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2기
from 엉겅퀴, 여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후 위기까지 사랑하겠어, 초록을 사랑하는 거지
마포에서 보낸 올여름은 나는 여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새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기후 위기 속 도시에서 맞이하는 여름까지 사랑할 수 있겠나. 집 밖을 나서면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람 불어들 길 없이 들어선 건물들과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사이에 고여 있는 더운 기운에, 부채질도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열기를 내뿜으며 습하고 꿉꿉한 거리를 채우고, 무더위에 입맛도 없고 쉽게 지치는 날들이 계속됐다. 유독 만나는 사람들의 건강을 묻게 되는, 그런 여름이었다.
대신 서울이 아닌 곳으로 여행이 잦았다. 이전까지의 여름휴가는 딱히 피서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번엔 명백히 더위를 피해 떠났다. 중학생 이후 처음 들어간 계곡물의 시원함은 에어컨 바람과 달리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게다가 숲 그늘에 있으면 그렇게까지 더운 줄도 몰랐다. 처음으로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다고 말했다. 피서 장소라고는 카페와 회사밖에 없는 동네에서 이대로 일상을 보내다가는 정말 여름이 싫어질 듯했는데. 다행히 여름을 망치지는 않았다.

마포를 피한 게 아냐, 더위를 피한 것일 뿐
혹시 내가 마포에서의 진정한 여름을 즐기지 못한 걸까? 마포구를 사랑해 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곳의 여름을 외면한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사랑은 이게 진짜 마음인지 가짜 마음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에 앞서 차라리 상대를 어떻게 더 잘 사랑할지를 고민한다.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사랑법은 마포구를 앞에 두고 어떻게 발명될까.

다른 지역과 마포구를 비교하며 불만을 내보였지만 사실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한창 이상한 장마 속에 있던 어느 날, 분명 마른하늘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공원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눈 뜨기가 힘들어 빗물로 세수하며 길을 걸었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단골 카페에 가서는 에어컨이 싫다고 바람도 불지 않는 바깥 자리로 나가 더위에 영혼을 빼앗기며 꾸역꾸역 앉아 쉬었다. 오히려 카페보다 조용했던 거리를 기억한다. 밤 산책을 하다가 그 사람 많은 횡단보도 앞에서 작은 강아지가 쪼리 위의 내 엄지발가락을 핥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만날 거라 기대도 하지 않은 수제 콩국수 집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포에서 보낸 여름에 최고의 즐거움은 없었지만, 이곳은 애초에 너무 많은 선택지로 최고가 없는 동네 아닌가. 오히려 이 ‘좋고 좋음 사이의 위계 없음’으로 마포구에 대한 나의 마음은 리셋된다. 내 눈을 가리던 좁은 하늘, 더운 땅, 번잡함은 잘게 잘게 모래알로 쪼개져 발아래 흩어지고, 그걸 딛고 있는 내가 보인다. 로컬은 이미 내 삶의 배경인데 여전히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었다. 최고의 순간은 없다 해도 이곳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충분히 좋은 일들을 기억한다. 그럼 이 동네에 살아보기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미움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마포구를 마포구로 보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발명한 사랑법이다.

