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1기

from 웅그, 흰 울릉도에 그려지는 봄의 색칠 즐기기

울릉도의 겨울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겨울왕국’입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최다적설량 순위 1위~3위가 모두 울릉도일 만큼 울릉도의 겨울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바탕의 스케치북과 같습니다. 그런 울릉도를 보고 있자면 지난 계절의 모든 순간과 추억이 하얗게 초기화되고 올해는 어떤 추억을 그려나갈지 기대하라면서 쉼 없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겨울에만 쌓을 수 있는 추억도 있습니다. 문이 열리지 않을까 열심히 쓸었던 추억과 동네 뒤편에 올라타고 놀던 눈썰매, 눈을 모아 만든 이글루. 눈이야 강원도나 다른 경상도에도 많이 오지만 울릉도라 더 깊은 추억될 수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울릉도란 스케치북에 서서히 ‘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중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전호나물입니다.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일 먼저 올라오는 나물로 산에서 만나면 비로소 이제 눈과 추위도 곧 끝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어지는 부지깽이와 명이, 산나물, 미역취, 고비와 같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녹색의 나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게 되며, 흰 바탕이었던 울릉도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녹색의 그라데이션이 칠해집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듬성듬성 이름 모를 들꽃들과 주민들이 집 밖에서 키우는 꽃들이 자기의 색을 뽐내기 시작하면 비로소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낍니다. 녹색 바탕의 울릉도에 섬말라리, 메밀꽃, 명이꽃, 수국, 섬바디 등의 많은 꽃들이 노랑, 파랑, 보라, 빨강의  다채로운 색들로 칠해집니다.  꽃을 좋아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면 나이 든 거라는 증거라고 합니다. 예전엔 싫었지만, 꽃과 봄의 색을 알아가는 것이 나이 든 것이라면 나이가 드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봄이 왔음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이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색이 바뀜으로 알아차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봄의 색도 점차 사라지고 강렬한 여름의 색이 오기에 오늘의 색에 충실히 즐겨봅니다.

섬말라리/수국

개양귀비 / 토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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