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드나드는 고향을 만들고 있어요.

상주시 | 백아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인터뷰 ep.47  



하늘에 뜬 달과 저수지에 비친 달, 두 개의 달이 뜬다는 아천1리의 달두개학교를 찾았습니다. 마을 앞 큰 저수지인 지평지를 지나 만난 학교는 폐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마을 앞을 당당히 지키고 있네요. 정문에는 어떤 학교보다도 많은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달두개학교, 마을카페 아나스타, 목공방 제페토, 곤충체험 벅스라이프… 녹색의 작물로 가득 찬 운동장 너머, 이층 건물.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달두개학교를 지키고 있는 아름님을 만났습니다.


아천1리의 달두개학교를 찾았습니다. Ⓒ탐방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부산이 고향이예요. 상주에는 2017년에 처음 오게 되었죠. 7월쯤 왔으니 이제 딱 7년이 되었네요.(웃음) 부산에서는 주얼리와 의상 디자인에 관한 공부도 하고, 직장에 다녔어요. 제가 하고 싶던 일이었죠. 근데 참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내가 쓰임을 받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큰 기계의 부품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게 직장생활인 건가?’ 싶기도 했고 첫 직장이니 ‘1년은 버티자’ 싶었죠. 근데 막상,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1년을 살았더니 평생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어요. 고민이 이어질수록 도시에서는 어떤 직장을 가든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왜냐면, 당시에도 일 자체로는 제가 하고 싶었던 분야였거든요. 중요한 건, ‘내가 필요한 곳에서,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가’였어요.


중요한 건, ‘내가 필요한 곳에서,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가’였어요. Ⓒ탐방


그때쯤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친구를 따라, 사회적 기업 설명회에 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 상주에 있게 된 이유이자 계기인, 사부님을 만나게 되었죠. 사부님은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멘토 역할을 하고 계세요,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죠.(웃음) 사부님도 10년 전쯤 상주로 귀촌하셨어요.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시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상주로 내려오신 거죠. 처음 1~2년은 사모님하고 등산을 하면서 몸을 추스리고 있었는데, 마을 저수지에 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대요.

저수지에 태양광 패널을 띄우는 사업이었는데, 그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큰 규모였다고 하더라고요. 마을의 자연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태양광 패널로 저수지에 햇볕이 투과하지 못하니 저수지가 썩고, 부력체도 플라스틱이다 보니 환경적으로도 큰 문제가 생길 건 자명했죠. 그래서 주민들도 반대하자, 업체는 제일 바쁜 농번기에 그 사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주민 대부분이 농민이니 농번기에 제대로 대응하기란 어렵거든요. 사부님은 농사를 짓지 않고 있으니, 시간이 제일 많아 혼자서 8개월간 반대를 했고 결국, 태양광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훨씬 좋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죠. 옆에서 그 노력과 변화를 지켜본 마을분들도 사부님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셨다고 해요. 이후에는 마을 이장까지 하시게 됐고요.

사부님은 도시와 시골의 현실을 모두 알고 계셔서, 저희와 대화가 더 잘 통했던 것 같아요. 도시보다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행복한 시골이 낫지는 않겠냐는 사부님의 말에, 그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상주에 폐교가 있는데 청년들이 와서 사회적기업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죠. 당시에는 상주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어요.(웃음) 궁금해서 한 번 와봤는데, 폐교의 공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아주 작은 공간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꽤 크더라고요. ‘여기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짐 싸 들고 상주에 내려오게 됐어요.


여기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탐방


저 포함해서 3명이 함께 상주로 왔어요. 처음에는 각자 자신의 사회적 기업을 준비했죠. 그러다 3명이 다 말아 먹었죠.(웃음) 사부님이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한마디 하셨어요. “그렇게 도시에서처럼 일하지 말고, 시골에 왔으니 시골에 맞는 일을 해봐. 각자 먹고 사는 일을 말고 함께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해 봐~” 그렇게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조합원이 11명까지 늘어나게 되었죠.

조합원은 마을 어른 2명 외에 9명이 청년이에요. 9명의 청년은 모두 상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외지인이고, 지금 상주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고 외부에 살고 있는 분도 있어요. 이곳에는 여섯 명이 상주하고, 나머지 분들은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회의에 참여하기도 하고,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을 때 돕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청년이 두세 명이라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청년이 모이는 것 같아요. 저희가 머무니, 폐교가 청년들이 드나드는 플랫폼이 된 거죠.


저희가 머무니, 폐교가 청년들이 드나드는 플랫폼이 된 거죠.  Ⓒ탐방



시골에 있는 동생, 조카, 가족같은 존재


처음에는 영락없는 폐교였어요. 버려진 공간이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교실도 많았고 외부공간도 넓었어요. 일단 저희끼리 이런 장소가 생겼으면 좋겠다, 필요하다 생각이 들면 하나씩 만들어 갔던 것 같아요. 목공 수업을 들으면서 직접 가구도 만들고, 수리도 하고, 도색도 하면서 ‘달두개학교’로 가꿨죠. 저희 힘으로 하나씩 하다 보니 여기 온 햇수만큼 딱 7년 걸렸네요.(웃음) 물론, 여전히 손 봐야할 곳도 많지만요.

