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 정다솜, 김정아 (호호히)
인터뷰 ep.23
지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요.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저도 일상에서 텀블러와 손수건, 장바구니를 애용하고 있답니다. 나름대로 쓰레기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욕실에서 꽤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샴푸, 바디워시, 클렌징폼. 전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가 있었죠.
오늘의 탐방러, 다솜님과 정아님은 고체 바디용품으로 욕실 속의 플라스틱을 없애고 있어요. 거기다 제품의 원료는 로컬에서 찾아왔죠. 로컬의 생산물, 문화를 지키는 것도 지구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내가 사고 싶다면, 팔 수도 있겠다
다솜] 대학교 때 재능 기부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밴드 공연의 수익금을 백혈병 환우회에 기부하는 행사였죠.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멤버를 모집하기 위해 SNS에 글을 올렸는데, 그걸 정아님이 본 거죠. 그렇게 저희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장장 5년간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면서 저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정아님은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그저 친한 사이가 아니라 손발을 맞춰 본 사이였달까요? 물론 함께 회사를 운영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요.(웃음)
그렇게 저희 인연이 시작됐어요. Ⓒ탐방
다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 : 사회공헌)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사회과학을 전공했고 학창 시절부터 봉사 활동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고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사회적 가치와는 좀 멀어졌달까요? 말 그대로 ‘일’이었죠. 그러다 제가 딱 서른이 되던 해였어요. 이제는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업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브랜드를 원했죠. 소규모 회사에서 근무했던 터라, 화장품 마케팅 외에도 전략 기획, 회사 경영 등 뷰티 영역 전반을 경험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하우가 있는 화장품 브랜드를 기획했죠. 회사에 다니면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조금씩 창업을 준비했어요. 처음부터 정아님에게 함께 창업하자고 제안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사업계획서는 처음이었기에 친구에게 나의 아이디어가 어떤지 봐달라고 찾아간 거죠. 그런데, 정아님이 너무 좋은 것 같다며 함께 하고 싶다는 거예요.(웃음)
함께 일하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겠더라고요. Ⓒ탐방
정아] 그때가 입사한 지 1개월 정도 됐을 때였어요.(웃음)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에 취업했었거든요. 저는 저의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랐기에 도시를 공부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아주 거시적인 일을 다루더라고요. 제가 끼치는 긍정적인 변화를 전혀 체감할 수 없었달까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나에게 맞는 업이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면 평생 업으로 삼을 만한 영역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죠. 그때 다솜님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온 거예요.
다솜님의 프로젝트를 보니 이 일을 함께하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품이 만들어지면 ‘나도 사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고 싶다면, 팔 수도 있겠다.’ 이 생각으로 다솜님께 저도 껴달라고 했어요.(웃음)
나주에서 배가 아닌 '쪽'을 만났어요.
다솜] 처음에는 낙과나 못난이 농산물 같은 유휴 농산물을 원료로 화장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럼으로써 농가의 이득과 환경적 가치를 만들겠다는 거였죠. 그 아이디어로 여러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했는데, 매번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졌어요.(웃음) 그때 좌절보다는 퇴사를 결정했어요. 제대로 집중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쯤 지인이 ‘넥스트 로컬’이라는 서울시 지원 사업에 참여해보라며 공고 포스터를 보내주었죠.
넥스트 로컬에서는 지역을 먼저 선정해야 하는데, 저희는 나주를 택했어요. 최근에 제수 과일의 수요가 떨어지고, 수입 과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주 배가 공급량에 비해 수요가 줄어들어 버려지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또, 배를 화장품 성분으로 썼을 때 유효한 성분들이 추출된다는 연구 자료들도 봤었고요. 그렇게 나주에 내려가서 나주 배를 연구하시는 박사님부터 배 농가, 배 유통센터 등 나주에 있는 배 관련 관계자분들을 열심히 만나러 다녔어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지금은 배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단계가 아니더라고요. 그냥 피부에 유효한 성분이 있다는 연구 결과만 나온 상태였던 거예요. 그때가 정말 덥고 막막해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는데, 연락이 한 통 왔어요.
우연히 만난 나주의 로컬 자원, 쪽 Ⓒ호호히
다솜] 나주의 자원을 찾고 있는 청년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나주 곳곳에서 유휴 자원이나 스토리가 있는 자원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난 거죠. 그분은 나주 배보다 ‘나주 쪽’이 더 유명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역사가 굉장히 깊은 것은 물론 천연 염색 재단도 유일하게 나주에 있고, 무형문화재 선생님들도 나주에만 있을 정도라고요. 그동안 나주에서 쪽이라는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을 해왔지만, 마케팅이나 브랜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죠. 그렇게 든든한 파트너, 나주 천연염색문화재단을 만나게 됐어요.
