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강화에서 용기를 얻고 있어요.

강화군 | 성결 (협동조합 청풍)

  인터뷰 ep.49  



로컬로 향하는 발걸음이 주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 본, 청년 대상의 설문조사에서는 1위가 일자리였던 기억이 나요. 로컬이든 도시든, 먹고 살아야 하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죠. 그만큼 일자리가 정해지지 않은 채 로컬에 머물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성결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로컬에 머물기로 했대요. 그리고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죠. 이제는 누가 뭐래도 강화 로컬러인 결님을 만났어요.



1년만 강화에 살아보자


산마을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강화에 왔어요. 고등학교 때는 강화에 산다기보다는 학교에 산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기숙학교라 코딱지만 한 학교가 전부인 삶이었죠. 졸업 후, 되돌아보니 강화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산마을학교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지역과 관계된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학교가 소속되어 있는 마을 공동체도 있고 학교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하며 지역 어른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학이나 도시에 가지 않고, 특히 서울로 가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지역에서 뭔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친구들도, 고3만 되면 대학을 준비해요. 다른 길의 선택에 대한 불안함도 있고, 선례도 없으니까요. 저 역시 고민이 되었죠. 머리로는 무탈한 경로를 벗어나는 것이 고생길이라는 걸 알겠는데, 우리가 나눴던 상상대로 살아봐도 꽤 좋을 것 같았어요. 안되겠다, 여기서 한 번 살아봐야겠다 선택하게 되었죠. 적어도 그때의 나에겐 대학이나 도시가 말로만 별거 아닌 것이 아니라, 진짜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선은 1년 정도 살아보고, 안되면 가볍게 떠나버리자는 마음으로 강화살이가 시작됐어요.


안되겠다, 여기서 한 번 살아봐야겠다.  Ⓒ탐방


고등학교 때부터 지역 어른들은 ‘지역에 청년이 남아야지, 지역에 청년이 없으니까 이렇게 쇠퇴하잖아’, ‘젊음으로 못할 게 어딨어’라며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막상 남았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또,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학생, 혹은 누구 딸의 친구, 이런 식으로 여겨졌고요.

한편, 강화에 남으려고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던 고3 후반 때, 청풍의 유마담을 찾아갔어요. 강화에 남을 거라고 했더니 ‘여긴 청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으니 서울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만났던 모든 어른 중에 여기서 힘들 거고 서울에 나가서 사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던 사람은 유마담이 처음이었어요. 강화에서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유마담이 경험했던 현실적인 조언이었지만, '지역에 남아보겠다니 기특하네'하는 칭찬이 너무 맛있었던 저는 찜찜한 마음을 못본 척 넘겨버렸죠.(웃음) 결국, 유마담의 말이 맞았어요. 처음 1년의 강화살이는 어려움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러다 1년여 간의 좌충우돌을 옆에서 지켜봐 온 청풍에서 진달래섬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하는데, 함께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죠. 무엇보다 누구의 보조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파트너로 대해주는 점이 참 좋았어요. 청풍의 멤버가 되어보니 누군가를 조합에 초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새로운 사람과 손발을 맞추고, 서로 알아가는 감정적 품도 필요하니까요. 그럼에도, 청풍은 저에게 마음을 내준 거죠.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청풍은 저에게 마음을 내준 거죠.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탐방



이제야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뭘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멋진 장소와 물건들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느 지역을 가든, 굿즈샵에 꼭 들르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게 저예요.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지금까지 진달래섬을 운영하고 있어요. 연고 없는 지역에서 산다는 게 참 어렵다는 걸 경험했지만 청풍과 조금 더 일해보고 싶어서 '다시 1년만 더 해보자'고 생각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팀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맡게 되었어요.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사람들이 함께 즐거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장을 기획하는 일들이요. 기존의 귀농·귀촌 수요자로 인식되었던 남성, 토박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경로를 모색하며 시골을 찾는 여성과 청년, 나처럼 지역에서의 삶을 상상하는 후기 청소년, 자신만의 삶과 업을 세워가는 멋진 이웃들을 호명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무척 의미있고 즐거웠어요. 그로 인해 비슷한 고민과 관점을 가진 동료들이 만나고, 나만의 관계망이 점차 넓어져 갔고요. '일'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나은 시선을 배워가고, 많은 확장을 경험하지만 여러 어려움도 많죠. 일을 하다 보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무리하고, 결국 어떤 면으로든 탈이 났던 때도 있었고요. 나만의 방식, 페이스를 조절하는 게 큰 과제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팀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맡게 되었어요. Ⓒ탐방


