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제주에서 전 세계 친구들을 만나고 있어요.

제주도 | 김양숙 (청수살롱)

  인터뷰 ep.42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를 꼽으라면, <우리들의 블루스>예요. 최근이라 하기에는 벌써 1년이 지난 드라마지만, 요즘에도 다시 보곤 하거든요. 다양한 등장인물, 삶의 진한 향기, <우리들의 블루스>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진짜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크지 않았을까요? 여행으로 제주도에 방문해도, 제주 토박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달라요. 제주 토박이 김양숙님을 만나고 왔거든요. 양숙님과 대화하는데, 왜 저는 자꾸 <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희 삼촌이 떠오르는 걸까요? 아무래도 정겨운 제주도 사투리 속에 묻어나는 푸근하고 따뜻한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이걸 먹을 거라고 갖고 왔니?


제주 토박이. 바다 사람이에요. 지금은 제주도에서도 중산간 지역인 청수마을에 살지만, 원래는 제주 서부 끝 바닷가, 고산마을에 살았죠. 어머니가 해녀셨고요. 남편이 청수리의 원주민이라,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산지에서 살게 되었어요. 같은 제주도고 지금은 차로 10분 거리지만 바다와 중산간 마을은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요. 음식부터 다르죠.

결혼하고 첫 번째 어버이날이었을 거예요. 남편이 엄마 드린다고 산두릅을 한가득 따서 친정에 갔죠. 자랑스럽게 남편이 내놨는데 엄마가 말하기를, “이걸 먹을 거라고 갖고 왔니?”(웃음) 제가 아무리 “엄마, 이거 초장에 찍어 먹어봐. 정말 맛있다니까?” 해도, 하나 맛보고는 안 드시더라고요. 바닷가 마을에서 초장을 찍어 먹는 음식은 생미역, 문어처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거든요. 산에서 난 건 취급도 하지 않는 거죠. 남편은 아주 귀한 거라고 챙겨갔는데, 다음부턴 절대 안들고 갔죠.(웃음)


외국인 친구가 그려준 양숙님 Ⓒ탐방


남편도 저도, 농사를 짓지 않았어요. 각자 직장생활을 했죠. 20살부터 학교 조리사로 근무를 시작해서 40세가 되는 해에 퇴사했죠. 몸을 혹사해서 망가져 버렸었거든요. 정말 당시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그만뒀죠. 어렸을 때부터 저는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거든요. 촌에 살지만, 회사에 출근하겠다는 생각이었죠. 근데 일을 그만두고 나니, 보고자란 게 있어서 그런가? 농사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당시에 치유농장*, 치유농법이 붐이었어요. 나도 몸이 아팠기에 관심이 갔고 또, 우리 마을에 곶자왈이 있는 만큼 치유농장을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원예 치유, 농촌 체험지도, 사회복지 등 다양하게 배웠죠. 청수곶자왈 옆에 조그마한 감귤 농장도 샀고요. 아직도 치유농장의 꿈은 진행 중이에요. 7년 이상의 걸쳐서 감귤 농장에 유기농 인증을 받기도 했고, 주변에 치유가 필요한 분들을 모셔서 함께 지내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어요. 감으로 하는 천연 염색과 그림, 가공식품을 만드는 체험과 교육도 그 일환이죠.

* 치유농장 :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연을 가꾸며 재활 운동을 하는 농장. 2000년대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201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함


감으로 하는 천연 염색과 그림, 가공식품을 만드는 체험과 교육도 그 일환이죠.  Ⓒ탐방



영어가 안 돼요. 그래도 할 수 있나요?


어느 날, 우프*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프코리아가 제주도에 갈 일이 있는데, 유기농 감귤 농장에 방문해도 되냐고요. 그렇게 오셔서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대뜸 우프 호스트를 제안하셨죠. “영어가 안 돼요. 그래도 할 수 있나요?”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다 가능하다, 요즘 번역기도 잘 나온다며 용기를 주시더라고요. 하고 보니, 요즘 우프를 참여하는 외국인들 대부분이 한국어를 많이 배우고 오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한국문화에 관심이 높은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죠.

