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로컬 쓰기   

from 모모,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춘천의 우리말 이름, ‘봄내’ 

지역마다 순우리말 이름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빛고을’ 광주, ‘미숫골’ 인천, ‘노들나루’ 노량진, ‘아우라지’ 정선, ‘하슬라’ 강릉.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일 거예요.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특징에 따라 만들어진 고유어 지명이랍니다. 현재 행정용어로 쓰이지 않는 고유어 지명은 여러 이유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신라 경덕왕 시절인 757년, 나라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며 고유어 지명이 크게 위축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고유어 지명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사업 과정에서 행정적 편의에 맞춰 한자로 바뀌게 되었죠. 현재 행정용으로 쓰이는 지명 중 고유어 지명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이 지명이 한자로 바뀐 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춘천(春川)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때 ‘봄이 빨리 오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춘주(春州)였다가 조선 태종 때 ‘봄이 빨리 오는 내’라는 뜻으로 ‘봄내’로 불렸고, 봄내를 한자로 옮겨 자연스레 지금의 춘천이 되었습니다.

춘천에는 ‘봄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봄내 초등학교’, ‘봄내 체육관’, ‘봄내 촬영소’, ‘봄내 밥집’, ‘봄내 병원’ 등등. 춘천 사람들은 ‘봄내’라는 이름을 아주 많이 사용하고 좋아합니다.

(춘천에는 '봄내'라는 이름을 가진 장소가 이렇게나 많이 있어요)

봄이 흐르는 길 ‘봄내길’

사실 춘천에 살면서 춘천이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곤 해요. 춘천은 분지 형태의 지형으로 여름과 겨울에 극한의 날씨를 자랑하며 ‘춘프리카’, ‘춘베리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일까요? 춘천 사람들에게 ‘봄’과 ‘가을’은 유독 반가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춘천의 호수와 산을 즐기기에는 이만한 때가 없거든요. 3월이 오면 겨우내 얼어있던 호숫가 자전거 길이 개방되고, 5월에는 숲속 트래킹 길의 문이 열립니다.

춘천의 옛 이름을 딴 ‘봄내길’은 춘천의 봄과 가을을 가장 멋지게 즐길 수 있는 8개 코스로, 춘천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어요. 춘천과 서울을 잇는 가장 오래된 길부터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 살아 숨 쉬는 마을 길, 나라를 지키던 의병들이 걷던 순례길, 산세와 호수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길,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너 만나는 오지마을 길까지. 춘천의 숨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길이예요.

춘천의 '봄내길'은 춘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거나 들어봤을 길이예요. 직접 걸어본 길 중에 3코스 석파령너미길과 4코스 의암호 나들길을 탐방러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3코스 석파령너미길은 춘천 서쪽 끝에 있는 길로, 서울과 춘천을 잇는 가장 오래된 길입니다. 역사가 깊은 길이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자연을 즐기기에는 정말 최고예요. 춘천이 고향이면서도 석파령너미길은 작년에야 처음 가봤어요. 춘천에도 이렇게 큰 나무들과 멋진 숲이 있다니! 제주도 비자림 숲이 부럽지 않더라고요.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인지, 나비도 산새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요. 운이 좋으면 귀여운 꿩 가족을 만날 수도 있고, 주렁주렁 열린 산딸기밭이나 개복숭아 나무도 만날 수도 있답니다.

(우) ⓒ조재

4코스는 춘천의 호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길로, 자전거를 타기에 아주 좋은 길이예요. 마음이 답답한 날, 호수를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샌가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석양을 따라 반짝이는 윤슬의 풍경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어느 슬프던 날에는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찾아가, 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어요. 어린 왕자가 하루 종일 석양을 보던 장면을 떠올리면서요. 커다란 출렁임 없이 언제나 고요하게 흐르는 호수가 가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위로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요.

춘천이라는 도시가 '봄'을 품고 있어서일까요?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는 춘천을 오롯이 담아낸 문장이라 생각해요. 춘천이 가진 넉넉한 자연이 언제나 춘천을 '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마음에 봄이 필요한 날, 봄내길을 걸으며 춘천에 흐르는 봄을 만날 보면 어떨까요?

ⓒ춘천시 시정 소식지 '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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