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걸으며 농부를 만나고 있어요.

당진시 | 박향주, 양정은 (농부스트)

  인터뷰 ep.46  



걷기 좋아하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된 걷기 여행의 인기는 제주 올레길로 이어졌고, 지금은 전국에 다양한 걷기 길을 만날 수 있어요. 저도 제주 올레길을 걸어본 적이 있어요. 저만의 속도로 천천히 걷다 보니, 또 다른 제주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죠. 시간대별로 변화하는 바다와 산, 마을의 풍경도 참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걸으면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였어요. 혼자 걸어가는 제게 어디서 왔냐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셨고, 한 분은 사탕까지 손에 쥐여주셨죠. 그때부터 저에게 걷기 여행은 풍경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되었어요. 

오늘의 주인공, 향주님 정은님은 당진의 농촌을 걷고 그곳에 살아가는 농부님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대요. 이 일을 하기 위해, 당진으로 왔다는 두 사람. 당진을 걸으며, 만들어 가는 향주님과 정은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당진과의 첫 만남 : 건강한 먹거리와 순례길


향주) 21년 6월에 당진에 처음 왔어요. ‘로컬에디터로 농촌에서 살아보기’라는 농림부 프로그램에 참여했거든요. 농촌 혹은 이주에 대한 큰 관심보다는 커리어 전환을 꿈꿨던 것 같아요. 농부를 인터뷰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까지 연결할 수 있는 직업의 교육과 체험이 가능했어요. 취미생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에 매료되었고, 이걸 업으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거든요. 그렇게 당진의 백석 올미마을에서 6개월 살이가 시작되었죠. 6개월이라는 꽤 긴 기간도, 저에게는 새로운 직업을 접해보고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여겨졌어요. 한달살이였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 것 같아요. 삶을 전환하는 건데, 한 달이면 가능성을 판단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농부님들과 농촌을 만났어요.(웃음) 첫인상은 ‘너무 좋다~.’ 풍경도 사람도 하나같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진 뒤에는 그간 봐왔던 시골의 풍경이 달리 보이더군요. 이 땅을 일구는 농부의 삶이 보였달까요? 이후에는 농촌을 바라보면, 감사함과 풍요로움이 가장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향주님) 이 땅을 일구는 농부의 삶이 보였달까요?  Ⓒ탐방


무엇보다 처음 만난 농부인 채진수 농부님의 영향이 컸어요. 농부님은 무제초, 무비료, 무퇴비, 무경운의 자연농법으로 포도 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부님을 통해서 건강한 먹거리는 건강한 땅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배우게 되었죠.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난 농산물을 직접 목격하고 맛보게 되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 마트에서 가장 크고 예쁜 농작물을 고르던 제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농작물의 가치를 알게 된 순간이었죠. 실제로 농부님도 농작물이 시장 기준과 맞지 않아 경매장에 나가기도 쉽지 않고, 나간다 해도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판로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어요. 내가 당진에서 알게 된 사실을 더 많은 도시민이 알게 된다면 분명,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자연과 상생하는 농사를 지향하는 자연농, 친환경, 유기농의 농부님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농부스트(농부+BOOST 농부에게 힘을 북돋우다.)’ 프로젝트로 지역의 예술가, 창업가와 함께 농부 콘텐츠나 제품을 만들며 많은 걸 배웠어요. 소비자가 농촌과 농작물을 좀 더 가깝게, 제대로 알아가는 모습도 보람찼지만, 무엇보다 전혀 농촌에 관심이 없던 지역의 예술가와 창업가가 농부스트 프로젝트로, 농부와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또 다른 장을 열어가는 게 참 기뻤고,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제 업에 대한 방향과 확신이 섰던 것 같아요. 지역에 살아가며 자신의 재능을 농부와 농촌에 적용하여 일할 수 있는 판을 여는 일, 연결하는 역할, ‘농촌 기획자’인 거죠. 그렇게 당진에 정착하고, 창업까지 하게 되었어요. 6개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결정했죠. 사실, 결정이랄 것도 없었어요. ‘농촌에서 살아보기’에 참여한 6개월 동안에도, 저는 당진에 이미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좌)향주님(가주 스페이스)의 농부스트 프로젝트와 (우)정은님(슬로당)의 버그내 순례길 Ⓒ탐방


정은) 저는 당진이 외갓집이에요. 하지만 1년에 한 번도 안 올 때도 있는, 가깝고도 먼 곳이었죠. 당진에 저에게 크게 다가온 건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었어요. 바로, 순례길이죠.

