 유족이시거든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순이 삼촌』을 읽기로 마음먹었고, 동네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어요. 꽤나 가까운 거리에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있더군요.
도서관은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여태까지 가 본 도서관 중에 제일 특이했다. 내부 자체는 특색 있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게 잘 구성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처음 온 사람에게는 구조가 복잡해서 도서관 특유의 친근감이나, 편의성은 느끼기 힘들었다. 그래도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쉬는 날, 공부하거나 독서하러 가봐야지(이건 이사 가기 전 목표^_^)
-2022년 4월 3일 작성한 일기, <나에게 4월 3일은,> 중
그날의 일기에는 제법 신랄한 감상평이 적혀있네요. 마음에 드는 공간에 가면 꼭 사진을 찍는데, 도서관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나 봐요. 아니면 앞으로 올 날이 많을 거란 걸 알고 핸드폰 저장 공간을 애써 아껴뒀던 걸까요?

내가 널 몰라봤구나.
꼬박 일 년 동안은 첫 만남에서 느꼈던 인상이 변하지 않았는데요. 조금은 부정적이었던 첫인상을 뒤로하고, 도서관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던 건 영화 덕분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OTT 서비스를 이용해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날이 부쩍 많아졌고, 편리함 때문에 만족도가 꽤 높았어요. 그래도 가끔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영화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있고요.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떠나보자!’고 다짐하던 차에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독립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도서관에서 독립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인디서울*’이라는 사업 때문이었어요. 올해도 ‘인디서울2023’이 진행 중이었고,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상영관 중 하나였답니다. 마침 상영 시기를 놓쳐 보지 못했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상영해 준다기에 바로 신청했습니다. 도서관이 최근에 지어진 만큼 영화가 상영된 공간은 매우 쾌적했어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만큼의 만족감은 아니더라도 그간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했죠. 맞아요. 도서관은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저는 왜 그걸 잊고 지냈을까요?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관심을 갖고 보니, 은평구 주민에게 구산동도서관마을은 함께 자란 동네 친구 같더라고요. 설립 준비부터 예산 조성, 건축까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해요. 구산동의 낡은 다세대 주택을 연결해 만들었기 때문에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죠. 옛날 건물에서 나온 문짝을 쪼개 만든 의자도 있다는 사실은 특히 재밌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각종 문화 강좌의 대상은 영유아와 양육자부터 어린이, 청소년, 성인, 디지털 취약 계층까지 참 다양합니다. 큰글자도서와 장애인전용 좌석도 있고요. 이러한 세심한 배려를 보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웹툰 작가와 함께 웹툰을 창작하는 ‘삼박자 웹툰교실’, 청소년 만화동아리 ‘자치동갑’, 도서관 내 청소년 자료실을 직접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는 청소년운영위원회 ‘청화’ 같은 경우에는 참여할 수 있는 동네 아이들이 부럽기까지 하더라고요. ‘청화’가 운영하는 청소년 자료실 외에도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공간과 마을 자료실, 만화 자료실까지 특성화 자료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요. 요즘 로컬에 꽂혀 있었기에 이목을 끈 건 단연 마을 자료실이었습니다. 은평구 향토 역사와 문화자료, 은평구 공공기관의 발간자료, 마을공동체의 활동 기록 등 은평구의 지역자료를 총망라 한 곳이에요. 마을 자료실 내의 자료는 대여할 수는 없고 열람만 가능해요. 마을 자료실에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소식지,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를 읽어보면 도서관이 은평구 주민과 함께했던 더 다양한 활동을 엿 볼 수 있답니다.

지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지도 없이 도서관을 가다가 길을 잃었던 제가 드디어 지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가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를 알고 나니, 복잡하게 만들어져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도서관의 구조가 이제는 구산동의 골목길 같다며 좋아집니다. 은근슬쩍 감상평을 고치자, 귀신같이 길을 잃는 저는 여전히 길치군요. 그래도 이제는 도서관이 마을 입주를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저... 이제는 정말 도서관과, 아니 은평구와 제법 친해진 것 같죠?
은평구에는 구산동도서관마을 외에도 특색 있는 도서관이 많습니다. 은평구 최초의 구립 도서관인 은평구립도서관은 불광근린공원과 석교로 이어져 있다고 해요. 덕분에 불광근린공원 속에 조성된 ‘생각숲길’을 자연스럽게 산책할 수 있고, 곳곳에 미니 서가도 설치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어요.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지어진 도서관이에요. 범상치 않은 이름은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고 해요. 세 군데의 도서관 모두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다고 하니, 더위가 누그러지면 건축 산책 코스로 동네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은평구 #동네여행 #동네와친해지는법 #도서관 #구산동도서관마을 #마을이된도서관
로컬 에디터 1기
from 유나, 은평구와 친해지는 법 -도서관 편-
지키는 건 자신 없어도, 매년 꾸준히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작년에 세웠던 수많은 목표 중 하나였던 ‘책 30권 읽기’. 독서가 취미인 사람에게 30권이란 아주 작고 소중한 권 수겠지요. 하지만 어느새 텍스트보다는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30권은 커녕 10권도 채우지 못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숫자 ‘2023’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올해 목표는 23권으로 대폭 수정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좀 다르냐고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요. 일 년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총 6권의 책을 읽었답니다. 이런 저도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처음 뵙겠습니다.
