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시
피크닉 |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 1/2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리뷰는 총 2편으로 업로드됩니다.
👉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 걸어서, 그랜드투어 2/2
17세기 영국에서는 유럽 문화의 발상지를 찾아 오랜 기간 답사를 다녀오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피크닉의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는 국내 곳곳의 여행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 권의 가이드북처럼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요? 여행지로서의 로컬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 되는 로컬까지 마주하는 진정한 그랜드 투어를 경험하기 위해, 피크닉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중구에 자리 잡은 전시관, 피크닉 Ⓒ탐방
피크닉은 꽤 여러 번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길을 잃고 돌아 돌아 후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언제쯤 정문으로 입장할 수 있을까요? 시멘트 계단을 올라 미는 건지 당기는 건지 헷갈렸던 문을 열면, 미로 같은 통로가 등장하죠. 숍 피크닉을 통과해 1층으로 올라가 온라인에서 예매한 표를 받았습니다.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 Ⓒ탐방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간판이 보이게 찍는 티켓 인증샷을 포기할 수 없어서 잠시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피크닉은 옛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죠. 언덕길을 지나면 울창한 나무 틈으로 숨겨진 따뜻한 주황색의 벽돌과 큰 창이 보입니다. 밖에서는 꼭꼭 숨겨진 공간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큰 창과 옥상으로 남산과 회현동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참 재미있지 않나요? 이름 그대로 도심 속에서 즐기는 피크닉 같습니다.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는 휴대폰 카메라 무음으로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소리만 작으면 될 줄 알고 커다란 후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표를 내밀었는데, 이럴 수가. 장비를 동원한 촬영은 금지였네요. 아쉽지만 캐비닛에 보관 후 입장합니다.
길을 떠나며 ON THE ROAD
풍경의 속도 — 서울에서 유성까지, 2003 / 유근택 Ⓒ탐방
“풍경이 우리를 밀어내며 도시의 조밀함에서 해방시킬 때의 감각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아니라 풍경이다.”
— 작품 해설 중
국내여행 전시는 유독 작품 옆에 적힌 설명글을 꼼꼼하게 읽게 됩니다. 작품을 보고 느낀 직관적인 감상보다도,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행지는 어떤 것이었을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일까요? 유근택 작가의 ‘풍경의 속도’는 출강을 하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이동하던 길에 차창 밖으로 마주한 풍경입니다. 여행에서 ‘길’은 목적지 그 자체이기도 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이기도 하죠. 순례의 여정이자 변화의 시작, 사색의 모티브라고 표현한 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며 가로로 긴 작품의 시작을 따라 서울에서 대전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작품으로 짧은 여행을 해봅니다.
서울(오)에서 대전(왼)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탐방
첩첩산중, 쌓이고 겹치는
산과 사람들 / 김근원 Ⓒ탐방
국내여행에서 ‘산’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소풍이나 여행을 떠올려보면 등산은 빠지지 않는 메인 코스였어요. 힘겹게 봉우리에 올라 정상석과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며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었죠. 김근원 작가가 한국산악회와 함께하며 기록한 23만 장의 사진을 감상해 보세요. 산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옛날의 한국 등산 문화까지 엿볼 수 있을 거예요.
서울(오)에서 대전(왼)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탐방
이날은 마침 거리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던 터라 설산을 담은 작품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닥 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기반달곰도 빼먹지 않고 감상했어요.
평창의 산, 2022 (싱글 채널 영상) / 김영일 Ⓒ탐방
등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은 같은 산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하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그저 운동이려나 싶었어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40여 년간 수많은 낮과 밤을 평창에서 보내며 얻은 사진 연작 ‘평창의 산’을 보고 있으니 말이에요. 같은 장소라고 해도 어린 시절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올랐던 산 중턱과, 나이를 먹고 친구들과 함께 오르는 산 정상은 다르니까요. 정상에 올라서 바라본 방향과 계절, 함께했던 사람들, 그날의 느낀 점까지 모두 모여서 새로운 여행이 됩니다. 영상 속 한 장씩 넘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첩첩’이라는 표현처럼, 산과 여행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쌓입니다.
