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 강나루 (씨앗바람연구소)
인터뷰 ep.45
얼마 전, 주말 텃밭을 시작한 친구가 직접 수확한 쌈 채소를 가득 쥐여줬어요. 푸짐하게 먹으며 텃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작은 모종을 사서, 심었는데 이렇게 잘 자랐다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어요. 그러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대화가 멈췄습니다.
“근데, 모종은 누가 키워? 씨앗도 사는 건가?”
“응?! 씨앗을 팔긴 하는데… 농부님들이 씨앗도 생산하지 않을까?” - 검색 중 -
“글로벌 10개 기업이 세계 씨앗의 75%를 점유한다는데?!”
“그럼, 우리가 먹는 건 외국산인 거야?”
알고 보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씨앗은 종자회사로부터 상품화된 씨앗이고 그와 반대되는, 우리 땅과 풍토에 적응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토종 씨앗’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죠.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다, 실태조사를 한다는 등의 이야기뿐이에요. 일반인이 토종 씨앗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방법은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주인공을 통해 토종 씨앗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에서 씨앗 매개자, 강누리님을 만났어요.
토종 씨앗을 매개로 유무형의 씨앗을 이어가는 씨앗 매개자입니다.
‘씨앗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창직*을 했어요. 요즘은 누구나 다들 N잡러의 삶을 살잖아요. 특히나 시골에서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죠.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거나, 혹은 전형적인 직업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그 상대를 모호해하거나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지어버리잖아요.
저 역시, 딱 떨어지게 답하지 못 했어요. 우리 시대에 토종씨앗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그 다양한 일은 모두 토종 씨앗에서 이어지고 파생된 것이라, ‘씨앗 매개자’가 떠올랐죠. 그때부터 씨앗 매개자라고 명함도 만들고, 저를 소개하고 있어요.
‘씨앗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창직을 했어요. Ⓒ탐방
조소를 전공한 뒤, 생명에너지를 주제로 한 작업을 해왔어요. 그러던 중 공공미술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7년도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종촌…가슴에 품다’의 집행위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도시 개발로 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들을 위로하는 예술 프로젝트였죠. 예술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몸소 경험하고, 조금 눈을 뜨게 된 기회였어요. 그전까지는 예술의 언어로만 표현했다면 나의 작업을 좀 더 넓게 표현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꺼졌달까요?
그때쯤,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갔던 것 같아요. ‘나는 돈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구나.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큰 행복을 느끼는구나.’ 이런 식으로요. 20대 중후반, 도시에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은 최대치로 해봤던 것 같아요.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생각에 미국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돈도 벌어보기도 했고, 공공예술의 영역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나 행복한가?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가?’
삶의 터전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2011년, 제주에 처음 왔어요. 당시에는 완전히 제주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3년을 도시와 섬을 오가면서 지냈죠. 펜션 사장님께 부탁해서, 조금 저렴하게 장기로 대여하는 방식으로요. 지금 생각해보면,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꼭 필요했던 과정같아요. ‘연고도 없는 이 섬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지만요.(웃음)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가? Ⓒ탐방
2014년 여름, 옥상 영화제에서 ‘다큐 자연농’이라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 공유하는 중간 상영회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알았죠.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리고 그들이 하는 농업을 자연농이라고 부르는구나. 그날 밤이 저에게 큰 전환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신이 섰죠. ‘그냥 내려가도 되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 지점에 집중하자.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되겠다.’ 그렇게 진정한 제주살이가 시작됐어요.
그냥 씨앗과 소통하려 했달까요?
제주에 내려와 어떤 일을 꼭 해야겠다는 계획이나 바람은 없었어요. 정말 단순하게 제주라는 곳에서,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노지 밭을 일궈보았어요. 도시에서도 화분이나 한 평 텃밭을 가꾸고,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에 관심이 많았었거든요. 시골로 내려왔으니, 노지로 텃밭이 이동한 거죠. 처음에는 오일장에서 모종을 사서 심고, 도시에서 해왔던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어요.
제주에는 채집의 계절도 있잖아요. 오름으로, 바다로 다니며 채집했죠. 내가 심지 않아도 자연에서 저절로 나서 거두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자연의 풍요로움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농사와 채집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토종씨앗에 관심은 커져가더라고요. 이 땅에서 난 씨앗이니까요. 이런 저를 보고 지인이 ‘토종 추수 앞마당’이라는 행사를 추천해주었어요. 제주 여성농민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여기서 다양한 토종 씨앗을 알게 되었고 나눔 받게 되었죠.
