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상주를 그리고 있어요.

경상북도 상주 | 조우리 (라킷키)

  인터뷰 ep.32  



오래전부터 지켜보던 분이 있어요. 라킷키, 경상북도 상주에 살아가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죠. 그림을 보다 보니 상주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피어났어요.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런 따뜻한 색감의 그림들이 나올까요?


경북 상주. 곶감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낯선 지역입니다. 잘 모르는 곳이라 마음이 끌렸어요. 물론,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사심도 있었지만요. 상주에 도착했어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탐방은 기웃대며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화면으로만 봤던 그림들이 놓여있는 걸 보니 왠지 신기한데요? 그림을 구경하며 기다리던 그때. 라킷키, 우리님이 밝은 얼굴로 반겨주시네요.


라킷키 우리님의 작업실 Ⓒ탐방



그래, 상주로 하자.


남편이 갑자기 귀농하자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전 완전 서울 사람이거든요. 온 가족이 서울에 살았고, 대학교까지 서울에서 나왔죠. 할머니도 서울에서 살았으니 말 다 했죠? 그런 제게 귀농은 딴 세상 이야기 같았어요. 제가 귀농은 싫다며 강하게 반대하니, 남편 혼자 여기저기를 다니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꾸만 멋진 사진을 찍어서 저한테 보내는 거예요. “아무리 사진을 보내도 흔들리지 않을 거야.”라고 단호히 이야기했죠.(웃음)


어느 날은 퇴근하고 왔더니 밥을 차려주면서 <살어리랏다>라는 프로그램을 틀어주더라고요. “너는 지금 회사 다녀와서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상했는데, 저 사람들은 웃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요. “이제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는구나?” 핀잔을 줬지만, 사실 마음은 흔들렸어요.


서울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힘들었거든요. 회사 일도 점점 지쳐갔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TV를 보면서 반했던 곳은 강원도 홍천이에요. 서울과 가깝고 무엇보다 외지인이 많은 커뮤니티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지역 사람들만 있는 것보단 적응하기 수월하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남편이 홍천, 완주, 남해처럼 귀농을 많이 하고 커뮤니티도 잘 되어 있는 곳들을 몇 군데 골라 놓으면 3박 4일 정도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중에 상주가 있었죠.


가을이었어요. 상주의 들판은 초록이 없고 모두 금색이더라고요. 마치 천국 같았어요. 제 땅이 아닌데도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 또, 바람에서는 단내가 나더라고요. 과수원에서 불어오는 향기였죠. 그 향기를 맡는데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서울 촌뜨기라 이런 자연을 처음 느낀 거예요. 그때 결정했어요. “그래, 상주로 하자.”


2018년 가을의 상주 Ⓒ라킷키


내려올 때마다 짧으면 5일, 길면 일주일 동안 모텔에 묵었어요. 그리고 상주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집을 보러 다녔죠. 나중엔 소문이 나더라고요. 서울에서 온 부부가 상주에서 집 사러 돌아다닌다고요. 처음엔 시골집을 알아봤어요. 귀촌인이면 누구나 그렇듯 시골집에 사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가격도 저렴하고요. 그런데 매물이 없었죠. 있더라도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어 편하게 생활하기 어려운 곳이거나 대형 축사 근처였고요.


집을 어렵게 구하고 있으니, 먼저 상주에 귀촌한 선배들이 “우리 씨, 왜 그렇게까지 시골에서 살려고 그래.”라는 말을 건네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처음 서울을 떠나왔는데 구하기도 살기도 벅찬 집을 찾고 있더라고요. 첫 시작은 아파트가 안전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도 시내 아파트에 살기엔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도시와 똑같이 대형마트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진 않았고요.(웃음) 그렇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에서 1년 정도 살았어요. 그리고 이젠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해 상가주택에 정착해 살고 있답니다.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였어요. 서울에선 그저 수많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죠. 그런데 지역에선 다르더라고요. 능력자라며 치켜세워주기도 하고 다양한 일을 추천해주시기도 하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상주에는 화장품 회사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였는데 화장품 회사가 없으니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너무 단순한가요?(웃음) 그만큼 상주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아요.


상주 특산품을 활용해서 ‘감 마스크팩’을 만들게 됐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펀딩에서는 리워드*가 중요하기 때문에 엽서를 만들었죠. 그런데 화장품 말고 엽서만 구입할 수 없겠냐는 문의가 많이 오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막 시작한 1인 기업의 화장품을 피부에 사용하는 건 저라도 부담스러울 것 같더군요. 반면 엽서는 그런 부담 없이 그림만 마음에 들면 되는 거죠. “그런데,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약간 충격이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그림이 업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고 하지도 않았거든요.

*리워드(reward) : 크라우드펀딩에서 후원금의 대가로 받는 상품. 크라우드펀딩에서는 주 상품 외에도 사은품과 같은 부가 상품의 질과 양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라킷키 감 마스크팩과 리워드 엽서 Ⓒ라킷키


상주가 또 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준 순간이었어요. 상주에서 상주를 그린 제 그림을 사람들이 원한다니. 행복하게 그려나갔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라킷키는 화장품 회사가 아닌 일러스트 브랜드가 되었죠.


