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나연, 아무것도 없는 신례원으로 설렁설렁 동네 마실

저는 충남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는데 이 마을에서 3대가 살았습니다. 외할아버지, 엄마, 저 이렇게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죠. 대학에 진학하느라 서울에 와서 이제 이 고장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산 세월이 길어지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제 인생의 전반전을 보낸 이 동네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거기가 어디냐고요? 충남 예산군 하고도 예산읍에 있는 '신례원'입니다. 아산에서 예산으로 넘어오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인구는 4천 명 남짓한데 (송파구 가락2동 인구가 약 3만) 버젓이 역이 있습니다. 장항선에 있는 신례원역입니다. 신례원의 '원'은 옛날 역참이 있던 곳으로 관리들이 출장을 갈 때 역을 바꾸고 하루 묵던 지역을 뜻합니다. '조치원', '사리원' 등도 그런 맥락에서 이름이 지어졌죠. 그래서 그런지 21세기에도 역이 존재합니다. 딱히 구경거리가 많거나 맛집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신례원 유일의 감성 카페도 뒤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럼 같이 떠나보시죠. 신례원 여행은 서울 경기 혹은 전북에서 출발한다면 역시 기차가 좋습니다. 기차가 불편하신 분들은 차를 타고 신례원역 앞 널널한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여행을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신례원역에서 나오면 정면 좌측에 대한통운 사무실 건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폐쇄되었고 이 지역이 과거 화물의 중심지였다는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담한 2층 건물인데 새마을 운동 시절 실용적인 건축 양식입니다. 담쟁이덩굴이 멋지게 어우러졌어요. 이 곳을 여행자 쉼터나 게스트 하우스, 북카페 등으로 활용하실 분? 신례원역에 문의해 보세요.

새벽, 신례원역 앞 옛 대한통운 화물 관리소
이 건물 맞은편으로 짧은 지하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을 지나 4차선 도로를 건너세요. 모텔 두 개와 카페 하나가 있는 곳 앞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서면 논두렁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가 아무것도 없으나 그래서 좋은 산책 코스입니다. 논도 있고 비닐하우스도 있습니다.
신례원역 뒤 논길 1 (좌) 신례원역 뒤 논길 2 (우)

주로 쪽파를 많이 심고, 토마토, 호박도 키웁니다. 운이 좋으면 농사 짓는 분께 바로 작물을 살 수 있습니다.
걸어 걸어 수철리까지 도착했다면 당신은 걷기 만렙!
수철리는 꽤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어렸을 때는 ‘수 천 리'를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라 ‘수철리'구나 싶었고 수철리 저수지가 학교 소풍 장소이기도 했는데 걷다 걷다 다리가 아파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른 걸음으로는 느직느직 (신례원역 기준으로) 두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수철리에 도달하면 조그마한 체육공원이 있고 내가 운동 좀 한다, 다리 근력이 살아있다 싶으면 ‘탈해사'라는 절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우측 사진: 수철리 토마토 판매 농가
90이 넘은 주지 스님이 젊은 시절 지게로 돌과 나무를 날라 지은 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탈해사로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절이 증축도 되고 더 멋있어졌습니다. 탁 트인 경관이 일품입니다.
탈해사에서 약수 한잔하고 내려와서 신례원역으로 돌아오시다가 이번에는 신례원역 번화가(?)도 둘러보시죠. 아까 신례원역 옆 지하터널 기억나시죠? 지하터널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가게와 슈퍼, 병원, 방앗간 등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구석구석 ‘한성여관’ ,‘온양 여인숙' 같은 오래된 여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8~90년대 충방(충남방적)으로 신례원 경기가 번창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영화를 누렸던 여관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던 충남방적 건물과 사원 아파트 건물터가 남아있습니다.

8~90년대 신례원에 젊음과 활기를 불어넣었던 충남방적 정문 간판. 폰트가 클래식하다.

신례원 충남방적 정문
이 앞에서 월급날이면 외상값 받으러 오는 가게 상인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저는 비 오는 날 아빠 우산 갖다 드리러 가 본 적이 있네요. 유치원 때는 견학을 가서 사원 식당에서 요구르트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충방은 직원을 위한 기숙사, 아파트, 실업계 학교를 운영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이 옆에는 신례원초등학교가 있고 그 뒤에는 충방에 다니는 여직원들의 기숙사와 분식집, 선물가게, 미용실 등이 있어 화려했었습니다. 지금은 이 일대가 폐가가 되어 쓸쓸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산군이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 공간 정비 사업' 대상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충남방적 부지를 재건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신례원 충남방적 정문 앞 관리 사무소. 시계가 멈춰있다.
충남방적과 그 일대를 둘러보다가 신례원 버스 터미널 근처 카페 '헤이데이'에서 다리를 쉬며 오늘 하루를 회고하고 간단한 일기를 써보세요. '헤이데이'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간판이 작으니 잘 살펴보세요.