6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은 뒤부터 순례길에 푹 빠졌어요.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트레킹과 등산이 취미가 되었고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당진의 합덕이라는 지역에 이주하시면서, 함께 합덕시장을 놀러 갔어요. 시장을 둘러보는데, 길바닥에 ‘버그내 순례길’이라고 적혀있는 거예요. ‘당진에 순례길? 내가 안 걸어볼 순 없지’라는 생각으로 걸었어요. 제가 항상 그리워하던 풍경이 펼쳐졌고 또 당진만의 역사가 곳곳에 펼쳐져 있더군요.

당진의 당이 당나라의 당인 거 아세요?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한양보다 오히려 당나라랑 더 교류가 많았대요. 서해에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이었겠죠. 그만큼 외부와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합덕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김대건 신부님 같은 성인이 나올 수 있었던 거고요. 지금 합덕에 가면 그냥 논밭, 정말 깡시골이지만, 과거에는 전자제품도 다른 지역에 비해 30년 정도나 먼저 들어올 만큼 선진문화의 공간이었다고 해요. 버그내의 이국적인 풍경이 비로소 이해되는 이야기죠.

버그내 순례길 중간에는 조선시대에 3대 제방으로 여겨졌던 ‘합덕제’도 있어요. 참 이야기가 많은 곳이죠.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는대요. “너 합덕제에 가봤냐?” 안 가봤다고 대답하면, 도대체 살아서 무슨 일을 했길래, 그 아름다운 곳도 가보질 못 했냐고 혼낸다는 설화가 있어요. 그만큼 아름다워서 연산군은 장녹수에게 합덕제에 있는 땅을 선물로 주기도 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서 순례길을 걸으니 더 좋더라고요. 보이고 느껴지는 게 더 풍성해진달까요?


버그내 순례길을 걷는 정은님과 신리성지  Ⓒ양정은


산티아고 순례길도 사실, 고요하고 소박한 마을들 사이에 성당이 있는 평범한 시골길이거든요. 버그내 순례길도 똑같아요. 한적한 길을 계속 걸으며,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죠. 그러다 성당과 역사 자원을 만날 수 있고요. 또 계절마다 풍경도 달라요. 가을이면 황금 들판 사이를 걸을 수 있는데 그때의 경험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버그내 순례길은 종교를 떠나 좋은 걷기 길이고, 당진은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에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당진의 버그내와 산티아고를 모두 경험해 보았고, 스스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디자이너잖아요. 버그내 순례길을 알리는 일을 제가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죠.


(정은님) 가을 황금 들판 사이를 걷는, 그때의 경험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탐방


향주님과 정은님은 각자 다른 계기로 당진으로 왔고, 창업을 하게 되었어요. 향주님은 가주 스페이스, 정은님은 슬로당의 대표이죠. 지금은 옆 사무실을 사용하는 이웃이자 없어서는 안 될 협력자입니다.


정은) 향주님과 첫만남도 참 재밌었어요. 순례길에 가고 싶거나 다녀온 사람들이 모인 운동 모임이 있어요. 온라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랜선까미노’라는 모임인데, 순례길에 한참 빠져있으니 당연히 참여하고 있었죠. 근데, 거기 한 분이 <로컬을 편집하다>라는 책을 내셨다는 거예요. 당진을 알아가고 있으니, 구매하고 읽었죠. 3명의 저자가 6개월간 로컬 에디터로 살아가면서 쓴 책이었어요. 그중 한 명이 박향주라는 분이었죠.(웃음)

책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당진에서 창업 교육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 자리에 ‘박향주’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는 거예요. “혹시, <로컬을 편집하다> 책의 향주님이세요?” 하고 물었죠.


