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1기
from 유나, 우리도 하나의 기록이에요

서울특별시 | 김나현 (은평필름)
서울특별시 은평구를 찍습니다. 재개발로 이곳저곳 아파트가 들어서는 우리동네의 길, 골목, 건물, 하늘 모든 것들을 기록합니다. 아이폰 11/필름카메라(일회용/exa1c)를 사용합니다.
은평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네 정보와 소식을 얻고 싶어 트위터를 헤매던 저의 눈에 띈 소개 글입니다. 보자마자 바로 ‘은평필름’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어요. 몇 개월이 흘러 그 계정의 주인이 친구의 직장 동료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기쁨도 잠시, 실제로 만나보기도 전에 은평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그런데 이사 가는 동네가 제가 떠나온 동네라는 거예요. 서울의 끝과 끝으로의 이사가 흔치 않은 일이라 놀랐어요. 조금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언젠가는 만날 운명이었던 거 아닐까요?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로 그 순간이 왔어요. 드디어! 나현 님을 만나 은평구와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은평필름’에 은평구를 기록해 온 나현님 ©유나
은평구 찍어 놓길 참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마포구에 잠깐 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쯤 은평구로 이사를 왔어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살기 편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살다 보니 그게 다는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응암시장 근처에 백련산 힐스테이트가 생겼는데, 원래는 달동네라 불리는 곳이었어요. 그게 싹 없어진 걸 보고 위압감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은 퇴근하는데 원래 어두웠던 길이 엄청나게 밝은 거예요. 아파트가 준공을 앞두고 모든 층의 불을 켠 상태라 멀리서 보기에도 너무 훤했던 거죠. 그걸 보니까 얼마 안 있으면 나도 나가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 동네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그전에도 이미 ‘은평필름’에 사진들을 조금씩 올리고 있긴 했거든요.
앞으로 동네가 어떻게 변해 갈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어요. 공간 전체가 통째로 없어져 버리니까, ‘원래 이 자리가 뭐였지?’ 하게 되잖아요. 특색 있는 공간들이 나중에 다 없어질거라 생각하니 한 장이라도 더 찍게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은평구 사람들이 동네에 애착이 많다는 걸 느껴요.
송파구로 이사 와서 궁금했던 게 있어요. 롯데타워가 지어지기 전에 그 일대에 포차거리가 있었대요. 분명히 이 거대한 건물이 들어오기 전에 그 자리에 뭔가 있었고, 그걸 다 철거하고 새로운 게 들어왔을 텐데 막상 정보를 찾으려고 하니까 남겨진 게 없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은평구 찍어 놓길 참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베푸는 그 마음이 참 좋더라고요.
오래된 가게일수록 먼저 사라지겠다 싶어서 동네의 오래된 가게를 위주로 남겼어요. 연신내 ‘갈현식품’도 뒤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GTX 만든다고 정신없는데 그 건물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분명 이것도 언젠가 없어지겠지하며 사진으로 남겼죠.
더운 날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정류장 바로 뒤에 있는 잡화점에서 매년 여름마다 정류장에 메모를 붙여놓더라고요. 더우니까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셔도 된다고요. 물건을 사지 않아도 시원한 곳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그 마음이 참 좋더라고요.
그저 특이해서 찍었던 사진도 많아요.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나중에 그냥 봐도, 참 웃기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요즘 새롭게 생기는 곳의 간판은 뭔가 획일적으로 다 맞춰진 느낌인데, 옛날 이발소나 미용실 간판을 보면 다 특색있어요. 예전에는 사실 그걸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잡화점 앞 버스 정류장에 붙여진 메모와 연신내 ‘갈현식품’ ©은평필름
나만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죠.
‘은평필름’에 이사 간다는 게시물을 올렸더니 ‘너무 멀어서 다시 오시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아쉬워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물론 저도 의미를 가지고 찍기 시작했지만, 보는 사람들도 이걸 의미 있게 봐주셨구나, 나만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죠.
