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지속가능한 일상을 만들고 있어요.

대전광역시 | 박재만 (재작소)

 인터뷰 ep.56 



미국 MIT 대학교에는 ‘Center for Bits and Atoms(CBA)’라는 공간이 있어요. 창립자 닐 거슈엔펠드 교수는 누구나 제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아이디어를 실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지원하는 CBA를 만들었어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이 제작소는 혁신의 공간으로 유명해졌고 전 세계에 100개가 넘는 제작소를 만들어 냈죠. 바로, ‘팹랩(FAB Lab)’이에요. 우리말로 직역하면 제작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인데, 오늘의 주인공 박재만님도 이런 제작실험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더 일상적인 팹랩,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하는 ‘재작소’의 재만님과의 대화를 전해요.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르게 써보자


원래는 시제품 제작하는 일을 해왔어요. 시제품 제작, 말이 좀 어렵나요? 시험 제품을 만드는 것, 그러니까 창업가가 자기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고 싶을 때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제조 기술을 익혔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과학 교육을 하기도 했는데, 교구를 만들다 보니 3D 프린터 등 여러 최신 제조 기계를 이용할 수 있기도 했고요. 보통의 기술자가 한 가지를 깊게 파는 것과 달리 저는 얇고 넓게 다루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술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기술자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업 지원 업무를 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 재작소의 멤버인 미림쌤을 만났고요.**

* 기술의 민주화는 첨단 기술을 누구나  빠르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자 과정을 말해요. 특히, 원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빠르게 정보를 찾고 구현하는 AI 등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어요. 누구나 정보 제공자가 될 수 있는 소셜미디어 또한 기술의 민주화이고요.

** 재작소는 박재만님과 조미림님이 함께하는 팀이에요. 그리고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는 버들서점 매니저님까지 총 3명이 공동으로 운영해요.


기술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기술자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탐방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 활동을 하다 보니,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분들이 저와 미림쌤에게 찾아오시곤 했어요. 어느날, 이동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초대되었어요. 장애인 당사자와 지역 상인, 기술자가 함께 만나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였죠. 그때 저희는 입간판 형식의 경사로를 만들었어요. 보통 때는 입간판으로 사용하고 필요할 때 계단에 설치하면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되는 아이디어였죠. 그 지역은 도로와 인도가 좁아서 장애인 경사로를 설치할 경우 차량과 행인에게 위험한 장애물이 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간판 경사로를 제작해서 15개 상점에 배포했는데, 제가 가진 기술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 계기로 재작소를 시작하게 되었고요.

재작소는 생활 제조와 디자인을 하는 팀이에요. 만든다는 뜻의 ‘제(製)’ 자가 아닌 다시 쓴다는 ‘재(再)’ 자를 쓰는데, 물건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쓰자는 생각을 담고 있어요. 저와 미림쌤도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사람이기도 했고, 우리가 일상을 살다 보면 정말 예쁜 쓰레기 많잖아요.(웃음) 예를 들어, 저는 아이를 아직 키워보진 않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온대요. 가져오는 걸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로 버릴 수도 없고. 보관을 하다가 쌓이면 결국 한 번에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만드는 업이다 보니 너무 공감되었죠. 그렇게 버려지는 자원들이 참 아까웠거든요. 그냥 버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르게 써보자는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입간판 경사로 ©재작소



시도하고 싶은 걸 편하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기술이 엄청 빠르게 발전하고 있잖아요. 인공지능이며, 딥페이크며, 우리가 SF영화에서나 보던 기술들이 현실에서 등장하고요. 하지만, 그런 기술을 모두가 익숙하고 편하게 접근하는 건 아니에요. 새로운 기술을 누리는 사람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간극이 너무 커지고 있죠. 그래서 기술이 많은 이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기술이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 누구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달까요.

그렇게 만든 곳이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예요. 메이커스스페이스 새로고침, 제로웨이스트샵 은영상점, 생태책방 버들서점이 함께 있고, 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 새로고침클럽, 대전청년마을 여기랑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머무는 곳이에요. 쉽게 말해 동네 사랑방이죠.(웃음)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주변 상인부터 대학생까지, 동아리방처럼 오가고 있어요. 이들이 나선지대를 찾는 이유는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교류도 좋지만, 실험이 가능한 곳은 드물잖아요. 상점 주인은 가게의 인테리어 소품, 메뉴판, 굿즈를 제작하기 위해서 많이 오고, 동네 청년은 여기에 모여 자유롭게 회의를 하거나 각자의 작업을 하기도 해요. 또 주변에 대학교들이 있으니까 과제를 하러 오는 학생도 있고요. 서로 다른 이유로 나선지대를 찾았지만, 서로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더 큰 실험이 가능하고요. 예를 들어, 동네 지도를 만들고 싶은데 디자인이 어렵다면, 여기에 자주 오는 디자이너와 함께 실행해 볼 수 있는 거죠.