그전까지 저에게 토종 씨앗은 다큐나 책에서 본,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대상이었어요. 할머니들의 보물 혹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소중한 씨앗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토종 씨앗을 받아 직접 심어보고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경험을 쌓아가니 다르더라고요. 더이상 나와 먼, 책에만 있는 대상이 아니었죠. 매일 함께 생활하는 일상의 친구였어요. 농사를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어요. 그냥 씨앗과 소통하려 했달까요? (웃음)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건 뭘까? 뭘 해주면 좋겠니?’ 이렇게, 정말 친구처럼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도구나 장치를 이용하지 않았어요. 정말 호미, 골갱이만 가지고 밭을 가꿨죠. 그렇다고 굳이 자연농의 방식이라고 강조하진 않았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시도했던 거죠. 밭에서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씨앗을 심는 파종부터 다시 거두는 채종까지 1년의 과정을 오롯이 경험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작가들이 작업할 때 24시간 붓을 놓지 않는다고 말하잖아요. 그 마음으로 밭에 머물렀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500평에, 수십 종의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외부에도 알려지고 토종 씨앗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밭에서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탐방
사실, 밭에서 1년, 2년, 3년, 4년. 시간이 지나가면서 마음 속에 해소되지 않는 뭔가가 피어났었어요. 밭에서는 너무 행복하고 충만했지만, 뒤돌아서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알고보니, 저는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다시 표현해야하는, 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때, 그동안의 시간을 한 번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2014년부터 6년간 기록한 짧은 글, 사진을 엮어서 <일상의 씨앗들>이라는 독립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지역의 토종 종자 실태조사를 다니기도 했어요. 홀로 농사를 짓다가 우리 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시작한 거죠. 그 와중에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깨닫기도 했고, 그건 다시금 토종 씨앗의 농사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0년만에 개인전을 다시 열었어요.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이었죠. 이전에는 나의 느낌을 오브제로 만들기 위해 흙을 만졌다면, 지금은 제주에서 흙과 함께 살아 있는 조각을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사유하고 조망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적어도 나의 텃밭 안에서는 내가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그 단상들을 설치적인 방식이나 영상이라는 도구를 빌려 전시를 했죠. 하고싶은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하는 게 저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한번 표현하고 나니, 용기가 나더라고요. 밭에서의 일상에, 토종 씨앗을 알리고, 나누고,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씨앗 매개자가 되기로 한 거죠.
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더라고요. Ⓒ탐방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텃밭에, 토종 앉은키밀을 심었던 이듬해에는 텃밭에서 제빵을 하는 지인과 사람들을 초대해 햇밀빵을 함께 맛보았어요. 제주도에서는 집에 있는 텃밭을 ‘우영팟’이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워크숍 이름이 ‘우영빵식탁’이었죠.
제주 향토 음식 중에 메밀로 만드는 ‘빙떡’이라는 게 있어요. 제주에 ‘자청비’라는 신화가 있는데, 자청비는 옥황상제에게 온갖 곡식의 씨앗을 얻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농업의 여신이죠. 이때 자청비가 메밀 씨를 깜빡 잊고 안 가져 와 다시 올라가 받아와서,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배우님이 자청비의 모노 연극을 올리고, 빙떡 100개를 말아 토종 메밀 씨앗을 오감으로 경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죠. 빙떡 100개 말기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토종텃밭에서 워크숍 Ⓒ강나루
함께하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또 한 번, 고민의 지점이 왔죠. 씨앗 매개자가 되기로 했지만, 1부터 100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더 많은 이들과 토종 씨앗의 의미와 가치를 나누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느슨한 연대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곳. ‘씨앗바람연구소’에요. 올해 식목일, 4월 5일 건물 뒤에 작은 향나무를 심으면서 제 나름의 개소식을 했어요. 말이 개소식이지, 이후에도 3주가량 셀프 공사가 이어졌지만요.(웃음)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곳. ‘씨앗바람연구소’에요. Ⓒ탐방
토종 씨앗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와 닿았던 지점은 공동체예요. 사실, 씨앗은 원래 마을의 공유 자원이었어요. 한 집에서 씨앗을 독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껏 잘 거두었던 작물이 갑자기 농사가 잘 안될 수도 있거든요. 그럼, 씨를 잃어버리죠. 그래서 예로부터 씨앗을 주변에 많이 나누었던 거예요. 그럼, 이 집에서 나는 게 저 집으로 오고 또, 저 집에 나는 게 이 집으로 오는 거죠. 이렇게 토종 씨앗은 계속 이어져 왔어요. 그런데 농업의 현실도 많이 변했고, 제주만 해도 개발이나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주거의 형식도 변했죠. 자연스럽게 텃밭 문화, 씨앗이 일상에서 사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살고 있는 지역, 나의 바운더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씨앗을 키워서 토종 작물로 판매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작물을 먹고 소비하고, 이런 순환도 씨앗을 이어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씨앗바람연구소도 그런 활동의 연장선이고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도 해요. 혹시,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화학비료 사용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란 걸 아시나요? 전국대비 평균 4배 이상 높아,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예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소농들도 많거든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뜻이 맞는 제주 소농들이 함께 만든 공동체예요. 적어도 제초제와 화학비료와 화학 농약, 이 세 가지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죠. 외부 지원 없이, 매주 연 장터가 벌써 217번째네요(2023.07.22 기준).
