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BOOK.05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 양품계획



MUJI passport Ⓒ탐방


다소 불친절한 앱인 MUJI passport를 깔고 나니 얼마 썼는지가 고스란히 표시되었습니다. 200만 원을 채우면 마지막 등급인 다이아몬드 스테이지로 갈 수 있다는데 별로 가치는 없어 보이네요(100만 원을 쓰면 한 달 내에만 쓸 수 있는 5,000원 쿠폰 증정). 물건뿐만 아니라 앱, 회원등급도 무인양품답게 참 단순합니다.


저는 원래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 옷은 유니클로에서만, 생활용품은 다이소에서만 구매했습니다. 두 곳에 집중하니 쇼핑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감동도 동시에 사라지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쓰고 버리고 또 사지.’라는 가벼운 생각이 늘 공존했거든요. 기존의 소비가 조금 지겨워질 때쯤 만나게 된 것이 무인양품이에요. 의류부터 생활용품까지 한데 모여 있어 아주 단순한 쇼핑이 가능했죠. 처음에는 옷을 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젓가락까지 무인양품에서 구매하고 있어요.


무인양품에 빠져드는 과정은 단순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가장 애정하는 단풍나무 젓가락은 8천 원 남짓이죠. ‘뭐야, 왜 이렇게 비싸.’ 하다가 호기심에 하나를 구매해봤어요. 그리고 쓰다 보니 알게 되더군요. 나무젓가락 마니아인 저는 ‘아무리 설거지를 해도 휘어지지 않는 단단함과 팔각으로 세심하게 조각된 나무 면을 따라 콩자반이 정확하게 집히는 감동’을 느끼며 매료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품질에 대한 걱정은 잊고, 필요한 것을 찾기 시작했어요.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떡갈나무 수납장은 백만 원 정도 하는데, 가구나 전자제품들은 꽤 값이 나가니 아직 시도하진 못했지만요(웬만한 전문 가구점, 전자제품들과 가격대가 비슷…). 최근에는 로컬 푸드를 진열하고 판매하는데, 탐방이 보기에도 참 인상 깊었어요. 지역농산물로 만든 주전부리는 맥주 안주로도 좋았죠.


다섯 번째, 책 :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탐방


아무튼 길었지만, 지금까지 책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을 왜 읽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보았어요. 이것저것 사서 쓰다 보니 무인양품이 더 궁금해졌죠.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이름이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브랜드는 어떤 회사일까요? 



이제 앞으로 50년은 밥공기를 디자인할 필요가 없겠어.


무인양품(영문 : MUJI)은 일본에 있는 주식회사 양품계획의 브랜드입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과도한 소비사회에 반해 철저히 상품을 재평가해보자는 시도를 거쳐서, 오늘날 ’심플, 내추럴, 베이식’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죠. 뭐 역사까지 이해하려면 어렵지만, 그 중심에는 ‘도움이 되자’라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직원들은 늘 기술을 갈고닦고 공부한다고 해요. 다만, 도움이 된다는 기준이 제 생각과는 조금 달랐는데, 사람들의 편의나 기술의 혁신보다는 상처받은 지구의 재생, 다양한 문명의 재인식 등 좀 더 깊이 있고 폭넓은 관점을 갖고 있었어요. 


무인양품의 단순함에 대한 고집과 자신감 Ⓒ탐방


무인양품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단순함입니다. 줄이고 간소화함으로써 매력을 창출한다는 디자인 발상을 토대로 ‘소재의 엄선, 공정의 재점검, 포장의 간략화’라는 공통된 관점을 유지하며 상품을 출시합니다. 아마도 제가 자주 구매하는 편한 티셔츠나 주방용품들을 만들 때도 광고를 하는 것보다 소재를 선택하고 점검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죠?


단순함은 제품 선택을 쉽게 만들어줍니다. 상품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아서 선택의 폭이 좁고 작년에 샀던 게 올해도 계속 출시되죠. 시즌별로 새로운 제품이 계속 생산되는 다른 브랜드들과의 큰 차이점 같아요. 그래서 익숙한 물건이 낡아지면 언제나 또 살 수 있는 것도 무인양품의 매력이죠. 책에서도 ‘원래 그대로의 형태’가 좋다고 이야기해요. 무인양품이 만든 백자 밥공기를 만든 디자이너는 “이제 앞으로 50년은 밥공기를 디자인할 필요가 없겠어.”라고 말했다고 하니, 무인양품의 단순함에 대한 고집과 자신감을 아시겠죠?


무인양품이 궁금하다면,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탐방


분명 무인양품과 현대 소비사회의 트렌드 간에는 괴리가 있어요. 실용 가치를 모호하게 만드는 ‘리좀화’, 사용 가치는 무의미하지만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라 생각하게 하는 ‘가제트화’, 유행과 싼 가격을 내세워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패스트화’가 오늘날의 소비라 한다면 무인양품은 오히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죠.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을 그 틈 속에서 무인양품을 찾습니다. 어쩌면 과도한 정보들과 디자인 속에서 탈피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어요.


무인양품의 상품은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직원들이나 고객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며 기존의 상품들을 검증하거나, 새로운 불만이나 모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정리하죠. 욕실에 있는 형형색색 제품들의 색과 형태를 하나로 통일하는 PET 교환 병을 만든다든지, 어린아이가 쉽게 옷의 단추를 끼울 수 있도록 단추 색깔을 번갈아 바꾼다든지, 발 모양에 맞게 양말을 직각으로 만들죠. 세심한 배려지만 일상에 보다 큰 도움을 주는 무인양품다운 시도라 할 수 있겠네요.



로컬에서 시작하는 미래


역시나 탐방은 책 후반부에 나온 ‘로컬에서 시작하는 미래’가 눈에 띄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인양품은 도시 생활에 필요한 상품들로만 여겨졌어요. 반대로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지역에서는 단순하고 재미없게 보일 거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러나 무인양품이 지방과 관계를 맺으면서 보니, 공동체는 이미 희미해졌고 지역에서 눈에 띄는 활동은 의식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봉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해요.


이때부터 무인양품은 ‘토착화’란 이름으로 1차 산업의 중요성 재인식, 아직 이용하지 않은 자원의 활용 등을 지역과 함께 해결하는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로컬업무를 담당하는 ‘소셜 굿즈 사업부’를 설치해 호텔 사업, 공공디자인, 빈집, 거리 활성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죠. 무인양품을 몇 년째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언제부턴가 매장에는 우리나라 지역 특산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토착화예요.


로컬에서 미래를 발견한 무인양품 Ⓒ탐방 



올해 MUJI passport에서 다이아등급은 어렵겠지만, 책을 읽어보니 왠지 내년에도 나름 우수고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무인양품 서랍장을 여닫는 느낌, 차를 마실 때 도구의 정갈함, 면 소재 옷의 편안함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랄까요. 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왜 단풍나무로 깎아낸 숟가락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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