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어요.

울주군 |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인터뷰 ep.39  



울산광역시. 도시 속 시골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바로, 울주군이에요. 사실 울산광역시의 대부분의 면적은 울주군이죠. 울주군에서도 읍도 아닌, 상북면으로 향했습니다.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서 만난 소호마을. 푸르른 산세에 가슴이 뻥 뚫리네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이라는 작은 푯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오늘의 주인공인 시골언니 노진경님을 만났어요.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만난 소호마을 Ⓒ탐방


행복하려면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겠다.


귀촌한지 벌써 3년차예요. 울산 시내에서 쭉 자라왔지만, 참 산을 좋아하는 아이였죠. 학창시절에도 친구들과 석남사 계곡이나 작천정 계곡에서 체육복 바지에 구멍이 날 정도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서도 ‘내가 행복하려면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죠. 귀촌이나 귀농을 하겠다는 결심이라기 보다는 산 밑 어느 동네에서 사는게 맞겠다는 막연한 꿈이었던 것 같아요.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여기. 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의 언니들 덕분이예요.


예전에는 울산에서 귀촌귀농에 관한 교육에 몸을 담았어요.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현장교육 인솔자로 이곳에 오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죠. 울주의 언니들 그리고 자연이 너무 좋았어요. 인솔자로 왔지만, 어떤 참여자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간적으로 친해졌죠. 함께 막걸리, 밥도 함께 먹고, 버스를 놓치면 시내까지 태워주고, 집에서 재워주고. 정말 이 동네에서 안자본 집이 없을 정도로, 이 집 저 집 다 자본 것 같아요.(웃음)


그러던 중, 이곳 소호마을에서 아이들 숲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오를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산을 별나게 좋아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죠. “너는 산도 잘가고, 허벅지도 튼튼하고. 너가 한 번 해볼래?”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당시에는 숲도, 식생도, 밧줄 놀이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면서 숲 체험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새 귀촌을 하게 됐어요.


참 산을 좋아하는 아이였죠. Ⓒ탐방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참 재밌어요. 당시 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 돈을 많이 못 벌 것 같고, 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있었어요. 그리고 그 고민의 답은, ‘작게 써도 괜찮은 삶을 살자’였고 자연스레 ‘작은 집’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그런데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에서 작은 집 짓기 교육이 있는 거예요. ‘운명이다!’라고 생각했지만, 90만 원이 넘는 교육비에 좌절했어요.

“저, 돈 없는데요?”
“그럼, 네가 스텝으로 일하면서 해.”

하지만 결국, 작은 집 짓기는 교육생 미달로 무산됐죠.(웃음) 저는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의 교육팀장이 되었고요. 나중에 작은 집 짓기 교육을 듣긴 했어요. 어머님도 함께 수강하셔서 지금은 두 분이 이곳 울주군 상북면에 작은 농막을 스스로 짓고 5도2촌 생활을 즐기고 계세요. 온 가족이 귀촌한 셈이죠.



동네 친구가 참 많아졌어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어요. 분명히 고충도 있지만 도시에서의 제 삶 보다 평균 점수가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꿈꾸던 자연 속에서 살게 된 것도 그렇지만, 관계에 대한 만족이 참 큰 것 같아요.

도시에서 살 때, 저는 평생 같은 동네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학창 시절 친구들이 대학을 기점으로 이미 타지로 가버리니, 길에서 인사할 일은 전무했죠. 그런데, 이곳에 오니 달라요. 사람 수는 적은데, 오히려 관계가 늘어난 느낌이에요. 제가 파워 ‘E’거든요. 사람들을 만나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인데 딱 맞는 삶이에요.

동네에 친구가 참 많아요. 나이를 넘어선 친구들이죠. 여기 있는 영순언니도 저와 딱 20살 차이가 나요. 그런데도 정말 격 없이 서로를 대하는 것 같아요. 언니들의 남편들도 모두 제 친구고요.(웃음)


