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이 안목을 쌓고 있어요.

광주광역시 | 배소율, 김수영 (안목)

  인터뷰 ep.36  



광주광역시.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광주 하면 문화예술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이번에 광주에 갔을 때도 그랬죠. 지하철을 탔는데, 문화전당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군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요. 단번에 여기가 광주의 명소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얼마 전 우연히 잡지 <ANMOK>을 소개받았어요. 광주의 문화예술과 패션을 다루는 잡지인데, 역시 광주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잡지, 전남대학교 의류학과 학생들이 발행하고 있네요. 의류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로컬 잡지라니. 더욱더 이들이 궁금해집니다. 문화전당역 근처 한 카페에서 <ANMOK>의 초기 멤버이자 광주의 대학생, 소율님과 수영님을 만났어요.


문화전당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소율님과 수영님 Ⓒ탐방



광주를 종이 잡지에 담아요.


수영] 한참 독립서점에 푹 빠져있을 때였어요. 자연스레 다양한 독립잡지를 접했죠.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상업잡지와 달리 내용이 특별하고, 간간이 꺼내게 되는 힘이 있더군요. 또, 무엇이든 빨리 소비되는 문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게 멋졌고요. 언젠가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때마침 학교에서 패션 잡지 동아리원을 모집하는 거예요. 기회다 싶었죠. 개성이 강한 잡지를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만들어 보니 주변에서 보기 쉬운 콘텐츠가 주를 이루게 되더라고요.


소율]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수영이와 함께 밤을 새워 가며 잡지의 구조부터 정체성, 콘텐츠까지 모든 것을 다시 기획했죠. 의류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학교 커뮤니티에 팀원 모집 공고를 올렸고, 경영학과 학우와 함께하게 됐어요.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면서 안목의 정체성을 더 명확하게 잡아간 것 같아요.


의류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탐방


소율] 우리가 잡지를 만들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여러 논의 끝에 두 가지를 확정했죠. 첫 번째는 광주의 이야기를 담는 것. 세상에는 좋은 잡지가 많잖아요. 우리만의 특별한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광주였죠. 무조건 광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광주에 있는 편집숍, 음식점, 독립 서점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두 번째는 가독성이 좋은 디자인이었죠. 패션을 다룬 잡지는 대개 화려하고 다양한 레이아웃을 사용해요. 하지만 그 화려함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글이 더욱 잘 읽힐지 고민하며 레이아웃을 수없이 수정했죠.


수영] 그렇게 탄생한 <ANMOK>은 서로 다른 경험으로 쌓은 안목을 가진 에디터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잡지예요. 광주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이야기와 MZ세대 에디터들이 담아낸 칼럼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죠. 광주라는 로컬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일종의 로컬 잡지이자 패션·문화예술 잡지인 셈이죠.(웃음)



광주를 깊이 알게 됐어요.


수영] 문득 한 번씩 열어보게 되는 잡지가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각호마다 매력적인 주제를 선정하려고 노력했죠. 1호를 준비하던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시작됐고, 발원지에 관한 논쟁으로 인해 아시아 혐오가 이어지던 시기였어요. 너무나 당연했던 ‘자유’가 귀하게 느껴졌죠. 자유는 시대와 관계없이 중요한 가치이자 다원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ANMOK> 1호에는 폭넓은 자유를 담았죠. 에디터 개인이 느끼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 환경에 관한 자유, 그리고 자유라는 주제를 녹인 패션 화보. 자유의 어두운 모습부터 밝은 모습까지요.


2호의 주제는 층(Floor)이에요.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요. 하지만 세대 같은 거대한 층에 가려서 다양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2호에서는 사람들이 이뤄나가고 있는 각자의 고유한 ‘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층층이 쌓아 올려진 아파트와 그 속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 광주 곳곳에서 활동하며 경험을 쌓고 있는 분들. 패션 분야를 넘어 다양한 층에 있는 이야기를 조명하려고 노력했죠.


<ANMOK> 1호와 2호 Ⓒ탐방


수영] 사심을 채우기도 했어요. 평소 매력적이고 특색 있다고 느꼈던 공간을 인터뷰했거든요.(웃음) 그러고 나니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심지어는 사랑하게 된 곳도 있고요! 편집숍 ‘캐주얼리’나 액세서리 숍 겸 카페 ‘넘버에잇트 인 비마이너’가 그래요. 인터뷰하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공간을 꾸려나가는지, 평소에 알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이런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야가 더 확장되는 느낌이었달까요?


