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함께 서울을 떠났어요.

강원도 속초 | 정다흰, 이주영 (흰다정)

  인터뷰 ep.13  



<여름방학>을 맞아 탐방은 속초의 조용한 마을로 향했습니다. 속초항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분위기가 참 다르네요. 바로 여기, 차분한 거리와 닮은 하얀 이층 건물이 오늘의 탐방지예요. 흰다정[茶亭]. 하얗고 간단한 다방이라는 뜻이래요. 하얀 건물,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과 참 어울립니다.


흰다정은 서울에서 속초로, 거주지를 옮긴 부부가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입니다. 삶의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실행에 옮겼을까 궁금했어요. 하지만 이 부부. 직업까지 함께 바꾸었다네요.


하얗고 간단한 다방, 흰다정 Ⓒ탐방



우리, 직업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게 재밌어.


정다흰(이하, 정)] ‘그냥 좀 벗어나고 싶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했어요. 뷰티 업계에서 디자인 일을 했어요. 뷰티는 매 시즌마다 신상품이 출시되거든요. 그에 따른 압박, 업무 강도가 컸어요. 다들 그렇겠지만 조직의 불합리를 느끼기도 했고요. 그럴 때마다 좋은 장소에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했달까요? 먹다 보니 홈베이킹도 시작하게 됐고요. 취미로 시작했지만 베이킹을 하다 보니 이걸 업으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일하면서도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딱 그때쯤, ‘플레이마켓-재미'라는 청년셀러양성 사업을 발견했어요. 16팀을 뽑아 분당구청 앞 중앙공원에서 청년이 어떤 것을 판매해 볼 수 있는 양성 프로그램이었죠. 주말에만 플리마켓이 열리니까 저한테는 딱이었어요. 평일에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 밤부터는 집에서 빵을 만들고, 주말에 출격하는 거죠.(웃음) 너무 좋았어요. 제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제가 어느 수준인지 알지 못한 채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직업을 바꾸는 건 너무 무모하니까요. 그렇게 1년을 했어요. 1년을 하고 나니, 확신이 들었고 퇴사를 할 용기가 생겼죠.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어요. “우리, 직업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게 재밌어.”


이주영(이하, 이)] 그 제안을 듣는데, 정말 좋았어요.(웃음) 저도 탈출구가 필요했었거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섰죠. 아내가 베이킹을 시작하고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모든 과정은 바로 옆에서 봐왔잖아요. 저에게도 만족스러웠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았을 때도 부끄럽지 않다고 판단되니까. “그래, 하자!”(웃음)


퇴근 후 만든 빵을 들고 출격했던 ‘플레이마켓-재미’ Ⓒ사회적협동조합 문화숨


정] 속초에 연고는 아예 없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디저트 가게를 한다면 일단, 서울은 아니었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휴가로 강원도와 제주도를 많이 갔어요. 제주도는 저희가 감당하기에는 물리적 거리가 서울과 너무 멀게 느껴졌고, 강원도를 중심으로 살아갈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강릉, 양양, 속초를 많이 돌아다녔죠. 그중 속초가 우리한테 알맞은 느낌이었어요. 바다도 있고 산도 있잖아요. ‘누리면서 살 수 있겠다!’ 싶었죠. 막상 기대만큼 누리고 있지는 못하지만요.(웃음) 사실 마지막까지 속초 한 곳, 양양 한 곳 중에서 고민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살아가기에는 문화생활,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인프라를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마음에 들었던 양양의 한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거든요. 무리다 싶었고 속초로 결정했죠.


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게 저희에겐 더 좋았어요. 도시 생활에 너무 지쳤거든요. 사람이 복작복작한 서울 중심부에 가면 약간 심장이 빨리 뛰고, 답답하달까. 그런 반응이 나올 정도였으니.(웃음) 기본적으로 둘 다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연고도 없고, 사람이 적어 교통 체증조차 없는 이곳에 오니 너무 편안했어요.


