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힙한 곳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동네를 만들고 있어요.

서울 성수 | 조영하 (도만사)

  인터뷰 ep.52  



요즘 나들이 어디로 가세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의 약속장소가 주로 성수동이더라고요. 항상 새로운 전시도 많고 맛집도 많다보니 갈 때마다 새롭다랄까요?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이라고 불리는 만큼, 거리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거든요.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성수동을 힙한 장소로만 여겨지는 걸 거부해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인 성수동에서 주민들을 위한 아니, 주민들에 의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요. 바로, 북 성수동의 광나루로 한 켠에 자리한 작은 상가, 도만사예요. 책방이었다가 놀이터였다가 미술관이 되기도 하는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도만사)’의 조영하님을 만났어요.



저희가 뭐라도 해보겠습니다! 


2020년 2월쯤, 도만사를 열었어요. 벌써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웃음) 도시설계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9년부터 남편이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에 합류하게 됐어요. 건축 분야 특성상 항상 일에 찌든 삶이었죠. 둘다 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재밌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18년쯤 집도, 사무실도 성수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하지만, 도만사가 있는 북 성수는 보통 ‘힙’ 성수동이라고 부르는 지역과 약간 달랐죠. 19-20년만 하더라도 이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역에서 멀고 외지다 보니 여전히 공장도 많았고요. 처음에는 삭막한 공업지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동네 어르신, 주민, 어린이들과 친해지면서 외지인 보다 이곳에서 머물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많은 동네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서울 사람들이 즐기러 오는 성수동인데, 막상 우리 동네 주민들이 갈 만한 문화시설이 부족하더군요. 일상의 공간이 없는 느낌이었죠. ‘그래도 우리가 도시와 건축을 하는 사람인데,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이사한 김에, 돈을 버는 일에서 약간 벗어난 무언가를 해보자 Ⓒ탐방


그러다 어느 날, 1층 작은 상가에, 임대 공고문이 크게 붙었더라고요. 항상 지나가는 길인데, 꽤 오래 비어 있더군요. ‘왜 안 나가지?’ 궁금해졌어요. 제 눈에는 작지만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거든요. 호기심에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니, 여기에 이발소가 오랫동안 있었는데 주인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대요. 이발소 물건도 그대로 두고요. 그래서 주인 없는 물건들은 모두 옥상으로 올라가고 상가는 방치된 채 있었던 거죠. 다음 임대자는 구해지지도 않았고요.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작했어요. “저희가 뭐라도 해보겠습니다!”하고요.(웃음)

비워져있던 상가와 도만사(플레이시티) Ⓒ도만사  


개인적으로도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외국에서 커뮤니티 기반 도시계획 실무자로 일했던 적이 있어요. 당시에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일하면서, 도시는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배웠거든요. 하지만 건축 설계라는 영역에서 돌아와서 상업적인 작업을 많이 하다보니, 정작 제가 좋아하는 도시와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도시는 사회, 경제, 환경, 커뮤니티 등 다양한 사람과 소통해야하는데, 너무 많이 단절된 현실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도시에 대해 전문가, 기획가, 커뮤니티가 모두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저의 개인적인 재미를 위해서도요.



도만사가 있어서 좋아요. 잘 쉬다 갑니다.


요즘 로컬에 대한 관심이 커졌잖아요. 저희는 로컬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비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여기가, 나와 내 가족이 사는 이 동네가 좋아졌으면, 광나루로 거리가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하지만 도만사도 이제 4년차가 되니, 이제 로컬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생겨나는 단계 같아요. 보통 로컬 하면, 소도시, 지방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로컬은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동네예요. 그 관점에서 보자면, 로컬은 소도시, 지방 도시만의 문제 혹은 해결책이 아니라, 모든 도시에서 고민하고 다뤄야 할 개념인거죠. 

제가 생각하는 로컬은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동네예요. Ⓒ탐방


일상의 도시문화공간을 목표로 시작한 도만사도 쉽지 않았어요. 가장 처음에는 열린 서재로 시작했는데, 욕도 꽤 들었어요.(웃음) 예전에 슈퍼가 하나 있었거든요. 거기에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시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돈을 낭비하냐?!” 언제든 들어오시라고 불을 켜놓은 공간이, 할머니들이 보시기에는 사람도 없는데 불을 켜놓는 나쁜 젊은이들이었던 거죠. 무인으로 운영하다 보니, 궁금하신 분들도 ‘아무도 없는 곳에 내가 들어가도 되는가’하는 어색함, 반감을 갖기도 하셨고요. 이 부분을 해결하고자 여러 실험을 했던 것 같아요.

직접 주민들한테 “언제든지 오셔도 돼요.”하며 초대하기도 했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죠. 예를 들어, 이 동네에 공장들이 많잖아요. 작은 공장의 사장님들을 인터뷰하고,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하나씩 모아 전시하기도 했어요. 콘텐츠 자체가 이 지역의 이야기면 주민들이 더 편하게 오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뭐, 기대만큼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조금씩 더 관심을 두신 것 같아요.