상점인 책방과 서점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들렀다가 필요한 걸 사고 가는 곳일 수 있지만 은영상점과 생태책방에서는 커뮤니티 행사를 함께 운영해요. 관심 있는 주제로 함께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거죠. 환경 활동가도 편하게 와서 함께 이야기하고 본인이 시도하고 싶은 걸 편하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어제는 비건 음식을 좋아하는 분에게 다른 이들과 함께 비건 음식을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제안해서 진행했어요. 그분도, 또 참여한 다른 분들도 나선지대에서 새로운 경험과 실험을 한 거죠.


다양한 커뮤니티가 머무는 곳,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 ©탐방


제가 없더라도 서로 도와가면서 수리하더라고요.


어느 동네나 생활 제조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서는 ‘팹랩’이라는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요, 제조를 뜻하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과 실험실을 뜻하는 라보레토리(laboratory)가 합쳐진 말이죠.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물건을 만들고 수리할 수 있는 곳, 거기에 낮은 문턱으로 누구나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죠. 그래서 자가 수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모두가 창작에 관심은 없을 수 있지만, 모두가 사용하는 물건은 있잖아요. 물건은 언젠가 고장이 나기 마련이고, 스스로 수리할 수 있다면 물건의 수명은 더 길어질 거고요. 특히, 수리점에 빠르고 쉽게 맡기기 어려운 지역일수록 생활 제조 거점은 더 필요하죠.


어느 동네나 생활 제조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탐방


모두가 제조 장비를 갖고 있지는 않잖아요. 또,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보통 매뉴얼이 인터넷에 오픈소스*로 올라와 있지만 영어로만 되어있어 접근이 어렵거든요. 그걸 저희가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책으로 만들기도 해요. 우리끼리 자가 수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죠. 주민이 고장 난 물건을 가져와 직접 고쳐보는 워크숍도 많이 하고 있어요. 옷부터 장난감, 가전제품, 가구, 정말 대중없어요.(웃음) 한 10명 정도 참여하면, 6~7분은 다 고쳐서 가세요. 확실히 실생활에서 바로 변화를 경험하니, 한 번 온 분들은 더 자주 오시는 것 같아요. 보통 목요일을 ‘메이킹 데이’로 지정해서 각자 원하는 만들기를 하거나 자가 수리 활동을 진행하는데, 요즘에는 제가 없더라도 서로 도와가면서 수리하더라고요.(웃음)

*오픈소스(open source)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걸 말해요.


개인에게 맞춤으로 도움을 드리기도 해요. 최근에는 옻칠하는 작가님과 함께 했어요. 나선지대를 자주 방문하는 분이신데 전통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고 옻칠을 하는 작업을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들 수 있는 작품도 한계가 있었죠. 3D 모델링을 알려드리고 더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함께 고민했어요. 이게 바로 기술의 민주화 아닐까 싶어요. 동네에서 기술을 접하기 어려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당장 찾아갈 수 있는 생활 제조 거점이 있는 거요. 그곳에서는 빠르게 해결책 찾아줄 기술자가 있고, 기술자가 없더라도 함께 고민해 줄 커뮤니티가 있을 테니까요.


생활 제조 거점을 만들고 있는 재만님 ©탐방



어렸을 때는 만들기가 일상이었어요. 점토를 만지작해서 엄마아빠 선물을 만들기도 하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잘라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요. 또 아끼는 물건이 뜯어지거나 고장 나면 어른들이 바로 고쳐주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 아이가 고장 난 장난감을 들고 온다면 어떻게든 고쳐서 주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요. 다음 날 아침 새 상품이 집 앞에 배달될 거라며 아이를 달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느덧 쉽게 사고 버리는 게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아니, 스스로 수리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할까요? 기술의 발전으로 삶은 더 편안해지고 윤택해졌지만, 개인의 능력은 점점 퇴보되었다는 말이 있잖아요. 휴대폰의 저장용량이 늘어난 만큼 각자가 외우는 전화번호는 줄어드는 것처럼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기술이 역으로 주목받고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팜프라촌의 집짓기, 귀농귀촌센터의 목공 교육, 오늘 소개한 재작소의 생활 제조까지. 목적은 달라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죠. 특히 로컬살이에서 이런 기술은 더 중요할 텐데요. 여러분의 로컬살이에는 어떤 기술들이 필요한가요? 필요해서 배웠거나,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나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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