이들 부부는 평일에는 회사, 주말에는 강원도에서 가게 자리를 알아보는 생활을 두 달 정도 했다고 해요. 이동거리도 만만치 않고 꽤 오래 걸렸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함께 새로운 꿈을 펼칠 생각을 해 즐거웠던 거죠. 그러다가 속초의 수복로를 우연히 걷던 중 마음에 쏙 드는 건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에 임대라고 적혀있었대요. 그렇게 운명처럼, 속초에 흰다정이 생겼답니다.


시골의 여유로움이 가득한 삶을 꿈꾸며 조성한 공간 Ⓒ탐방


정] 집보다 가게를 먼저 알아봤어요. 가게를 결정한 뒤 집을 구했죠. 직업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먼저였으니 저희에게는 당연한 순서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3년 전, 2019년에 흰다정을 오픈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부부에게도, 오시는 손님에게도 한적하고 편안한 시간과 장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시골의 여유로움이 가득한 삶을 꿈꿨달까요. 현실은 다르더라고요.(웃음)


가게는 11시 오픈이지만, 저희는 9시에 출근해서 재료와 디저트를 준비해요. 그리고 마감 때까지 이 공간에서 딱 묶여있죠. 마감 후에도 다음날 판매할 것들을 저녁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요. 보통 10시? 성수기는 새벽 1시까지도 하고요. 푸딩이나 디저트들은 숙성을 하루 정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다시 다음날 아침 9시에 출근을 하고요. 서울의 회사 생활보다 더 바쁘다니까요.(웃음)


이] 처음 오픈할 때는 여름철만 성수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겨울도 여름과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첫해, 19년 12월에는 정말 아무런 대비도 없었는데 여름보다 더 바쁜 거예요. 둘이 진짜 멘탈이 나갔죠.(웃음) 알고 보니 학생들의 방학 영향이 많고, 겨울바다 여행도 참 많이 오시더라고요. 사실 저희는 속초에 설악산이 있으니 오히려 봄이나 가을이 좀 더 바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가을은 정말 한산한 시즌이에요.


정] 가을에 오시면 흰다정과 속초를 편안하고 여유롭게. 제대로 즐기실 수 있어요. (웃음)



둘이 함께 좋아하고 즐기던 것을 만들고 있는 거죠.


정] 직장 생활을 하면서, 둘이 일본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교토에는 찻집에서 클래스를 많이 열어요. 일본에 갈 때마다 항상 클래스를 수강했어요. 제가 끌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남편도 좋아한 것 같아요. 저희가 디자인과 CC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남편도 손쓰는 걸 좋아해요. 요리를 배우다 보니 본인도 재능을 발견한 거죠. 지금은 화과자 같은 것도 직접 만들고. 흰다정의 음료와 디저트류는 모두 남편 담당이에요.(웃음)


이] 둘이 함께 좋아하고 즐기던 것을 만들고 있는 거죠. 흰다정의 메인인 차와 빙수인데요. 저희가 일본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일본에서는 빙수를 차와 함께 내어줘요. 함께 먹는 음식인 거죠. 빙수가 굉장히 차갑잖아요. 차가워진 속을 따뜻한 차로 달래라는 의미이죠. 우리에게는 익숙한 조합이 아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참 조화롭더라고요.


정]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흰다정 빙수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빙수와는 조금 달라요. 우리나라는 보통 생크림과 우유를 급랭하여 가루를 만드는 눈꽃빙수가 주를 이루죠. 하지만, 흰다정 빙수는 얼음 자체를 갈아서 만들어요. ‘카키고리’라고 일본에서 흔히 먹는 빙수 종류이죠. 우리나라도 80-90년대의 빙수는 모두 카키고리였어요. 그러다 눈꽃빙수가 기존 카키고리 빙수와 식감이 다르다 보니 프리미엄 빙수로 여겨진 거죠.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 손이 더 가는 빙수는 카키고리예요. 얼음을 얼리고 온도에 맞춰서 빙질을 내야 하거든요. 액체를 부으면 나오는 눈꽃빙수에 비해 어찌 보면 더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 취향이 눈꽃빙수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컸지만요.(웃음)


이] 흰다정의 빙수는 일본의 카키고리와도 달라요. 원래의 카키고리 빙수는 얼음만을 갈지만, 저희는 우유를 많이 첨가해요. 카키고리의 단점을 빼고 한국 눈꽃빙수의 장점을 더한 거죠. 눈꽃빙수와 카키고리의 중간이랄까요? 흰다정만의 빙수인 거죠.


