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 구구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
인터뷰 ep.48
“청도에 살고있어요. 섬은 아니고요.” 오늘의 주인공 구구(구승희)님이 자기소개가 참 기억에 남았어요. 청도?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익숙한 이름. 왜일까? 고민해 보니, 청도 소싸움이 있더라고요. 소싸움은 천년의 역사를 가진 농업 공동체 문화라고 해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며,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의식이었달까요? 소싸움은 아니지만, 구구님도 평생에 걸쳐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어요. 혼자보다 여럿이 편하다는, 구구님을 청도에서 만났습니다.
청도와 온누리, 언젠가 나도 여기를 뜬다!
청도 토박이예요. 태어나긴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4살 때부터 쭉 청도에 살았죠. 대학 시절에만 잠깐 대구에서 살았으니, 청도 토박이 맞죠?(웃음) 지금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놀고 먹고 자던 곳이에요.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의 연습실 겸 합숙소, 저의 놀이터기도 했죠. 애증의 장소라고 해야할까요.
온누리는 가정사와 관련이 깊어요. 부모님의 재혼으로 청도에 왔고, 성이 다른 3명의 형제가 생겼죠. 부모님은 성은 다르지만, 형제애가 자라나길 바라셨어요. 그 방법으로 아버지가 생각해 내신 게 바로 사물놀이였고요. 사물놀이는 최소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잖아요. 우리 형제에게 딱이다 싶으셨던 것 같아요. 우리 가족들끼리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금세 동네 아이들의 활동으로 확대됐어요. 제가 다니던 칠곡 초등학교의 동아리처럼 여겨졌던 거죠.
요즘 폐교 위기 학교들이 매스컴에 많이 나오잖아요. 칠곡 초등학교는 당시에도 폐교 위기였어요. 전교생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니, 모두가 정말 잘 아는 동네 친구들이었죠. 또, 농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는 조손가정이나 농사일로 바빠 자녀를 돌보기 힘든 가정들이 꽤 있어요. 우리 가족이 사물놀이를 시작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길 바란 부모님의 뜻이었기에, 동네 친구들도 하나둘 함께 하기 시작했죠. 공식적인 학교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칠곡 초등학교의 대표 동아리 같았어요.(웃음) 연습이나 합숙은 모두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고요.
사물놀이는 최소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음악을 만들어나갈 수 있잖아요. Ⓒ탐방
어느새 큰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침마당을 시작으로 여러 방송에서 온누리를 소개해주면서 꽤 유명해졌죠. 청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사물놀이단, 스토리가 특별하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 가장 큰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일본, 러시아 등지로 해외 공연도 다니고, 대학생이나 어른들이 어린 저희에게 사물놀이나 북춤을 배우러 오시기도 했죠. 온누리로, 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힘들었죠. 설날과 추석 당일, 1년에 딱 2번 쉬었어요. 주말도 예외없이 연습했죠. 가족애를 다지기 위해서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유명세와 함께 일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방송을 통해서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라고 알려지니, 외부에서도 국악을 배우기에 친구들이 오기도 했고요. 중간에 왔다 갔다 한 친구들을 모두 포함하면 100명이 넘을 거예요. 도저히 못 하겠다며 도망간 친구들도 있었다니까요?(웃음) 저도 ‘언젠가 여기를 뜬다’는 생각하기도 했어요.
가족애를 다지기 위해서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유명세와 함께 일이 되었던 것 같아요. Ⓒ탐방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동안 계속해 온 국악을 선택할지, 다른 전공을 도전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결론적으로, 국악을 선택했고 대학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음악적으로도 기술이 아닌 깊이를 배웠고, 어려서부터 빠른 유명세로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게도 되었죠. 어려서부터 온누리로 공연을 가면 별도의 대기실과 에스코트를 해주시는 직원분들이 붙었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던 거더라고요. 대학 시절, 선배가 주도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대기실도 없어서 길바닥에서 옷을 입어야 하고, 관객들은 밥을 먹느라 공연에 집중하지도 않았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연주자로서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죠.
