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2기

from 엉겅퀴, 물때를 계산하듯 : 강화도 여행기

유난히 퇴근 직전까지 일이 생기던 어느 금요일 저녁, 바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서둘러 나를 기다리던 차에 올랐다. 친구와 강화도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비록 서해의 짙은 노을은 보지 못하겠지만 차창 너머로 한강 노을을 실컷 보았다. 서울과 멀어지는 도로 위에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일상의 조각을 떨어뜨렸다. 강화대교를 건널 즘에는 두 손이 텅 비어 있길 바라며. 달리고 달리다 어둠 속에서 컴컴한 바다를 발견했을 때 강화에 도착함을 실감했다.

  혼미한 8월을 매듭짓기에 강화는 아주 좋은 도시였다. 밤에 찾아간 숙소 근처 돈대*는 숨을 곳이 되어 주었다. 바다도 집도 보이지 않는 돌담에 둘러싸여 번잡함을 뒤로한 채 고요히 숨어 있었다. 달빛이 허락하는 시야 안에서 걷고, 다리에 스치는 이슬을 느꼈다. 다음 날 낮의 강화는 조용한 밤과 달리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고향인 거제에서 섬마을은 질리게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또 달랐다. 사람들이 모여 활기를 만들었고, 넓은 논밭과 그 너머의 바다, 바다 너머 또 다른 섬 등선, 그 위로 넓은 하늘이 새삼스레 세상을 보여줬다.

*돈대 : 홍수 때 침수 방지나 군사용 목적 등으로 터를 쌓아 주변 지대보다 높고 평평하게 만든 소규모의 대지 (출처_두산백과)

카페 앞에서 만난 작은 순무밭

그러던 중 맛있는 커피와 카스테라 인절미를 찾아간 카페 ‘곧은’에서 강화 유니버스의 <결과 보고서>를 읽게 되었다. 강화 유니버스(@ganghwauniverse)는 우리가 다른 관점으로 지역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살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고민을 하는 단체이다. 보고서에는 청년의 지역 이주와 정착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또 이를 실험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강화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유용하게 작동하는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특히 로컬의 자원을 활용하여 일하는 지방 살이를 목격한 것이 새로웠다. 내게 지방은 일거리도 사람도 연결의 기회도 부족하여 돈을 버는 방법이 한정된 장소였는데, 이곳에는 책방, 양조장, 빵집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갔던 카페 ‘곧은’도 아버지가 하시는 방앗간 일을 이어받아 카페에서 떡 디저트를 파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뭔가 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또 서로 연결되어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게는 대화에 적절한 어휘를 고민하는 것부터,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문화를 고민하고 이를 포스터나 SNS로 알리는 일도 했다. 이곳에서 비슷한 삶의 방식을 지지해 줄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이러한 만남이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러모로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지역의 삶을 들춰본 듯했다.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는 것 이상으로 이 동네와 내가 섞이고, 사람들과 정서적인 교류까지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은 성인 이후 느껴보기 힘들었던 ‘주민’의 감각이기도 했다.

“참여자의 회고에서도 항상 나왔던 키워드가 ‘용기’... 이주할 용기보다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였죠.”

탐방 인터뷰 <다채로운 강화에서 용기를 얻고 있어요> 中

  강화 유니버스를 운영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구성원 성결님은 프로그램 참여차 강화에 방문하고 돌아가는 이들이 용기를 얻고 간다고 말했다. 그 용기는 결국 어느 곳에서나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직접 택한 강화도라는 환경에서 잠시 동안 내 방식대로 살아 본 사람들이 앞으로도 어디에서나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다는 믿음을 빚고 돌아가는 게 아닐까.

배부른데도 정말 맛있게 먹었던 카페 곧은의 섬세한 커피와 부드러운 카스테라 인절미

내게 서울은 오히려 그 용기를 잃게 되는 곳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택하지 않은 곳에서 적응하고 이곳의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 동안 점차 내가 택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잃어간 듯하다. 사람은 결국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을 따라 의심 없이 이곳으로 왔다. 막상 서울에서 내가 품고 사는 마음은 어느 곳에서나 잘 살 수 있다는 용기가 아닌, 서울이어야만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의심 없는 불안이었다. 미래의 나는 서울을 배경으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아주 조금 더 넓은 전월세 집에 살고, 또 다른 마음 붙일 구석을 여전히 찾아다닐 거였다. 숨 돌릴 틈 없이 영감과 새로움에 자극받지만 정작 도시에서 나의 미래는 제한적이었다. 지방에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을 단순히 도피, 자연, 지침 등의 키워드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당장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됐으니 다시 찾아 나서면 될 것이다.

  서해 바다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그 모습이 달랐다. 내가 보고 싶은 바다를 위해서는 물때를 맞춰 찾아가야 했다. 늘 깊고 가득 찬 바다가 있는 거제에서도 바다가 없는 서울에서도 굳이 필요 없던 세심하고 구체적인 고민이었다. 보고 싶은 바다가 늘 있는 것이 아니듯 내가 살고 싶은 삶도 직접 찾아가야지. 강화 여행 끝에 남은 건 물때를 계산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