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여이진,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논두렁에서 스케이트 탔어요.

서울식물원 주제원 내 한옥 건물에서 '오후반차'의 티타임 프로그램 참여. 한옥 안에서 식물원을 바라 본 풍경이다.

“서울 어디 살아요?”

“강서구요. 마곡 근처. 서울식물원에 걸어서 가요.”

“와 그 동네 진짜 좋던데. 식물원도 좋고, 예쁜 카페도 많잖아요.”

“저 어렸을 때는 스케이트 타던 곳인데 많이 바뀌었죠.”

“엥?”

한창 에너지를 분출하던 초등학생 시절, 겨울이 되면 친구들과 꼭 찾았던 곳이 있다. 바로, 매 겨울 개장된 마곡 논두렁 스케이트장이다. 4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입장권과 스케이트 대여권을 받아 스케이트를 타며 흘린 땀이 다시 식을 때까지 탔다. 논 위의 고깔을 사수하면 밀고 다니며 어설프게나마 피겨 선수를 흉내 낼 수 있었고, 그러다가 꼭 한 번씩 녹은 얼음에 빠지는 친구도 있었다. 배가 고프면 삼삼오오 모여 꼬깃꼬깃한 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고, 다시 빙빙 돌았다. 스케이트가 지겨우면 얼음 썰매를 서로 끌어주고 스스로 얼음을 마구 찍기도 하며 또 한 번 신나게 놀았다. 아이스링크장처럼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아야 할 필요도 없었으니, 어른으로부터 질서를 끝없이 배우던 우리에겐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 곳이었을까.

하염없이 공부하던 학창 시절의 어느 날 문득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올라 논두렁 스케이트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논밭이 모두 메꿔져 있었다. 그 논밭은 모두 건물이 되었다.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나의 추억은 땅속 깊이 묻혔다. 

서울 강서구. 불과 5년 전만 해도 강서구에 산다고 하면 서울 사람도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봤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식물원과 마곡 덕분에 매우 유명해진 동네다. 나 또한 산책 삼아 식물원 한 바퀴를 돌고, 전시나 뮤지컬 등 각종 문화생활도 즐기며, 예쁜 카페에 앉아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때의 마곡, 강서구가 생각난다. 잠시나마 해방감에 젖을 수 있었던 스케이트장, 집으로 가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주었던 방방이, 온 가족이 모여 비닐하우스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던, 서쪽 끝자락에서 굳건히 버티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 그런 나의 소중한 동네가.

서울식물원 호수 주변 산책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