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있어요.

광주광역시 | 강동수 (배무이)

  인터뷰 ep.35  



오랜만에 북촌 한옥마을에 갔어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죠. 모두가 한옥을 좋아하는 모습이었달까요? 한옥 마을, 한옥 카페, 한옥 펜션. 한옥으로 된 공간을 향한 인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걸 보면 한옥 사랑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골목,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한옥이 있어요. 아마도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한옥 같아요. 어쩐지 안쓰럽습니다. 어떤 한옥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찾고 머무는데, 이렇게 외로이 홀로 버티고 있으니까요. 이 친구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주인공 동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잊힌 한옥을 되살리고 있어요. 왜 새로 짓지 않고 오래된 집을 고치는 걸까요? 아무래도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똑똑-! 한옥 리모델링 현장에서 동수님을 만났어요.


동수님의 한옥 리모델링 현장 Ⓒ탐방



사라지는 집의 장례식을 치러요.


고등학교 자퇴 후 한동안 방황했어요. 그러다 3개월간 유럽 여기저기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주로 오래된 가옥이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걸 도왔어요. 유럽에서는 대대로 물려받은 집을 고쳐서 사는 경우가 꽤 많더군요. 그 모습이 좋아 보였고, 한편으로는 왜 한국에는 그런 경우가 적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라 그랬던 걸까,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은 거죠.(웃음)


한국으로 돌아와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한옥을 찾았어요. 한옥이라고 하면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게 재밌게 느껴졌어요. 고향인 광주에도 꽤 많은 한옥이 있더군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죠. 재개발로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고요. 건물도 여러 사연이 있을 텐데 한 번에 무너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싶어서 한옥 리모델링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죠.


정확히는 장례식을 치르는 마음이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는 것처럼 사라지는 집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잘 살기를 바랐달까요? 그런 의미로 장례식의 상여가 떠올랐어요. 가옥처럼 생긴 상여를 들고 생전에 살던 마을을 쭉 돌아다니고 보내드리는 모습이 하늘로 떠나는 배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배를 짓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배무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싶어서 한옥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요. Ⓒ탐방


한옥은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새로 짓는 건 하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리모델링이 훨씬 재밌기도 하지만, 한옥에 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지어지는 한옥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요. 그러나 한옥은 오랜 시간 많은 변화를 거쳤죠. 기술적으로, 그리고 디자인적으로요. 특정 시대 양식을 따른 한옥을 새로 만들고 싶지는 않달까요? (웃음)


그나마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지어진 서울의 도시형 한옥은 연구가 꽤 진행되었어요. 북촌이나 서촌에서 만날 수 있는 한옥들이 대표적이죠. 서울은 인구도, 전문가도 많아서 그런지 한옥 연구도 집중되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지역의 한옥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에요. 각 지역의 한옥이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시대에 발전하였고, 어떤 한옥을 보존해야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더군요. 저부터라도 관심을 두자는 생각으로 조금씩 한옥 연구도 진행하고 있어요.



숨어있는 건물을 찾아 기록해요.


동수님의 인스타그램에는 전국 곳곳의 오래된 건물들이 섬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부터 오래된 가옥, 방치된 정자까지.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있던 것들을 찾고 사진으로 남기고 있죠.


1년에 세 채 정도 작업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직접 관여해야 해서 작업을 늘리기는 어렵죠. 하지만 하루에도 여러 채가 사라지거든요. 직접 고치는 걸로는 사라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니, 사진으로라도 남겨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건축 유산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오랜 기간 한옥을 찾아다니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어요.(웃음) 일단 위성 지도를 켜요. 첫 번째로는 도로를 봐요. 도로의 모양을 보면 그 길이 언제 생겼는지를 대강 파악할 수 있거든요. 꾸불꾸불하거나 특이하게 생긴 길이라면 1950년대 이전에 생긴 거예요. 또  계획 도시처럼 도시화되어 있는데 단독주택 필지라면 1960~80년대쯤 생긴 길이죠.