둘이 함께 좋아하고 즐기던 것을 만들고 있는 거죠. Ⓒ탐방


흰다정은 부부가 함께 즐기던 차와 빙수가 메인이죠. 그중에서도 빙수는 흰다정의 자타 공인 최고의 인기 메뉴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빙수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거든요.(특이한 취향의 탐방은 지옥에서 온 것 같은 검은색 흑임자 빙수의 모습을 보고 흰다정에 반했답니다.) 또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게, 시즌별로 재료가 소진되면 판매되지 않는 게릴라 빙수라네요.


정] 일단, 어느 때나 오셔도 드실 수 있는 메뉴가 우유, 코코넛, 말차 빙수예요. 그리고 계절 빙수, 게릴라 빙수가 있죠. 계절 빙수는 제철 과일이나 작물을 사용해요.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은 무화과, 겨울은 딸기 빙수. 이런 식으로요.


마지막으로 게릴라 빙수가 흰다정만의 특이한 메뉴죠. 호불호가 있는 실험적인 빙수랄까요?(웃음) 계절 빙수나 고정된 메뉴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고 하면, 게릴라는 “정말 이걸 왜 만들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빙수예요. 고객의 니즈보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빙수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했죠. 저희 둘만 해도, 같이 사는 부부이지만 남편이 좋아하지만 제가 너무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걸 남편이 절대 못 먹는 게 있어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게릴라 빙수는 독특한 취향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디자이너이기도 한 우리 부부의 창작욕을 불태우는 메뉴이기도 하고요.


민트초코, 아보카도, 흑임자, 콩.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들을 넣어 만든 실험적인 빙수이자 흰다정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릴라 빙수
Ⓒ흰다정


정]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1인 빙수는 사실 1.5인분, 2인 빙수도 거의 2.5~3인분이죠. 그런데 1인 1빙을 하시는 손님들이 정말 많아요. 우리도 못 먹을 양이라 놀랍기도 하고 찬 음식이니까 탈 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정도로 좋아해 주시니 참 감사하죠.


이] 어제도, 그제도 흰다정에 오신 가족이 있어요. 이 가족은 1년에 한 서너 번씩 속초를 오세요. 그리고 3박 4일 일정으로 오셨다 하면, 4일을 흰다정에 꼭 오세요. 이분들도 오실 때마다 1인 1빙이죠. 이번에는 아드님은 못 오고 따님하고 세 분이 오셨더라고요. 계절, 게릴라 빙수까지 다 부수고 가셨답니다.(웃음) 그런 손님들이 여러 팀이 있어요. 감사함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항상 고민이죠.


정] 도장 쿠폰도 그런 분들을 위해서 도입했어요. 뭐라도 더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요. 사장님(남편분)은 고마우면 한꺼번에 다 찍어서 드리기도 해요.(웃음)


이] 멀리서 저희 빙수를 드시러 그렇게 찾아와 주시는데, 감사하니까요. 도장이라도 찍어드리는 거죠.


넓고 따뜻한 속초와 닮은 부부 Ⓒ흰다정



바쁘고 힘들었던 대도시를 떠나 새로운 직업과 삶을 찾아 속초로 온 다흰님과 주영님. 솔직한 부부는 속초의 삶이 처음 기대와는 다르다고도 말합니다. 가게를 운영한다는 건 회사에 다녔을 때보다 더 바쁘고, 고된 생활이었던 거죠. 그럼에도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결과인 음식과 흰다정이라는 공간을 좋아해 주는 손님들은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쁨이자 평안이라고 하네요. 넓고 따뜻한 속초의 산과 바다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속초에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탐구하고 준비했던 1년여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 같아요. 다시 말하면, 귀촌 보다 내가 하고 싶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우선이었다고 할 수 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탐방러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가요? 그리고 그 일은 꼭 대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건가요?


<여름방학> 특집, 이 부부와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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