호상근 재현소 — 비둘기와 갈매기의 패싸움 직전, 2022 / 호상근 Ⓒ탐방
(좌) 호상근 재현소 — 인스타그래머블 까페의 명당 자리, 2022 / 호상근 Ⓒ탐방
(우) 호상근 재현소 — 핑크뮬리 밭과 사람들, 2022 / 호상근 Ⓒ탐방
계단에는 ‘호상근 재현소’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작가가 해석한 새로운 시각을 덧대어 그린 그림들은 때때로 유쾌하고, 때때로 정겹습니다. 국내여행 전시 중 가장 ‘요즘 여행’ 같아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인 것 같아요. 카페 명당자리에 몰린 사람들이나, 핑크 뮬리 밭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여행입니다.
섬 : 폭풍 칠 때, 찬 바람 불 때, 어스름할 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산 만큼 많은 것이 바로 ‘섬’입니다. 3천 300여 개의 섬들은 훌륭한 여행지이자 삶의 터전이죠. 2층의 시작은 ‘섬’이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삶의 방식과 독특한 문화들입니다.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2006-2015 / 김영갑 Ⓒ탐방
쳐라 쳐라, 2021 / 강요배 Ⓒ탐방
"폭풍 칠 때, 찬 바람 불 때, 어스름할 때 이게 진짜 제주도다."
— 강요배
제주도라고 하면 바람이 많이 불지만 화창한 날씨와 드넓게 펼쳐진 유채꽃밭, 맑고 깨끗한 바다만 떠올라요. 제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일까요? 제주 사람이 바라본 제주는 사뭇 달랐습니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 거센 파도에 뒤덮인 겨울 바다의 모습에서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인 섬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주의 입말음식 / 하미현 Ⓒ탐방
“섬의 문화에는 그저 ‘한국적’이라고 함부로 범주화할 수 없는 섬만의 독자성과 토속성이 있다.
언어가 그러하고, 음식이 또한 그러하다.”
— 작품 해설 중
제주도에서 나름 로컬 여행을 했다고 자부했던 것이 민망하게도 하미현 작가의 입말음식에서 마주한 제주의 요리들은 새롭기만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서 공식적인 레시피가 없다는 입말음식들은 ‘찐 로컬 식당’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짜 섬사람의 끼니였거든요.
일러스트 : 앙드레 드헨 / 사진 : 이주연 Ⓒ탐방
독특한 제주 사투리로 설명된 요리법에서는 제주 음식이 거칠고 소박하고 간단하다고 해요. 상다리가 부러져라 화려하게 차려지던 횟집이나 백반집의 반찬들과는 정말 달랐죠. ‘제주 여행에서 맛본 음식들은 제주 겉핥기였군.’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얼른 밥을 먹고 일하러 가야 해서 요리랄 게 없다는 제주의 투박한 진짜 요리가 궁금해집니다.
신안, 2012-2013 / 마이클 케냐 Ⓒ탐방
신안섬, 2022 / 김봄 Ⓒ탐방
마이클 케냐가 기록한 신안의 풍경들은 미지의 공간처럼 아득합니다. 김봄 작가의 신안섬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그려낸 듯 신비로운 느낌이에요. 마치 항해사가 기다란 망원경과 함께 들고 있는 신대륙의 지도처럼 보이죠. 신안은 여행자들에게 무엇을 남긴 걸까요?
“신안은 섬들의 은하계다. (중략)
하지만 ‘신안’은 문자로만 존재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다. (중략)
신안군은 모섬이 없어 각각의 독립적인 섬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신안에 왔지만 어디가 신안인지 알 수 없다.”
섬들의 은하계라니. 멋지지 않나요? 신안에 왔지만 어디가 신안인지 알 수 없다는 표현에 이끌려 김봄 작가의 작품 옆 번호로 설명된 신안을 들여다봅니다. 흑산도, 비금도, 우이도. 익히 들어본 유명한 섬들도 있지만 자은도, 하의도, 신의도처럼 낯선 섬들이 보이네요. 게다가 사실 저는 임자도와 비금도 같은 섬들이 신안에 속한다는 사실도 잘 몰랐답니다. 여행자는 쉽게 알 수 없는 공간. 말 그대로 신안에 왔지만 어디가 신안인지 알 수 없는 여행을 했던 거죠.