벗어나고만 싶었던 온누리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아버지이자 단장님이 시키는 대로 해온 음악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길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아버지께 ‘이제 저희끼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하고 선언했어요. 아버지도 오랜 시간 열과 성을 다한 단체인데, 손을 뗀다는 게 쉽지는 않으셨죠. 온전히 온누리를 넘겨 받는 데 한 2년은 걸렸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2016년, 창단 멤버 다섯 명이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이제 저희끼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하고 선언했어요. Ⓒ탐방
협동조합을 시작하면서, 이전의 온누리와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음악 예술 공동체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고 만들어 내는 문화예술 단체로 성장하고픈 욕구였죠. ‘우리가 시작했을 때처럼,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어, 사물놀이를 활용해서 또 다른 놀이 활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누구 하나 기획을 해본 경험이 없었죠. 항상 정해진 무대 위에서, 연습한 작품을 선보이는데 길들어져 있었던 거예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부의 육성사업에 도전해서, 경영의 기초도 접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문화정책을 공부하고요. 지역에서도 큰 도움을 주셨어요. 공무원이든 그냥 일반 주민이든, ‘온누리를 다시 살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에 다들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조언을 주셨어요. 온누리가 우리의 노력만으로 일군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청도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협동조합으로 온누리를 다시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우리 지역, 청도가 저희의 비빌 언덕이 되었어요.
여전히 온누리는 국악을 연주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 동시에 지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있죠. 청도의 농산물로 하는 팜 파티, 플리마켓도 운영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레시피를 발굴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지역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도 이음센터의 문화예술 파트 코디를 맡고 있고, 경북시민재단의 파트너이기도 하죠. 청도가 준 사랑만큼, 저도 청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노는엄마들, 엄마들도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공동체 속에서 살다 보니, 혼자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뭐든 함께 할 때 행복한 사람이죠. 육아도 마찬가지죠. 어제도 이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른, 아이 40명 정도가 모여 놀았어요. ‘노는엄마들’이라는 공동체죠. 오늘 오후에도 또 모이고요. 엄마랑 아이만 있으면 육아는 정말 힘들어요.(웃음) 아이가 ‘이거 해달라, 저기 가자.’ 모든 걸 엄마와 함께하려 하거든요. 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모이면 달라요. 엄마를 찾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거든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달까요?
노는엄마들은 11명 엄마들의 모임이에요. 저를 제외하곤 10명 모두 서울, 대전, 전주, 대구, 여수, 삼천포… 다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결혼과 함께 청도로 온 엄마들이죠. 그냥 육아도 힘든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홀로 하는 육아는 어떻겠어요.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죠. 하나둘 모이면서, 어두운 감정도 극복하고 활력을 얻게 된 것 같아요.
한 언니는 지금도 노는엄마들이 본인을 암흑에서 끄집어냈다고 말해요. 그 언니의 자녀와 저희 아이가 친구라 알게 되었죠. 인상도 좋고 늘 웃고 있어서 친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언니에게 노는엄마들의 놀이 활동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죠. 하지만 선뜻 하겠다고 답을 못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언니는 매일 시댁 밭일을 돕는 일정이 있었어요. 매일 아이보고, 밭일하는 일상이 힘들었대요. 아직도 언니가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긴 해요. 언니는 눈치를 보더라도 노는엄마들 모임에는 와야 한대요. 함께 하는 활동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모두에게 그런 것 같아요. ‘엄마들도 일상의 힘듦을 해소하자. 엄마들도 할 수 있다.’