나루님의 느슨한 연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강나루
시골언니 프로젝트도 또 다른 공동체가 되고, 전환의 씨앗이 될거라 생각해요.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삶의 터전이 바뀌었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앞서 먼저 경험했던 언니들을 통해서 힌트를 얻어갈 수 있는 경험이요. 실제로, 제주 시골언니 프로젝트에서는 저 말고도 정말 다양한 일과 삶을 살고 있는 언니들이 많거든요. 제주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언니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각자 삶 속에 작은 씨앗을 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각자 삶 속에 작은 씨앗을 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탐방
나루님에게 <일상의 씨앗들> 책을 선물 받았어요. 서울로 돌아와 펼친 책 속에는 나루님과 토종 씨앗의 이야기가 가득했죠. 나루님의 말처럼, 씨앗과 대화하며 보낸 6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저도 토종 씨앗과 한 걸음 가까워졌음을 느꼈습니다. 씨앗 매개자 나루님의 매직이었죠.
생각해보면 경험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일상의 작은 경험은 흥미와 관심으로 이어지고, 변화와 성장까지 만들어 내니까요. 작은 씨앗처럼 말이죠. 거대한 목표와 꿈을 바라보기보단, 작은 경험의 횟수를 늘려보는 건 어떨까요? 훌륭한 씨앗이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도 몰라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탐방이 추천하는 시골언니프로젝트
제주도 | 강나루 (씨앗바람연구소)
인터뷰 ep.45
얼마 전, 주말 텃밭을 시작한 친구가 직접 수확한 쌈 채소를 가득 쥐여줬어요. 푸짐하게 먹으며 텃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작은 모종을 사서, 심었는데 이렇게 잘 자랐다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어요. 그러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대화가 멈췄습니다.
“근데, 모종은 누가 키워? 씨앗도 사는 건가?”
“응?! 씨앗을 팔긴 하는데… 농부님들이 씨앗도 생산하지 않을까?” - 검색 중 -
“글로벌 10개 기업이 세계 씨앗의 75%를 점유한다는데?!”
“그럼, 우리가 먹는 건 외국산인 거야?”
알고 보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씨앗은 종자회사로부터 상품화된 씨앗이고 그와 반대되는, 우리 땅과 풍토에 적응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토종 씨앗’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죠.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다, 실태조사를 한다는 등의 이야기뿐이에요. 일반인이 토종 씨앗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방법은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주인공을 통해 토종 씨앗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에서 씨앗 매개자, 강누리님을 만났어요.
토종 씨앗을 매개로 유무형의 씨앗을 이어가는 씨앗 매개자입니다.
‘씨앗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창직*을 했어요. 요즘은 누구나 다들 N잡러의 삶을 살잖아요. 특히나 시골에서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죠.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거나, 혹은 전형적인 직업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그 상대를 모호해하거나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지어버리잖아요.
저 역시, 딱 떨어지게 답하지 못 했어요. 우리 시대에 토종씨앗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그 다양한 일은 모두 토종 씨앗에서 이어지고 파생된 것이라, ‘씨앗 매개자’가 떠올랐죠. 그때부터 씨앗 매개자라고 명함도 만들고, 저를 소개하고 있어요.
* 창직 : 자기 주도적으로 기존에 없는 직업이나 직종을 만드는 활동
‘씨앗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창직을 했어요. Ⓒ탐방
조소를 전공한 뒤, 생명에너지를 주제로 한 작업을 해왔어요. 그러던 중 공공미술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7년도에 행정중심복합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종촌…가슴에 품다’의 집행위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도시 개발로 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들을 위로하는 예술 프로젝트였죠. 예술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몸소 경험하고, 조금 눈을 뜨게 된 기회였어요. 그전까지는 예술의 언어로만 표현했다면 나의 작업을 좀 더 넓게 표현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꺼졌달까요?
