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서울) 꾸릉이ㅣ이방인으로 걷는 시간, 나의 로컬

2025-08-25

로컬 에디터 6기

from 꾸릉이ㅣ이방인으로 걷는 시간, 나의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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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꽤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저는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와 정착했지만 완전히 속할 수 없었던 도시,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또 낯설기만 한 곳. 이도 저도 아닌 마음 속에서 제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제가 살아낸 장소들이었습니다.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공간들, 그곳이 저의 로컬입니다.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입니다. 매일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낯설거나 특별해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흘러갑니다. 친구가 되어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서로는 여전히 낯선 사람일 뿐입니다. 부모님의 딸이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해야 하는 무게 또한 이 도시에서는 유난히 크게 다가옵니다. 


저는 자주 ‘이방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단순히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걸까요, 아니면 관계 속에서 스스로 거리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과 반응 때문에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고, 반대로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바라보아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선언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물리적 위치보다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과정을 온몸으로 경험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로컬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로컬은, ‘어디에 속하는가’보다 ‘어디를 살아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낯선 골목을 수없이 걸으며 익숙해진 풍경,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인사, 계절마다 달라지는 냄새와 빛.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결국 내 일부가 된 장소들. 그 모든 것이 나의 로컬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게 로컬은 단순한 주소가 아닙니다. 내가 살아낸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 낯선 골목을 수없이 걸으며 익숙해진 풍경, 계절마다 달라지는 성북천의 바람, 머뭇거리던 인사가 자연스러워지는 순간들.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제 일부가 되어버린 장소들, 그것이 저의 로컬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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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천의 밤, 흐르는 불빛과 기억” ⓒ꾸릉이


이방인으로서 저의 첫 로컬, 첫 동네는 성북구의 돈암동·보문동·삼선동이었습니다. 행정 구역상 경계는 불명확했지만 생활 반경은 뚜렷했습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해 성북천을 따라 청계천까지 걷다 보면 온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돈암시장은 오래된 노포들의 냄새와 활기로 가득했고, ‘태조감자국’은 제 20대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고 웃고 울던 기억이 그곳에 배어 있습니다. 성북천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름이면 버드나무 그림자가 드리웠고, 겨울엔 얼어붙은 물 위로 아이들이 돌을 던졌으며, 봄날에는 꽃잎이 물 위로 흘러내리며 작은 연극을 펼쳤습니다.


성신여대입구역은 늘 학생들로 북적였습니다. 하굣길을 달리던 중고등학생들, 무거운 책가방을 멘 대학생들. 그 활기 속에서 저는 저의 청춘을 확인했습니다. 보문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작은 카페들이 생겼다 사라졌고, 그곳에서 마셨던 한 잔의 커피와 잠시 머물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조금 더 걸으면 원룸촌과 오래된 도시 한옥이 공존하는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 건물, 골목에 널린 빨래와 햇살, 고양이들의 느릿한 발걸음. 신축 아파트와는 다른 오래된 삶의 냄새가 그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혜화문 도성 밖 거리는 역사와 현재가 겹쳐진 공간으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성북구 돈암동이라 불리던 동네는 주거지와 대학가, 세월과 청춘이 뒤섞인 공간이었습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무작정 걷고 풍경을 몸으로 익히며 시간을 쌓아갔던 곳. 그곳에서 저는 20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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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성곽길, 오래된 돌 위의 시간” ⓒ꾸릉이


얼마 전 오랜만에 낙산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봤습니다. 그대로인 것도, 변한 것도 있었습니다.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풍경 앞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한때는 버텨내야 했던 그 시간이 이제는 저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바로 시간의 힘이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이를 ‘장소의 시간성’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개념보다 체험으로 그 뜻을 먼저 알았습니다. 돈암시장의 냄새, 성북천의 계절, 골목의 기와집과 카페들이 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관계가 맺히며 기억이 축적되는 곳이라는 것을요. 저에게 장소는 안식처이자,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로컬은 시간이 개입된 장소입니다. 낯선 이방인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버티게 해 준 곳. 돈암동의 시장, 성북천의 바람, 낙산의 풍경이 모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서울 속 이방인으로 살았던 시간이 결국 저의 로컬을 형성한 것입니다. 버티던 시간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살아낸 로컬입니다. 여러분의 로컬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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