신례원 카페 헤이데이. 붉은 벽돌 건물 2층. 겉모습보다 속이 훨씬 더 다정한 공간. 출처: https://blog.naver.com/gyj1119/222640855725

신례원 카페 헤이데이 내부. 출처: https://blog.naver.com/toridays/223009205856
설렁설렁 신례원 한 바퀴 어떠셨나요? 머리 비우고 가볍게 진짜로 떠나보세요.
로컬 에디터 3기
from 나연, 아무것도 없는 신례원으로 설렁설렁 동네 마실
저는 충남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는데 이 마을에서 3대가 살았습니다. 외할아버지, 엄마, 저 이렇게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죠. 대학에 진학하느라 서울에 와서 이제 이 고장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산 세월이 길어지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제 인생의 전반전을 보낸 이 동네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거기가 어디냐고요? 충남 예산군 하고도 예산읍에 있는 '신례원'입니다. 아산에서 예산으로 넘어오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인구는 4천 명 남짓한데 (송파구 가락2동 인구가 약 3만) 버젓이 역이 있습니다. 장항선에 있는 신례원역입니다. 신례원의 '원'은 옛날 역참이 있던 곳으로 관리들이 출장을 갈 때 역을 바꾸고 하루 묵던 지역을 뜻합니다. '조치원', '사리원' 등도 그런 맥락에서 이름이 지어졌죠. 그래서 그런지 21세기에도 역이 존재합니다. 딱히 구경거리가 많거나 맛집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신례원 유일의 감성 카페도 뒤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럼 같이 떠나보시죠. 신례원 여행은 서울 경기 혹은 전북에서 출발한다면 역시 기차가 좋습니다. 기차가 불편하신 분들은 차를 타고 신례원역 앞 널널한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여행을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신례원역에서 나오면 정면 좌측에 대한통운 사무실 건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폐쇄되었고 이 지역이 과거 화물의 중심지였다는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담한 2층 건물인데 새마을 운동 시절 실용적인 건축 양식입니다. 담쟁이덩굴이 멋지게 어우러졌어요. 이 곳을 여행자 쉼터나 게스트 하우스, 북카페 등으로 활용하실 분? 신례원역에 문의해 보세요.
새벽, 신례원역 앞 옛 대한통운 화물 관리소
주로 쪽파를 많이 심고, 토마토, 호박도 키웁니다. 운이 좋으면 농사 짓는 분께 바로 작물을 살 수 있습니다.
걸어 걸어 수철리까지 도착했다면 당신은 걷기 만렙!
수철리는 꽤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어렸을 때는 ‘수 천 리'를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라 ‘수철리'구나 싶었고 수철리 저수지가 학교 소풍 장소이기도 했는데 걷다 걷다 다리가 아파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른 걸음으로는 느직느직 (신례원역 기준으로) 두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수철리에 도달하면 조그마한 체육공원이 있고 내가 운동 좀 한다, 다리 근력이 살아있다 싶으면 ‘탈해사'라는 절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우측 사진: 수철리 토마토 판매 농가
90이 넘은 주지 스님이 젊은 시절 지게로 돌과 나무를 날라 지은 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탈해사로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절이 증축도 되고 더 멋있어졌습니다. 탁 트인 경관이 일품입니다.
탈해사에서 약수 한잔하고 내려와서 신례원역으로 돌아오시다가 이번에는 신례원역 번화가(?)도 둘러보시죠. 아까 신례원역 옆 지하터널 기억나시죠? 지하터널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가게와 슈퍼, 병원, 방앗간 등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구석구석 ‘한성여관’ ,‘온양 여인숙' 같은 오래된 여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8~90년대 충방(충남방적)으로 신례원 경기가 번창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영화를 누렸던 여관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던 충남방적 건물과 사원 아파트 건물터가 남아있습니다.
8~90년대 신례원에 젊음과 활기를 불어넣었던 충남방적 정문 간판. 폰트가 클래식하다.
신례원 충남방적 정문
이 앞에서 월급날이면 외상값 받으러 오는 가게 상인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저는 비 오는 날 아빠 우산 갖다 드리러 가 본 적이 있네요. 유치원 때는 견학을 가서 사원 식당에서 요구르트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충방은 직원을 위한 기숙사, 아파트, 실업계 학교를 운영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이 옆에는 신례원초등학교가 있고 그 뒤에는 충방에 다니는 여직원들의 기숙사와 분식집, 선물가게, 미용실 등이 있어 화려했었습니다. 지금은 이 일대가 폐가가 되어 쓸쓸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산군이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 공간 정비 사업' 대상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충남방적 부지를 재건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신례원 충남방적 정문 앞 관리 사무소. 시계가 멈춰있다.
충남방적과 그 일대를 둘러보다가 신례원 버스 터미널 근처 카페 '헤이데이'에서 다리를 쉬며 오늘 하루를 회고하고 간단한 일기를 써보세요. '헤이데이'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간판이 작으니 잘 살펴보세요.
신례원 카페 헤이데이. 붉은 벽돌 건물 2층. 겉모습보다 속이 훨씬 더 다정한 공간. 출처: https://blog.naver.com/gyj1119/222640855725

신례원 카페 헤이데이 내부. 출처: https://blog.naver.com/toridays/223009205856
설렁설렁 신례원 한 바퀴 어떠셨나요? 머리 비우고 가볍게 진짜로 떠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