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로컬쓰기 

from 하모라, 혀에서 시작되는 대구 적응기

“고향이 어디예요?”

“글쎄요,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와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들으면 조금 난감하다. 이사가 잦은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3~4년 주기로 이사를 해왔다. 나에겐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떠나온 곳만 있을 뿐,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은 없었다.

대구에 오게 된 지 언 3년. 보수의 중심, 신천지, 대프리카 …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라 조금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직접 경험해 본 대구는 걱정만큼 무섭지 않았다. 로컬 관련 수업을 듣기 시작한 이유도 대구에 애정이 생겨서다. 대구에 정을 붙이니, 대구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글쓰기 주제를 고민하는데, 생각해 보니 대구에서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 많다. 로컬 to 로컬로, 충청도를 전전하며 살아온 사람이 먹어 본 대구 음식 시식기를 적어볼까 한다.

1. 야끼우동

아버지가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다녀와서 추천한 맛집이다. 주말에는 대기석을 관리하는 알바가 따로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 가게 안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탕수육과 야끼우동을 먹고 있다. 다른 메뉴를 시도 해봤는데 메인메뉴 두 개가 제일 낫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가게다. 

야끼소바는 들어봤어도 야끼우동은 처음 들어 봤다. ‘구운 것’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야끼에 우동이 붙어 있으니 일본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식당에 판다. 70년대에 대구에서 처음 개발된 대구식 볶음 우동이라고 한다. 대구 음식이면서 일본식 이름이고 중식집에서 먹을 수 있는, 생각할수록 특이한 메뉴다. 

이름과 달리 맛은 친숙하다. 매콤한 붉은 소스에 해산물과 야채, 면을 같이 볶았다. 짬뽕볶음 같이 생겼는데, 맛도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물 없이 볶은, 불향 입힌 짬뽕 맛이다. 하지만 맛있고 특색 있어 친구들이 놀러 오면 추천한다.

📍리안 (만촌동 855-18) * 가게 이름을 누르면, 네이버 지도 링크로 이동합니다.

낯선 듯 익숙한 맛의 야끼우동. 나의 첫 대구 로컬 음식이다.

2. 납작만두

얇은 만두를 기름에 빠삭하게 구웠다. 분식집에 갔더니 학생들이 떡볶이를 이걸로 싸 먹고 있더라며 아버지께서 사 오셨다. 기대감에 부풀어 한 입 먹은 순간 혼란스럽다. 대구 사람들은 이걸 만두라고 하나? 만두피 안에 만두소가 새끼손가락만큼 들어있다. 들어간 게 아니라 묻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마 무언가를 싸서 먹기 쉬워지라고 얇게 만든 듯하다. ‘만두’를 기대하고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이것은 만두’피’다. 대구 사람들이 먹는 방식대로 만두로 떡을 감싸 먹어 봤다. 흠...? 이후 생략 - .

유명한 납작만두 맛집을 찾아보니, 다른 방법으로 조리해서 먹는다. 한 번 삶은 다음 구워서 간장을 뿌려 먹거나, 붉은 양념에 무침으로 먹는다고 한다. 약간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음에 시도해 보기로 한다.

                                이름 그대로 '납작'한 만두. 낯설지만 대구 10미 안에 드는, 현지인에게 사랑 받는 음식이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3.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비 오는 어느 날, 근처 식당에 끼니를 때우러 들어갔다. 그때그때 밑반찬이 바뀌는 백반집이다. TV를 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찌개를 먹으려 했는데, 오늘의 국이 소고기뭇국이란다.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소고기뭇국을 따로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랜만에 소고기뭇국을 먹을 생각에 조금 설렌다.

초중고를 다 충청도에서 나온, 내가 아는 소고기뭇국은 하얀색이었다. 그러다 대구에서 빨간 소고기뭇국을 마주한다. 경상도식이 어떤지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먹는 건 처음이다. 붉은 국물에 콩나물과 무, 소고기, 대파가 들어가 얼큰한 맛이다. 이곳 사람들에겐 하얀 소고기뭇국이 낯설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 차이가 있겠나 하며 먹어보자,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주위를 둘러보니 점심시간이 지나 텅 빈 가게 안에는, 다시 앉아 TV를 보는 가게 주인과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빨간 소고기뭇국을 먹고 있는 나만 있다. 새삼 내가 다른 지방에서 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미정 한식 (대구 수성구 화랑로 50 자삼빌딩2층) * 가게 이름을 누르면, 네이버 지도 링크로 이동합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빨간 소고기뭇국이 더 익숙한 지역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일단 대전까지는 아니다.

4. 따로국밥

78년 동안 따로국밥을 팔고 있다는 가게 안은 중장년층 남성들로 가득하다. 밥과 국을 따로 준다고 해서 따로국밥. 이름의 유래는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 각지의 피난민이 대구로 모이면서, 밥이 국에 말아진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밥 따로 국 따로’를 주문하며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카운터에는 '전통문화 보존 명인장'이 걸려있다. 1996년에 받은 것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보존에 힘써 온 사람을 선정하여 주는 임명장이라고 쓰여있다. 최근 SNS로 유명해진 집이 아니라, 전통 있는 맛집인 것 같아 믿음이 간다.

