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박종범 (농사펀드)
인터뷰 ep.62
지금 주문하면, 한두 달 뒤에나 상품을 받아볼 수 있고요. 상품 설명에는 농산물을 키운 농부의 얼굴과 농장 사진이 가득하고, 수확 예정일도 언제인지 알려주죠. 새벽배송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게 된 요즘, 잘 익었을 때 수확되어 가장 신선한 상태로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는 농산물 서비스.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요? 단감이 무르익는 11월, 농사펀드를 이끄는 종범님을 만났어요.
농부가 보이지 않는 농촌
첫 직장은 춘천의 한 중소기업이었어요. 지역 토마토 축제 홍보를 맡았는데, 이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서 토마토 던지기도 하고, 토마토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었지만, 토마토 농부를 만날 수 없더라고요. 농가는 토마토의 공급책일 뿐, 축제의 주체가 아니었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농부와 축제 참가자가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농사펀드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농부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 농사펀드는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에요. 소비자는 농부의 농사계획과 과정을 보고 구매하고, 제철에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을 받아요. 물론, 전날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문 앞으로 오는 방식은 아니에요. 조금 느리지만, 농부를 응원하며 함께 농산물을 키워내는 재미가 있죠. 농산물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농산물 펀딩이라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소비자에게도, 농부에게도 말이죠.
농부와 소비자가 좀 더 가까워지면 좋겠어요. ©탐방
먼저 돈을 지불하고 나중에 물건을 받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비자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저희는 신뢰할 수 있는 농부들을 발굴하고, 농부와 농장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비하는 거죠.
농부와 상품을 택하는 데엔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바로, 품종, 환경, 기술이에요.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특성을 고려하고, 농산물이 자라는 지역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농장의 토양 상태나 물의 공급 방식 등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어요. 기술은 농부의 농사 방식과 기준을 말해요. 수확 직전에 물을 끊는 시점이나 사용하는 퇴비의 종류, 가지치기 방법 등은 농부마다 다르거든요. 품종 × 환경 × 기술의 조합이 최종 농산물의 품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부와 인터뷰할 때도 이 기준에 맞춰 질문을 준비하고, 농부와 농장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해요. 농사펀드의 콘텐츠에는 각 농부가 사용하는 품종, 환경, 그리고 농사 방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소비자보단 농부들이 이 방식을 낯설어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대부분 긍정적이더라고요. 특히 계약 재배 경험이 있는 농부들은 사전에 일정 금액과 수량을 정해 거래하는 방식에 익숙하더라고요. 또 농부들은 지역 상인과의 구두 계약이 많다보니, 갑작스럽게 파기되는 경우가 꽤 있대요. 그에 비해, 농사펀드는 체계적인 계약 구조를 갖고 있고, 한 명의 농부가 다수의 소비자와 계약하는 시스템이라, 일부 소비자가 취소해도 다른 구매자가 거래를 지킨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했어요.
농부는 농사를 시작할 때 반드시 자금이 필요해요. 특히 안정적인 자금이 없고 판로도 보장되지 않은 초보 농부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어요. 농사펀드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농부의 속사정을 알게 될수록,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농부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거죠.