쪽에 대해 공부를 하니 쪽 추출물이 두피나 피부 케어에 좋은 화장품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알려져야 재배도 계속되고 그 문화가 이어질 테니 자원을 위한 제품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심지어 재단에서는 액체 샴푸로 상품화했던 경험도 있었어요. 상용화를 했지만 결국 판매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최근 트렌드와 저희 생각에 맞는 쪽 제품은 무엇일지 치열하게 고민했죠. 그 결과가 바로 삼푸바예요.
나주 쪽으로 만든 샴푸바 Ⓒ탐방
다솜] 나주에서 지내며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들과 관계가 깊어졌어요. 그중 한 분이 장성에서 편백 숲을 하는 청년 농부가 있으니 만나보라며 소개해주셨죠. 장성에 가서 편백을 보니까 원료 퀄리티도 높고, 고품질 오일이 추출되더라고요. 원료가 추출되고 남은 가지만 만져도 굉장히 촉촉하고요. 그리고 원료로 사용하는 편백은 베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가지치기한 가지와 잎이거든요. 일종의 유휴 자원인 거죠. 유휴자원을 활용하겠다는 초기의 아이디어가 편백으로 실현될 수 있었어요.
호호히-다움을 발휘하고 있어요.
정아] 저희는 정말 징하게 붙어있어요.(웃음) 밥을 먹으러 가서도 계속 회의가 이어지죠. 어떻게 기획하면 좋을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일지,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지 등등. 계속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좀 더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호히다움’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하죠.
‘호호히다움’을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득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것과 집요함이라 생각해요. 끝까지 생각한 게 맞는지, 최선의 방안이 맞는지, 이 이상은 없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집요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로 호호히예요.
얼마 전, 호호히다움이 발휘된 사례가 있어요. ‘3개 패키지 사건’이죠.(웃음)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보니, 한 번에 3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세 개의 삼푸바가 하나의 상자에 들어가면, 종이를 더 적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새로운 상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샴푸바가 조금씩 크게 생산된 거예요. 만들어진 상자에 3개가 들어가지 않았죠.
정말 막막하고 하늘이 노랬어요. 상자를 모두 폐기하고 다시 찍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죠. 그런데, 종이 사용을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고객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이러이러해서 상자가 안 닫힌다고요.(웃음) 할인해서 판매했죠. 결국 완판이 되었고요.
상자가 닫히지 않아 테이핑을 해 판매했던 나주 쪽 샴푸바 3개묶음 Ⓒ호호히
다솜] 이윤을 생각하면 이 선택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호호히다움’을 발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지속가능성을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미션을 가진 브랜드가 실수를 숨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죠.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할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희가 겪은 스토리 자체를 재밌어하셨달까요?
몰입과 집요함으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낸 호호히 Ⓒ호호히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저희만의 멋진 노하우나 방법은 없어요. 집요함과 몰입을 발휘할 뿐이죠. 레퍼런스를 끊임없이 보고, 페어(fair)에도 열심히 참여하죠. 얼마 전에는 디자인 행사 두 군데에서 호호히를 초청 했어요. 디자인 전공자가 없는데도 디자인이 뛰어난 브랜드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더라고요. 우리 둘의 몰입과 집요함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달까요?(웃음)
호호히의 다솜님과 정아님 Ⓒ탐방
지속가능한 브랜드, 호호히를 운영 하면서 다솜님과 정아님은 자연스레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고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축산업으로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전 세계 교통수단으로 나오는 양보다 많다는 정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렇게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에 동참하고 비건 식당에 가며, 우유 대신 오트 드링크로 라떼를 마시는 것이 두 분의 일상이 되었죠.
호호히 덕분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는 다솜님과 정아님. 얼마 전 식물성 푸드 브랜드, 조니스 그로서리를 런칭했습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일상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네요. 역시,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나누는 탐방러답습니다.
탐방은 생각합니다. 작은 변화와 노력으로 풍요로워지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로컬 라이프라고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떤가요? 오늘 만난 다솜&정아 탐방러처럼 일상의 변화를 먼저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오늘 ‘고기 없는 날’로 정했답니다.
로컬에서의 삶, 다솜님, 정아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남겨주세요.
