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마음은 콩밭

ep.109 계산대

🐢 잠시 멈춰도 괜찮아요

카페에서 주문하려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칫. 병원 접수도 이제는 기계로 하더라고요. 2023년 기준, 전국에 설치된 키오스크만 해도 무려 53만 대. 사람이 없는 풍경이 더 익숙한 우리 일상은 이제, ‘빠름’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빠른 흐름 한가운데서, 조용히 다른 움직임이 피어나고 있어요. 이름도 참 정겨운 ‘느린 계산대(Slow Checkout)’. 이곳에선 화면도, 속도도 중요하지 않아요.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네는 순간이 더 소중하죠. “계산 하나 했을 뿐인데, 오늘 하루가 괜찮아졌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따뜻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ω•,,)♡

🧓 쇼핑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에요

"어디를 눌러야 하더라…?” 작은 글씨, 빠른 화면 전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단계.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ᗜ꒪ ‧̣̥̇) 고령자 10명 중 8명은 키오스크 사용이 어렵다고 말해요. 그중 절반 이상(51.4%)은 “너무 복잡해서”라는 이유를 들었죠. 디지털 소외, 기계를 못 써서 생기는 불편이 다가 아니에요.

마트, 편의점, 시장. 물건을 사는 공간인 동시에 ‘사람을 만나는 장소’거든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계산대에서의 짧은 인사는 유일한 대화가 되기도 해요. 그런데 그마저 기계로 바뀐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900만 명. 전체 인구의 18.4%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죠. 이런 사회에서 ‘쇼핑마저 혼자 하게 되는’ 구조가 확산된다면, 어르신들의 일상은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영국 알치하이머협회 조사에 따르면,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 중 80%는 여전히 ‘쇼핑’을 가장 선호하는 활동으로 꼽았지만, 25%는 “쇼핑을 포기했다”고 답했대요. 다시 말해, 하고싶지만 더 이상 쇼핑을 할 수 없는 아픈 현실인 거죠.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술. 그 변화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와 닿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에겐, 너무 빠른 세상일 수도 있죠.

증명서 발급에 실패한 고령자 ⓒ조선일보

🌎 대화가 있는 계산대, 세계는 이미 시작했어요

세계 곳곳에서는 ‘느림’을 선택한 계산대가 주목받고 있어요.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나라에선, 계산대 앞의 짧은 대화가 ‘사회적 연결망’이 되기도 하죠.

📍 네덜란드ㅣ점보의 ‘클레츠카사’

‘클레츠카사(Kletskassa)’는 네덜란드어로 ‘수다 계산대’라는 뜻이에요. 2019년, 네덜란드 정부가 ‘외로움에 반대하는 사람들(One Against Loneliness)’ 캠페인의 일환으로 도입되었어요. 노인 인구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마켓부터 변화를 시작한 거죠.

• 점보(Jumbo)는 네덜란드 전역 700여 개 매장 중 200곳 이상에서 클레츠카사를 운영해요.
• 계산대 직원은 ‘대화할 준비가 된 사람’으로, 고객과 자유롭게 대화해요.
• 계산 속도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우선해요.

“슈퍼마켓은 단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점보의 CCO 콜레트 클로스터만-반 에르드는 클레츠카사를 이렇게 소개하죠. 노인뿐이 아니에요. 혼자 사는 1인 가구, 대화가 고픈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대요.

📍 프랑스ㅣ까르푸의 ‘블라블라 계산대’

이름부터 유쾌해요. 블라블라 계산대(Blablabla Caisse)는 까르푸(Carrefour)가 2021년부터 운 중인 ‘수다 전용 계산대’예요. 계산원은 고객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최근 본 영화, 날씨, 저녁 메뉴 등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어 나가요. 일부러 블라블라 계산대만 찾는 사람도 많대요. 느슨한 대화가 오히려 휴식이 되거든요.

• 블라블라 계산대에서는 고객과 계산원이 마음껏 이야기 나눌 수 있어요.
• 프랑스 전역 150개 이상 까르푸 매장에서 운영 중이고, 전국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요. (2022년 기준)
•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시니어 고객이며, 10대나 30대 고객도 자주 이용해요.

