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로컬 잇기

from 쥰쓰ㅣ뒤돌아보지 않았다면 놓쳤을 청량리역의 숨은 이야기

우리 곁에 있던 '열차의 요람'

바쁜 일상 속에서 익숙한 풍경은 너무 쉽게 배경이 됩니다. 늘 스쳐 지나던 길 위에 우리가 미처 눈길조차 주지 못한 오래된 시간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청량리역 Ⓒ쥰쓰

수많은 열차가 오고 가는 청량리역의 분주함 아래에는 1938년, 경성과 원산을 잇는 철도망 확장을 위해 세워진 검수차고가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 최대 규모였던 이곳은 27칸의 차고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청량리가 철도 산업의 심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루 운행을 마친 증기기관차는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석탄 가루를 털고, 닳은 바퀴를 갈아 끼웠습니다. 그렇게 몸을 추스른 열차들은 다시 새벽 선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철도 기술의 발전과 도시화 과정에서 그 규모가 점차 축소되어 지금은 단 세 칸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69호로 지정된 채 조용히 도시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벽돌 건물은 80년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고요히 서 있습니다. 

청량리역 검수 차고 Ⓒ 동대문구 기억여행 공식 사이트

관문을 지나치며 놓친 것들

청량리역 하면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손에 쥐고 설렜던 순간 강원도 여행을 앞두고 가슴 뛰던 기억,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거나 떠나보내던 그 시간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청량리역은 언제나 우리의 관문입니다. 수많은 열차가 쉼 없이 오가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에서 사람들은 늘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으로 향하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렇게 청량리역은 ‘머무름’이 아닌 ‘통과’의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청량리역 Ⓒ쥰쓰

이번만큼은 발걸음을 늦추고 늘 스쳐 지나던 역 밖 풍경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익숙한 빌딩과 청량리역 담장 너머로 세월을 품은 검수차고의 붉은 벽돌 건물이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 속에서도 역사를 간직한 듯 고요합니다. 그 적막한 공간 속에서 도시의 역사를 차분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청량리역 담당 너머의 풍경 Ⓒ쥰쓰

닫힌 문 너머의 시간 

검수차고는 지금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철도 시설이자 문화재라는 특성상 일반인에게 개방된 공간은 아니지만, 담장 너머로 스며 나오는 80년의 세월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고단한 운행을 마친 기관차의 안식처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쟁, 산업화를 거쳐왔습니다. 한반도를 달렸던 열차들의 기억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열차를 품지 않으나, 검수차고는 KTX가 질주하는 미래의 시간 속에서도 청량리역의 오래된 기억과 역사의 결을 조용히 지키고 있습니다.

청량리역 Ⓒ쥰쓰

시간의 그늘, 돌아봐야 할 이유 

화려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검수차고는 존재만으로 도시의 깊이를 더합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도시에 그늘을 드리우듯, 이 벽돌 건물은 우리에게 잠시 걸음을 늦추고 삶을 돌아볼 만한 여백을 줍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바쁨이라는 핑계로, 익숙함이라는 무관심으로 너무 많은 것을 그냥 지나칩니다. 가장 익숙한 곳에서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본다면 청량리역을 지키는 검수차고처럼 놓치고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이야기가 아직 우리를 기다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