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6기

from 꾸릉이ㅣ여름의 끝, 물회 한 그릇

여름의 끝, 물회 한 그릇

무기력한 나날 속에서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여름의 끝자락, 차가운 물회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을 때다. 얼음 육수에 싱싱한 회와 채소, 달콤한 배가 어우러진 물회는 그 자체로 뜨거웠던 여름을 닮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하루 끝에 시원한 국물을 들이키면, 무거웠던 몸이 단숨에 가벼워진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물회 ⓒ꾸릉이

물회가 내게 각별한 건 '시원함'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계절과 지역의 이야기가 함께 스며들어 있다. 물회는 원래 바쁜 조업 중에 허기를 채우려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에 물과 간단한 양념을 넣어 빠르게 먹었던 음식에서 시작되었다. 지친 몸을 달래주던 '노동식'으로서 지역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음식이다.

나는 도시 한복판에 살지만, 한 그릇 물회에서 그 음식이 태어난 바다의 냄새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포항과 속초의 싱싱한 오징어 물회, 제주도 자리돔 물회 등 각 지역의 삶의 방식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의미있다. 물회를 먹는다는 건, 입을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삶과 문화, 계절의 풍요로움을 함께 맛보는 경험이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물회는 나를 이 계절에 붙잡는다. 한 숟갈 크게 떠먹으며 올해의 마지막 여름을 삼킨다. 뜨거웠던 여름이 있었기에, 이 시원함이 더 선명하다. 올해의 마지막 여름을 삼키고 나면, 입안에는 바다의 시원함이, 마음에는 계절의 흔적이 남는다. 그 순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