제 그림의 특징은 두 가지예요. 수평을 중시하고, 명암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 스스로도 항상 궁금했어요. 왜 자꾸만 그렇게 그려지는 걸까? 그러다 심리 상담으로 우연히 그 이유를 찾았죠. 전 불안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안전한 그림을 선호하고요. 그림자 없이 색감만을 표현해서 그림을 납작하게 보이게 하고, 수평이라는 요소를 사용해서 변화가 없는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싶은 거죠. 다시 말해, 저에게 그림은 치유였던 것 같아요. 그림을 보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불안함을 느낀다면 안전한 그림으로 안정되길요.


안정의 형태를 안전하게 그려요. Ⓒ라킷키


“라킷키 실제로 만나보니까 말 진짜 많더라!”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에요. 아무래도 차분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말이 없다는 이미지가 생긴 모양이에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웃음) 저에게 가장 두려운 말은 따로 있어요. “막상 가보니까 그렇게 여유롭게 안 살던데.” 제 삶과 성향 그리고 그림이 일치하기를 원하거든요. 어려운 일이지만 늘 그걸 바랐죠. 그래서 지금껏 그림이 마음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정말 많은 그림을 그려왔는데도요. 그림이 좋다는 칭찬을 받아도 전혀 와닿지 않았죠. 스스로를 인정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런 제게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생겼어요. 무화과 그림이죠. 어느 날 문득 과실나무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집 꽃가게 언니에게 부탁하자 곧 무화과 화분이 도착했죠. 그 무화과를 먹고 또 기르면서 그린 그림이에요. 지금 보면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땐 그림에 제 삶이 담겨 있다는 게 너무 좋고 마음에 들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고가의 액자로 제작하기도 했다니까요.(웃음) 처음으로 삶과 성향, 그림이 일치되는 경험이었거든요. 그림의 스킬이나 분위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죠. 지금도 삶과 성향, 그림이 같아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안정의 형태 같아요.


우리님의 마음에 들었던 첫 그림 Ⓒ탐방



떠나지 않고 잘 살면 그걸로 된 거야.


도시에서는 정착을 도와주거나 응원해주지 않아요. 하지만 지역에서는 절 환대해주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죠. 지자체뿐만 아니라 주민들도요. 그게 굉장히 파격적으로 느껴졌어요. 도시에선 먹고 살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는데, 상주에서는 도움을 주다니. 그 덕에 가속 페달을 밟듯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죠.


저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그런데 막상 사업자금을 지원받게 됐을 때는 두려움이 크게 밀려오더라고요. 사람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다른 사람의 정착에 쓰인다는 걸 모르잖아요. 나중에 그들이 제 정착의 결과를 보았을 때 열불나지 않도록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원금에 걸맞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렸달까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 경북도와 상주시의 지역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경북으로 주소를 옮겨 창업 및 창작 활동하는 청년에게 자금을 지원해준다.


가속 페달을 밟듯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죠. Ⓒ탐방


그런데 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말들을 듣게 됐어요.

“작가님 덕에 상주를 알게 됐어요.”
“네가 상주를 알리고 다니는 거야. 널 보니 나도 상주에서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상주가 고향인데 작가님 같은 분이 계시는 줄 몰랐어요. 제 고향도 많이 달라지고 발전하고 있나 봐요. 사시는 거 보면 제가 더 좋아요.”

상주를 떠나지 않고 잘 살면 그걸로 된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큰 결과를 이루는 게 아니라 상주에서 잘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상주에 처음 왔을 때의 잘 산다는 건 실패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거든요. 서울에서 실패해서 내려온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죠. 그래서 1년 동안은 상주 여기저기 다니며 지역살이에 대해 배우고 다녔어요. 원래 남의 말을 진짜 안 듣는 스타일인데도 참 신기하죠? 그렇게 상주에 정착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깨달았어요.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게 잘 사는 거구나.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응원이 될 수 있구나.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달까요?


상주에 온 지 5년 차가 된 저도 이젠 선배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웃음) 가끔 정착하는 데 이렇게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그건 이타심이나 특별한 마음이 아니라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예요. 결이 잘 맞고 나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기 때문에 손을 내미는 거죠. 아마, 저에게 아낌없이 조언해준 선배들의 마음도 그랬을 거로 생각해요. 같이 잘 살고 싶으니까요.


상주의 작가, 라킷키 조우리님 Ⓒ탐방



우리님과의 대화로 ‘잘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아니, 처음 생각해봤다는 게 맞겠네요. 사회적 명예, 원하는 것을 모두 살 수 있을 만큼의 재력,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인맥. 흔히 말하는 성공의 조건을 떠올렸지만 하나같이 ‘잘 살아감’을 충족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반면, 우리님이 상주에서 찾은 잘 살아가는 방법은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 참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탐방러들은 어떤가요? 지금 살고 있는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은가요? 혹시 떠나고 싶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질문에 답을 해나갈 때마다 ‘잘 살아감’에 대한 나만의 의미가 조금씩 뚜렷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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