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에디터 5기

from 재이ㅣ제주와 경주 그리고 돌아온 방랑자

7년을 매일 보던 광치기해변 ⓒ재이

고향 서울로 돌아온 지 1년이 채 안 된 지금,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아직 제주도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도 그럴것이, 대학교 졸업 후 도망치듯 제주도로 떠난 나는 무려 7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한 달 살이만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던 내가, 결국 20대의 전부를 제주에서 보내고 30대가 시작되던 겨울, 그곳을 떠났다.

떠나온 시작, 낯선 겨울 ⓒ재이

제주도에서의 시작도 겨울이었다. 나의 몸만한 캐리어에 끌려 도착한 곳은 성산읍에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이 곳을 오기로 다짐한 건 일주일 전,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우울 속에 허우적 거리던 날이었다. 여행을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인터넷을 헤매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공고글을 발견했다.

[게스트하우스 스텝 모집합니다. 숙식 제공, 월 15만원]

알바천국 경력직 23년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공고였다. '월 15만원이라는 금액은 도대체 어떻게 책정된거지?’ 갸우뚱하며 찾아보니, 게스트하우 스텝이라는 건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청소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아주 낭만적인 일이었다. 이 낭만은 대부분 무급이 기본이 었으니, 이건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행객으로 제주를 가본 적은 많아도 한 달 넘게 살아본 적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 스텝이 되었다.

700번의 만남과 이별 ⓒ재이

3개월 동안 스텝 생활을 하며 약 700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이별을 위해 여행을 떠났고, 누군가는 새로움을 찾기 위해 떠나왔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이별과 만남을 겪었다. 그 때 깨달았다. 

행복은 슬픔과 공존하며, 만남은 이별과 함께 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700명의 경험을 공유받으며 점점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난 미래보다 지금이 행복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낭만의 끝에서 질문이 시작되다. ⓒ재이

그 선택은 내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안전한 미래가 아닌 지금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행복은 역시나 슬픔을 데리고 왔다. 

1년은 즐거웠지만 2년 차엔 서울이 가고싶더니, 4년 차엔 자꾸 의문이 생겼다. ‘내가 왜 제주도에 있는거지?', '지금 하는 일이 내가 계속 미래에도 하고싶은 일인걸까?', '우물안에 개구리가 된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7년차가 되어서야 멈췄다. 사람들은 내가 평생 정착할 줄 알았는지 매번 묻는다.

“왜 제주를 떠났어요?”

가만보자, 내가 왜 제주를 떠났더라?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간결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 곳에서 지낸 시간만큼, 구구절절 많은 이유들이 있으니까. 

"올해 30살이 됐어요. 더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라고 대답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래 그래 나도 30살을 겪어봐서 알지, 라고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이어 말한다. 

또 다른 질문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 경주에 있어요. 새로운 도전 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