그때쯤,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갔던 것 같아요. ‘나는 돈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구나.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큰 행복을 느끼는구나.’ 이런 식으로요. 20대 중후반, 도시에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은 최대치로 해봤던 것 같아요.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생각에 미국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돈도 벌어보기도 했고, 공공예술의 영역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나 행복한가?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가?’
삶의 터전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2011년, 제주에 처음 왔어요. 당시에는 완전히 제주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3년을 도시와 섬을 오가면서 지냈죠. 펜션 사장님께 부탁해서, 조금 저렴하게 장기로 대여하는 방식으로요. 지금 생각해보면,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꼭 필요했던 과정같아요. ‘연고도 없는 이 섬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지만요.(웃음)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가? Ⓒ탐방
2014년 여름, 옥상 영화제에서 ‘다큐 자연농’이라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 공유하는 중간 상영회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알았죠.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리고 그들이 하는 농업을 자연농이라고 부르는구나. 그날 밤이 저에게 큰 전환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신이 섰죠. ‘그냥 내려가도 되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 지점에 집중하자.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되겠다.’ 그렇게 진정한 제주살이가 시작됐어요.
그냥 씨앗과 소통하려 했달까요?
제주에 내려와 어떤 일을 꼭 해야겠다는 계획이나 바람은 없었어요. 정말 단순하게 제주라는 곳에서,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노지 밭을 일궈보았어요. 도시에서도 화분이나 한 평 텃밭을 가꾸고,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에 관심이 많았었거든요. 시골로 내려왔으니, 노지로 텃밭이 이동한 거죠. 처음에는 오일장에서 모종을 사서 심고, 도시에서 해왔던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어요.
제주에는 채집의 계절도 있잖아요. 오름으로, 바다로 다니며 채집했죠. 내가 심지 않아도 자연에서 저절로 나서 거두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자연의 풍요로움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농사와 채집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토종씨앗에 관심은 커져가더라고요. 이 땅에서 난 씨앗이니까요. 이런 저를 보고 지인이 ‘토종 추수 앞마당’이라는 행사를 추천해주었어요. 제주 여성농민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여기서 다양한 토종 씨앗을 알게 되었고 나눔 받게 되었죠.
그전까지 저에게 토종 씨앗은 다큐나 책에서 본,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대상이었어요. 할머니들의 보물 혹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소중한 씨앗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토종 씨앗을 받아 직접 심어보고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경험을 쌓아가니 다르더라고요. 더이상 나와 먼, 책에만 있는 대상이 아니었죠. 매일 함께 생활하는 일상의 친구였어요. 농사를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어요. 그냥 씨앗과 소통하려 했달까요? (웃음)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건 뭘까? 뭘 해주면 좋겠니?’ 이렇게, 정말 친구처럼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도구나 장치를 이용하지 않았어요. 정말 호미, 골갱이만 가지고 밭을 가꿨죠. 그렇다고 굳이 자연농의 방식이라고 강조하진 않았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시도했던 거죠. 밭에서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씨앗을 심는 파종부터 다시 거두는 채종까지 1년의 과정을 오롯이 경험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작가들이 작업할 때 24시간 붓을 놓지 않는다고 말하잖아요. 그 마음으로 밭에 머물렀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500평에, 수십 종의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외부에도 알려지고 토종 씨앗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밭에서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탐방
사실, 밭에서 1년, 2년, 3년, 4년. 시간이 지나가면서 마음 속에 해소되지 않는 뭔가가 피어났었어요. 밭에서는 너무 행복하고 충만했지만, 뒤돌아서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알고보니, 저는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다시 표현해야하는, 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때, 그동안의 시간을 한 번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2014년부터 6년간 기록한 짧은 글, 사진을 엮어서 <일상의 씨앗들>이라는 독립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지역의 토종 종자 실태조사를 다니기도 했어요. 홀로 농사를 짓다가 우리 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시작한 거죠. 그 와중에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깨닫기도 했고, 그건 다시금 토종 씨앗의 농사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0년만에 개인전을 다시 열었어요.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이었죠. 이전에는 나의 느낌을 오브제로 만들기 위해 흙을 만졌다면, 지금은 제주에서 흙과 함께 살아 있는 조각을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사유하고 조망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적어도 나의 텃밭 안에서는 내가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그 단상들을 설치적인 방식이나 영상이라는 도구를 빌려 전시를 했죠. 하고싶은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하는 게 저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한번 표현하고 나니, 용기가 나더라고요. 밭에서의 일상에, 토종 씨앗을 알리고, 나누고, 표현하는 다양한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씨앗 매개자가 되기로 한 거죠.
