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2기

from 해원, 내 (심장x)여름의 색깔은?

선선해진 밤중에 귀뚜라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요즘이에요. 본격적인 가을보다도 이맘때쯤 가장 센치해집니다. '올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하고요. 그 김에 여름을 돌아보았어요. 초록과 파랑으로만 생각했던 이 계절에 더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 여러 지역을 오가며 즐긴 여름의 색깔들을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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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연두색으로 가득한 5월

5월에는 자원활동가 자격으로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초여름의 낭만'이라는 슬로건과 '산골친구'라는 귀여운 활동가 이름에 반해 달려갔습니다. 낯선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잠시, 연둣빛으로 가득한 곳에서 정말 행복한 일주일을 보내고 왔어요.

저는 관객 안내 업무를 담당했어요. 한 시간 간격으로 뜨거운 안내 데스크와 시원한 등나무 운동장의 그늘을 오갔습니다. 남쪽 지역이기 때문인지 30도를 웃도는 5월은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8월의 낮과 다른 점이 있죠. 그늘이 무지 시원합니다. 등나무 운동장 그늘에 누워 멍 때리면 눈에 보이는 것은 처마에서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들, 운동장에 펼쳐진 잔디들, 입구 너머 보이는 버드나무까지 온통 연두색이에요. 무엇보다 다회용기 서비스 덕분에 이 색깔을 무책임하게 누리기만 한 것 같지 않아 좋았어요. 감당할 수 없이 넘치는 쓰레기통 대신 자리한 트래쉬버스터즈의 주황색 부스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무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10분만 걸으면 즐길 수 있는 연둣빛 산골영화제, 내년 초여름에 꼭 방문해 보세요. (밤에는 정말 추우니 털옷 필수! 이가 오들오들 부딪힐 정도예요.)
*트래쉬버스터즈: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다회용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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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의 장미

장미는 매년 6월에 피고 지며 여름의 시작을 알려왔지만 돌아보니 올여름 장미의 빨강은 유독 폭염 경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시흥에는 작은 장미 공원이 있습니다. 어릴 적 사진에는 장미가 많지만 학창 시절 내내 마른 가지뿐이었던 이곳. 정말이지 다 죽고 방치되어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대학교 3학년 6월, 친구와 산책하다 우연히 만개한 장미 공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쁘더라고요. 집과 학교만 오간 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을 잊을 수 없어, 장미 보기는 저만의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6월이 되면 온 동네방네 장미가 피었음을 알리고 기어이 지인들을 데리고 가죠. 그렇게 몇 년 다니다 보니 지는 장미의 향이 더 짙다는 걸 느꼈는데 동의하시나요? 여러분이 장미가 초여름에 피고 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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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짙은 초록으로 우거진 7월

노을공원 한편에는 노을공원시민모임이 관리하는 나무자람터가 있습니다. 한때 쓰레기 섬이었던 난지도 땅에 생태적 생명을 되찾아주자는 목표를 갖고 있죠. 그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무심기 봉사활동'. 저는 두 달에 한두 번 정도 가며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7월의 나무심기는 가는 길부터 더위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친구와 서로를 원망하고 이게 바로 이열치열이라며 각성하기를 반복했어요. 도착 후 활동가님께 '오늘 너무 덥다' 했더니 '최근 들어 가장 시원하다'라는 답을 받고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죠.😅 2달 만에 찾은 이곳은 이전 모습이 겹치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있었어요. 변화와 더위를 뒤로하고 진행된 나무심기. 과거가 과거인지라 한 삽 팔 때마다 나오는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에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저를 비롯한 많은 봉사자분들과 활동가님들이 심어놓은 초록의 나무들을 보니 마음 한켠 편안해졌네요. 더운 날씨에 몸을 움직이며 시원하게 땀을 흘린 것도 오랜만이라 참 개운했고요. 여름에 시원한 곳만 찾기 바빴는데 가끔 이런 경험도 건강하겠다, 생각한 날이었습니다.

1천명의나무심는개미들 신청 링크를 남깁니다. 활동가님 마다 다르지만, 들꽃다발부터 깨알 생태 수업까지 작은 이벤트들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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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잊을 수 없는 8월의 파랑

8월에는 부산 광안리에서 진행된 '파도타기 북클럽'에 참여했어요. 5만 원에 패들보드(3시간)+워터프루프 북+음료+사진촬영이라니!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지만 이런 재밌는 프로그램은 또 놓칠 수 없죠. 당일치기로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이었는데 파도가 잔잔해서 기분이 묘했어요.

오전 9시, 광안대교에 절묘하게 걸친 구름을 바라보며 패들보드를 타고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마련된 도킹 스테이션에 모여 책을 읽었어요. 풍경을 감상하느라, 나른함을 누리느라 정작 책은 많이 읽지 못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1시간 후, 뜨거운 햇볕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쯤 흩어져 광안대교까지 나아갔습니다. 해변에서는 가까워 보였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게 얼마나 야속하던지요. 그래도 더우면 잠시 바다에 온몸을 담그기도, 패들보드에 눕기도 하며 유유자적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오에 해변으로 돌아와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올해 가장 시원한 한 모금이었고요.

매년 광안리 북카페 '두두디북스'에서 진행하는 것 같아요. 여름 이색 활동으로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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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가족휴가를 못 다녀와서 툴툴대고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보니 꽤나 알차게 즐겼네요. 달별로 색깔별로 여름을 들여다보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너무 더웠다는 이유만으로 올여름을 안 좋은 기억으로 남길 뻔했어요. 여러분의 여름은 무슨 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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