이후에는 문을 더 많이 열어놓는 방식을 도입했어요. 원래는 보안 걱정 때문에 도만사의 문을 정해진 시간에 여닫았거든요. 지금은 좀 더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어요. 원래 정해진 도만사의 운영은 오후 6시까지였죠. 한번은 문을 닫으러 한 8시쯤 왔는데, 도만사에서 주민분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거예요. 문을 닫을 테니 나가라 하기 뭐해서 그냥 문을 열어두고 집에 갔어요. 그리고 다음 날, 도만사에 가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그런 일들이 종종 생겼고, 여기를 그냥 두어도 아무 일도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그때부터 더 자유롭게 문을 열어두고 있어요. 그리고 동네 분들이 방명록을 남기시더라고요. “도만사가 있어서 좋아요. 잘 쉬다 갑니다.” 그렇게 주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웃음)



저희가 할 일은 없어요.


2023년, 올해부터 더 개방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시도했어요. 얼마 전에는 <게릴라 세레모니 : 병풍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다 열어두고 평상을 만들어 놨죠. 건축디자이너그룹 으쌰으쌰브라더스가 병풍에 영상을 상영하는 작품이었는데, 병풍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고 지금 이곳, 도만사에 왔다는 커뮤니티에 관련된 전시였어요. 너무 신기했던 게 평상을 두니, 바로 할머니들이 점령하시더라고요. 전시 첫날부터 들어와서 앉아 계셨어요.(웃음) 정말 저희가 원했던 일이잖아요. 3년간 주민들이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해봤고요. 그렇게 도만사와 주민 간의 벽이 허물어졌어요.

도만사가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할머니들이 앉아서 혼내셨던 장소는 사실 슈퍼가 아니라, 슈퍼 앞 평상이었거든요. 슈퍼가 문을 닫으며, 할머니들의 모임터도 사라졌던 거죠. 다시, 평상이 생기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맨날 모여 앉아 대화도 하시고, 감자도 가져오고 전도 부쳐와서 잔치도 하시고요. 추석 때는 함께 앉아 송편도 만드시더라고요. 모두 저희가 주최한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드신 거죠.(웃음) 더 좋았던 건, 스스로 도슨트를 자처하시더라고요. 청년들이 도만사에 오면, 할머니들이 “도만사는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도시 공간이고 이 전시는 이런 뜻이다”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저희보다 작가분이랑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셔서인지, 전시와 작품에 대한 취지, 이야기를 깊이 있게 알고 계셨거든요. 그 어떤 도슨트보다 훌륭한 도슨트였죠.


할머니들의 모임터, <게릴라 세레모니 : 병풍의 여행> Ⓒ도만사


아, 또 한 번 벽이 크게 허물어졌던 순간이 있네요. 아이들이었죠. 이 동네에, 할머니만큼 아이들도 정말 많아요. 도만사 바로 뒤도 어린이집이거든요. 아이들이 많지만, 아이들이 놀 공간은 많이 없죠. 어떻게 보면 위험한 환경이고요. 이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 혹은, 놀이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열었던 게, 비들(Veedl)이라는 작가 집단과 협업한 ‘플레이시티’라는 전시였죠. 병풍의 여행처럼, 문을 완전히 열고 도만사에 정글짐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정말 많은 어린이가 도만사에 들어와서 재미나게 놀더라고요. 그리고 전시가 끝나자, 놀이터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정말 아쉬워했고요. 할머니들의 평상이,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던 거죠.

그렇게 하나씩 벽이 허물어지면서 어느새, 도만사는 지역에 꼭 필요한, 지역기반 도시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음악회를 열어도, 저희가 할 일은 없어요. 다 알아서 주민들이 모이고, 한 밤 10시까지는 재밌게 즐기시죠. 그리고 스스로 불을 끄세요. 어르신들은 전기세에 굉장히 민감하시거든요.(웃음) 그게 끝이 아니에요. 여기 마룻바닥까지 전부 걸레로 훔치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저희보다 더, 본인의 집처럼 관리를 해주시는 거죠.

도만사로 몸소 경험했던 것 같아요. 주민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로컬리티적 공간, 지역에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걸요.

도만사는 로컬리티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탐방



영하님은 탐방러들에게 도만사가 있는 동네, 북성수동에 꼭 와보길 추천해요. 우리에 익숙한 성수동과 전혀 다른 로컬을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요. 힙한 카페, 디올,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의 팝업이 아닌,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날 수 있을 거래요. 콜라스트 갤러리, 헬로우뮤지엄, 피어 컨텐포러리, cda 갤러리… 도만사처럼 작은 문화 공간도 참 많죠. 영하님을 만나 도만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동안 성수동을 오해했던 것 같아요. 이곳도 사람들이 함께 만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동네인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북성수동으로 나들이를 가볼려고요. 거리에서 할머니, 아이들을 만나면 괜스레 반가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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