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더라고요. Ⓒ탐방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텃밭에, 토종 앉은키밀을 심었던 이듬해에는 텃밭에서 제빵을 하는 지인과 사람들을 초대해 햇밀빵을 함께 맛보았어요. 제주도에서는 집에 있는 텃밭을 ‘우영팟’이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워크숍 이름이 ‘우영빵식탁’이었죠.
제주 향토 음식 중에 메밀로 만드는 ‘빙떡’이라는 게 있어요. 제주에 ‘자청비’라는 신화가 있는데, 자청비는 옥황상제에게 온갖 곡식의 씨앗을 얻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농업의 여신이죠. 이때 자청비가 메밀 씨를 깜빡 잊고 안 가져 와 다시 올라가 받아와서,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배우님이 자청비의 모노 연극을 올리고, 빙떡 100개를 말아 토종 메밀 씨앗을 오감으로 경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죠. 빙떡 100개 말기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토종텃밭에서 워크숍 Ⓒ강나루
함께하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또 한 번, 고민의 지점이 왔죠. 씨앗 매개자가 되기로 했지만, 1부터 100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더 많은 이들과 토종 씨앗의 의미와 가치를 나누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느슨한 연대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곳. ‘씨앗바람연구소’에요. 올해 식목일, 4월 5일 건물 뒤에 작은 향나무를 심으면서 제 나름의 개소식을 했어요. 말이 개소식이지, 이후에도 3주가량 셀프 공사가 이어졌지만요.(웃음)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곳. ‘씨앗바람연구소’에요. Ⓒ탐방
토종 씨앗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와 닿았던 지점은 공동체예요. 사실, 씨앗은 원래 마을의 공유 자원이었어요. 한 집에서 씨앗을 독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껏 잘 거두었던 작물이 갑자기 농사가 잘 안될 수도 있거든요. 그럼, 씨를 잃어버리죠. 그래서 예로부터 씨앗을 주변에 많이 나누었던 거예요. 그럼, 이 집에서 나는 게 저 집으로 오고 또, 저 집에 나는 게 이 집으로 오는 거죠. 이렇게 토종 씨앗은 계속 이어져 왔어요. 그런데 농업의 현실도 많이 변했고, 제주만 해도 개발이나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주거의 형식도 변했죠. 자연스럽게 텃밭 문화, 씨앗이 일상에서 사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살고 있는 지역, 나의 바운더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씨앗을 키워서 토종 작물로 판매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작물을 먹고 소비하고, 이런 순환도 씨앗을 이어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씨앗바람연구소도 그런 활동의 연장선이고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도 해요. 혹시,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화학비료 사용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란 걸 아시나요? 전국대비 평균 4배 이상 높아,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예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소농들도 많거든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뜻이 맞는 제주 소농들이 함께 만든 공동체예요. 적어도 제초제와 화학비료와 화학 농약, 이 세 가지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죠. 외부 지원 없이, 매주 연 장터가 벌써 217번째네요(2023.07.22 기준).
나루님의 느슨한 연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강나루
시골언니 프로젝트도 또 다른 공동체가 되고, 전환의 씨앗이 될거라 생각해요.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삶의 터전이 바뀌었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앞서 먼저 경험했던 언니들을 통해서 힌트를 얻어갈 수 있는 경험이요. 실제로, 제주 시골언니 프로젝트에서는 저 말고도 정말 다양한 일과 삶을 살고 있는 언니들이 많거든요. 제주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언니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각자 삶 속에 작은 씨앗을 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각자 삶 속에 작은 씨앗을 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탐방
나루님에게 <일상의 씨앗들> 책을 선물 받았어요. 서울로 돌아와 펼친 책 속에는 나루님과 토종 씨앗의 이야기가 가득했죠. 나루님의 말처럼, 씨앗과 대화하며 보낸 6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저도 토종 씨앗과 한 걸음 가까워졌음을 느꼈습니다. 씨앗 매개자 나루님의 매직이었죠.
생각해보면 경험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일상의 작은 경험은 흥미와 관심으로 이어지고, 변화와 성장까지 만들어 내니까요. 작은 씨앗처럼 말이죠. 거대한 목표와 꿈을 바라보기보단, 작은 경험의 횟수를 늘려보는 건 어떨까요? 훌륭한 씨앗이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도 몰라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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