가을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도록
최근 다른 동네에 살 기회가 생겨 집을 보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신촌 오거리에 들어서자 문득 예기치 못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 괜히 마포를 미워하고 있던 게 아닐까... 사실 건물 틈으로 보는 노을도 좋고, 겨우 찾아낸 자연의 조각도 좋고, 맛집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점도 좋은데, 내가 꺼리는 것들로만 가득한 동네라며 마냥 싫다고 한 것 같다. 이사를 가더라도 마포구를 탐방하는 일은 멈추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로컬을 마음에 담는 일은 사실 너무나 개인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큰 덩어리의 땅과 그곳의 자원을 가리키는 수많은 이미지에 익숙해져 내 마음을 모를 뻔했다. 로컬과 긴밀해지는 순간들은 이렇게 은밀한 차원에서 벌어진다. 마포구에서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내 사랑의 실천이다. 남아 있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지도 위에 나의 마포구를 써 내려갈 거다. 여름엔 사랑하지 않았지만, 가을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도록.
#서울 #마포구 #도시의 일상 #개인과 로컬 #내 동네 사랑하기
로컬 에디터 2기
from 엉겅퀴, 여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후 위기까지 사랑하겠어, 초록을 사랑하는 거지
마포에서 보낸 올여름은 나는 여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새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기후 위기 속 도시에서 맞이하는 여름까지 사랑할 수 있겠나. 집 밖을 나서면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람 불어들 길 없이 들어선 건물들과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사이에 고여 있는 더운 기운에, 부채질도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열기를 내뿜으며 습하고 꿉꿉한 거리를 채우고, 무더위에 입맛도 없고 쉽게 지치는 날들이 계속됐다. 유독 만나는 사람들의 건강을 묻게 되는, 그런 여름이었다.
대신 서울이 아닌 곳으로 여행이 잦았다. 이전까지의 여름휴가는 딱히 피서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번엔 명백히 더위를 피해 떠났다. 중학생 이후 처음 들어간 계곡물의 시원함은 에어컨 바람과 달리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게다가 숲 그늘에 있으면 그렇게까지 더운 줄도 몰랐다. 처음으로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다고 말했다. 피서 장소라고는 카페와 회사밖에 없는 동네에서 이대로 일상을 보내다가는 정말 여름이 싫어질 듯했는데. 다행히 여름을 망치지는 않았다.
마포를 피한 게 아냐, 더위를 피한 것일 뿐
혹시 내가 마포에서의 진정한 여름을 즐기지 못한 걸까? 마포구를 사랑해 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곳의 여름을 외면한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사랑은 이게 진짜 마음인지 가짜 마음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에 앞서 차라리 상대를 어떻게 더 잘 사랑할지를 고민한다.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사랑법은 마포구를 앞에 두고 어떻게 발명될까.
다른 지역과 마포구를 비교하며 불만을 내보였지만 사실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한창 이상한 장마 속에 있던 어느 날, 분명 마른하늘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공원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눈 뜨기가 힘들어 빗물로 세수하며 길을 걸었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단골 카페에 가서는 에어컨이 싫다고 바람도 불지 않는 바깥 자리로 나가 더위에 영혼을 빼앗기며 꾸역꾸역 앉아 쉬었다. 오히려 카페보다 조용했던 거리를 기억한다. 밤 산책을 하다가 그 사람 많은 횡단보도 앞에서 작은 강아지가 쪼리 위의 내 엄지발가락을 핥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만날 거라 기대도 하지 않은 수제 콩국수 집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포에서 보낸 여름에 최고의 즐거움은 없었지만, 이곳은 애초에 너무 많은 선택지로 최고가 없는 동네 아닌가. 오히려 이 ‘좋고 좋음 사이의 위계 없음’으로 마포구에 대한 나의 마음은 리셋된다. 내 눈을 가리던 좁은 하늘, 더운 땅, 번잡함은 잘게 잘게 모래알로 쪼개져 발아래 흩어지고, 그걸 딛고 있는 내가 보인다. 로컬은 이미 내 삶의 배경인데 여전히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었다. 최고의 순간은 없다 해도 이곳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충분히 좋은 일들을 기억한다. 그럼 이 동네에 살아보기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미움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마포구를 마포구로 보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발명한 사랑법이다.
가을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도록
최근 다른 동네에 살 기회가 생겨 집을 보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신촌 오거리에 들어서자 문득 예기치 못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 괜히 마포를 미워하고 있던 게 아닐까... 사실 건물 틈으로 보는 노을도 좋고, 겨우 찾아낸 자연의 조각도 좋고, 맛집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점도 좋은데, 내가 꺼리는 것들로만 가득한 동네라며 마냥 싫다고 한 것 같다. 이사를 가더라도 마포구를 탐방하는 일은 멈추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로컬을 마음에 담는 일은 사실 너무나 개인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큰 덩어리의 땅과 그곳의 자원을 가리키는 수많은 이미지에 익숙해져 내 마음을 모를 뻔했다. 로컬과 긴밀해지는 순간들은 이렇게 은밀한 차원에서 벌어진다. 마포구에서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내 사랑의 실천이다. 남아 있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지도 위에 나의 마포구를 써 내려갈 거다. 여름엔 사랑하지 않았지만, 가을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도록.
#서울 #마포구 #도시의 일상 #개인과 로컬 #내 동네 사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