엄마들도 일상의 힘듦을 해소하자. 엄마들도 할 수 있다. Ⓒ탐방
노는엄마들에서 저는 한 명의 멤버예요. 대표 언니도 따로 있고요. 다만, 청도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노는엄마들과 청도를 더 깊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노는엄마들이 삶의 활력이 되고 있고요. 이번에 진행할 시골언니 프로젝트도 메인 운영사는 온누리지만 노는엄마들이 함께 할 거예요. 진짜 시골언니들이잖아요.(웃음)
노는엄마들말고도 청도에는 소개해주고 싶은 언니들이 참 많아요. 청도의 유일한 제로 웨이스트 숍을 운영하는 언니도 있죠. 사실, 시골이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가 더 심각하거든요. 불법 소각 같은 관습이 만연하니까요. 작은 제로 웨이스트 숍으로 청도에서의 환경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플로깅 프로그램에는 대구에서부터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플라스틱 줄이기, 우유팩 모으기, 청도에서 있어 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죠.
농부언니도 있죠. 농부언니는 농사를 짓기 위해 부산에서 청도로 왔어요. 오기 전에 농업기술센터에 농사를 짓고 싶으니, 농부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대요. 그리고 그때 소개받은 농부와 연애해서 결혼했죠.(웃음) 지금은 복숭아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데, 단순히 생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과정을 소비자들과 공유하더라고요. 스토리를 함께 판매하는 거죠.
정말 소개하고 자랑하고픈 청도의 언니들이 많아요. 온누리부터, 노는엄마들, 청도의 다양한 시골언니들. 시골언니 프로젝트로 도시언니와 연결하고 싶어요. 그게 오랫동안 청도에서 돌봄과 지지를 받아 온 제가 해야 하는, 또 하고 싶은 역할같아요.
오랫동안 청도에서 돌봄과 지지를 받아 온 제가 해야 하는, 또 하고 싶은 역할같아요. Ⓒ탐방
점점 개인주의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혹, 주변에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과한 친절이 아닐까 걱정이 앞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함부로 타인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일도 망설여지곤 해요. 그런데, 구구님과의 만남 뒤에 저의 삶을 돌아보니,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드네요. 무언가를 함께하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부터 도전해봐야겠어요. 탐방을 통한 탐방러들과 소통도 좋겠네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탐방이 추천하는 시골언니프로젝트
청도군 | 구구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
인터뷰 ep.48
“청도에 살고있어요. 섬은 아니고요.” 오늘의 주인공 구구(구승희)님이 자기소개가 참 기억에 남았어요. 청도?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익숙한 이름. 왜일까? 고민해 보니, 청도 소싸움이 있더라고요. 소싸움은 천년의 역사를 가진 농업 공동체 문화라고 해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며,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의식이었달까요? 소싸움은 아니지만, 구구님도 평생에 걸쳐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어요. 혼자보다 여럿이 편하다는, 구구님을 청도에서 만났습니다.
청도와 온누리, 언젠가 나도 여기를 뜬다!
청도 토박이예요. 태어나긴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4살 때부터 쭉 청도에 살았죠. 대학 시절에만 잠깐 대구에서 살았으니, 청도 토박이 맞죠?(웃음) 지금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놀고 먹고 자던 곳이에요.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의 연습실 겸 합숙소, 저의 놀이터기도 했죠. 애증의 장소라고 해야할까요.
온누리는 가정사와 관련이 깊어요. 부모님의 재혼으로 청도에 왔고, 성이 다른 3명의 형제가 생겼죠. 부모님은 성은 다르지만, 형제애가 자라나길 바라셨어요. 그 방법으로 아버지가 생각해 내신 게 바로 사물놀이였고요. 사물놀이는 최소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잖아요. 우리 형제에게 딱이다 싶으셨던 것 같아요. 우리 가족들끼리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금세 동네 아이들의 활동으로 확대됐어요. 제가 다니던 칠곡 초등학교의 동아리처럼 여겨졌던 거죠.
요즘 폐교 위기 학교들이 매스컴에 많이 나오잖아요. 칠곡 초등학교는 당시에도 폐교 위기였어요. 전교생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니, 모두가 정말 잘 아는 동네 친구들이었죠. 또, 농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는 조손가정이나 농사일로 바빠 자녀를 돌보기 힘든 가정들이 꽤 있어요. 우리 가족이 사물놀이를 시작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가정이지만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길 바란 부모님의 뜻이었기에, 동네 친구들도 하나둘 함께 하기 시작했죠. 공식적인 학교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칠곡 초등학교의 대표 동아리 같았어요.(웃음) 연습이나 합숙은 모두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고요.