단감 상품페이지, 상품과 함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농사펀드
냉정한 거래가 아닌, 서로의 덕을 보는 관계
농부와 소비자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돈과 그 대가의 교환인 냉정한 거래가 아니라, 농부는 소비자 덕에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소비자는 농부 덕에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얻는 관계요. 그리고 농사펀드가 그 가교를 하고 싶다는 의미로, 농사펀드를 ‘커뮤니티 커머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매년 봄, 소비자가 직접 논에 들어가 모를 심어보는 손모내기 행사를 열어요. 농사펀드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함께한 1호 농부, 조관희 님과 함께 진행해 왔죠. 약 200평 정도 되는 작은 논이지만, 회원들과 농사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농부와 소비자가 농산물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나누는 특별한 다이닝인 ‘뿌리밥상’도 기억에 남아요. 농부가 재배한 재료로 셰프가 요리를 준비하는데, 20명 정도의 초대 손님이 농부와 셰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하는 경험을 가졌어요. 분기마다 뿌리밥상을 진행했는데, 농부와 소비자 간의 정말 끈끈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농사펀드 커뮤니티 프로그램, 손모내기 행사와 뿌리밥상 ©농사펀드
한 가족은 농사펀드에서 구매한 농산물로 식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후기에 남겨주시는데, 아이들에게 음식의 출처와 농부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려준대요. 그 덕분인지 아이들 입에서 농부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감동했죠. 어렸을 때부터 농부님의 쌀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손모내기 행사에 참여하며 직접 농부님을 만나기도 했어요. 얼마나 반갑겠어요. 처음 만나지만, 익숙한 이름의 농부님을 만나는 순간이니까요. 마트에서 쉽게 구한 쌀이 아니라, 특정 농부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쌀을 먹으며 자란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에게 식사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죠. 분명, 어른이 돼서 그 자녀들에게도, 이러한 식문화는 이어지지 않을까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길
도시와 농촌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농사펀드는 탐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사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쓰는 언어가 다르고, 사고방식도 달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번역가가 되어, 농부의 이야기를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도시 사람들은 점점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캠핑, 유기농, 채식의 인기도 같은 맥락이죠. 이들에게 농사펀드나 탐방 같은 매개체가 연결의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느리고 작은 연결이지만 농촌과 도시가 다시 가까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봐요.
농사펀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들을 연결할거예요. 시골언니프로젝트*의 운영도 그런 맥락이죠. 농촌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공과 민간이 함께할 수 있는 역할을 잘 해나가고 싶어요.
단감이 무르익는 계절에 만난 종범님 ©탐방
서울 | 박종범 (농사펀드)
인터뷰 ep.62
지금 주문하면, 한두 달 뒤에나 상품을 받아볼 수 있고요. 상품 설명에는 농산물을 키운 농부의 얼굴과 농장 사진이 가득하고, 수확 예정일도 언제인지 알려주죠. 새벽배송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게 된 요즘, 잘 익었을 때 수확되어 가장 신선한 상태로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는 농산물 서비스.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요? 단감이 무르익는 11월, 농사펀드를 이끄는 종범님을 만났어요.
농부가 보이지 않는 농촌
첫 직장은 춘천의 한 중소기업이었어요. 지역 토마토 축제 홍보를 맡았는데, 이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서 토마토 던지기도 하고, 토마토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었지만, 토마토 농부를 만날 수 없더라고요. 농가는 토마토의 공급책일 뿐, 축제의 주체가 아니었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농부와 축제 참가자가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농사펀드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농부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 농사펀드는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에요. 소비자는 농부의 농사계획과 과정을 보고 구매하고, 제철에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을 받아요. 물론, 전날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문 앞으로 오는 방식은 아니에요.(웃음) 조금 느리지만, 농부를 응원하며 함께 농산물을 키워내는 재미가 있죠. 농산물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농산물 펀딩이라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소비자에게도, 농부에게도 말이죠.
농부와 소비자가 좀 더 가까워지면 좋겠어요. ©탐방
먼저 돈을 지불하고 나중에 물건을 받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비자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저희는 신뢰할 수 있는 농부들을 발굴하고, 농부와 농장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비하는 거죠.