피크닉이 보여주는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문화│전시
피크닉 |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 1/2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리뷰는 총 2편으로 업로드됩니다.
👉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 걸어서, 그랜드투어 2/2
• 전시 |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 장소 | 피크닉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 가격 | 성인 18,000원 / 청소년·어린이 15,000원
• 관람 시간 | 화-일(월요일 정기휴무) / 10:00 - 18:00 (입장 마감 오후 5시)
• 전시 기간 | 2022. 10. 21 - 2023. 02. 19
17세기 영국에서는 유럽 문화의 발상지를 찾아 오랜 기간 답사를 다녀오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피크닉의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는 국내 곳곳의 여행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 권의 가이드북처럼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요? 여행지로서의 로컬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 되는 로컬까지 마주하는 진정한 그랜드 투어를 경험하기 위해, 피크닉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중구에 자리 잡은 전시관, 피크닉 Ⓒ탐방
피크닉은 꽤 여러 번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길을 잃고 돌아 돌아 후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언제쯤 정문으로 입장할 수 있을까요? 시멘트 계단을 올라 미는 건지 당기는 건지 헷갈렸던 문을 열면, 미로 같은 통로가 등장하죠. 숍 피크닉을 통과해 1층으로 올라가 온라인에서 예매한 표를 받았습니다.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 Ⓒ탐방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간판이 보이게 찍는 티켓 인증샷을 포기할 수 없어서 잠시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피크닉은 옛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죠. 언덕길을 지나면 울창한 나무 틈으로 숨겨진 따뜻한 주황색의 벽돌과 큰 창이 보입니다. 밖에서는 꼭꼭 숨겨진 공간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큰 창과 옥상으로 남산과 회현동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참 재미있지 않나요? 이름 그대로 도심 속에서 즐기는 피크닉 같습니다.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전시는 휴대폰 카메라 무음으로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소리만 작으면 될 줄 알고 커다란 후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표를 내밀었는데, 이럴 수가. 장비를 동원한 촬영은 금지였네요. 아쉽지만 캐비닛에 보관 후 입장합니다.
길을 떠나며 ON THE ROAD
풍경의 속도 — 서울에서 유성까지, 2003 / 유근택 Ⓒ탐방
국내여행 전시는 유독 작품 옆에 적힌 설명글을 꼼꼼하게 읽게 됩니다. 작품을 보고 느낀 직관적인 감상보다도,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행지는 어떤 것이었을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일까요? 유근택 작가의 ‘풍경의 속도’는 출강을 하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이동하던 길에 차창 밖으로 마주한 풍경입니다. 여행에서 ‘길’은 목적지 그 자체이기도 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이기도 하죠. 순례의 여정이자 변화의 시작, 사색의 모티브라고 표현한 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며 가로로 긴 작품의 시작을 따라 서울에서 대전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작품으로 짧은 여행을 해봅니다.
서울(오)에서 대전(왼)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탐방
첩첩산중, 쌓이고 겹치는
산과 사람들 / 김근원 Ⓒ탐방
국내여행에서 ‘산’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소풍이나 여행을 떠올려보면 등산은 빠지지 않는 메인 코스였어요. 힘겹게 봉우리에 올라 정상석과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며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었죠. 김근원 작가가 한국산악회와 함께하며 기록한 23만 장의 사진을 감상해 보세요. 산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옛날의 한국 등산 문화까지 엿볼 수 있을 거예요.
서울(오)에서 대전(왼)까지. 다시 대전에서 서울까지. Ⓒ탐방
이날은 마침 거리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던 터라 설산을 담은 작품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닥 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기반달곰도 빼먹지 않고 감상했어요.
