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의정부) 현 | 약재로 연결된 제기동의 사람, 시간, 공간

2025-07-29

동대문 로컬 잇기

from 현ㅣ약재로 연결된 제기동의 사람, 시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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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냄새가 이끄는 길, 제기동

 

어릴 적, 저는 엄마 손을 잡고 자주 한의원에 가곤 했어요.

병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 약재 냄새가 주는 왠지 모를 포근함, 차가운 청진기 대신 따뜻한 손으로 진맥을 짚어주시던 한의사 선생님, 그리고 제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약을 지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받았던 약은 참 썼는데, 이상하게도 먹고 나면 다 나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저에게 한의원은 따뜻하다는 인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기억을 다시 꺼내주는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제기동입니다.

 


한약 냄새가 반겨주는 골목

제기동역 2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걷다 보면 커다란 한옥 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서울 약령시장의 정문입니다. 그 문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익숙한 향기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니, 골목을 가득 채운 한약재 냄새 덕분에 어릴 적 한의원에 들어섰을 때처럼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가 방문한 이곳은 서울 약령시장입니다. 이곳은 전국 한약재 거래의 70%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약재 시장으로, 한약 관련 점포가 800여 개 이상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왕명으로 만들어진 약재상 집결지였고, 본격적인 대규모 시장은 1960년대 말부터 교통의 편의성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한약재 상인 모여들며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도심 풍경과 한약재가 어우러지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골목마다 약재를 파는 가게와 한의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가게 앞에는 처음 보는 약재들이 한가득 쌓여있고 가게 안 바닥에는 약재를 펼쳐 선풍기로 말리는가 하면, 약을 다리는 커다란 기계들이 가게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방문했던 당일, 흐린 날씨였지만 시장의 분위기 만큼은 차분함 속에서 환영받는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마음 놓고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사람 구경도 실컷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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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한의학을 이해하는 시간

약령시장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닿는 곳이 있습니다. 가게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전혀 달랐던 ‘서울한방진흥센터’입니다. 이곳은 시장 속에서 문득 마주할 수 있는 조용하고 쉼터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인데요, 조선시대 보제원이 있던 자리에 서울약령시의 전통과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동대문구에서 설립 및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내부에는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과 한방 카페, 족욕 체험장 등이 함께 마련되어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에는 한의학의 역사를 비롯해 여러 치료 도구, 한약재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어 오감으로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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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박물관 전시를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다가 어느 문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목표는 같지만, 

접근의 철학이 다르다.”


서양의학이 인체를 해부하고 분석하며 질병을 다룬다면, 한의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고,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여긴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한의학은 치료보다 ‘이해’가 먼저이기 때문에 어릴 적 한의원에서 느꼈던 그 따뜻함도 어쩌면 ‘이해하려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기동에서 느낀 진짜 로컬의 힘

그날 제기동은 조용했지만, 곳곳에 온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약령시장은 단순히 약재를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과 연결이 오가는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는데요, 잠깐의 짧은 대화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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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가게 앞에 진열된 약재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이런 데는 어쩐 일로 왔어?” 상인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냥 구경 왔어요. 골목에 들어오니까 냄새가 확 나더라고요.”
“그럼. 여기 있는 한의원이랑 약재상들이 몇 갠데. 나는 매일 이 냄새 맡으면서 살어~”

잠깐의 대화였지만 말끝마다 묻어 나던 정겨움이 제기동이라는 동네가 건네는 환대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날 시장을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누구도 바쁘게 손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약재를 손질하고, 문을 열어 두고, 향기를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죠.
늘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찾아오면 반겨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한 여유와 담담함.
로컬의 힘이란, 결국 그런 태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마무리하며

제기동은 생각보다 더 깊은 향기가 있는 동네였습니다.
코 끝에 맴도는 한약 냄새, 사람들 손끝에서 살아 숨 쉬는 오랜 지혜, 그리고 그 사이를 잇고 있는 사람.
한약 냄새는 결국, 사람 냄새였던 것이었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을 때,
약과 사람이 있는 제기동으로의 여유로운, 산책 어떠신가요?



📍방문한 곳

서울 약령시장 ㅣ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약령중앙로 10 

서울한방진흥센터 ㅣ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약령중앙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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