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4기
from 하모라ㅣ꽃 피는 여름

대구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맞은 여름, 산책길의 오래된 담장에는 주먹만 한 주황빛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난 뒤, 내겐 여름도 꽃피는 계절이 되었다. 대구엔 능소화로 유명한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 다녀왔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길가에 작은 장이 섰다. 죽은 생선 위로 파리가 앉았다 쫓겨난다. 비릿한 냄새를 지나쳐 걷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진다. 향긋한 냄새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쿠리 한가득 복숭아가 담겨있다. 벌써 복숭아 철이 온 것이다! 복숭아를 쳐다보다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하게 웃으며 길을 계속 걸었다.
오랜 뚜벅이 생활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나지만, 걷다 보니 대구에 여름이 왔다는 게 온 피부로 느껴진다. 이대로 걸어서 26분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택시에 몸을 실었다. 분명 내비게이션을 따라왔는데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겼다. 뭘 모르는 내가 봐도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요금을 깎아주었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는 인흥마을로도 불린다.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터를 닦아 만든 남평문씨 집성촌이다. 능소화는 원래 양반집에서만 기를 수 있던 귀한 꽃이라, 서민이 능소화를 키우다 발각되면 양반을 능멸한 죄로 곤장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보러, 사람들은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서민들은 감히 넘볼 수 없던 양반 꽃이, 양반의 기개만큼이나 높은 기와 담장을 타고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곳.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풍경은 양반 꽃이라는 능소화의 별칭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뒤늦게 찾아 온 관광객을 맞는 능소화
절정이 지난 능소화는 서너 군데만 남아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내 뒷모습을 찍었는데, 사진을 자신의 글에 첨부해도 되는지 묻는다. 사진을 보니 얼굴은 나오지 않아서 흔쾌히 허락했다. 능소화를 보러 대전에서 왔다는 그 여인은, 사실 이보다 전에 오고 싶었으나 아버지께서 다른 곳에 먼저 가자고 하셔서 오늘에서야 이곳에 왔다고 한다.


소나무 그늘 길을 따라 걸으면 | 보이지 않던 담장 안이 보인다. |
아주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마을 끝에 있는 소나무 길로 향했다. 지난 방문 때, 문화 해설사가 알려 준 길이다. 남평문씨 본리세가는 담이 높아 담장 안을 볼 수 없는데, 이곳에 올라와 보니 담장 안이 보인다. 그늘진 곳에 서서, 바람을 쐬며 멍하니 있는데, 어디서 ‘투둑, 툭’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담장 너머에 있던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 사이로 벌들이 끊임 없이 윙윙 거리며 날아다닌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 능소화를 찍고 있는데, 양산을 쓴 아주머니가 친구에게 사진을 얼른 찍으라고 외친다. 벌 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떠난 자리에 가보니 발전소처럼 끊임없이 벌들이 윙윙댄다. 정말로 소리가 커서 닭살이 쭈뼛 선다.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못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치면 이날 나는 진짜 연못을 본 셈이다.
마을 앞, 인흥원의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한창이다. 어느 것은 이미 지고 있고, 어떤 것은 이제 막 봉오리가 생겼다. 호빵맨처럼 양 볼과 코가 벌게진 할아버지께서 집중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괜히 열정적으로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가 바로 대전 아주머니의 아버지였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사진을 찍은 걸 보니, 제법 만족스러운 여행인가 보다. 연못 옆으로 난 작은 길 너머엔 초록빛이 한창인 밭이 있다. 하얀 새 한 마리가 밭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싱그러운 초록빛 밭 뒤로는 짙은 녹색 산이 있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선명한 여름의 색으로 눈이 시리다.