평창의 산, 2022 (싱글 채널 영상) / 김영일 Ⓒ탐방
등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은 같은 산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하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그저 운동이려나 싶었어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40여 년간 수많은 낮과 밤을 평창에서 보내며 얻은 사진 연작 ‘평창의 산’을 보고 있으니 말이에요. 같은 장소라고 해도 어린 시절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올랐던 산 중턱과, 나이를 먹고 친구들과 함께 오르는 산 정상은 다르니까요. 정상에 올라서 바라본 방향과 계절, 함께했던 사람들, 그날의 느낀 점까지 모두 모여서 새로운 여행이 됩니다. 영상 속 한 장씩 넘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첩첩’이라는 표현처럼, 산과 여행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쌓입니다.
호상근 재현소 — 비둘기와 갈매기의 패싸움 직전, 2022 / 호상근 Ⓒ탐방
(좌) 호상근 재현소 — 인스타그래머블 까페의 명당 자리, 2022 / 호상근 Ⓒ탐방
(우) 호상근 재현소 — 핑크뮬리 밭과 사람들, 2022 / 호상근 Ⓒ탐방
계단에는 ‘호상근 재현소’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작가가 해석한 새로운 시각을 덧대어 그린 그림들은 때때로 유쾌하고, 때때로 정겹습니다. 국내여행 전시 중 가장 ‘요즘 여행’ 같아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인 것 같아요. 카페 명당자리에 몰린 사람들이나, 핑크 뮬리 밭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여행입니다.
섬 : 폭풍 칠 때, 찬 바람 불 때, 어스름할 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산 만큼 많은 것이 바로 ‘섬’입니다. 3천 300여 개의 섬들은 훌륭한 여행지이자 삶의 터전이죠. 2층의 시작은 ‘섬’이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삶의 방식과 독특한 문화들입니다.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2006-2015 / 김영갑 Ⓒ탐방
쳐라 쳐라, 2021 / 강요배 Ⓒ탐방
제주도라고 하면 바람이 많이 불지만 화창한 날씨와 드넓게 펼쳐진 유채꽃밭, 맑고 깨끗한 바다만 떠올라요. 제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일까요? 제주 사람이 바라본 제주는 사뭇 달랐습니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 거센 파도에 뒤덮인 겨울 바다의 모습에서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인 섬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주의 입말음식 / 하미현 Ⓒ탐방
제주도에서 나름 로컬 여행을 했다고 자부했던 것이 민망하게도 하미현 작가의 입말음식에서 마주한 제주의 요리들은 새롭기만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서 공식적인 레시피가 없다는 입말음식들은 ‘찐 로컬 식당’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짜 섬사람의 끼니였거든요.
일러스트 : 앙드레 드헨 / 사진 : 이주연 Ⓒ탐방
독특한 제주 사투리로 설명된 요리법에서는 제주 음식이 거칠고 소박하고 간단하다고 해요. 상다리가 부러져라 화려하게 차려지던 횟집이나 백반집의 반찬들과는 정말 달랐죠. ‘제주 여행에서 맛본 음식들은 제주 겉핥기였군.’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얼른 밥을 먹고 일하러 가야 해서 요리랄 게 없다는 제주의 투박한 진짜 요리가 궁금해집니다.
신안, 2012-2013 / 마이클 케냐 Ⓒ탐방
신안섬, 2022 / 김봄 Ⓒ탐방
마이클 케냐가 기록한 신안의 풍경들은 미지의 공간처럼 아득합니다. 김봄 작가의 신안섬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그려낸 듯 신비로운 느낌이에요. 마치 항해사가 기다란 망원경과 함께 들고 있는 신대륙의 지도처럼 보이죠. 신안은 여행자들에게 무엇을 남긴 걸까요?
섬들의 은하계라니. 멋지지 않나요? 신안에 왔지만 어디가 신안인지 알 수 없다는 표현에 이끌려 김봄 작가의 작품 옆 번호로 설명된 신안을 들여다봅니다. 흑산도, 비금도, 우이도. 익히 들어본 유명한 섬들도 있지만 자은도, 하의도, 신의도처럼 낯선 섬들이 보이네요. 게다가 사실 저는 임자도와 비금도 같은 섬들이 신안에 속한다는 사실도 잘 몰랐답니다. 여행자는 쉽게 알 수 없는 공간. 말 그대로 신안에 왔지만 어디가 신안인지 알 수 없는 여행을 했던 거죠.
피크닉이 보여주는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