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5기
from 강ㅣ우리 산책해요. 당신의 이번 봄도 평안하길 바란다는 말이에요.

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는 계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이 계절은 동네 산책과 참 잘 어울린다.
동네 산책이 좋아
스스로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산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겨울이 올 것 같다가 갑자기 봄 날씨처럼 포근해졌던 때였다. 따사로운 풍경과 적당한 온도가 완벽했던 그때, 미국으로 떠나는 첫사랑과 어릴 적 같이 살던 동네를 걷게 되는 일이 있었다.
- 여기가 나 첫 심부름 했던 마트인데, 지난번에 갔을 때 아저씨가 나 아직 기억하고 계셨다?
- 진짜? 난 첫 심부름 어디였더라?
- 우리 집이 여기였거든. 그래서 너희 태권도장 사람들이 우이천으로 뛰던 소리 가끔 들렸어.
- 그래? 시끄러웠겠다.
- 아니! 하나도! 오히려 가끔 반가웠는데!

이사 가기 전에 살았던 강북구, 우이천 모습 ⓒ 강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기도 했지만 옛날 기억을 머금은 장소들을 구경하며 걸으니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도란도란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행복 멀리 없다. 이게 행복이지!!”하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물론 첫사랑이 버프가 있었을 수 있다ㅎㅎ) 한동안 그 순간이 맴돌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설이 지나도 그날이 떠오르길래, ‘내가 산책을 좋아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기억에 남는 산책의 순간이 있었다. 이사 후 새로운 동네를 받아들이고 있던 고등학교 2학년 봄. 혜화에서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독특한 건물들과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집들을 구경하는 게 참 즐거웠다. 그 덕에 우리 동네에 조금씩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또 이별, 졸업, 취업 준비 등 많은 변화를 겪었던 작년 3-4월엔 친구와 함께 수영을 마치고 별별 수다를 떨면서 근처를 걷곤 했다. 그 시간이 마구잡이로 삐죽거리던 마음을 잠재워줬다.
동네 산책은 참 그랬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도 하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모르고 지나친 비밀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순간에 빠져들게 되고, 생각이 환기되고, 괴롭다 느껴졌던 순간마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좌)아기자기한 고양이 표지판이 있는 목공소에 진짜 고양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던 날 /
(우)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수영을 마치고 산책했던 날 ⓒ 강
봄이라는 계절
동네 산책을 이번 과제 주제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동네 산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산책하기 좋은 시기라 할 것은 없을 테지만, 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의외로 봄은 우울함이 짙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봄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나 색감 및 온도 변화 등을 맞이하면서, 실제로 불안과 설렘 같은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유발된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사랑 노래가 쏟아지는가 하면,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용어처럼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봄이 주는 우울은 계절의 특성과 비교되어 더 극대화된다. 봄이어서 우울했던 경험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싱그러운 봄에 그렇지 못한 내가 괜히 미운 때가 있었다. 모두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열등감이 들곤 했다. 아름다운 봄 풍경에 티 같은 나만 없으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이럴 때 동네 산책 덕을 봤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에서 눈길을 거두고, 지금 내가 있는 순간의 감각에 집중했다. 익숙하던 풍경을 처음 보는 것처럼 눈에 담았다. 새가 울고, 해가 따스하고, 촉촉한 먼지 향이 나고. 익숙한 공간에서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며 그냥, 잠시 내 존재를 까먹는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산책을 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곤 했다.

봄이어서 우울했던 날의 산책 사진 ⓒ 강
당신의 봄이 평안하길 바라요
난 이제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봄바람이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던 시간이 지나면 내가 더 단단해지고, 더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번 봄이 영원한 건 아닐까?' 의심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흔들리다 넘어져 상처가 크게 날까, 일어날 힘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봄이 되면 그냥 사람들이 동네 산책을 하면 좋겠다.
눈앞의 일은 약간의 무책임함과 유머로 웃어 넘겨버리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길 바란다. 동네 풍경을 구경하면서 '와 산책하니까 기분 좋네. 나중에 또 산책해야지.' 할 만큼의 힘을 얻길 바란다. 그렇게 조금씩 산책을 하다 보면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다가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갈지 모른다. 혹은 더 나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감당 못 할 것 같은 변화를 맞닥뜨려도 더욱 성장할 당신을 기대하고, 다음 봄을 다시 기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로컬과 함께 했던 나의 2025년 봄은 평안하고 따듯하게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의 이번 봄도 그러하길 바란다.
이번 봄에 당신이 동네를 산책하길 바란다.