이제 일을 시작한 지 4년 정도 됐는데, 올해 들어서 일이 훨씬 수월해지고 재밌어요. 힘들고 분주한 상황이 변한 건 아니지만, 이제야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뭘 말하고 싶은지 혹은, 우리가 뭘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가 정확히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야도 넓어지고, 많이 편안해진 거죠. 그제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청풍은 강화에서 자기만의 메시지를 만들어 가는 개개인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커뮤니티, 강화 유니버스를 지향하거든요. 둘러보니 어느새 제 옆에는 다채로운 이웃들로 가득했죠.

금풍양조장의 사장님도 그렇죠. 그분은 원래 서울에서 굉장히 잘 되던 사업이 있으셨대요. 그런데, 그걸 접고 강화로 오셨죠.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를 의미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요. 저는 가족을 떠나 혼자 산 시간도 길고 명절에나 얼굴을 비추는데, 가족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경하고 멋졌어요. (금풍양조장 태석님의 탐방 인터뷰 보기)

또 온수리의 벨팡이라는 오래된 빵집도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공간이죠. 우리 밀로 독일식 빵을 만드는 곳인데, 사장님이 정말 깐깐하세요. 그날의 빵이 마음에 안 들면, 내놓지 않을 정도로요. 재료나 빵에 대한 신념이 그만큼 강한 거죠. 가게에서 빵을 먹을 수도 없고, 커피도 팔지 않아요. 심지어 맞은 편에 정말 큰 파리바게트가 있어요. 갈 때마다 사장님은 늘 툴툴대시죠. “장사가 안된다. 파리밖에 없다. 나처럼 안 망하려면 결님은 서울로 얼른 가라.” 하지만, 벌써 6-7년을 꿋꿋이 버티고 있고 얼마 전에는 제과점까지 새로 내셨어요.(웃음)

자신의 업을 대하는 진심,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가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벨팡은 사실, 멀리서도 찾아오는 유명한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강화에는 자신다운 업과 삶을 만들어가는 이웃들이 많아요. 좋은 태도를 가진 이웃들과 곁을 나누며 산다면 그들의 관점과 태도를 서서히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강화는 계절도 다채롭고 자연도 다채롭지만, 그것만으로 강화에서 이렇게 오래는 못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멋있고 좋은 이웃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있으니까,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거죠.


멋있고 좋은 이웃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있으니까,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거죠. Ⓒ탐방


시골언니프로젝트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예요. 작년에 처음, 시골언니프로젝트를 만났을 때 ‘언니’라는 연장자·선배라는 의미가 정말 난감하고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언니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언니라는 말이 '어금니가 먼저 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더라고요. 그 의미에 빗대어 봤을 때, 저는 우연히 여기 먼저 살고 있었던 사람인 거죠. 시골이란 어금니가 먼저 난 사람이요.

사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강화의 좋은 이웃을 소개하고, 잘 연결해보자는 생각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매 기수를 마칠 때마다 오히려 제가 그 시간들을 통해 '용기'를 얻었어요. 참여자의 회고에서도 항상 나왔던 키워드가 ‘용기’이기도 했고요. 이주할 용기보다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였죠. 많은 분이 강화에서, 또 저와 청풍을 매개로 ‘용기’를 얻어간다는 게 저한테도 큰 힘이자 용기가 되더라고요. '강화에 살아보겠다고 참 애썼다, 앞으로도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용기요.



우리는 로컬로 향하기 위해서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로컬에서 얻는 용기가 더 크다고 말하는 결님. 대화를 마치고, 저에게도 용기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강화의 이웃들에게 받았다는 용기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하는 공감도 들었고요. 

용기가 필요한 순간, 로컬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요? 도시를 떠나겠다는 용기 말고도, 나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용기,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다양한 로컬의 이웃이 당신에게 꼭 필요한 용기를 선물해 줄 거예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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