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마음은 콩밭

ep.118 모임

이런 경험 있지 않나요? “드디어 우리 동네에서도 한 번 해보자!” 하고 용기 내서 독서 모임을 열었는데, 신청자가 나 혼자.（三ФÅФ三） 이상하게 옆동네 새벽 러닝 모임은 공지만 뜨면 바로 마감, 심지어 대기자도 있더라고요.

보통 이럴 때 “우리 동네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연구*는 단호하게 말해요. “아니요.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이 연구는 모임 앱**에 등록된 이벤트 100만 건 이상을 통째로 분석했어요. 어떤 모임은 계속 사람들이 몰리고, 어떤 모임은 조용히 사라지는지 아주 집요하게 들여다본 거죠. 오늘은 그 연구를 통해, 잘되는 모임의 3가지 비밀을 전할게요.

*Hsu, J. H.-p., et al. (2026). Predicting the success of local gatherings: A comparison of organizer- and participant-side success in Meetup. Cities, 169, 106530.

**모임 앱(EBSN): '밋업(Meetup)'이나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처럼, 온라인에서 그룹을 만들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이벤트 기반 소셜 네트워킹(Event-Based Social Networking)' 플랫폼을 의미해요.

대표적인 모임 앱 ‘Meetup’의 홈페이지 ⓒMeetup

☝️첫 번째 비밀ㅣ사람 많다고 모임이 터지는 건 아니다

가장 놀라웠던 의외였던 결과부터 볼까요. “도시가 크면 모임도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데이터는 정반대를 말했어요. 미국에서 가장 크고 밀도가 높은 도시, 뉴욕. 당연히 모임도 1등일 것 같죠? 아니요. 놀랍게도 참가자 인기는 오히려 오스틴(첨단산업 중심 도시)이나 LA보다 낮게 나왔어요.

왜 일까요? 연구진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너무 많은 선택지에 둘러싸여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뉴욕에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오늘 저녁에만 독서 모임 50개, 와인 모임 30개가 열려요. 이 중에 뭘 가야 하지?”를 고르다 지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거죠. 이게 바로 ‘감각 과부하’예요.

반대로, 오스틴이나 LA처럼 상대적으로 덜 빽빽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라는 감각을 더 잘 느끼고, 그래서 작은 커뮤니티도 단단하게 묶이기 쉬워요. 선택지가 적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점이 더 잘 보이는 거죠. 

 탐방 Insight 

결론은 대도시가 불리한 게 아니라, 로컬의 성패는 ‘인구수’가 아니라 ‘연결 고리’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인구 10만의 도시라도 그 안에 강력한 연결이 있다면 1,000만 도시보다 더 뜨거운 커뮤니티가 될 수 있어요. 서울 같은 대도시도 마찬가지죠. 동네 단위로 끈끈한 연결이 만들어지면, 거대한 도시 안에서도 ‘우리 동네’라는 유대감이 충만할 수 있어요.

✌️ 두 번째 비밀ㅣ참가자는 ‘Vibe’를, 기획자는 ‘Place’를 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걸 도무지 모르겠어!” 모임을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 부딪혀 본 고민이죠. 데이터를 들여다보니까 이유가 있더라고요. 모임의 ‘참여자’와 모임의 ‘기획자’가 중요하게 보는 지점이 아예 달랐거든요.

참가자가 많은 모임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커뮤니티 특성’이 뚜렷했다는 거예요. 참가자 수의 증감은 단순히 주제의 매력보다는, 그 모임이 가진 사람들의 결속력과 분위기에 따라 움직였어요. “거기 누가 오는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지”, “그 모임만의 공기와 감정선이 어떤지” 같은 요소가 참가자들의 선택을 좌우했죠. 결국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누구와 함께하는가 에 더 끌리는 거죠.

반면 기획자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모임을 바라봤어요. 기획자에게 모임의 성공은 한 번 꽉 찬 모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은 퀄리티로 계속 열 수 있느냐에 가까웠어요. 이들은 자연스럽게 지리·공간적 조건을 포함한 운영 측면을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죠. “이 장소는 예약하고 세팅하기에 번거롭지 않은가”, “대중교통으로 오기 무리가 없는가”, “비가 오거나 일정이 바뀌었을 때 바로 대체 공간을 쓸 수 있는가”, “임대료나 운영비가 과하게 들지 않는가”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이 모임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거든요. 결국 참가자가 모임을 감정과 분위기의 언어로 고른다면, 기획자는 장소와 운영이라는 시스템의 언어로 보는 셈이에요.