ⓒ 강
💿 봄에 동네 산책을 하며 듣기 좋은 곡 추천!
- 담소네공방ㅣ집으로 돌아가는 길
- 기현ㅣyouth
- 루시ㅣ낙화
- 새소년ㅣ난춘
- 트와이스ㅣfeel speacial
로컬 에디터 5기
from 강ㅣ우리 산책해요. 당신의 이번 봄도 평안하길 바란다는 말이에요.
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는 계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이 계절은 동네 산책과 참 잘 어울린다.
동네 산책이 좋아
스스로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산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겨울이 올 것 같다가 갑자기 봄 날씨처럼 포근해졌던 때였다. 따사로운 풍경과 적당한 온도가 완벽했던 그때, 미국으로 떠나는 첫사랑과 어릴 적 같이 살던 동네를 걷게 되는 일이 있었다.
- 여기가 나 첫 심부름 했던 마트인데, 지난번에 갔을 때 아저씨가 나 아직 기억하고 계셨다?
- 진짜? 난 첫 심부름 어디였더라?
- 우리 집이 여기였거든. 그래서 너희 태권도장 사람들이 우이천으로 뛰던 소리 가끔 들렸어.
- 그래? 시끄러웠겠다.
- 아니! 하나도! 오히려 가끔 반가웠는데!
이사 가기 전에 살았던 강북구, 우이천 모습 ⓒ 강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기도 했지만 옛날 기억을 머금은 장소들을 구경하며 걸으니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도란도란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행복 멀리 없다. 이게 행복이지!!”하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물론 첫사랑이 버프가 있었을 수 있다ㅎㅎ) 한동안 그 순간이 맴돌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설이 지나도 그날이 떠오르길래, ‘내가 산책을 좋아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기억에 남는 산책의 순간이 있었다. 이사 후 새로운 동네를 받아들이고 있던 고등학교 2학년 봄. 혜화에서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독특한 건물들과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집들을 구경하는 게 참 즐거웠다. 그 덕에 우리 동네에 조금씩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또 이별, 졸업, 취업 준비 등 많은 변화를 겪었던 작년 3-4월엔 친구와 함께 수영을 마치고 별별 수다를 떨면서 근처를 걷곤 했다. 그 시간이 마구잡이로 삐죽거리던 마음을 잠재워줬다.
동네 산책은 참 그랬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도 하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모르고 지나친 비밀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순간에 빠져들게 되고, 생각이 환기되고, 괴롭다 느껴졌던 순간마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좌)아기자기한 고양이 표지판이 있는 목공소에 진짜 고양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던 날 /
(우)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수영을 마치고 산책했던 날 ⓒ 강
봄이라는 계절
동네 산책을 이번 과제 주제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동네 산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산책하기 좋은 시기라 할 것은 없을 테지만, 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의외로 봄은 우울함이 짙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봄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나 색감 및 온도 변화 등을 맞이하면서, 실제로 불안과 설렘 같은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유발된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사랑 노래가 쏟아지는가 하면,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용어처럼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봄이 주는 우울은 계절의 특성과 비교되어 더 극대화된다. 봄이어서 우울했던 경험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싱그러운 봄에 그렇지 못한 내가 괜히 미운 때가 있었다. 모두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열등감이 들곤 했다. 아름다운 봄 풍경에 티 같은 나만 없으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이럴 때 동네 산책 덕을 봤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에서 눈길을 거두고, 지금 내가 있는 순간의 감각에 집중했다. 익숙하던 풍경을 처음 보는 것처럼 눈에 담았다. 새가 울고, 해가 따스하고, 촉촉한 먼지 향이 나고. 익숙한 공간에서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며 그냥, 잠시 내 존재를 까먹는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산책을 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곤 했다.
봄이어서 우울했던 날의 산책 사진 ⓒ 강
당신의 봄이 평안하길 바라요
난 이제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봄바람이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던 시간이 지나면 내가 더 단단해지고, 더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번 봄이 영원한 건 아닐까?' 의심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흔들리다 넘어져 상처가 크게 날까, 일어날 힘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봄이 되면 그냥 사람들이 동네 산책을 하면 좋겠다.
눈앞의 일은 약간의 무책임함과 유머로 웃어 넘겨버리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길 바란다. 동네 풍경을 구경하면서 '와 산책하니까 기분 좋네. 나중에 또 산책해야지.' 할 만큼의 힘을 얻길 바란다. 그렇게 조금씩 산책을 하다 보면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다가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갈지 모른다. 혹은 더 나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감당 못 할 것 같은 변화를 맞닥뜨려도 더욱 성장할 당신을 기대하고, 다음 봄을 다시 기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로컬과 함께 했던 나의 2025년 봄은 평안하고 따듯하게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의 이번 봄도 그러하길 바란다.
이번 봄에 당신이 동네를 산책하길 바란다.
ⓒ 강
💿 봄에 동네 산책을 하며 듣기 좋은 곡 추천!
- 담소네공방ㅣ집으로 돌아가는 길
- 기현ㅣyouth
- 루시ㅣ낙화
- 새소년ㅣ난춘
- 트와이스ㅣfeel spea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