얼마 전에 제가 기고했던 오마이뉴스 기사를 다시 읽다가 2년 전 댓글을 이제야 본 거예요. 뭔가를 바라고 찍은 건 아니었지만, 찍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로 보람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누군가의 글에 한마디라도 건네주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은평구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으니까, 옛날에도 분명 사진을 많이 찍었을 거예요. 다른 점이라면 똑같이 골목이나 전깃줄 사진을 찍더라도 이제는 단순한 기록용이 아닌 거죠. 남기기 위해 찍는 거라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서 찍게 되더라고요. “여기 되게 좋다.” 하면서 그냥 지나쳤던 곳도 이젠 남길 공간도 있겠다,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으니 좀 더 자세히 남겨봐야겠다로 바뀐 거죠. 동네가 변해가는 모습을 남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공사가 진행되면 주변도 바뀌겠지 싶어 그 주위를 더 찍기도 하고요. 공사가 끝나고 나서 전에 남겼던 사진을 보는 것도 그것만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좌)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에요. ©유나
(우) 응암동 대림시장 ©은평필름
동네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은평구에 사진관을 하나 열어서 동네 어르신들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고 떠난 게 진짜 아쉬워요. 응암시장에서 불광천으로 내려가는 길에 노인복지센터가 있어요. 그런 곳과 협력해서 어르신들 사진도 찍어 드리고, 은평구 사진 전시 같은 것도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트위터 팔로워 천 명 넘으면 하려고 했던 엽서 이벤트는 꼭 할 거예요. 엽서 제작도 그렇고, 사진 전시도 그렇고 은평구에서 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먹고 싶은데도 많고, 여름에 먹어야 하는 곳도 있는데... 이젠 그곳들을 가려면 마음먹고 가야 한다는 게 조금은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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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에디터 1기
from 유나, 우리도 하나의 기록이에요
서울특별시 | 김나현 (은평필름)
은평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네 정보와 소식을 얻고 싶어 트위터를 헤매던 저의 눈에 띈 소개 글입니다. 보자마자 바로 ‘은평필름’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어요. 몇 개월이 흘러 그 계정의 주인이 친구의 직장 동료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기쁨도 잠시, 실제로 만나보기도 전에 은평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그런데 이사 가는 동네가 제가 떠나온 동네라는 거예요. 서울의 끝과 끝으로의 이사가 흔치 않은 일이라 놀랐어요. 조금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언젠가는 만날 운명이었던 거 아닐까요?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로 그 순간이 왔어요. 드디어! 나현 님을 만나 은평구와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은평필름’에 은평구를 기록해 온 나현님 ©유나
은평구 찍어 놓길 참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마포구에 잠깐 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쯤 은평구로 이사를 왔어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살기 편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살다 보니 그게 다는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응암시장 근처에 백련산 힐스테이트가 생겼는데, 원래는 달동네라 불리는 곳이었어요. 그게 싹 없어진 걸 보고 위압감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은 퇴근하는데 원래 어두웠던 길이 엄청나게 밝은 거예요. 아파트가 준공을 앞두고 모든 층의 불을 켠 상태라 멀리서 보기에도 너무 훤했던 거죠. 그걸 보니까 얼마 안 있으면 나도 나가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 동네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그전에도 이미 ‘은평필름’에 사진들을 조금씩 올리고 있긴 했거든요.
앞으로 동네가 어떻게 변해 갈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어요. 공간 전체가 통째로 없어져 버리니까, ‘원래 이 자리가 뭐였지?’ 하게 되잖아요. 특색 있는 공간들이 나중에 다 없어질거라 생각하니 한 장이라도 더 찍게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은평구 사람들이 동네에 애착이 많다는 걸 느껴요.
송파구로 이사 와서 궁금했던 게 있어요. 롯데타워가 지어지기 전에 그 일대에 포차거리가 있었대요. 분명히 이 거대한 건물이 들어오기 전에 그 자리에 뭔가 있었고, 그걸 다 철거하고 새로운 게 들어왔을 텐데 막상 정보를 찾으려고 하니까 남겨진 게 없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은평구 찍어 놓길 참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베푸는 그 마음이 참 좋더라고요.
오래된 가게일수록 먼저 사라지겠다 싶어서 동네의 오래된 가게를 위주로 남겼어요. 연신내 ‘갈현식품’도 뒤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GTX 만든다고 정신없는데 그 건물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분명 이것도 언젠가 없어지겠지하며 사진으로 남겼죠.
더운 날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정류장 바로 뒤에 있는 잡화점에서 매년 여름마다 정류장에 메모를 붙여놓더라고요. 더우니까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셔도 된다고요. 물건을 사지 않아도 시원한 곳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그 마음이 참 좋더라고요.
그저 특이해서 찍었던 사진도 많아요.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나중에 그냥 봐도, 참 웃기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요즘 새롭게 생기는 곳의 간판은 뭔가 획일적으로 다 맞춰진 느낌인데, 옛날 이발소나 미용실 간판을 보면 다 특색있어요. 예전에는 사실 그걸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잡화점 앞 버스 정류장에 붙여진 메모와 연신내 ‘갈현식품’ ©은평필름
나만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죠.
‘은평필름’에 이사 간다는 게시물을 올렸더니 ‘너무 멀어서 다시 오시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아쉬워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물론 저도 의미를 가지고 찍기 시작했지만, 보는 사람들도 이걸 의미 있게 봐주셨구나, 나만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죠.
얼마 전에 제가 기고했던 오마이뉴스 기사를 다시 읽다가 2년 전 댓글을 이제야 본 거예요. 뭔가를 바라고 찍은 건 아니었지만, 찍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로 보람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누군가의 글에 한마디라도 건네주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은평구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으니까, 옛날에도 분명 사진을 많이 찍었을 거예요. 다른 점이라면 똑같이 골목이나 전깃줄 사진을 찍더라도 이제는 단순한 기록용이 아닌 거죠. 남기기 위해 찍는 거라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서 찍게 되더라고요. “여기 되게 좋다.” 하면서 그냥 지나쳤던 곳도 이젠 남길 공간도 있겠다,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으니 좀 더 자세히 남겨봐야겠다로 바뀐 거죠. 동네가 변해가는 모습을 남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공사가 진행되면 주변도 바뀌겠지 싶어 그 주위를 더 찍기도 하고요. 공사가 끝나고 나서 전에 남겼던 사진을 보는 것도 그것만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좌)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에요. ©유나
(우) 응암동 대림시장 ©은평필름
동네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은평구에 사진관을 하나 열어서 동네 어르신들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고 떠난 게 진짜 아쉬워요. 응암시장에서 불광천으로 내려가는 길에 노인복지센터가 있어요. 그런 곳과 협력해서 어르신들 사진도 찍어 드리고, 은평구 사진 전시 같은 것도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트위터 팔로워 천 명 넘으면 하려고 했던 엽서 이벤트는 꼭 할 거예요. 엽서 제작도 그렇고, 사진 전시도 그렇고 은평구에서 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먹고 싶은데도 많고, 여름에 먹어야 하는 곳도 있는데... 이젠 그곳들을 가려면 마음먹고 가야 한다는 게 조금은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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