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게 하나도 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경상북도 상주 | 박은정 (좋아하는서점)

  인터뷰 ep.33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에 갔어요. 테이블 한편에 ‘책지도’가 비치되어 있더군요. 공공도서관 64곳, 작은 도서관 319곳 그리고 동네서점 94곳. 도서관은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동네서점이 94곳이라니! 가본 곳을 하나둘 세어봤는데 10곳도 채 안 되네요. 그런데 공간의 개수보단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아직까진 마음 편히 방문할 수 있는 서점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탐방러님은 어떤가요?

오늘의 주인공 은정님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상주에 마음 편히 방문할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은정님은 직접(!) 공간을 열었어요. 딱 100일간만 운영하는 팝업 서점으로요. 이곳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설 속 이야기 같은 은정님의 삶을 지금 소개할게요.


상주, 좋아하는서점 Ⓒ탐방


귀촌 아니고 이직


2019년, 일을 찾아 상주에 왔어요. 서울 청년들에게 경북지역의 일자리를 지원해 주는 ‘청정경북 프로젝트*’에 참여했거든요. 여러 일 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골랐고, 그게 상주에 있는 회사였죠.

*청정경북 프로젝트 : 서울시와 경상북도가 협업한 프로젝트. 일자리를 구하는 서울 청년들이 6개월 동안 경북지역에 살면서 경북 도내 5개 시군(안동, 청송, 예천, 문경, 상주)에 위치한 회사에 근무함으로써 청년과 지역 모두를 동시에 성장하게 하는 걸 목표로 한다. 현재는 종료된 사업.


서울에서는 더 이상 뭔가를 찾고 싶지 않았어요. 고향인데 어느새 헷갈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 되었더라고요. 부대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유를 하나로 딱 꼬집을 순 없어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10여 년 넘게 했더니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몰랐달까요?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또 서울을 떠나 강원도에 정착한 친구의 삶이나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요. 사는 곳을 바꿔봐야겠더라고요.


다만 상주에 가게 된 건 귀촌이 아니라 이직의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기간이 6개월로 한정되어 있고 월급도 준다니까요. 원래도 이직을 많이 하는 편이었으니 부담 없이 가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겁은 많은 편이라 ‘안 되면 돌아오면 돼!’라는 말을 되뇌면서 상주에 왔어요(웃음). 그렇게 6개월간 협동조합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게 되었죠.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탐방


상주에 온 사람들은 절 포함해 총 7명. 그중 6명은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갔어요. 전 바로 선택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당장 결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 반,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 반. 결정을 유보하기 위해 동일한 프로젝트에 다시 지원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도시와 똑같은 형태의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서울에서 하던 일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출퇴근하면서 회사에 다니는 건 같았거든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전에는 지역에서 살아도 괜찮을지 고민했다면, 이젠 어떤 일을 해야 상주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살겠다는 결정은 했으니 먹고살 걱정을 하게 된 거예요.(웃음)



100일간 운영하는 팝업 서점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제 뒤를 따라 나오시더라고요. 잠깐 할 얘기가  있다면서요. “안 쓰는 공간이 있는데,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사용해 보실래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시도해보세요!” 난데없는 제안이었지만 거절하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뭘 해도 한번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죠.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걸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상주에 살면서 채워지지 않는 게 하나 있었어요. 편히 들를 수 있는 서점이 없다는 것. 상주가 시(市)니까 나름대로 있을 법도 한데 말이죠. 서점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게 내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실은 저에게 필요한 공간이었던 거죠.(웃음) 계약이 5개월 남았으니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3개월 정도 운영할 수 있겠더군요. 그렇게 100일 동안 운영하는 팝업 서점을 열기로 했어요.


짧은 기간 동안 운영하는 거니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공간을 꾸몄어요. 두근대는 마음으로 준비했죠. 그런데 서점을 연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많이 홍보하지 않았는데도요. 게다가 저와 같은 마음으로 서점이 열기만을 기다린 주민분들도 계셨죠. 아무래도 좁기 때문에 새롭게 생기는 게 금방 소문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팝업 서점을 연 첫날, 정말 떨리고 설렜어요. 다행히 서점이 생긴 걸 반가워해 주시는 분이 많았답니다. “이게 되는 거구나. 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안도했어요. 누가 와주신다는 것 자체로도 감사했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죠.