농부와 상품을 택하는 데엔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바로, 품종, 환경, 기술이에요.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특성을 고려하고, 농산물이 자라는 지역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농장의 토양 상태나 물의 공급 방식 등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어요. 기술은 농부의 농사 방식과 기준을 말해요. 수확 직전에 물을 끊는 시점이나 사용하는 퇴비의 종류, 가지치기 방법 등은 농부마다 다르거든요. 품종 × 환경 × 기술의 조합이 최종 농산물의 품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부와 인터뷰할 때도 이 기준에 맞춰 질문을 준비하고, 농부와 농장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해요. 농사펀드의 콘텐츠에는 각 농부가 사용하는 품종, 환경, 그리고 농사 방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소비자보단 농부들이 이 방식을 낯설어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대부분 긍정적이더라고요. 특히 계약 재배 경험이 있는 농부들은 사전에 일정 금액과 수량을 정해 거래하는 방식에 익숙하더라고요. 또 농부들은 지역 상인과의 구두 계약이 많다보니, 갑작스럽게 파기되는 경우가 꽤 있대요. 그에 비해, 농사펀드는 체계적인 계약 구조를 갖고 있고, 한 명의 농부가 다수의 소비자와 계약하는 시스템이라, 일부 소비자가 취소해도 다른 구매자가 거래를 지킨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했어요.
농부는 농사를 시작할 때 반드시 자금이 필요해요. 특히 안정적인 자금이 없고 판로도 보장되지 않은 초보 농부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어요. 농사펀드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농부의 속사정을 알게 될수록,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농부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거죠.
단감 상품페이지, 상품과 함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농사펀드
냉정한 거래가 아닌, 서로의 덕을 보는 관계
농부와 소비자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돈과 그 대가의 교환인 냉정한 거래가 아니라, 농부는 소비자 덕에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소비자는 농부 덕에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얻는 관계요. 그리고 농사펀드가 그 가교를 하고 싶다는 의미로, 농사펀드를 ‘커뮤니티 커머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매년 봄, 소비자가 직접 논에 들어가 모를 심어보는 손모내기 행사를 열어요. 농사펀드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함께한 1호 농부, 조관희 님과 함께 진행해 왔죠. 약 200평 정도 되는 작은 논이지만, 회원들과 농사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농부와 소비자가 농산물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나누는 특별한 다이닝인 ‘뿌리밥상’도 기억에 남아요. 농부가 재배한 재료로 셰프가 요리를 준비하는데, 20명 정도의 초대 손님이 농부와 셰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하는 경험을 가졌어요. 분기마다 뿌리밥상을 진행했는데, 농부와 소비자 간의 정말 끈끈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농사펀드 커뮤니티 프로그램, 손모내기 행사와 뿌리밥상 ©농사펀드
한 가족은 농사펀드에서 구매한 농산물로 식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후기에 남겨주시는데, 아이들에게 음식의 출처와 농부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려준대요. 그 덕분인지 아이들 입에서 농부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감동했죠. 어렸을 때부터 농부님의 쌀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손모내기 행사에 참여하며 직접 농부님을 만나기도 했어요. 얼마나 반갑겠어요. 처음 만나지만, 익숙한 이름의 농부님을 만나는 순간이니까요. 마트에서 쉽게 구한 쌀이 아니라, 특정 농부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쌀을 먹으며 자란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에게 식사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죠. 분명, 어른이 돼서 그 자녀들에게도, 이러한 식문화는 이어지지 않을까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길
도시와 농촌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농사펀드는 탐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사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쓰는 언어가 다르고, 사고방식도 달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번역가가 되어, 농부의 이야기를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도시 사람들은 점점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캠핑, 유기농, 채식의 인기도 같은 맥락이죠. 이들에게 농사펀드나 탐방 같은 매개체가 연결의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느리고 작은 연결이지만 농촌과 도시가 다시 가까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봐요.
농사펀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들을 연결할거예요. 시골언니프로젝트*의 운영도 그런 맥락이죠. 농촌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공과 민간이 함께할 수 있는 역할을 잘 해나가고 싶어요.
*농사펀드와 탐방은 지난해 ‘시골언니’ 프로젝트로 함께한 인연이 있는데요. 농사펀드가 농산물을, 탐방은 콘텐츠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두 브랜드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어요.
단감이 무르익는 계절에 만난 종범님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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