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 | 양태석 (금풍양조장)
인터뷰 ep.30
어떤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술을 마셔보는 편이에요. 어느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술이 아니라는 점에 끌린달까요? 지역 양조장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술 한 잔에 지역과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또, 그 지역을 떠나서 마시는 것도 좋아요. 다른 곳에 있지만 술 한 잔에 다시 그곳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강화에서 머무는데, 강화 술을 안 찾을 수 있겠어요?! ‘강화 술’이라고 검색하니 ‘금풍양조장’이 첫 번째로 나오네요. 이름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금풍양조장으로 갔습니다. 전등사 옆, 나름 강화에서 번화한 동네에 오래된 건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네요. ‘오,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강아지 한 마리와 멋진 신사 한 분이 걸어오네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양태석님과 양조장의 마스코트 금풍이입니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금풍양조장 Ⓒ탐방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곳에서 3대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정공장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자연스럽게 양조장을 시작하신 거죠. 그 이후 아버지께서 대를 이었고, 이젠 제가 가업을 잇고 있죠. 처음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은 건 아니었어요. 강화를 떠나 서울에 정착했었거든요. 그러다 가끔 강화에 올 때 양조장이 점점 노후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거든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건물이 나이 드는 게 당연하긴 한데, 이 친구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더 큰 힘이 있는데 표출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우리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양조장을 직접 운영해볼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어요.
부모님께서는 환영하지 않으시더군요. 양조장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란 걸 알고 계셨거든요. 공간이 많이 노후되어 고칠 부분도 많았고요. 하지만 저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양조장이지만 술만큼 건물이 중심이 된 사업을 꿈꿨죠.
세월이 느껴지는 양조장 Ⓒ탐방
100년 된 우물과 술독, 커다란 술병. 약 100년 전에 지어진 금풍양조장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옛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요. 모든 공간을 복원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조금씩 바꿔나가는 중이죠. 1937년도에 찍힌 양조장 사진 속에서 현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금풍양조장이라는 글씨가 그 당시의 표기법에 맞게 우에서 좌로 쓰여있더군요. 그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서 서예를 하셨던 어머니께 부탁드렸고, 지금의 간판이 탄생했죠.
얼마 전에는 금풍양조장이 인천 등록문화재로도 등재되었어요. 2020년은 양조장이 90주년 되는 해였고 아버지가 팔순이 되는 해이기도 했죠. 아버지께 선물을 드리고 싶어 등록문화재에 관한 여러 서류를 찾아보았어요. 보면 볼수록 금풍양조장이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주변 문화재 관계자분들도 가능하겠다고 했고요. 2년여의 심사 끝에, 드디어 인천시 제6호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죠.
양조장을 정리하다가 60년 전에 사용했던 ‘금학약주’ 라벨을 발견했어요. ‘방순무비(芳醇無比) / 천하 일미(天下 一味)’라고 적혀 있는데, 맛으로 비교할 게 없고 하늘 아래에서 가장 맛있다는 뜻이에요. 왜 금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강화도에 학이 많았대요. 그리고 예로부터 학은 고귀함을 뜻하니 좋은 술의 이름으로 그만이죠. 이 라벨을 모티브로 지금 판매하는 금학탁주의 라벨을 만들었어요. 강화도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마니산 앞에서 호랑이와 곰이 술을 마시는 모습도 표현했죠. 마니산은 아시죠? 호랑이와 곰이 강화 쑥하고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거잖아요.(웃음)
1960년대에 판매되었던 금학약주 병과 라벨 Ⓒ탐방
서로 도움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1인 양조장으로 시작했는데, 혼자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려웠죠.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점점 괴리가 생겼고요.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호텔에 전통주를 웰컴 드링크로 제공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전통주를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호텔은 코로나 때문에 이용객이 줄어 마땅치 않았죠. 또 실패하나 싶었는데, 누군가 강화에 게스트하우스가 많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강화도에는 펜션만 많은 줄 알고 있었거든요. 사실 게스트하우스의 개념도 정확히는 몰랐고요.(웃음)