나이를 넘어 선 친구들이죠. (진경님과 뿌리언니 영순님) Ⓒ탐방


비슷한 또래와 함께하는 모임도 있어요. ‘청높’이라는 단체인데, ‘청년이 놀아야 마을이 높아진다.’라는 생각으로 다 같이 술 먹다가 만들었어요.(웃음) 자활센터 예산으로 울주에 정주하고 싶은 청년들이 노동에 구애받지 않고 5개월 동안 마음껏 지역을 탐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5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주민들 인터뷰도 하고, 지역에 관한 조사도 해보고, 공부도 하고요. 그렇게 5개월이 흐르고 나니, 함께 한 에너지가 흩어지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만든 게 ‘청높’이었어요. 그냥 놀면 분명히 흐지부지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작은 프로젝트로라도 우리를 엮기로 했죠. 처음에는 400만 원, 적은 예산의 마을공동체 사업부터 도전하면서요. 청높은 꾸준히 공동체와 청년, 청소년에 관한 일을 해오고 있고 지금은 비영리 임의단체가 되었어요. 멤버들은 새로 들어오기도, 다시 도시로 나가기도 하죠. 하지만 청높 활동을 하면서 시골 마을에서 청년, 그리고 청년의 놀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일례로, 요 동네에 술을 참 좋아하는 청년이 한 명 있었어요. 근데, 동네에 같이 놀 만한 친구가 없는 거예요. 매일 읍내로 나가 놀더군요. 술을 먹었으니, 택시를 탈 수밖에 없죠. 어느 날은 그동안 쓴 왕복 택시비를 계산해 보더니, 읍내에 월세를 얻어 가버리더군요. 월세가 택시비보다 저렴했던 거죠.(웃음) 기존에 있는 청년, 또 새롭게 들어올 청년들이 시골 마을에 머물기 위해서는 놀거리, 함께 놀 친구가 정말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청높에서는 함께 노는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저 저번 주에도 청높 모임이 있었는데, 17명이 왔어요. 요즘에도 길거리에 젊은이만 보이면 다가가죠. “어디 사세요? 같이 놀래요?” 하고요. 마치 ‘도를 아십니까?’ 같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랍니다.(웃음)


“어디사세요? 같이 놀래요?” Ⓒ탐방



뿌리언니와 새싹언니 사이, 줄기언니랍니다.


현재 직업은 땡땡마을(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이라고 하는 교육공동체의 마을교사예요. 이제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은 친구이자 협력자로 함께 하고 있어요. 이번에 진행할 시골언니프로젝트도 함께 할 거예요. 앞서 말한 대로, 저의 귀촌은 여기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의 언니들 덕분이었죠. 언니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시골에 살아가는 의미와 방법을 알게 되었고 또 자연스럽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었고요. 시골언니프로젝트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도시 청년들에게 같이 있으면 좋은, 재미난 시골언니가 되고 싶어요.


시골언니프로젝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청년여성 농업농촌 탐색교육’ 사업이에요. 농업과 농촌을 접할 기회가 적은 청년여성들을 위해 농촌지역을 경험하고 사회관계망을 구축할 기회를 제공하죠. 작년에 처음 시행한 시골언니프로젝트가 올해도 돌아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12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골언니프로젝트를 운영합니다.


재미난 시골언니가 되고 싶어요. Ⓒ탐방


올해 울주의 시골언니프로젝트가 새로운 건, 세 부류의 시골언니인 것 같아요. 저에게 시골을 보여준 언니들이자 귀촌 10년 차 이상의 ‘뿌리언니’와 귀촌하여 자기만의 일과 삶을 꾸리고 있는 ‘줄기언니’, 작년 시골언니프로젝트로 정착한 6개월 차 ‘새싹언니’죠. 저는 뿌리언니와 새싹언니 사이, 줄기언니랍니다.(웃음)


다양한 세대와 경험을 가진 언니들이 많다는 게 울주 시골언니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나누어 진행해 보자는 아이디어는 뿌리언니들이 제안했거든요. 실제로 시골에 정착하면서 만나야 할 친구들은 바로 줄기언니와 새싹언니들이라면서요. 줄기언니로서 부담과 걱정이 있긴하지만, 함께하는 언니들을 믿기 때문에 기대되는 마음이 더욱 커요. 작년 시골언니프로젝트로 생각지 못하게 3명의 새싹언니가 소호마을에 정착하면서 또래 친구들이 많아진 즐거운 경험도 한몫했고요.


시골언니들은 프로젝트가 끝나갈 시점, 시골에 머물고 싶다는 참가자들과 따로 대화했죠. 그리고 언니들은 이들에게 3개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정말 시골살이가 좋은지 판단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지낸 4명의 청년 중 3명이 소호마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곧 시작될 시골언니프로젝트가 너무 기대돼요. ‘몇 명을 정착시키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 시골 마을에서 함께 즐겁게 놀 친구들이 생겨나서요. 또 별것 아니지만 먼저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보람차고요. 탐방 인터뷰의 독자분들 중에서도, 울주에서 저와 함께 신나게 놀아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함께해요.


저와 함께 신나게 놀아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함께해요. Ⓒ탐방



울주의 소호마을은 참 포근했어요. 푸르른 산자락 사이 자그만 마을의 풍경도 그랬지만, 진경님과 친구들의 따스한 미소가 기억이 남아요. 대화 와중에도, 마을의 여러 언니와 동생들이 다녀가셨어요. 낯선 탐방의 존재에 살짝 당황하시기도 했지만, 어느새 활짝 웃어주시면서 함께 대화했죠. 진경님의 말처럼, 나이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어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반겨주었답니다. 

도시에 있다 보면, 관계 맺기를 점점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파트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마주쳐도 눈을 피하기 일쑤니까요. 다시금 사람간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분, 그동안 소통에 아쉬움을 느꼈던 탐방러라면, 울주로 향해보세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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