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서 삶의 균형을 찾았어요.

인천광역시 강화 | 김나래 (희와래)

  인터뷰 ep.31  



강화의 철책길을 따라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 말하며 걷는 걸 상상했죠. 하지만 뜻밖의 말이 들렸어요. “말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걸을 거예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과연 가능할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말없이 걷다 보니 강화의 경관, 평소 잘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 나의 몸과 마음이 더 또렷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걷기 명상’이래요. 그런데 이 걷기 명상가분, 강화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네요. 언젠가 그 카페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 걸 상상하면서요.

강화 탐방을 계획하며 이분이 떠올랐어요.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 카페 이름이 희와래였다는 걸 더듬더듬 기억해냈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갔습니다. 점점 시골길로 가더니 어느새 논밭 사이로 저희를 이끄네요. “여기 맞아? 여기에 카페가 있다고?” 의심 가득 가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희와래. 오늘의 주인공 김나래님의 공간입니다.


희와래에서 만난 나래님 Ⓒ탐방


삶의 균형이 깨진 거죠.


저는 그림을, 남편은 조각을 해요. 예술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수익이 불규칙했죠. 카페는 그렇게 시작했어요. 우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로요. 둘 다 커피를 좋아했고 로스팅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가게 운영은 처음이니까 실험하듯이 가볍게 시작해보자 싶었어요. 카페 공간을 준비하면서 홍대나 문래동을 많이 떠올렸지만, 너무 본격적인 것 같아 부담스러웠죠. 가격도 그렇고요.(웃음) 그러다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자그마한 공간을 만나, 서울 목동에서 희와래 카페가 문을 열었어요.


주변에 입소문이 나면서 카페 일이 바빠졌어요. 카페 주변에 공공기관과 사무실들이 있었거든요. 단골도 생겨나면서 이제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연스레 본업을 놓게 되더라고요. 참 아이러니하죠. 본업을 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제 본업을 잡아먹는 상황이라니. 다시 말해 삶의 균형이 깨진 거죠. 그리고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잖아요. 뉴스에서만 보던 젠트리피케이션 당사자가 되기도 했고, 정말 별일이 다 있었어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고 초심도 잃어버린 것 같았죠.


목동에서의 희와래 ⒸHEEWARAE 희와래


희와래라는 카페를 시작하고 운영했던 5년을 돌아봤어요. 다시 생각나더군요. 왜 카페를 시작했는지요. 예술이라는 우리의 본업을 더 잘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즐기고 나누기 위해서라는 걸요. 두 가지 일의 균형을 맞출 순 없을까 고민했고 카페와 문화예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공간은 서울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도 함께요. 그때부터 우리가 새롭게 자리 잡을 지역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여기로 와야 할 것 같다.


큰 결심이었죠. 서울을 떠나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지금껏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처음에는 전북 완주군이 참 끌렸어요. 풍경은 너무 평온하고, 귀촌 커뮤니티도 잘 되어 있었죠. 하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걸 무시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전라도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반면 강화는 서울에 가깝지만 그만큼 비싸더라고요. 서울을 벗어나면 조금 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죠. 그런데도 영혼을 탈탈 털어 강화로 왔어요.(웃음) 서울에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 마음이 편안한 서울 촌뜨기인 거죠. 그렇게 강화에 온 지 벌써 3년이 넘었네요.


강화라는 지역을 잘 알지 못했어요. 관광 명소조차 잘 몰랐죠. 카페를 한다고 하니, 동막해수욕장이나 전등사, 마니산 같은 명소 주변을 추천하더라고요. 하지만 가격면에서 불가능하기도 했고 왠지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은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카페가 본업이 될 것만 같았어요. 우리가 꿈꾸는 건 카페보다는 문화 공간이니까요. 강화의 느긋한 동네를 찾아 나섰죠.


강화가 정말 아름다운 계절이었어요.  황금 논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죠. 추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니, 얼마나 멋있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가슴이 쿵쿵 뛸 정도였다니까요.(웃음) 또 한편으로는 평야가 제 마음에 안정을 주기도 했고요. 이런 논이 펼쳐진 곳의 땅이라니. 직감이 들었어요. ‘여기로 와야 할 것 같다.’


희와래 터를 처음 본 날 ⒸHEEWARAE 희와래



강화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첫해는 공간을 만들고 카페를 알리는 것에 집중했고, 두 번째 해부터 다양한 문화 활동을 시작했어요. 서울 같은 도시엔 문화를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잖아요. 그런데 강화에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오랫동안 요가를 해왔는데 강화에는 선생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2~3번 김포에 가서 요가를 배웠어요. 김포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의문이 들더라고요. ‘강화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요가하고 싶은 사람이 정말 나밖에 없다고? 분명 어딘가에는 숨어있지 않을까?’ 다시 열심히 찾아봤죠. 딱 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요가원을 운영하진 않지만 강화의 공공기관이나 외부에서 요가 수업을 하시는 분이었죠.


바로 연락을 했어요.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이자 이웃이 되었어요. 그리고 요가 클래스를 열었죠. 제가 좋아하는 요가를 희와래에서 하다니. 정말 행복했어요. 저 외에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셨어요. 동네 주민부터 단골 손님들, 희와래를 좋아하시는 분들. 젊은 청년부터 5060세대까지 나이도 다양했죠.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진행되는 희와래 ⒸHEEWARAE 희와래


카페에 포스터나 엽서를 비치해두고 주민들이 오면 참여해보라고 계속 말씀드렸어요. 그중 한 분이 기억나는데, 제가 요가 클래스를 추천하니 계속 주저하시더라고요. 평생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것에서 오는 박탈감 같은 것이 있으시다면서요.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이런 거 안 해봤다고 말씀하시길래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죠. 저도 시골살이가 처음인 것처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니까요. 그때 마음을 여시고 신청하셨어요. 그런데 결국 참여는 못 하셨답니다. 요가 클래스가 다가올수록 두려우셨던 거예요.