서울특별시 | 정다솜, 김정아 (호호히)
인터뷰 ep.23
지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요.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저도 일상에서 텀블러와 손수건, 장바구니를 애용하고 있답니다. 나름대로 쓰레기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욕실에서 꽤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샴푸, 바디워시, 클렌징폼. 전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가 있었죠.
오늘의 탐방러, 다솜님과 정아님은 고체 바디용품으로 욕실 속의 플라스틱을 없애고 있어요. 거기다 제품의 원료는 로컬에서 찾아왔죠. 로컬의 생산물, 문화를 지키는 것도 지구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내가 사고 싶다면, 팔 수도 있겠다
다솜] 대학교 때 재능 기부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밴드 공연의 수익금을 백혈병 환우회에 기부하는 행사였죠.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멤버를 모집하기 위해 SNS에 글을 올렸는데, 그걸 정아님이 본 거죠. 그렇게 저희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장장 5년간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면서 저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정아님은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그저 친한 사이가 아니라 손발을 맞춰 본 사이였달까요? 물론 함께 회사를 운영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요.(웃음)
그렇게 저희 인연이 시작됐어요. Ⓒ탐방
다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 : 사회공헌)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사회과학을 전공했고 학창 시절부터 봉사 활동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고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사회적 가치와는 좀 멀어졌달까요? 말 그대로 ‘일’이었죠. 그러다 제가 딱 서른이 되던 해였어요. 이제는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업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브랜드를 원했죠. 소규모 회사에서 근무했던 터라, 화장품 마케팅 외에도 전략 기획, 회사 경영 등 뷰티 영역 전반을 경험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하우가 있는 화장품 브랜드를 기획했죠. 회사에 다니면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조금씩 창업을 준비했어요. 처음부터 정아님에게 함께 창업하자고 제안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사업계획서는 처음이었기에 친구에게 나의 아이디어가 어떤지 봐달라고 찾아간 거죠. 그런데, 정아님이 너무 좋은 것 같다며 함께 하고 싶다는 거예요.(웃음)
함께 일하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겠더라고요. Ⓒ탐방
정아] 그때가 입사한 지 1개월 정도 됐을 때였어요.(웃음)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에 취업했었거든요. 저는 저의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랐기에 도시를 공부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아주 거시적인 일을 다루더라고요. 제가 끼치는 긍정적인 변화를 전혀 체감할 수 없었달까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나에게 맞는 업이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면 평생 업으로 삼을 만한 영역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죠. 그때 다솜님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온 거예요.
다솜님의 프로젝트를 보니 이 일을 함께하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품이 만들어지면 ‘나도 사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고 싶다면, 팔 수도 있겠다.’ 이 생각으로 다솜님께 저도 껴달라고 했어요.(웃음)
나주에서 배가 아닌 '쪽'을 만났어요.
다솜] 처음에는 낙과나 못난이 농산물 같은 유휴 농산물을 원료로 화장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럼으로써 농가의 이득과 환경적 가치를 만들겠다는 거였죠. 그 아이디어로 여러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했는데, 매번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졌어요.(웃음) 그때 좌절보다는 퇴사를 결정했어요. 제대로 집중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쯤 지인이 ‘넥스트 로컬’이라는 서울시 지원 사업에 참여해보라며 공고 포스터를 보내주었죠.
넥스트 로컬에서는 지역을 먼저 선정해야 하는데, 저희는 나주를 택했어요. 최근에 제수 과일의 수요가 떨어지고, 수입 과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주 배가 공급량에 비해 수요가 줄어들어 버려지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또, 배를 화장품 성분으로 썼을 때 유효한 성분들이 추출된다는 연구 자료들도 봤었고요. 그렇게 나주에 내려가서 나주 배를 연구하시는 박사님부터 배 농가, 배 유통센터 등 나주에 있는 배 관련 관계자분들을 열심히 만나러 다녔어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지금은 배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단계가 아니더라고요. 그냥 피부에 유효한 성분이 있다는 연구 결과만 나온 상태였던 거예요. 그때가 정말 덥고 막막해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는데, 연락이 한 통 왔어요.
우연히 만난 나주의 로컬 자원, 쪽 Ⓒ호호히
다솜] 나주의 자원을 찾고 있는 청년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나주 곳곳에서 유휴 자원이나 스토리가 있는 자원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난 거죠. 그분은 나주 배보다 ‘나주 쪽’이 더 유명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역사가 굉장히 깊은 것은 물론 천연 염색 재단도 유일하게 나주에 있고, 무형문화재 선생님들도 나주에만 있을 정도라고요. 그동안 나주에서 쪽이라는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을 해왔지만, 마케팅이나 브랜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죠. 그렇게 든든한 파트너, 나주 천연염색문화재단을 만나게 됐어요.