향주) 정말 그 책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이렇게 만나게 될 줄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크게 부족하단 걸 깨닫게 된 게 그 책을 마무리하면서였거든요.(웃음) 부끄럽고 고맙고 반갑고 복합적이었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고, 정은님이 제가 있는 창업 공간에 입주하게 되면서 더 가까워졌어요.


혹시, <로컬을 편집하다> 책의 향주님이세요?  Ⓒ탐방


정은) 처음 창업을 하고 향주님에게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저보다 먼저 창업한 선배이기도 하고, 둘 다 지역의 자원으로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죠. 제가 하고 싶은 걷기길 콘텐츠도 어쨌든 농촌 내에 있는 길이잖아요. 그곳에 살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농부이시고요. 농부 콘텐츠를 만드는 향주님과의 대화는 배울 것도, 즐거움도 많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향주) 저 역시 정은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유통보다는 홍보, 마케팅에 가까워요. ‘농촌을 말랑말랑하게, 농부를 반짝반짝하게’라는 목표로, 농촌과 농부의 이야기를 흥미 있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거죠. 다시 말해, 무형의 것을 가시화해서 보여줘야 하는 일이죠. 제품이든, 영상이든, 굿즈든, 어떤 형태로요. 그때의 기획은 제가 담당하지만 실제로 구현해 줄 전문가들이 필요하죠. 정은님처럼요. 둘이 프로젝트를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번 시골언니 프로젝트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향주) 도시와 시골의 속도는 다르잖아요. 하지만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그 사이는 또 다른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진이 딱 그렇거든요. 도시라기에는 작고, 시골이라기엔 크죠. 당진 도심에 살면서 농촌에 있는 자신의 농장으로 출퇴근하며 농사짓는 농부님들도 꽤 많거든요. 이런 당진의 특징이 어떻게 보면, 시골과 도시를 연결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에 딱 맞겠다 싶었어요. 지역 자원을 바탕으로 도시민에게 콘텐츠로 전달하는 저희의 업도 그렇죠. 시골과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거잖아요. 이보다 잘 맞을 순 없지 않나요?(웃음)


정은) 당진이 매력적인 건,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골의 이미지는 보통 비슷하잖아요. 하지만 당진 안에는 정말 다른 시골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합덕’은 평야 지대라 시원한 경관을 갖고 있죠. 또, 농작물로 계절에 따라 풍경의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고요. 또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외부 문물이 빠르게 들어왔다 보니 과거에는 굉장히 부촌이었거든요. 그 시골에 극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의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한 번은 합덕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나, 당진 갔다 왔어~”라고 하시더라고요. 합덕도 당진인데 말이죠.(웃음)


향주) ‘대호지’는 당진에서 대(大)오지라고 불려요. 그만큼 깊숙한 자연 속의 시골이죠.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아니라,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어요. 대호지에 있는 미소연은 도자기 공예를 하는 시골언니가 공방, 펜션 등으로 만든 곳이에요. 처음 미소연을 갔을 때 ‘지브리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죠. 애써 꾸민 느낌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렇게 있었던 것 같았달까요?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동화 속 풍경처럼요.

반면, ‘면천’은 소도시 느낌이 있어요. 면천 읍성을 중심으로 고즈넉한 동네가 자리 잡고 있죠. 슈퍼도 있고 교통편도 좋고, 카페와 식당도 있고요. 살아가기에 적절한 인프라가 갖춰진 시골이랄까요? 만약 ‘난 시골은 좀 어려워.’라고 생각한다면 면천에서는 더 편하게 녹아들 수 있을 거예요.


(위)대호지 (아래)면천  Ⓒ박향주&양정은


향주) 물론, 당진만이 가진 특징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도시민이 다양한 시골을 경험하고 차이를 느끼긴 어렵죠. 당진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면, 다양한 시골을 보고 나에게 맞는 시골의 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도시도, 시골도 아닌 당진이라 가능한 게 아닐까요?



향주님과 정은님의 말처럼, 저도 시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논밭이 펼쳐진, 녹색 가득한 풍경이죠. 대호지와 면천에서 고르자면, 대호지에 가깝달까요?(웃음) 하지만, 막상 머문다고 생각하면 좀 더 복작복작한 면천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역시, 직접 걸으며 천천히 겪어 봐야겠어요. 시골도 도시도 아닌, 당진으로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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