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그림, 언니, 저는 고향에 다시 내려오면 실패하는건 줄 알았어요

작년 9월, 경기도 연천 은대성리 작은 마을에 덩그러니 문을 연 카페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한탄강을 따라 출근하고 매일 밤 별을 보며 퇴근하는 젊은 사장님은 고향을 떠나 시작한 서울살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언니, 난 서울이 정말 좋아요! 엎어지면 맛집, 반짝이는 한강, 바쁜 사람들... 모든 게 꿈처럼 좋아요. 저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겠죠?" 종종 서울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던 친구 인애. 그런 인애가 돌연 고향으로 내려가 매일 아침 로컬을 담은 디저트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인구소멸지역에서 살아갈 용기 

Q.인애님에게 고향 연천은 어떤 곳인가요?

🐥인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요. 벗어나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뭘 하든 서울로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래야 성공한 거라고요. 고향에 다시 돌아온다는 건 서울에 자리 잡지 못해서, 실패해서 돌아오는 거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Q.그럼에도 다시 연천에 돌아온 이유가 있나요?

🐥인애: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의 건강 때문이에요. 사실 그건 핑계이고 스스로도 서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와중에 가족을 위해 고향에 내려와야 할 이유가 생겼고 반강제로 내려오면서 다시 고향에 적응해 가고 있어요.

Q.연천에 대해 알아보다가 연천이 인구소멸 지역이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이를 체감할 때가 있나요?

🐥인애: 네.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반이 하나라는 거예요. 정말 놀랐죠. 연천은 중고등학교에 비해 초등학교가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없으니까 각 초등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열심히 학교를 홍보하고 설명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교장선생님이 나서서 학교를 홍보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유치원이 많이 없어지는 게 보여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게 없고 학원이나 문방구, 아이들 옷가게도 거의 없어서 이곳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구나 체감해요.

Q. 사람이 줄어드는 지역에 브런치 카페를 연다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인애: 처음엔 막막했고 현실 부정도 했어요. 내려오긴 했는데 이 시골에서 계속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넋 놓고 보낸 세월도 있었죠. 합정동이라는 힙한 동네에 살다가 이곳에 오니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너무 지루하고, '언제 서울로 갈까?' 기회만 봤어요. 연천은 그 흔한 영화관이나 큰 마트도 없고 쇼핑몰도 없거든요. 그래서 뭔가 하려면 의정부나 양주까지 나가는 게 당연한 곳이에요. 제가 브런치를 정말 좋아하는데 연천에 파는 곳이 없어서 다른 지역까지 가서 먹고 왔다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곳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선 뭘 해도 지역 분들이 재밌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레이트 체크아웃'을 구체화 하기 시작했어요. "힙한 곳 없으면 내가 만들지 뭐!"하면서요. 

 연천을 담은 브런치를 굽는 곳, 카페 <레이트 체크아웃> 

📍카페<레이트 체크아웃>  https://naver.me/F40fiZ3o

Q.'레이트 체크아웃'을 소개해 주세요.

🐥인애: 2023년 9월 오픈한 따끈따끈한 브런치 카페예요. 이름 그대로 늦게까지 머물다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자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곳이요. 이곳에서 저는 브런치와 디저트, 커피를 내리고 있답니다. 연천에서 자란 재료들을 적극 활용해서요! 연천의 특산물과 어울릴 브런치를 연구해서 계절 따라 메뉴를 바꿔가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Q.연천에는 다양한 로컬푸드가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재료가 있나요?

🐥인애: 연천은 율무가 가장 유명하지만... 딸기랑 멜론이요! 저희 삼촌이 멜론을 재배하시거든요. 원래는 오이와 가지를 주로 키우셨는데 멜론을 재배하는 걸 보고 정말 신기했어요. 뭔가 연천에서는 안 자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 그리고 연천에서 패션후르츠도 자라요! 정말 의외죠? 북한이랑 가까워서 정말 추운 동네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연천에서 자란 딸기는 꼭 드셔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논산 딸기' 아니고 '연천 딸기'라고 해도 될 만큼 맛있어요. 맛있어서 그런지 딸기를 활용한 메뉴들이 실제로도 인기가 많고요. 

Q.로컬의 재료를 브런치로 풀어내는 방법이 궁금해요. 그리고 인애님 가장 좋아하는 메뉴도요!

🐥인애: 제철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해요. 가족의 손에서 자란 재료도 잘 쓰지만 로컬마켓도 꾸준히 가요. 진열대를 채운 재료들이 바뀌는 걸 보면서 계절을 실감하고 어떻게 메뉴로 활용할지 연구해요. 최근에는 엄마가 표고버섯을 한 아름 주고 가셨어요.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버섯 향이 진하길래 버섯 향을 살린 파스타를 출시했는데 인기가 아주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과일 프렌치토스트'예요! 촉촉한 프렌치토스트에 연천의 과일들을 다양하고 싱싱하게 맛보실 수 있는 메뉴랍니다. 계절 따라 나오는 싱싱한 과일들을 어떻게 맛있게 드릴까 고민하다가 제철 과일 듬뿍 얹어서 토스트를 만들어 봤는데 촉촉한 토스트와 싱싱한 과일의 조합이 정말 좋더라고요! 철 따라 올라가는 과일이 달라져서 새로운 메뉴가 계속 나오는 것 같은 매력도 있고요:) 지금은 우리 카페 베스트 메뉴가 되었어요. 

Q.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인애: 아무래도 보람을 느낄 때죠. 며칠 전, 포천에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오셨어요. 메뉴를 드셔보시고는 반 아이들을 단체로 데려와도 되겠냐고 문의하셨어요. 연천의 농작물로 디저트를 만든다는 게 신선하고 인상 깊다고 해주신 말씀이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하는 일에 가치를 입혀주시고 알아봐 주시는 손님을 만날 때 깊은 보람을 느껴요.

Q.카페를 열기 전과 후, 연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요?

🐥인애: 연천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어요. 그저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많은 게 달라 보여요. 거의 평생을 산 동네지만 '이렇게 예쁜 곳이었구나'를 요즘 느끼고 있어요. 연천은 북한과 가까워서 건물에 고도제한이 있거든요. 그래서 높은 건물이 없어요. 낮은 풍경에서 오는 매력이 있는 동네예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숨은 장소들이 많아서 요즘은 쉬는 날 힐링 스폿을 찾아다녀요. 언젠가 손님들에게 제가 찾은 장소들을 알려주려고요. 연천의 매력을 보여주면 이곳에 잠깐이라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Q.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인애: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아요! 먼저, 우리 카페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보고 싶어요. 예술 클래스나 공연, 전시 등을 기획해서 동네 사람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연천 농부 모임도 하고 싶고요. 연천이 주는 건강한 재료들을 더 소개하고 싶고 새로운 메뉴들을 꾸준히 출시하고 싶어요. 그러면 브런치와 농부와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 되려나요?ㅎㅎ 아직은 초보 사장이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배워가며 지역과 친해지는 중이지만, 언젠가 제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할 날이 올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