아쉬웠지만 직접 신청하시고 올까 말까 고민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참여하셨던 주민들은 요가라는 새로운 경험을 얻으셨고요. 작은 경험을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죠. 저는 서울에서도 어린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진행해왔거든요. 강화에서도 꼭 이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희와래 곳곳에 자리 잡은 나래님의 취향이 묻어난 소품들 Ⓒ탐방


먼저 강화도와 강화 친구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파악해야 했어요. 그래서 강화도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었죠. 여기저기에 홍보하면 어느 정도 신청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요.


어느 날 강화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요. 그때 딱 느꼈어요. 강화도에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정말 없구나. 읍내에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이 있긴 하지만 작가나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곳은 없었던 거죠.


아이들을 태운 봉고차가 희와래에 도착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 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왔죠.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을 줬어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마당에서 사색하거나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해방된 모습이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공간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걸요. 그동안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출강하러 갔었는데, 희와래에서 수업하는 건 효과가 다르더라고요. 어찌 보면 당연하죠. 틀에 짜여 있는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의 카페에서 문화예술을 마주하는 거니까요.


공간의 해방을 느끼며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아이들과 나래님 ⒸHEEWARAE 희와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걷기 명상은 일상이에요. 마음이 힘들었을 때 걷기 명상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았던 경험이 있거든요. 잠시라도 매일 하다 보니 마음속의 심지가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이런 저를 알고 강화에 온 분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해줄 수 있냐는 의뢰가 왔어요. 한 번도 아니고 주말마다 50회를 소화해야 했어요. 덜컥 겁부터 났죠. 무엇보다 제가 해도 되는 역할인지 고민했어요. 현실적으로도 카페 영업을 하면서 거의 6개월 간의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했고요. 그런 걱정과 근심에도 불구하고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왜냐면 제가 걷기 명상으로 얻은 것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묵언하며 걷는 과정에서 내 마음 깊숙한 감정과 이야기를 끌어내는 경험이요.


주말 아침마다 폭풍같이 일하고, 차를 타고 가서 걷기 명상을 하고, 또다시 빠르게 돌아왔어요. 아시다시피 주말 카페는 가장 바쁘잖아요.(웃음) 말도 안 되게 힘든 스케줄이었지만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어요.


걷기 명상을 진행하던 가을의 나래님 Ⓒ탐방


사실 저는 중장년층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어요. 우스갯소리로 ‘꼰대’일 것 같은 거죠.(웃음) 살아오면서 그들의 시각으로 저를 단정 짓는 시선도 많이 경험해왔었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50회 프로젝트의 참여자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더라고요. 시작하기 전부터 두려웠죠. ‘네가 뭔데 우리한테 이렇게 하라고 하니?’, ‘어디 한 번 얼마나 하는지 보자.’라고 하실까 괜스레 걱정만 늘어갔고요. 하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그날도 대부분 중장년 아버님, 어머님들과 함께 걸은 날이었어요. 걷기 명상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회고 시간을 가져요. 어떤 말씀을 하실까 약간은 겁을 먹은 채 소감을 물었죠.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말들을 듣게 됐어요.


“최근 걱정거리가 있는데 변한 것 없이 그 상태 그대로지만, 이 시간 만큼은 잠깐이지만 마음이 편했다. 걱정거리를 차분히 해결해야겠다고 기도하며 걸었다.”

“나의 발은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로지 내 발에만 집중했다. 불편했던 발인데 잘 걷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안심했다.”

“정말 오랜만에 푸르른 자연을 느끼며 걸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텅 빈 자연은 오랜만이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해치지 않아야 자연은 빛이 나는구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 그리고 잠깐이지만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말씀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울컥하기도 했죠. 프로그램이 끝나고 차로 가는 길에 바로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어요. 종종 꺼내서 보고 싶을 만큼 감동했거든요. 또 걷기 명상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깊고 넓은 생각을 하실 줄은 몰랐죠.


글귀를 보는데 참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들이 저를 단정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중장년층을 단정 지어 버렸던 거니까요. 그 누구에게든 마음을 열고 편견과 선입견 없이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 달라졌어요. 강화에 오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들이죠.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희와래의 나래님 Ⓒ탐방



서울에서 깨졌던 삶의 균형을 강화에서 다시 찾았다는 나래님. 일과 삶의 균형이라기보다는 일과 일 사이의 균형을요. N잡을 하고 있다면 본업과 부업의 균형을 잘 잡고 있나 생각해 보세요. 깨진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어쩌면 그 답은 로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여유로운 강화로 귀촌한 나래님처럼요.

나래님과의 만남을 끝으로 강화 탐방의 인터뷰는 막을 내렸어요. 강화에서 만난 세 명의 탐방러. 각자 하는 일은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도시를 떠나 강화에 살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해요. 그래서일까 다들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더라고요. 강화에 간다면 꼭 이들을 만나보세요. 시골 여행지로만 느껴지던 강화가 다르게 보일 거예요.


탐방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이곳은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쌀, 명주, 곶감이 유명한 곳이죠. 3월 13일, 또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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