2022년 4월 3일은 은평구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대출증을 만든 날이에요. 이사 온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문득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4월 3일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죠. 부모님이 모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4월 3일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할 날이에요. 외할아버지는 4.3 사건의 생존 희생자셨고, 친할머니는 유족이시거든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순이 삼촌』을 읽기로 마음먹었고, 동네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어요. 꽤나 가까운 거리에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있더군요.
도서관은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여태까지 가 본 도서관 중에 제일 특이했다. 내부 자체는 특색 있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게 잘 구성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처음 온 사람에게는 구조가 복잡해서 도서관 특유의 친근감이나, 편의성은 느끼기 힘들었다. 그래도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쉬는 날, 공부하거나 독서하러 가봐야지(이건 이사 가기 전 목표^_^)
-2022년 4월 3일 작성한 일기, <나에게 4월 3일은,> 중
그날의 일기에는 제법 신랄한 감상평이 적혀있네요. 마음에 드는 공간에 가면 꼭 사진을 찍는데, 도서관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나 봐요. 아니면 앞으로 올 날이 많을 거란 걸 알고 핸드폰 저장 공간을 애써 아껴뒀던 걸까요?
이렇게 멋진 곳을 왜 찍지 않았을까?
내가 널 몰라봤구나.
꼬박 일 년 동안은 첫 만남에서 느꼈던 인상이 변하지 않았는데요. 조금은 부정적이었던 첫인상을 뒤로하고, 도서관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던 건 영화 덕분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OTT 서비스를 이용해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날이 부쩍 많아졌고, 편리함 때문에 만족도가 꽤 높았어요. 그래도 가끔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영화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있고요.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떠나보자!’고 다짐하던 차에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독립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도서관에서 독립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인디서울*’이라는 사업 때문이었어요. 올해도 ‘인디서울2023’이 진행 중이었고,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상영관 중 하나였답니다. 마침 상영 시기를 놓쳐 보지 못했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상영해 준다기에 바로 신청했습니다. 도서관이 최근에 지어진 만큼 영화가 상영된 공간은 매우 쾌적했어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만큼의 만족감은 아니더라도 그간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했죠. 맞아요. 도서관은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저는 왜 그걸 잊고 지냈을까요?
인디서울 : 독립영화공공상영회 사업. 시민들에게 다양한 영상문화를 소개하고, 한국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서울 시내 공공문화 시설 중 영화관람 환경이 우수한 곳을 선정하여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관심을 갖고 보니, 은평구 주민에게 구산동도서관마을은 함께 자란 동네 친구 같더라고요. 설립 준비부터 예산 조성, 건축까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해요. 구산동의 낡은 다세대 주택을 연결해 만들었기 때문에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죠. 옛날 건물에서 나온 문짝을 쪼개 만든 의자도 있다는 사실은 특히 재밌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각종 문화 강좌의 대상은 영유아와 양육자부터 어린이, 청소년, 성인, 디지털 취약 계층까지 참 다양합니다. 큰글자도서와 장애인전용 좌석도 있고요. 이러한 세심한 배려를 보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웹툰 작가와 함께 웹툰을 창작하는 ‘삼박자 웹툰교실’, 청소년 만화동아리 ‘자치동갑’, 도서관 내 청소년 자료실을 직접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는 청소년운영위원회 ‘청화’ 같은 경우에는 참여할 수 있는 동네 아이들이 부럽기까지 하더라고요. ‘청화’가 운영하는 청소년 자료실 외에도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공간과 마을 자료실, 만화 자료실까지 특성화 자료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요. 요즘 로컬에 꽂혀 있었기에 이목을 끈 건 단연 마을 자료실이었습니다. 은평구 향토 역사와 문화자료, 은평구 공공기관의 발간자료, 마을공동체의 활동 기록 등 은평구의 지역자료를 총망라 한 곳이에요. 마을 자료실 내의 자료는 대여할 수는 없고 열람만 가능해요. 마을 자료실에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소식지,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를 읽어보면 도서관이 은평구 주민과 함께했던 더 다양한 활동을 엿 볼 수 있답니다.
미디어교육실 입구에 전시된 웹툰 창작물(좌), 마을자료실에 비치된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소식지(우)
지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지도 없이 도서관을 가다가 길을 잃었던 제가 드디어 지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도서관에 갔다가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마을이 된 도서관 이야기를 알고 나니, 복잡하게 만들어져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도서관의 구조가 이제는 구산동의 골목길 같다며 좋아집니다. 은근슬쩍 감상평을 고치자, 귀신같이 길을 잃는 저는 여전히 길치군요. 그래도 이제는 도서관이 마을 입주를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저... 이제는 정말 도서관과, 아니 은평구와 제법 친해진 것 같죠?
은평구에는 구산동도서관마을 외에도 특색 있는 도서관이 많습니다. 은평구 최초의 구립 도서관인 은평구립도서관은 불광근린공원과 석교로 이어져 있다고 해요. 덕분에 불광근린공원 속에 조성된 ‘생각숲길’을 자연스럽게 산책할 수 있고, 곳곳에 미니 서가도 설치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어요.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지어진 도서관이에요. 범상치 않은 이름은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고 해요. 세 군데의 도서관 모두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다고 하니, 더위가 누그러지면 건축 산책 코스로 동네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도서관 이름을 클릭하면 페이퍼백 아카이브에서 제작한 소개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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