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3기

from 마구모, 등잔 밑이 귀엽다, 나의 로컬 안양

저 안양 살아요

라고 하면 10명 중 5명은 갸웃대고 2~3명은 mc 스나이퍼의 ‘안양일번가’라는 노래를 안다며 무서워했다. (가사의 대부분이 욕이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도 학생 때는 안양일번가에 가면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했다. 오해를 풀자면 안양일번가 주위에 있는 중고등학교만 해도 스무 교가 넘는다. 혈기 왕성한 학생들이 모여드니 사건・사고는 당연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일본 교복 스타일이라며 큰 와이셔츠에 긴 양말을 신고, 용돈을 모아 즉석떡볶이를 먹던 시절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내 세상은 넓어져 갔다. 주말이 되면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이태원으로, 강남으로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안양은 참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왁자지껄하던 안양일번가에는 임대 현수막이 늘어났다.

서울에 오가며 피곤함을 느끼다가 문득, 안양에서도 잘 지내고 싶어졌다.

*참고로 안양시는 두 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평촌・범계・인덕원이 있는 동안구, 안양・석수・명학・관악이 있는 만안구로 나뉜다. 이 글은 만안구 중에서도 안양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귀여운 도시

어느 날, 집에 바래다주던 친구가 말했다. 우리 동네는 참 고즈넉해서 좋다고. 정작 동네 주민인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말마다 놀러 다녀도 지치지 않았던 건 나의 동네가 항상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낀 색안경을 벗자 많은 것들이 보였다.

경리단길을 따라 하냐며 비웃던 댕리단길에 하나둘 채워지던 가게들. 꾸준히 독서 모임을 주최하는 독립서점. 뜨개실 가게 문 앞을 막은 고양이를 난감하게 쳐다보는데 문 열어주면 된다고 웃던 맞은편 족발집 사장님.

나의 동네는 멈춰있는 것 같아도 성실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꽤나 귀엽다. 마치 달팽이처럼.

안양천 산책을 하다가 바라본 안양대교

만약 당신이 안양에 온다면

전에는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갈 데 없으니 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곤 했다. 나의 동네를 구석구석 관찰하는 요즘. 친구들이 오면 꼭 데려갈 장소를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안양일번가 | 걸어서 3분 🐾

안양역에 내리면 바로 안양일번가가 시작된다. 탕후루를 들고 다니는 학생부터 술 한잔 걸치러 나온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다. 카페, 밥집, 보드 게임방, 영화관까지 있어 하루를 보내기도 충분하다.

☕️ 소사이어티카페 경기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139번길 56-6 1층

체인점만이 살아남는 안양일번가에서 몇 안 되는 개인 카페 중 하나다. 커피도 맛있지만, 사실 난 와플을 먹으러 이곳에 간다. 갓 구운 와플은 핫케이크처럼 폭신하고, 계란빵처럼 달짝지근하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올려 와플 한 접시를 비우고 나면 하나 더 시킬까 고민하게 된다.

소사이어티의 생딸기 와플

🍺 금별맥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292번길 35 1층

사실 금별맥주의 본점은 안양이다. 금별맥주 1호점이 생기던 시절, 나는 경쟁 술집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금별맥주를 질투하던 사장님께는 미안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금별맥주를 보면 내심 반갑다. “안양이 본점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얘깃거리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안양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마시러 갈 땐 금별맥주를 찾는다.

마무리로 먹기 좋은 살얼음 맥주와 반통 파인애플

안양 중앙시장 | 걸어서 10분  🐾

안양일번가 건너편엔 중앙시장이 있다. 안양일번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북적인다. 동네 시장치고는 나름 큰 편이라 갈 때마다 새로운 가게를 발견한다. 떡볶이 포차에서 가볍게 먹을 수도 있고, 찐 노포 가게에서 국밥 한 그릇 먹기에도 좋다.

🧶 울마트 경기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125번길 34

뜨개질을 시작한 뒤로 분기별로 방문한다. 세련된 가게 보다는 사랑방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가게에 있을 때는 뜨개실에 둘둘 말린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진다. 주기적으로 뜨개질 레슨도 하는데, 항상 실을 고르는 척 곁눈질에 그친다. 언젠가는 용기 내서 받아봐야지.

울마트의 터줏대감 냥이, 코에 흰 점이 있어서 ‘콧물이’로 불린다

🍯 호이호떡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305 왕패션타운 1층

사실 호떡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1년에 1~2번 먹을까 말까? 어느 날 호떡집 앞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게 아닌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자연스럽게 뒤에 섰다. 방금 튀긴 잡채 호떡은 바삭하고 고소했다. 순식간에 먹어서 느끼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호떡 하나에 2,000원이 넘는다고 투덜거렸지만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주문 즉시 만드는 갓구운 호떡

댕리단길 | 걸어서 15분 🐾

조용하고 특색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댕리단길에 가면 된다. 서울에 있을법한 감성의 가게가 곳곳에 숨어있다.

☕️🥂 어버트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323번길 21 1층

어버트피는 친구가 안양에 오면 제일 먼저 데려가는 카페다. 인테리어부터 음료, 디저트까지 실망한 적이 없다. 내츄럴 와인을 따로 구매할 수도 있다. 와인을 잘 몰라도 어떤 음식과 페어링할 건지, 평소 입맛은 어떤지 등등 세심하게 추천해주신다. 낮에는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와인 한잔하기에 좋은 곳.

크리스마스의 어버트피와 다양한 내추럴 와인

안양천 | 버스 타고 20분 🚌

걷을만한 곳을 찾는다면 안양천을 추천한다. 길이 잘 닦여있어 걷기도 좋고 천을 바라보며 물멍도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여름마다 몸을 담그며 놀곤 했다. 요즘에는 산책 나온 강아지를 구경하며 사리사욕을 채운다.

🌸 충훈동 벚꽃길 경기 안양시 만안구 충훈동

만약 벚꽃 피는 계절이라면 충훈동에 가야 한다. 사실 쑥스럽지만 내가 사는 동네다. 벚꽃이 필 때면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언젠가부터 벚꽃 동네로 통한다. 덕분에 출근길 버스에서도 벚꽃 구경을 실컷 한다. 여의도만큼 크진 않아도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밤에 보는 벚꽃부터 질 무렵의 벚꽃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