소율] 광주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정말 정이 많으시더라고요. 광주 기반 잡지라고 소개하면서 인터뷰를 요청하면 다들 반겨주셨어요.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신 분들도 많았죠. 돈을 받지 않고 촬영과 모델 지원을 해주시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하루 종일 현장에 있어 주셨어요. 먼저 연락해서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냐고 묻는 분도 계셨고요. 타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해보지 않아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이 두 팔을 걷고 도와주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말 귀한 경험이죠.(웃음)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됐어요. ⒸANMOK



문화예술의 도시에 산다는 것


소율님의 블로그를 슬쩍 구경했어요. 광주 이곳저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길래 광주 사람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대구가 고향이라고 하시네요. 게다가 광주 토박이인 수영님은 소율님과 함께하면서 광주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소율] 대구 사람이지만 광주에 대한 애정이 넘쳐요. 별명이 ‘반 광주 사람’일 정도예요.(웃음) 광주에서 유명한 맛집은 다 가봤고, 무등산 정상까지 등산하기도 했죠. 처음에는 수영이 추천으로 동명동을 돌아다녔는데 좋은 카페도 많고 음식들도 맛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어디를 가도 대기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이거 엄청난 거 아닙니까?(웃음) 적당한 조용함과 적당한 산만함이 있는 동네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요.


수영] 소율이를 만나면서 광주를 더 다양하게 즐기고 있어요. 이전에는 항상 다니던 곳만 다녔는데, 타지역에서 온 친구가 “여기 가보고 싶어. 여기도 예뻐!”라고 하니 여기저기 함께 가거든요. 또, 소율이 덕에 비엔날레도 처음으로 가봤어요. 광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제게 비엔날레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가본 적도 없었죠. 2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규모가 정말 크고 작품들도 좋더군요. 왜 이제야 간 걸까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죠.(웃음)


대구 사람이지만 광주에 대한 애정이 넘쳐요. Ⓒ탐방


수영]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항상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요. 그것도 무료로요. 또, 시내랑 가까운 곳에 있죠. 그래서 “오늘 전시 보러 가야지!”하고 가는 게 아니라 시내에 놀러 갔다가 “온 김에 전시 볼까?”하고 갈 때가 많아요.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문화예술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이랄까요?


소율] 다만 공연장은 많지 않아요. 1호를 제작할 때 디제이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공연할 자리가 없다며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걸 광주의 아쉬운 점으로 뽑으셨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전시도 좋지만, 공연장이나 복합문화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수영] 사람들의 관심도 중요해요. 액세서리 숍 겸 카페인 ‘넘버에잇트 인 비마이너’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특색 있는 공간이 문을 닫을 때마다 정말 아쉬워요. 공간이 처음 생겼을 때는 사람이 많은데, 나중에 가면 사람이 점점 없어지더군요. 홍보가 어려워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방문객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 마음에서 <ANMOK>을 만들기 시작했던 거고요.(웃음)


문화예술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광주에 살아요. Ⓒ탐방


대학생인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문득 궁금했어요. 패션업계는 주로 서울에 있으니, 서울에서 일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질문했죠.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오네요.

수영] 서울에서 경력을 쌓은 다음 광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광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여가 활동 혹은 재충전을 위해 서울로 왔다 갔다 하시더라고요. KTX를 타고 1시간 반이면 가니까요. 그런 걸 보니까, 광주에 사는 것도 굉장히 좋겠더라고요. 또, 광주를 기반으로 한 패션 브랜드가 몇 있어요. 플라스틱프로덕트, 플리즈프로젝트, 미네랄 같은 곳들이죠. 그런 브랜드에서 일을 해보고 광주에서 브랜드를 크게 키워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왠지 욕심이 생겼달까요?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브랜드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저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소율] 광주의 채용 공고를 찾아본 적이 있어요. 직접 일해보진 않았지만, 광주는 일하는 데 있어 자유로운 느낌이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것 같더군요. 이미 스타일이 구축된 서울 패션 회사에 간다면 업무적인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을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광주에서는 200% 성장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니 원하는 걸 모두 시도해 보는 모습이었죠. 프로젝트 주제를 다양하게 정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니, 광주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요.


<ANMOK>의 소율님과 수영님  Ⓒ탐방



<ANMOK>은 3호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취업 준비를 시작한 소율님과 수영님은 처음으로 <ANMOK>의 편집부를 떠나 독자가 되었답니다. 기분이 어떤지 물었어요. 두 분은 꽤 오랜 시간 잡지를 만들었던 만큼 끝났을 때 후련했지만, 한 달 뒤부턴 아쉬움이 생겼다고 해요. 광주에서 예쁜 걸 보거나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자연스레 <ANMOK>이 떠오른다면서요. 왠지 두 분에게 광주는 <ANMOK>, <ANMOK>은 광주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몇 년 후, 두 분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광주에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지금껏 탐방은 방방곡곡 탐방러들을 만나면서 서울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소율님과 수영님이 안목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광주에서 풀어가도 좋겠다는 응원을 전했답니다. 유명해지면 탐방을 언급해달라는 말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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