주문하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국이 금방 나온다. 이것은 육개장인가 선짓국인가? 고추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붉은 국에는 선지 덩어리가 들어가 있다. 선짓국이라고 말하기엔 국물에서 고기 맛이 나고, 육개장이라기엔 선지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좋게 말하면 퓨전 음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다. 대구인의 입맛은 아직 내겐 어렵다.

📍국일 따로국밥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571) * 가게 이름을 누르면, 네이버 지도 링크로 이동합니다. 

부산에서 살다 온 친구도 말이 없어지는 걸 보면, 부산 입맛도 아닌가 보다.     사진 출처 : 대구트립로드

5. 뭉티기

한때 SNS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메뉴. 소 뒷다리 안쪽의 허벅지 살을 뭉텅뭉텅 썰어 참기름, 마늘, 굵게 빻은 고춧가루 등을 섞은 양념에 푹 담가 먹는 음식이다. 생고기이기 때문에 신선함은 보장이고, 도톰한 고기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서울 토박이 친구와 함께, 현지인에게도 유명하다는 뭉티기 맛집에 방문했다. 소문대로 접시를 뒤집어도 고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 오길 잘했다며 박수를 치던 친구가 고기를 입에 넣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맛이 나쁘진 않은데, 뭉티기를 처음 먹어봐서 이게 맛있는 건지 잘 모르겠단다. 그 애매한 반응에 김이 샌다. 나도 한 입 먹고는 친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SNS 속 사람들은 입에 넣자마자 박수치고 좋아하던데… 맛없는 뭉티기를 안 먹어 봐서 비교군이 없으니, 로컬 맛집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고기의 맛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을 듯하다.

술도 안 마시고, 생고기 맛도 잘 모르는 우리의 픽은 '오드레기'다. 오드레기는 소의 힘줄과 양지머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참숯에 구워내는 방식으로 조리하는 음식이다. 생고기 초짜에게 뭉티기는 물음표 가득한 맛이었다면, 오드레기는 그나마 아는 맛이다. 짭조름한 맛과 불향이 난다. 근데 이것도 술안주라 그냥 먹기엔 좀 짜다. 같이 나오는 야채와 두부가 있으니, 탄단지를 잘 맞춰 먹어보자(?

📍왕거미 식당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96-8) * 가게 이름을 누르면, 네이버 지도 링크로 이동합니다. 

살이 얼마나 차진지, 정말로 접시를 뒤집어도 고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서울 사람 앞에서 기 좀 살았다.

6. 고기밥

흔히들 돼지국밥 하면 부산을 떠올리지만, 대구에 와서 보니 경상도 지역에서 두루 먹는 음식인 듯하다. 충청도에서는 순댓국집을 다녔지만, 대구에는 순대국밥이 적힌 간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국밥집, 돼지국밥집에 가면 순댓국이 있다.

우리 가족의 최애 식당인 마산식당은,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로 유명해진 군위식당과 붙어 있다. 유튜브 덕에 관광객들이 군위식당으로 몰리며, 마산식당 안은 찐 노포의 증거인 '술 마시며 정치 이야기하는 아저씨, 할아버지'들로 가득하다. 친구와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갔을 때, 서빙 하던 아주머니께서 '아저씨 목소리만 듣다가, 젊은 아가씨들 웃음소리 들으니 너무 좋네~'하고 말씀하실 정도.

여느 때와 같이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 날. 메뉴판에 적힌 ‘고기밥’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름 비장하게 주문했는데, 돼지고기를 뺀 국밥 국물과 수육이 나온다. 촉촉한 수육만 따로 먹어도 좋고, 수육을 국에 말아서 먹으면 돼지국밥이 된다. 양이 많아서 한 메뉴만 선택해야 하니, 수육과 돼지국밥 두 가지를 다 먹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메뉴다. 현지 사람들이 일상에서 먹는 음식이다 보니 양이 푸짐하고 맛있다.  타지에서 온 친구들을 이곳에 데려가면 열이면 열, 돼지국밥집이 제일 기억난다고 이야기한다.

📍마산식당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101 중앙상가) * 가게 이름을 누르면, 네이버 지도 링크로 이동합니다. 

부산 토박이인 사촌 동생도 인정한 집. 돼지국밥 먹으러 굳이 부산에 갈 필요가 없다.

로컬의 색다른 음식에는 로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가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 바가지인 걸 알면서도, 관광객으로만 가득할 걸 알면서도, 관광객이 식당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지금 여행 온 지역에 스며들어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제 막 대구에 발을 붙인 나에게는, 대구 음식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대구에 익숙해지면 나의 입맛도 점점 변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땐 왜 이 맛을 몰랐지?’ 하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땐 나도 당당히 말할 수 있겠지. "저 대구 사람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