찾아보니 강화도에 게스트 하우스가 여섯 군데 정도 있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께 숙박객분들에게 막걸리 한 병씩을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어요. 그렇게 막걸리를 제공했는데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오실 줄이야.(웃음) 두 달 동안 진행하는 걸 계획했는데, 계획했던 양이 한 달 만에 다 나가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어요. 이벤트를 마친 이후에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과 방문객분들이 금풍양조장을 홍보해주시더라고요. 그분들을 통해 양조장에 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 경험으로 강화에서의 협업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강화의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탐방
‘책술꿀’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책방 국자와주걱, 큰나무 카페와 함께요. 책과 술, 꿀을 묶어서 판매했죠. 생각보다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양조장에서는 잘 안 팔리더라고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책을 안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현수막을 걸어 책방과 카페를 홍보했어요. 손님들께 책방과 카페를 추천하기도 하고요. 손님들이 막걸리를 사면서 항상 물어보시거든요. ‘강화에 또 어디 가면 좋아요?’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강화 곳곳의 공간을 찾게 되었고 지역에 능력 있는 분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제는 서로 도움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200배 이상 만족스러워요.
서울과 강화. 가장 크게 다른 건 삶의 만족도예요. 서른 살에 취업해서 40대 중반까지 정말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어요. 그런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했더라고요. 제 것은 없었달까요? 그렇게 살다가 강화에서 마음껏 제 것을 하니 너무 만족스러워요. 마음도 편안하고요. 예전엔 회사에 가면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거든요. 시간 안에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고요. 여기선 그런 걸 많이 놓고 사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죠. 서울에 살 때와 비교했을 때 200배 이상 만족스러워요.
양조장 운영은 참 어렵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좋은 점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많아지니 더 좋죠. 그래서 술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일들을 열심히 벌이고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세요. 술을 안 만들고 자꾸 다른 걸 하니까요.(웃음)
지난 연말에 진행했던 ‘막’년회와 재즈공연 Ⓒ금풍양조장
강화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처음에 내려왔던 4년 전과 비교해보면 많은 게 바뀌었죠. 그땐 양조장 앞으로 지나가는 분이 거의 없었어요. 하루에 다섯 명이 될까 말까였죠. 근데 지금은 전등사, 온수리성공회성당 등 주변에 있는 곳들이 알려지면서 지나가는 분들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새롭게 들어 온 젊은 분들의 힘이 큰 것 같아요. 그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협업하기도 하죠. 서로 홍보를 해주기도 하고요. 나이는 제가 더 많지만,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어쩜 그리 다양한 재주를 가졌는지 놀랍다니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술이니, 술을 열심히 제공하면서 친해지고 있습니다.
강화에 온 이후, 무언가를 말하면 현실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재밌는 일들을 많이 상상하고 있어요. 다음에 오시면 또 많이 달라진 금풍양조장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금풍양조장의 양태석님과 마스코트 금풍이 Ⓒ탐방
금풍양조장 2층, 기둥에는 길상(운수가 좋을 조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어요. 하얀색 분필로 적은 것 같은데 하도 오래전에 꾹꾹 적어 이제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해요. 태석님은 아무래도 이 길상 덕분에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된 것 같대요. 탐방도 몇 번이고 만지고 왔죠. 하지만, 태석님과 대화하면서 느꼈어요. 지금의 금풍양조장은 태석님이 양조장에 쏟은 깊은 사랑과 관심의 결과라는 걸요.
서울로 돌아와, 금풍양조장에서 사온 금학탁주를 마셨습니다. 높은 도수의 막걸리도 새롭고 그 맛도 유명 양조장의 탁주만큼이나 훌륭했죠. 함께 마신 지인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탁주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떠오르는 금풍양조장과 태석님이었습니다. 태석님은 또 어떤 재밌는 일을 만들까, 금풍양조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와 응원을 보내면서요. 아, 금학탁주가 또 떠오르네요. 아무래도 조만간 또 강화에 가야겠습니다.