사물놀이는 최소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음악을 만들어나갈 수 있잖아요. Ⓒ탐방
어느새 큰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침마당을 시작으로 여러 방송에서 온누리를 소개해주면서 꽤 유명해졌죠. 청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사물놀이단, 스토리가 특별하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 가장 큰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일본, 러시아 등지로 해외 공연도 다니고, 대학생이나 어른들이 어린 저희에게 사물놀이나 북춤을 배우러 오시기도 했죠. 온누리로, 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힘들었죠. 설날과 추석 당일, 1년에 딱 2번 쉬었어요. 주말도 예외없이 연습했죠. 가족애를 다지기 위해서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유명세와 함께 일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방송을 통해서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라고 알려지니, 외부에서도 국악을 배우기에 친구들이 오기도 했고요. 중간에 왔다 갔다 한 친구들을 모두 포함하면 100명이 넘을 거예요. 도저히 못 하겠다며 도망간 친구들도 있었다니까요?(웃음) 저도 ‘언젠가 여기를 뜬다’는 생각하기도 했어요.
가족애를 다지기 위해서 시작한 사물놀이였지만, 유명세와 함께 일이 되었던 것 같아요. Ⓒ탐방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동안 계속해 온 국악을 선택할지, 다른 전공을 도전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결론적으로, 국악을 선택했고 대학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음악적으로도 기술이 아닌 깊이를 배웠고, 어려서부터 빠른 유명세로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게도 되었죠. 어려서부터 온누리로 공연을 가면 별도의 대기실과 에스코트를 해주시는 직원분들이 붙었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던 거더라고요. 대학 시절, 선배가 주도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대기실도 없어서 길바닥에서 옷을 입어야 하고, 관객들은 밥을 먹느라 공연에 집중하지도 않았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연주자로서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죠.
벗어나고만 싶었던 온누리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아버지이자 단장님이 시키는 대로 해온 음악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길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아버지께 ‘이제 저희끼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하고 선언했어요. 아버지도 오랜 시간 열과 성을 다한 단체인데, 손을 뗀다는 게 쉽지는 않으셨죠. 온전히 온누리를 넘겨 받는 데 한 2년은 걸렸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2016년, 창단 멤버 다섯 명이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이제 저희끼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하고 선언했어요. Ⓒ탐방
협동조합을 시작하면서, 이전의 온누리와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음악 예술 공동체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고 만들어 내는 문화예술 단체로 성장하고픈 욕구였죠. ‘우리가 시작했을 때처럼,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어, 사물놀이를 활용해서 또 다른 놀이 활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누구 하나 기획을 해본 경험이 없었죠. 항상 정해진 무대 위에서, 연습한 작품을 선보이는데 길들어져 있었던 거예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부의 육성사업에 도전해서, 경영의 기초도 접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문화정책을 공부하고요. 지역에서도 큰 도움을 주셨어요. 공무원이든 그냥 일반 주민이든, ‘온누리를 다시 살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에 다들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조언을 주셨어요. 온누리가 우리의 노력만으로 일군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청도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협동조합으로 온누리를 다시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우리 지역, 청도가 저희의 비빌 언덕이 되었어요.
여전히 온누리는 국악을 연주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 동시에 지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있죠. 청도의 농산물로 하는 팜 파티, 플리마켓도 운영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레시피를 발굴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지역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도 이음센터의 문화예술 파트 코디를 맡고 있고, 경북시민재단의 파트너이기도 하죠. 청도가 준 사랑만큼, 저도 청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노는엄마들, 엄마들도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공동체 속에서 살다 보니, 혼자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뭐든 함께 할 때 행복한 사람이죠. 육아도 마찬가지죠. 어제도 이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른, 아이 40명 정도가 모여 놀았어요. ‘노는엄마들’이라는 공동체죠. 오늘 오후에도 또 모이고요. 엄마랑 아이만 있으면 육아는 정말 힘들어요.(웃음) 아이가 ‘이거 해달라, 저기 가자.’ 모든 걸 엄마와 함께하려 하거든요. 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모이면 달라요. 엄마를 찾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거든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달까요?