쪽에 대해 공부를 하니 쪽 추출물이 두피나 피부 케어에 좋은 화장품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알려져야 재배도 계속되고 그 문화가 이어질 테니 자원을 위한 제품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심지어 재단에서는 액체 샴푸로 상품화했던 경험도 있었어요. 상용화를 했지만 결국 판매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최근 트렌드와 저희 생각에 맞는 쪽 제품은 무엇일지 치열하게 고민했죠. 그 결과가 바로 삼푸바예요.
나주 쪽으로 만든 샴푸바 Ⓒ탐방
다솜] 나주에서 지내며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들과 관계가 깊어졌어요. 그중 한 분이 장성에서 편백 숲을 하는 청년 농부가 있으니 만나보라며 소개해주셨죠. 장성에 가서 편백을 보니까 원료 퀄리티도 높고, 고품질 오일이 추출되더라고요. 원료가 추출되고 남은 가지만 만져도 굉장히 촉촉하고요. 그리고 원료로 사용하는 편백은 베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가지치기한 가지와 잎이거든요. 일종의 유휴 자원인 거죠. 유휴자원을 활용하겠다는 초기의 아이디어가 편백으로 실현될 수 있었어요.
호호히-다움을 발휘하고 있어요.
정아] 저희는 정말 징하게 붙어있어요.(웃음) 밥을 먹으러 가서도 계속 회의가 이어지죠. 어떻게 기획하면 좋을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일지,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지 등등. 계속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좀 더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호히다움’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하죠.
‘호호히다움’을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득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것과 집요함이라 생각해요. 끝까지 생각한 게 맞는지, 최선의 방안이 맞는지, 이 이상은 없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집요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로 호호히예요.
얼마 전, 호호히다움이 발휘된 사례가 있어요. ‘3개 패키지 사건’이죠.(웃음)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보니, 한 번에 3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세 개의 삼푸바가 하나의 상자에 들어가면, 종이를 더 적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새로운 상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샴푸바가 조금씩 크게 생산된 거예요. 만들어진 상자에 3개가 들어가지 않았죠.
정말 막막하고 하늘이 노랬어요. 상자를 모두 폐기하고 다시 찍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죠. 그런데, 종이 사용을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고객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이러이러해서 상자가 안 닫힌다고요.(웃음) 할인해서 판매했죠. 결국 완판이 되었고요.
상자가 닫히지 않아 테이핑을 해 판매했던 나주 쪽 샴푸바 3개묶음 Ⓒ호호히
다솜] 이윤을 생각하면 이 선택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호호히다움’을 발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지속가능성을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미션을 가진 브랜드가 실수를 숨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죠.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할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희가 겪은 스토리 자체를 재밌어하셨달까요?
몰입과 집요함으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낸 호호히 Ⓒ호호히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저희만의 멋진 노하우나 방법은 없어요. 집요함과 몰입을 발휘할 뿐이죠. 레퍼런스를 끊임없이 보고, 페어(fair)에도 열심히 참여하죠. 얼마 전에는 디자인 행사 두 군데에서 호호히를 초청 했어요. 디자인 전공자가 없는데도 디자인이 뛰어난 브랜드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더라고요. 우리 둘의 몰입과 집요함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달까요?(웃음)
호호히의 다솜님과 정아님 Ⓒ탐방
지속가능한 브랜드, 호호히를 운영 하면서 다솜님과 정아님은 자연스레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고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축산업으로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전 세계 교통수단으로 나오는 양보다 많다는 정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렇게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에 동참하고 비건 식당에 가며, 우유 대신 오트 드링크로 라떼를 마시는 것이 두 분의 일상이 되었죠.
호호히 덕분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는 다솜님과 정아님. 얼마 전 식물성 푸드 브랜드, 조니스 그로서리를 런칭했습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일상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네요. 역시,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나누는 탐방러답습니다.
탐방은 생각합니다. 작은 변화와 노력으로 풍요로워지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로컬 라이프라고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떤가요? 오늘 만난 다솜&정아 탐방러처럼 일상의 변화를 먼저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오늘 ‘고기 없는 날’로 정했답니다.
로컬에서의 삶, 다솜님, 정아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