인천광역시 강화 | 양태석 (금풍양조장)
인터뷰 ep.30
어떤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술을 마셔보는 편이에요. 어느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술이 아니라는 점에 끌린달까요? 지역 양조장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술 한 잔에 지역과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또, 그 지역을 떠나서 마시는 것도 좋아요. 다른 곳에 있지만 술 한 잔에 다시 그곳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강화에서 머무는데, 강화 술을 안 찾을 수 있겠어요?! ‘강화 술’이라고 검색하니 ‘금풍양조장’이 첫 번째로 나오네요. 이름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금풍양조장으로 갔습니다. 전등사 옆, 나름 강화에서 번화한 동네에 오래된 건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네요. ‘오,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강아지 한 마리와 멋진 신사 한 분이 걸어오네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양태석님과 양조장의 마스코트 금풍이입니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금풍양조장 Ⓒ탐방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곳에서 3대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정공장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자연스럽게 양조장을 시작하신 거죠. 그 이후 아버지께서 대를 이었고, 이젠 제가 가업을 잇고 있죠. 처음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은 건 아니었어요. 강화를 떠나 서울에 정착했었거든요. 그러다 가끔 강화에 올 때 양조장이 점점 노후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거든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건물이 나이 드는 게 당연하긴 한데, 이 친구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더 큰 힘이 있는데 표출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우리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양조장을 직접 운영해볼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어요.
부모님께서는 환영하지 않으시더군요. 양조장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란 걸 알고 계셨거든요. 공간이 많이 노후되어 고칠 부분도 많았고요. 하지만 저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양조장이지만 술만큼 건물이 중심이 된 사업을 꿈꿨죠.
세월이 느껴지는 양조장 Ⓒ탐방
옛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요. 모든 공간을 복원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조금씩 바꿔나가는 중이죠. 1937년도에 찍힌 양조장 사진 속에서 현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금풍양조장이라는 글씨가 그 당시의 표기법에 맞게 우에서 좌로 쓰여있더군요. 그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서 서예를 하셨던 어머니께 부탁드렸고, 지금의 간판이 탄생했죠.
얼마 전에는 금풍양조장이 인천 등록문화재로도 등재되었어요. 2020년은 양조장이 90주년 되는 해였고 아버지가 팔순이 되는 해이기도 했죠. 아버지께 선물을 드리고 싶어 등록문화재에 관한 여러 서류를 찾아보았어요. 보면 볼수록 금풍양조장이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주변 문화재 관계자분들도 가능하겠다고 했고요. 2년여의 심사 끝에, 드디어 인천시 제6호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죠.
양조장을 정리하다가 60년 전에 사용했던 ‘금학약주’ 라벨을 발견했어요. ‘방순무비(芳醇無比) / 천하 일미(天下 一味)’라고 적혀 있는데, 맛으로 비교할 게 없고 하늘 아래에서 가장 맛있다는 뜻이에요. 왜 금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강화도에 학이 많았대요. 그리고 예로부터 학은 고귀함을 뜻하니 좋은 술의 이름으로 그만이죠. 이 라벨을 모티브로 지금 판매하는 금학탁주의 라벨을 만들었어요. 강화도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마니산 앞에서 호랑이와 곰이 술을 마시는 모습도 표현했죠. 마니산은 아시죠? 호랑이와 곰이 강화 쑥하고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거잖아요.(웃음)
1960년대에 판매되었던 금학약주 병과 라벨 Ⓒ탐방
서로 도움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1인 양조장으로 시작했는데, 혼자서는 참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려웠죠.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점점 괴리가 생겼고요.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호텔에 전통주를 웰컴 드링크로 제공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전통주를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호텔은 코로나 때문에 이용객이 줄어 마땅치 않았죠. 또 실패하나 싶었는데, 누군가 강화에 게스트하우스가 많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강화도에는 펜션만 많은 줄 알고 있었거든요. 사실 게스트하우스의 개념도 정확히는 몰랐고요.(웃음)
찾아보니 강화도에 게스트 하우스가 여섯 군데 정도 있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께 숙박객분들에게 막걸리 한 병씩을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어요. 그렇게 막걸리를 제공했는데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오실 줄이야.(웃음) 두 달 동안 진행하는 걸 계획했는데, 계획했던 양이 한 달 만에 다 나가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어요. 이벤트를 마친 이후에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과 방문객분들이 금풍양조장을 홍보해주시더라고요. 그분들을 통해 양조장에 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 경험으로 강화에서의 협업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강화의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탐방
‘책술꿀’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책방 국자와주걱, 큰나무 카페와 함께요. 책과 술, 꿀을 묶어서 판매했죠. 생각보다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양조장에서는 잘 안 팔리더라고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책을 안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현수막을 걸어 책방과 카페를 홍보했어요. 손님들께 책방과 카페를 추천하기도 하고요. 손님들이 막걸리를 사면서 항상 물어보시거든요. ‘강화에 또 어디 가면 좋아요?’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강화 곳곳의 공간을 찾게 되었고 지역에 능력 있는 분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제는 서로 도움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200배 이상 만족스러워요.