 탐방 Insight 

잘 되는 로컬 모임은 늘 소속감과 편리함 장소,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켜요. 참가자에겐 “여기 우리끼리 모이는 곳이야”라는 소속감(Vibe)을 주고, 기획자에겐 “여기서 계속 열자”라는 말이 나오는 편리한 장소(Place)에서 열리죠. 둘 중 하나만 있는 모임은 반짝 터질 뿐, 오래가지 않아요.

🤟 세 번째 비밀ㅣ‘무엇’은 보편적이지만, ‘어디서’는 동네마다 다르다

“그래서 진짜 사람들 많이 오는 모임은 뭐예요?” 정답은 있었어요. 어느 도시에서든 거의 예외 없이 잘 먹히는 모임, 바로 스포츠&레크리에이션이었죠. 요가, 러닝, 하이킹, 필라테스, 실내 스포츠… 이런 활동들은 도시 규모나 인구 구성과 상관없이 꾸준히 신청자가 많았어요. 건강과 웰빙이 이제는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기본값’이 됐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죠. (운동은 국룰…🏃)

반대로 테크 모임은 거의 모든 도시에서 참여율이 가장 낮게 나왔어요. 기술이 중요한 시대인데 모임에서는 왜 안 터질까? 이건 ‘정보’는 온라인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굳이 오프라인에서까지 테크를 소비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반영된 걸로 볼 수 있어요.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는 이유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텍스트와 영상으로 대체 가능한 주제는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 ‘무슨 모임을 하느냐’는 도시를 가리지 않고 비슷했지만, ‘어디서 하느냐’는 도시마다 완전히 달랐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뉴욕에서는 '커리어' 관련 모임이 맨해튼 중심 업무지구에 바싹 모여있었고요. 시애틀에서는 '스포츠' 모임은 도심 외곽 호수 근처에 , '게임' 모임은 대학가와 주거 지역에 많았습니다. 볼티모어의 '친목(소셜라이징)' 모임은 주로 분위기 좋은 물가(워터프런트)에서 열렸죠.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연구에서는 사회공간적 이질성(socio-spatial heterogeneity)이라고 지칭했어요. 어려운 용어 같지만, 뜻은 간단해요. ‘도시마다 사람(사회)이 다르니 공간도 달라진다’는 것. 같은 피트니스 모임이라도 어떤 도시는 강변 산책로에서, 어떤 도시는 코워킹스페이스 루프탑에서, 또 어떤 도시는 호수 근처의 레저센터에서 열리는 식으로요.

 탐방 Insight 

성공하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편 트렌드와 우리 동네만의 특성(지역성)을 함께 읽어야해요. “테크 모임은 원래 안 돼”라고 말하기 전에, 그 모임을 하는 ‘공간의 결’을 바꿔보는 거죠. 딱딱한 사무실 말고, 리버사이드 카페, 전망 좋은 도서관, 항만 리노베이션 공간, 동네 문화센터 라운지 같은 곳에서 하면 참여자가 달라질 수 있어요. 결국 콘텐츠는 보편성으로 끌어오고, 장소는 지역성으로 설계하는 것이 오래 가는 로컬 모임의 공식!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네 플랫폼인 ‘당근’에서도 ‘모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2023년 9월 기준 당근 모임에서는 1위 운동, 2위 동네친구, 3위 스터디가 인기였어요. ⓒ당근

💡 잘되는 로컬의 비밀은 결국 '매력적인 사랑방'에 있었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명확해요. 로컬이 살아나는 건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워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시 말해 “무슨 모임을 하느냐”보다 “누구랑, 어디서 하느냐”가 더 큰 변수였다는 거죠.

연구진은 정책가들에게 공원, 도서관, 커뮤니티 센터 같은 '제3의 공간'을 강화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런 멋진 공공장소는 '피트니스'나 '친목 모임'처럼 인기 있는 이벤트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오면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면 그게 곧 사회적 자본이 되죠.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아무 때나 가도 아는 얼굴 있는 곳”, 그게 결국 로컬을 지탱하는 사랑방이에요.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Third Place)도 같은 개념이죠. 집(1)도 아니고 회사(2)도 아닌, 비공식적으로 스며들어 머물 수 있는 세 번째 장소가 있어야 동네가 ‘살아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건데요. 카페, 작은 공원, 동네 도서관과 같은 마을 사랑방이 전부 그 역할을 해요.

이제부터는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세요. “왜 우리 동네는 모임이 안 될까?”가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디서 만나고 싶어 할까?” 이 답을 찾는 순간, 우리 동네의 모습이 바뀝니다. 🍁