다음은 지붕의 모양이에요. 지붕을 보면 한옥인지 양옥인지 혹은 빌라인지를 알 수 있거든요. 기와의 색이 알록달록하면 그건 좀 오래됐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지도를 보면서 대략 파악하고 그 동네에 직접 가죠. 그러면 그 건물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숨어있는 것들을 잘 찾는 저만의 방법이에요.(웃음)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건축 유산을 기록하고 있어요. Ⓒ탐방


광주에 일명 ‘최부잣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어요. 목조로 된 4층 중층 한옥*인데요.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중층 한옥은 최부잣집이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지붕은 옹기 재질로 구워진 빨간색 기와로 되어 있죠. 광주에 오면 꼭 가보시길 추천할 만큼 장관인 가옥이랍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법정 투쟁을 벌이면서 본채와 창고만 겨우 남고 문간채, 사랑채 같은 나머지 건물들은 싹 철거가 됐어요.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되살리고 싶은 곳이에요.

*4층 중층 한옥 : 내부 층수로는 4층, 외부에서 볼 때는 지붕이 2개가 겹쳐있어 2층으로 보이는 한옥


가끔 제가 하는 일을 보면서 문화재청에서 하는 일 아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가옥은 개인 소유라서 이권이 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의가 복잡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방치돼 있거나 버려지는 거죠. 그래서 민간에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 역할인 거고요.(웃음)


광주 최부잣집 Ⓒ배무이



광주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봐요.


구한말부터 중국인들이 광주를 포함한 전남 서북부 지역으로 많이 넘어왔대요. 선교사들이 사택을 지을 때 벽돌공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죠. 조선에는 벽돌이 없어서 조적 기술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중국인 벽돌공이 머물기 위한 주택을 지었는데, 그것들이 기존의 한옥과 섞이면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어요. 특히 눈여겨보고 있는 건 굴뚝이에요. 적벽돌로 쌓은 가옥형 굴뚝이죠. 조형적으로도 정말 멋있답니다.

독특한 모양의 가옥형 굴뚝 Ⓒ배무이


서울에서는 그런 굴뚝을 궁에만 짓고 민가에는 짓지 않았어요. 그런데 광주에서는 민가에도 지었죠. 광주의 한옥과 건축 문화만의 독특한 면이에요.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진으로 찍고 3d로도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또, 지붕선이나 평면에서도 광주 한옥만의 독특한 면들이 있죠. 미학적으로 광주 한옥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달까요? 그래서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광주 출신이라고 적었어요. 광주 한옥을 봐왔던 사람으로서 다른 지역의 한옥을 본다는 뜻을 담은 거죠.


광주에는 건축문화유산이 정말 다양해요. 독특한 근대 한옥들도 많고요. 그런 가치를 잘 활용하면 관광 도시로서도 손색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관심이 적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들도 많거든요. 산수동, 계림동, 누문동, 북동. 광주의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곳들이죠. 어디에 가보라고 딱 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길라잡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광주에서 의외로 재밌는 공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배무이, 강동수님 Ⓒ탐방



동수님은 또 다른 보물을 발견했어요. 바로 패턴 벽지입니다. 할머니 집에 가면 있을 법한 화려한 벽지는 무려 조선시대부터(!) 생산되었대요. 한옥을 구성하는 요소에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가 숨어있었네요. 당분간은 한옥 리모델링보다는 벽지 생산에 집중하겠다는 동수님.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공간이 빠르게 생기는 요즘. 그만큼 빨리 사라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공간을 고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건 동수님의 말처럼 속도가 너무 더디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있는 공간을 기억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그저 스쳐 지나가던 주변 환경을 꼼꼼한 시선으로 둘러보아요. 자주 가는 식당, 매일 타는 지하철, 종종 산책하는 공원. 잊히기엔 너무 소중한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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