서울과 강화. 가장 크게 다른 건 삶의 만족도예요. 서른 살에 취업해서 40대 중반까지 정말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어요. 그런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했더라고요. 제 것은 없었달까요? 그렇게 살다가 강화에서 마음껏 제 것을 하니 너무 만족스러워요. 마음도 편안하고요. 예전엔 회사에 가면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거든요. 시간 안에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고요. 여기선 그런 걸 많이 놓고 사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죠. 서울에 살 때와 비교했을 때 200배 이상 만족스러워요.
양조장 운영은 참 어렵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좋은 점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많아지니 더 좋죠. 그래서 술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일들을 열심히 벌이고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세요. 술을 안 만들고 자꾸 다른 걸 하니까요.(웃음)
지난 연말에 진행했던 ‘막’년회와 재즈공연 Ⓒ금풍양조장
강화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처음에 내려왔던 4년 전과 비교해보면 많은 게 바뀌었죠. 그땐 양조장 앞으로 지나가는 분이 거의 없었어요. 하루에 다섯 명이 될까 말까였죠. 근데 지금은 전등사, 온수리성공회성당 등 주변에 있는 곳들이 알려지면서 지나가는 분들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새롭게 들어 온 젊은 분들의 힘이 큰 것 같아요. 그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협업하기도 하죠. 서로 홍보를 해주기도 하고요. 나이는 제가 더 많지만,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어쩜 그리 다양한 재주를 가졌는지 놀랍다니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술이니, 술을 열심히 제공하면서 친해지고 있습니다.
강화에 온 이후, 무언가를 말하면 현실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재밌는 일들을 많이 상상하고 있어요. 다음에 오시면 또 많이 달라진 금풍양조장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금풍양조장의 양태석님과 마스코트 금풍이 Ⓒ탐방
금풍양조장 2층, 기둥에는 길상(운수가 좋을 조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어요. 하얀색 분필로 적은 것 같은데 하도 오래전에 꾹꾹 적어 이제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해요. 태석님은 아무래도 이 길상 덕분에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된 것 같대요. 탐방도 몇 번이고 만지고 왔죠. 하지만, 태석님과 대화하면서 느꼈어요. 지금의 금풍양조장은 태석님이 양조장에 쏟은 깊은 사랑과 관심의 결과라는 걸요.
서울로 돌아와, 금풍양조장에서 사온 금학탁주를 마셨습니다. 높은 도수의 막걸리도 새롭고 그 맛도 유명 양조장의 탁주만큼이나 훌륭했죠. 함께 마신 지인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탁주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떠오르는 금풍양조장과 태석님이었습니다. 태석님은 또 어떤 재밌는 일을 만들까, 금풍양조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와 응원을 보내면서요. 아, 금학탁주가 또 떠오르네요. 아무래도 조만간 또 강화에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