노는엄마들은 11명 엄마들의 모임이에요. 저를 제외하곤 10명 모두 서울, 대전, 전주, 대구, 여수, 삼천포… 다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결혼과 함께 청도로 온 엄마들이죠. 그냥 육아도 힘든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홀로 하는 육아는 어떻겠어요.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죠. 하나둘 모이면서, 어두운 감정도 극복하고 활력을 얻게 된 것 같아요.
한 언니는 지금도 노는엄마들이 본인을 암흑에서 끄집어냈다고 말해요. 그 언니의 자녀와 저희 아이가 친구라 알게 되었죠. 인상도 좋고 늘 웃고 있어서 친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언니에게 노는엄마들의 놀이 활동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죠. 하지만 선뜻 하겠다고 답을 못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언니는 매일 시댁 밭일을 돕는 일정이 있었어요. 매일 아이보고, 밭일하는 일상이 힘들었대요. 아직도 언니가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긴 해요. 언니는 눈치를 보더라도 노는엄마들 모임에는 와야 한대요. 함께 하는 활동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모두에게 그런 것 같아요. ‘엄마들도 일상의 힘듦을 해소하자. 엄마들도 할 수 있다.’
엄마들도 일상의 힘듦을 해소하자. 엄마들도 할 수 있다. Ⓒ탐방
노는엄마들에서 저는 한 명의 멤버예요. 대표 언니도 따로 있고요. 다만, 청도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노는엄마들과 청도를 더 깊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노는엄마들이 삶의 활력이 되고 있고요. 이번에 진행할 시골언니 프로젝트도 메인 운영사는 온누리지만 노는엄마들이 함께 할 거예요. 진짜 시골언니들이잖아요.(웃음)
노는엄마들말고도 청도에는 소개해주고 싶은 언니들이 참 많아요. 청도의 유일한 제로 웨이스트 숍을 운영하는 언니도 있죠. 사실, 시골이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가 더 심각하거든요. 불법 소각 같은 관습이 만연하니까요. 작은 제로 웨이스트 숍으로 청도에서의 환경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플로깅 프로그램에는 대구에서부터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플라스틱 줄이기, 우유팩 모으기, 청도에서 있어 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죠.
농부언니도 있죠. 농부언니는 농사를 짓기 위해 부산에서 청도로 왔어요. 오기 전에 농업기술센터에 농사를 짓고 싶으니, 농부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대요. 그리고 그때 소개받은 농부와 연애해서 결혼했죠.(웃음) 지금은 복숭아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데, 단순히 생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과정을 소비자들과 공유하더라고요. 스토리를 함께 판매하는 거죠.
정말 소개하고 자랑하고픈 청도의 언니들이 많아요. 온누리부터, 노는엄마들, 청도의 다양한 시골언니들. 시골언니 프로젝트로 도시언니와 연결하고 싶어요. 그게 오랫동안 청도에서 돌봄과 지지를 받아 온 제가 해야 하는, 또 하고 싶은 역할같아요.
오랫동안 청도에서 돌봄과 지지를 받아 온 제가 해야 하는, 또 하고 싶은 역할같아요. Ⓒ탐방
점점 개인주의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혹, 주변에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과한 친절이 아닐까 걱정이 앞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함부로 타인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일도 망설여지곤 해요. 그런데, 구구님과의 만남 뒤에 저의 삶을 돌아보니,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드네요. 무언가를 함께하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부터 도전해봐야겠어요. 탐방을 통한 탐방러들과 소통도 좋겠네요.
본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탐방이 추천하는 시골언니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