* 우프(WWOOF)는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유기 농가에서 하루 6시간 이하의 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임.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150여개 국이 회원국으로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에 포함됨

물론 번역기 오류로 오해가 생기기도 해요. 보통 우프 신청자를 2명씩 받아요. 혼자보다는 둘이어야 일 끝나고 여행 다니기도 좋으니까요. 한 번은 두 명 친구 중에 한 친구만 농장에 온 거예요. 안 온 친구와도 메신저로 연락을 했었는데, 분명 제주도에 도착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먼저 도착한 친구한테 부탁했죠. 영어로 네가 한 번 물어봐달라고요. 알고 보니, 제가 오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본인은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제가 안 된다고 하니 급하게 호텔을 예약했다고요. 번역기에 한국말을 쓰고 영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전혀 다르게 전달됐던 거예요. 그 친구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웃음) 다음 날, 안전하게 농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요.


영어가 안 돼요. 그래도 할 수 있나요? Ⓒ탐방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와 입양을 간 친구예요. 모르고 신청받았는데, 만나고 보니 한국 사람 같더라고요. 각자 한국이 궁금해서 우프를 신청한 거죠. 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과 추억을 함께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그렇게 보름을 보냈더니 둘이 친해져서 미국 가서도 친하게 지낸대요. 지금도 미국에서 둘이 만나면 영상 통화를 와요. 또, 종이에 둘이 각각 편지를 써서 같이 보내주기도 하고요. 감동이죠.

또, 한 번은 일본에서 온 분인데 나이가 좀 있으시더라고요. 평소에는 젊은 친구들만 신청받는데, 사연이 안 받을 수 없겠더라고요. 재일교포인데, 할아버지가 제주도 사람이래요. 본인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제주도에서 할아버지 흔적을 찾고 싶은 거지. 기간도 딱 일주일만 잡고 왔어요. 농장 일손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제주도에 뿌리를 찾고 싶다는데 토박이로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었어요. 일본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오래된 서류를 다 가져왔더라고요.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줬죠. 참 우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이에요.


양숙님의 노지 과수원과 청수곶자왈 Ⓒ청수살롱



이모, 내일 비행기 탈 건데 집에 가도 되죠?


원래 외국인 친구들만 받다가 올해, 딱 한 번 한국인 친구를 받았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우리 농장에서 지냈던 시간이 너무 좋은데, 더 많이 확대해 보는 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한국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 친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영광이라고.(웃음) 사실, 이번 시골언니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그 친구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그 친구라면 좋아할까? 생각도 해보고요.

우리 농장에서의 우프는 하루 5시간만 일해요. 오전에 일하고 나면 오후는 자유라, 친구들과 꼭 한 번씩은 나들이를 가요. 생각보다 제주 원주민과 같이 다니는 걸 꿈꾸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는 아무 데도 안 가는데도 말이죠.(웃음) 제가 무조건 데리고 가는 곳이 첫 번째가 우리마을 청수곶자왈, 그리고 내가 자란 마을인 고산의 수월봉. 어렸을 적 놀면서 추억이 많은 곳과 지금 가장 좋아하는 곳이죠. 마지막으로, 송악산 둘레길에 바다가 태평양을 만나는 지점이 있어요. 왜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죠. 그렇게 세 곳은 꼭 가는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나면 산방산도 가고. 갔다 왔다 제가 가이드처럼 제주 구석구석을 설명도 해주는 거죠.

이번 시골언니프로젝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농사도 경험하고 제주 토박이들과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도 하고요. 도시의 청년들이 와서 정착까지 못 해도 괜찮아요. 그냥 가끔, “이모, 내일 비행기 탈 건데 집에 가도 되죠?”라는 전화 한 통이 오는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이모, 내일 비행기 탈 건데 집에 가도 되죠?  Ⓒ탐방



어쩌다 시작한 우프로, 언어와 나이를 넘어서는 소통의 재미를 알았다는 양숙님. 그 경험은 제주 시골언니프로젝트까지 이어졌어요. 힙하고 세련된 여행지, 제주도를 기대하진 말아 주세요. 그 대신,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진짜 제주의 삶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내일 비행기 탈건데 집에 가도 되죠?”라고 편하게 물을 수 있는 제주 언니가 생기는 행운은 덤이고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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