달두개학교는 저희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에요. 공간과 청년이 있다 보니, 마을분들이 동아리 활동을 여기서 해도 되냐고 제안하셔서, 2층의 두 개의 교실은 마을의 남성 동아리방, 여성 동아리방이 되었어요. 또 문화예술가분들이 머물며 작업도 하고 달두개학교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세요. 공간을 사용하시는 대신, 달두개학교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시는 거죠. 그러다 보니, 달두개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만 참여하더라도 정말 바빠요. 성악부터 압화, 곤충, 통기타, 태극권까지. 정말 다양해요.


마을의 남성 동아리방과 목공방 제페토  Ⓒ탐방


협동조합을 만들고, 제일 먼저 시도한 건 농산물 판매였어요. 농촌에 맞게 먹고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결과였죠. 마을에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꽤 있었거든요.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농산물을 도시에 전하고 판매하면 서로 상생하는 일이겠다 싶었죠. 그래서 판매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지금은 저희도 친환경으로 쌀, 고추 농사를 짓고 있어요. ‘청년이면 인터넷 판매를 잘하겠지’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 상품을 판매하고 유통한다는 건 전문분야이잖아요. 저희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려웠죠. 그래서 오프라인 판매를 먼저 시작했어요. 주로 지인 네트워크로요.(웃음) 근데 입소문이 참 무섭더라고요. 서로 소개를 해주시더니, 처음 400명이 지금은 천 명으로 회원이 늘어났다니까요.

저희는 천 명의 회원들과 그냥 판매자와 고객의 관계가 아닌, 좀 더 깊은 사이가 되길 바라요. 그래서 ‘저희 이렇게 살고 있어요’하고 매월 협동조합의 소식지를 보내드리고 있고, 가끔은 저희가 초대해서 달두개학교에서 함께 밥 먹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그분들에게 저희는 시골에 있는 동생, 조카, 가족 같은 존재인 거죠.


그분들에게 저희는 시골에 있는 동생, 조카, 가족 같은 존재인 거죠.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다시 말해, 달두개학교는 누구나 드나드는 시골 플랫폼이에요. 달두개학교가 있는 마을의 사랑방이기도 하고, 상주와 바로 옆 문경의 청년 놀이터이기도 하죠. 또 시골살이를 꿈꾸는 청년에게는 시험대가, 농작물 판매로 연결된 천명의 시골집이기도 해요. 가끔은 매체를 통해서 저희의 이야기를 접하고 궁금하다며 찾아오시는 분도 있고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에요. 저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사부님과 마을분들, 또 폐교가 저희를 받아들여 줬던 것처럼요.

시골언니 프로젝트도 시골 플랫폼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마친 뒤, “고향이 생긴 것 같아서 좋다”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요즘 청년들은 대부분 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 고향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휴가 때 내려갈 시골이 없고요. 저희가 그들에게 고향이 되었다니, 정말 기쁜 일이죠. 저 역시 정말 많은 도시 친구, 언니, 동생들이 생겼고요.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있죠. 자체적으로 달두개학교에서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홈 커밍 데이도 진행해서 다 같이 모이기도 했고, 방학이나 휴가 때면 수시로 여기에 놀러 와요. 놀러 오면, 같이 농사일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그냥 쉬고 가기도 하고요. 저희도 서울이나 친구들이 있는 지역에 가면, 친구들이 밥을 사주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저희는 더 많은 분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요. 꼭 청년일 필요도 없어요. 나이, 직업, 지역을 떠나 누구나 올 수 있는 상주의 한구석에 있는 시골집이 되려고요. 상주에 오면, 언제든지 들러주세요. 시골의 언니, 동생,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누구나 올 수 있는 상주의 한구석에 있는 시골집이 되려고요.  Ⓒ탐방



탐방러님의 고향은 어딘가요? 저는 명절 때 내려갈 시골이 없는 서울토박이라, “그들의 고향이 된다”는 아름님의 말이 참 공감됐어요. 탐방인터뷰를 다니다 보니, 인터뷰로 교류를 시작한 시골의 친구, 삼촌, 이모들로 그 지역을 떠올리고, 날씨가 안 좋을 때면 ‘다들 괜찮으신가’하는 걱정으로 연락을 하곤 합니다. 또, 철마다 직접 키운 작물을 받을  때마다 ‘이분들도 또 다른 가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쪽에 오면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헤어질 때 아름님의 인사가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시골집 가족의 인사처럼요. 아무래도 이 더위가 끝날 때쯤, 상주의 시골집, 달두개학교를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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