100일간 운영하는 팝업 서점 Ⓒ좋아하는서점


팝업 서점은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청정경북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상주에 살려면 일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결과가 있어야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전혀 없었어요. 사업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그래서 그냥 제 감정에 따르기로 했어요. 막상 해보면 안 맞는 일일 수도, 제가 자영업 자체를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100일간 했던 모든 일이 좋았어요. 공간을 지키는 것, 책을 고르는 것, 고객을 응대하는 것. 기간이 짧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서점에서 하는 일 중 싫은 게 정말 하나도 없었죠. 반대로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훨씬 폭발적으로 기뻤던 일, 훨씬 많은 돈을 번 일, 훨씬 큰 성취를 이룬 일도 있었죠. 하지만 그 일들에는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요소가 있었거든요. 반면 서점 일은 싫은 게 전혀 없더라고요.


서점의 모든 일이 좋았어요. Ⓒ좋아하는서점


100일간의 경험을 정리한 글로 로컬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100만 원의 상금도 받았죠. 그걸로 연세(年貰)를 냈어요. 공간의 보증금이 100만 원, 연세가 10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돈이 생겼으니 1년은 더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연장한 거죠.


서점을 하고 난 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죠. 나 좋으려고 하는 거고, 나 좋을 대로 하고 싶었거든요. 고맙다는 말을 자꾸 들으면 맞춰줘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워하지 않기를 바랐죠. 그래서 정색하면서 “아니에요. 고마운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 같아도 고마웠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저 제 일을 하는 거지만 누군가에겐 책을 편히 구매할 수 있는 곳, 모임을 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이니까요. 또, 학교에서도 책을 구매해 주세요. 큰 서점에서 거래하던 걸 저희한테서 구매하시는 거예요. 잘 됐으면, 계속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고마운 마음들이 서점을 유지해 주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이 안정적이에요.


동네 한 가운데에 서점이 있었어요.** 간판이 없었기 때문에 문 열었다는 걸 의자를 내놓는 걸로 표현했죠. 그랬더니 어르신들이 잠깐 쉴 겸 의자에 앉았다 가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시기도, 들어와서 구경하시기도 했죠. 사실 처음엔 정말 낯설었어요. 개인적인 성향이라 서점이 제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손님이 불쑥불쑥 들어와 불편한 질문을 하시는 건 영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 동네 한 가운데에 있던 좋아하는서점은 다른 곳으로 이사해 새로운 공간을 열었어요. 주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북천로 71 2층.


어느 날은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어떤 분이 들어왔어요.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당시에는 당황한 티를 많이 냈죠.(웃음) 그분이 최근 제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에 참석하셨어요. 예전 이야기를 꺼내면서 지금까지 운영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날 저를 보고 생각하셨대요. ‘서점 생겨서 좋았는데, 저렇게 숫기가 없고 쑥스러워하니 오래는 못 하겠네’ 하고요. 근데 오래 운영해줘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며 반가워하셨죠. 민망하면서도 감사했어요. 서점을 연 지 2년이 넘어가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상주에 익숙해지는 건지, 자영업에 익숙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요.(웃음)


1시부터 4시, 좋아하는서점이 가장 예쁜 시간 Ⓒ탐방


서울에서 회사 다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상주로 오신 분과 최근에 이야기를 나눴어요. 자신은 나이가 많아 안정 추구를 위해 공무원을 선택해 상주에 온 건데, 저는 나이가 있는데도 도전하는 게 대단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전 오히려 지금이 안정적이에요. 저는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해지지 않은 게 훨씬 불안정하게 느껴져요.


되돌아보니 서울에서 불안정했던 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그려지지 않아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그런데 상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모양으로 살다 보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편안함이 느껴지고요. 사실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서울에서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불안정한 삶을 살 것이 걱정돼서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사람마다 안정에 대한 기준은 다르니까요!


좋아하는서점의 은정님 Ⓒ탐방



은정님은 100일 서점의 공간을 제안한 단골 카페 사장님에게 물었대요.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아무리 단골이고 친하다고 해도 안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사람에게 공간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아직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짐작 간대요. 떠나는 걸 많이 경험하다 보니 사람이 귀하다는 것. 그렇기에 좋은 이웃이 오면 그 사람이 오래 남아주길 바라는 거죠.

로컬에선 ‘연결’을 많이 느껴요. 서로 잘 알고 있고 인연이 닿아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은정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 답을 찾은 것 같아요. 떠나보내는 경험이 많으니 돌아오거나 남는 이들을 더 소중하고 다정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열심히 잘 살아주는 모습을 보며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고요.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삶이라니, 왠지 청춘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요. 청춘영화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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