네덜란드, 클레츠카사 ⓒJumbo / 프랑스, 블라블라 계산대 ⓒLe Télégramme

📍 일본ㅣ‘슬로우 레지’ 프로젝트

고령화 1위 국가답게, 일본은 ‘슬로우 레지(スローレジ, 느린 계산대)’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누구든 자기 손으로 물건을 사고 싶어 한다.” 슬로우 레지를 도입한 이유이자 철학이죠.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도 직접 계산하는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에요.

• 2019년, 이와테현 타키자와시에서 시범 운영된 이후 대형 쇼핑센터에서 적극 도입했어요.
• 슬로우 레지의 직원은 ‘치매 서포터 양성과정’을 이수한 전문 인력이에요.
• 쇼핑 중 길을 잃은 고객을 안내하거나, 잔돈 계산을 함께 도와주는 ‘동행 서비스’도 제공해요.

슬로우 레지는 점점 더 많은 지자체와 협력하면서, 일본 전역으로 확산 중이에요. 전체 인구의 29%, 3,620만 명.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를 생각하면, 슬로우 레지는 ‘특수한 서비스’가 아니라 ‘기본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 영국ㅣ테스코의 ‘릴랙스드 체크아웃’

영국 테스코(Tesco)는 2017년부터 스코틀랜드 매장에서 ‘릴랙스드 체크아웃(Relaxed Checkout)’을 시범 운영 중이에요.

• 릴렉스드 체크아웃은 알츠하이머 기관과 협력하여 만들어져, 계산원은 치매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맡아요.
• 계산대에는 조명을 낮추고, 음악도 꺼죠. 말 그대로 체크아웃-!
• 바코드 인식이 어려운 손님, 물건 정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손님을 기다려주는 ‘배려의 시간’이 보장돼요.

릴렉스드 체크아웃은 알츠하이머 환자뿐 아니라 자폐 스펙트럼, 불안 장애, 노약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어요. 테스코는 이후 영국 전역 400개 매장으로 확대를 검토 중이래요.

📍 캐나다ㅣ소비스의 ‘슬로우 소셜 레인’

캐나다 에드먼턴의 소비스(Sobeys) 벨몬트 매장에는 특별한 계산대가 있어요. 이름하여 ‘슬로우 소셜 레인(Slow Social Lane)’, 느린 줄이죠. 하키 이야기부터 일상 토크, 때론 속 깊은 고민까지. 손님과의 대화를 너무 좋아한 계산원, 제이슨 러틀리지가 만든 계산보다 대화가 중심이 되는 계산대예요.

• 따로 안내판 없이도 슬로우 레인은 ‘입소문’이 났어요.
• “여기서 계산하면 하루 기분이 좋아진다”며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해요.

소비스는 “느림이 꼭 손해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이 계산대를 슬로우 소셜 레인으로 공식 지정했어요. 속도는 느리지만, 고객 만족도와 재방문율은 오히려 빠르게 올라갔으니 회사도 만족한 거죠.

일본, 슬로우 레지 ⓒ요미우리신문 / 캐나다, 슬로우 소셜 레인 ⓒCBC

💬 느림이 만든 따뜻한 변화, 우리도 필요해요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어요. 하지만, 70대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100점 만점에 43점.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예요.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서비스는 ‘고령자 전용 계산대’(66%)였다고 해요. 키오스크보다,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는 계산대가 더 필요한 거죠. 단지 편의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주체성을 지키고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는 작지만 확실한 기회니까요. (´｡• ᵕ •｡`) ♡

느린 계산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요. 고립감을 덜고, 고객을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불러오고, 속도보다 사람을 중심 둔 서비스 문화를 만들어가죠. 결국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따뜻한 이미지를 남겨요.

그 변화의 시작은 아주 작을지도 몰라요. “오늘 날씨 어때요?”, “이거, 맛있었어요.” 그 짧은 대화 한 줄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기도 하니까요. 빠름이 기본값이 된 세상에서, 느림은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재설계일 수 있어요. 계산 하나 했을 뿐인데, 마음이 환해지는 경험. 우리 동네에도, 그런 계산대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