남평문씨 본리세가와 인흥원의 알록달록한 색 때문에 눈이 피로해졌다면, 시선을 조금 돌려 초록빛 밭을 보면 된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 번씩은 걸음을 멈춰 서는 곳.
누군가는 이 글을 사진에 담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친다.
로컬 에디터 4기
from 하모라ㅣ꽃 피는 여름
대구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맞은 여름, 산책길의 오래된 담장에는 주먹만 한 주황빛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난 뒤, 내겐 여름도 꽃피는 계절이 되었다. 대구엔 능소화로 유명한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 다녀왔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길가에 작은 장이 섰다. 죽은 생선 위로 파리가 앉았다 쫓겨난다. 비릿한 냄새를 지나쳐 걷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진다. 향긋한 냄새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쿠리 한가득 복숭아가 담겨있다. 벌써 복숭아 철이 온 것이다! 복숭아를 쳐다보다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하게 웃으며 길을 계속 걸었다.
오랜 뚜벅이 생활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나지만, 걷다 보니 대구에 여름이 왔다는 게 온 피부로 느껴진다. 이대로 걸어서 26분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택시에 몸을 실었다. 분명 내비게이션을 따라왔는데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겼다. 뭘 모르는 내가 봐도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요금을 깎아주었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는 인흥마을로도 불린다.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터를 닦아 만든 남평문씨 집성촌이다. 능소화는 원래 양반집에서만 기를 수 있던 귀한 꽃이라, 서민이 능소화를 키우다 발각되면 양반을 능멸한 죄로 곤장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보러, 사람들은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서민들은 감히 넘볼 수 없던 양반 꽃이, 양반의 기개만큼이나 높은 기와 담장을 타고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곳.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풍경은 양반 꽃이라는 능소화의 별칭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뒤늦게 찾아 온 관광객을 맞는 능소화
절정이 지난 능소화는 서너 군데만 남아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내 뒷모습을 찍었는데, 사진을 자신의 글에 첨부해도 되는지 묻는다. 사진을 보니 얼굴은 나오지 않아서 흔쾌히 허락했다. 능소화를 보러 대전에서 왔다는 그 여인은, 사실 이보다 전에 오고 싶었으나 아버지께서 다른 곳에 먼저 가자고 하셔서 오늘에서야 이곳에 왔다고 한다.
아주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마을 끝에 있는 소나무 길로 향했다. 지난 방문 때, 문화 해설사가 알려 준 길이다. 남평문씨 본리세가는 담이 높아 담장 안을 볼 수 없는데, 이곳에 올라와 보니 담장 안이 보인다. 그늘진 곳에 서서, 바람을 쐬며 멍하니 있는데, 어디서 ‘투둑, 툭’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담장 너머에 있던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 사이로 벌들이 끊임 없이 윙윙 거리며 날아다닌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 능소화를 찍고 있는데, 양산을 쓴 아주머니가 친구에게 사진을 얼른 찍으라고 외친다. 벌 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떠난 자리에 가보니 발전소처럼 끊임없이 벌들이 윙윙댄다. 정말로 소리가 커서 닭살이 쭈뼛 선다.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못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치면 이날 나는 진짜 연못을 본 셈이다.
마을 앞, 인흥원의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한창이다. 어느 것은 이미 지고 있고, 어떤 것은 이제 막 봉오리가 생겼다. 호빵맨처럼 양 볼과 코가 벌게진 할아버지께서 집중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괜히 열정적으로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가 바로 대전 아주머니의 아버지였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사진을 찍은 걸 보니, 제법 만족스러운 여행인가 보다. 연못 옆으로 난 작은 길 너머엔 초록빛이 한창인 밭이 있다. 하얀 새 한 마리가 밭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싱그러운 초록빛 밭 뒤로는 짙은 녹색 산이 있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선명한 여름의 색으로 눈이 시리다.
남평문씨 본리세가와 인흥원의 알록달록한 색 때문에 눈이 피로해졌다면, 시선을 조금 돌려 초록빛 밭을 보면 된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 번씩은 걸음을 멈춰 서는 곳.
누군가는 이 글을 사진에 담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